33화 하아, 집 나가면 개고생.
여관에 도착한 레안은 그대로 단장들의 방에 둘을 데리고 가 던져버렸다.
예고도 없이 갑자기 열린 문에 옷을 갈아입던 류는 화들짝 놀랐다. 그러나 그에게는 조금의 시선도 주지 않은 채 레안은 침대에 던져놓은 둘의 옷을 들어 올리곤 상처를 확인했다.
“저어, 아무리 그래도 남자입니다만?”치료를 위한 것이라는 건 알지만 너무 자연스럽게 옷을 들어 올리며 벗기는 레안의 손길에 하륜이 당황하며 말했다.
그에 레안이 어이없다는 듯 픽 웃었다.
“약은 줄 테니까 둘이서 알아서 발라. 그리고 아래층에 있을 테니까 나머지 녀석들 다 데리고 내려와.”
류가 알몸을 보였다고 호들갑 떨 시간도 주지 않은 채 레안은 뒤적 거리며 바르는 약 하나를 던져 주고는 방을 나갔다.
이에 한숨을 내쉬며 라힌은 약을 들어 자신의 몸과 하륜의 몸에 바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류가 다소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으음, 뭐 잘못 한 거 있어?”
뻔뻔한 류의 물음에 라힌이 표정을 찡그렸다. 자신들이 지인줄 아나. 레안한테 맞아서 다친 거 아니냐는 의미를 담은 류의 물음에 라힌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 발랐으니 내려가죠. 하륜 군은 카엘 군과 리엔 군을 불러와주세요.”
라힌의 말에 하륜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라힌은 탐탁치 않은 표정으로 라이너, 류를 데리고 아래로 내려갔다.
구석 진 테이블에서 그들을 기다리던 레안은 이내 하륜 등도 다 내려온 것을 확인하곤 그들을 데리고 으슥한 뒷골목으로 향했다. 인적 드문 곳이라 사람 한명 없이 등불 하나만 놓여진 그곳에서 레안은 발걸음을 멈췄다.
“라힌이랑 하륜은 방으로 돌아가서 쉬어.”
원래는 라힌이랑 하륜도 구경하다 늦게 왔기에 같이 혼낼려고 했었지만 마물 토벌하느라 고생도 했고 부상도 입었기에 한번만 봐주자는 생각으로 레안은 둘을 방으로 올려보냈다.
이에 라힌과 하륜은 황급히 사라졌다.
네명만 남게 되자 레안은 성질 사나운 표정을 지으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왜 자신들을 인적 드문 골목길로 데리고 왔을까 고민하던 그들은 그녀가 피어올리는 살기를 느끼곤 몸을 굳혔다.
“잘 놀고 왔어?”
항상 뚱한 표정이던 그녀였건만 답지 않게 레안이 웃으며 그들에게 말했다. 그 모습에 남들이 봤다면 귀엽다거나 예쁘다고 말했을지 모르지만 그들은 일제히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그리고 그들이 속으로 한 생각은 ‘좆 됐다.’
“참 시간 남아돌아? 일할 시간에 구경도 하고.”
끄응.
구경하는데 정신이 팔려 다소 늦게 여관에 도착하고 아차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역시나.
“가끔은 구경을 하는 것도 좋지.”답지 않게 반발하는 라이너의 대답에 레안이 피식 웃었다.
감히 네가 내 말에 말대꾸를 해, 라는 뜻의.
“그래, 나도 구경 좀 하자. 복 날에 개 맞듯이 맞는 사람 몰골이 어떤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레안의 주먹이 가장 먼저 라이너를 향해 날라갔고, 미처 피할 새도 없이 라이너는 복부를 맞아 바닥에 주저 앉았다. 감정표현에 담백한 그였지만 레안이 주는 고통은 그로서도 참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 이후 연달아 류, 리엔, 카엘이 레안에게 맞아 바닥에 쓰러졌고 그 이후 골목길에서는 퍽퍽 거리는 소리와 함께 윽하는 비명소리가 계속 해서 들렸다.
다음날 아침.
출발하기 위해 다같이 준비를 마치고 내려온 이들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그나마 하륜과 라힌은 마물 토벌로 인해 다친 부상은 약을 발라 나았다지만 레안에게 맞은 4명은 치료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기에 어제의 상처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얼굴 곳곳이 파랗게 얼룩진 멍과 다소 따뜻한 날씨로 인해 반팔을 입은 그들의 팔에서 보이는 상처들. 외부에 드러난 신체의 일부들이 마치 옷을 입은 것 마냥 몸을 가려주고 있었다. 그 모습엔 새삼 어제 봤음에도 라힌과 하륜은 난감했다. 그러면서 일찍 여관에 도착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가 그대로 묻어 있던 어제의 모습도 살벌했지만 역시, 모든 상처는 다음 날이 되어야 상태를 알 수 있다고 하더니 하루가 지난 후 그들의 상태를 보니 장난이 아니었다. 특히 피가 가신 후 드러나는 상처들은 정말.
보아하니 절대 치료를 해줄 생각이 없는 것 같은데. 과연 저 상태로 제이로 제국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런지. 라힌은 아주 살짝 걱정이 되었다. 그들 때문에 제이로 제국에 혹시나 늦게 도착해서 쉴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까봐.
“니들은 저기 가서 쳐먹어. 하륜이랑 라힌만 여기서 먹고.”
괜히 뒤끝이 강한 레안이 아니었기에 어제의 일로 아직도 기분이 별로 안 좋은 레안은 그대로 류를 포함한 네명은 다른 테이블로 보내버렸다. 레안이 있는 테이블과 비교되는 식단에 리엔이 울컥했지만 카엘이 그를 붙잡아 말렸다. 그 역시도 리엔 못지 않게 안 좋은 상태로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습니까?”
저 정도면 충분히 용서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하륜이 조심스럽게 건의했다.
하지만 레안은 아주 상큼히 무시했다. 친구인 리엔과 카엘이 걱정이 되는지 하륜의 표정은 다소 어두웠다.
“어찌 되었든 저들은 임무를 등한시 하고 축제 구경하다가 결국 다른 동료들이 부상을 입게 했으니까요. 레안님도 축제 때문에 들뜬 그들의 마음을 모르는건 아니지만, 축제 구경은 레안 님에게 부탁해서 임무 후에 해도 상관없는 일인데 그걸로 인해 임무에 지장이 입었으니 레안 님이 저러시는 것도 이해가 되죠. 아무래도 그런 저들의 행동은 기강해이로 볼 수 있으니까요.”
덧붙여 설명하는 라힌의 말에 하륜은 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카엘과 리엔의 상태에 미처 그 생각까지 하지 못했던 하륜이었다.
하긴 어찌 되었든 자신들은 놀러 온 것이 아니라 임무를 위해 왔고, 자신들이 축제 구경을 하느라 시간을 지체하면 할수록 그로 인한 피해는 늘어날 수 있으니까. 그게 단지 몇분이라고 해도.
“먹고 바로 출발할 거니까 그렇게 알아. 갈 때는 쉬지 않고 바로 갈거야. 물론 잠은 자게 해주지.”그럼 잠도 못 자게 할 생각이었냐!
욱하는 마음에 리엔이 눈을 치켜뜨며 레안이 있는 곳을 노려보았지만 레안은 그를 향해 시선 한쪼가리도 던지지 않았다. 오히려 네가 감히 레안 님께 대드는 거냐며 류에게 머리를 맞았을 뿐이었다.
점심을 먹고 그들은 레안의 말대로 소화할 틈도 없이 여관을 빠져나와 무작정 달려야 했다. 뭐가 그리 급한지 없는 길도 만들어 내서 가는 레안의 모습에 몸 상태가 좋지 않은 4명은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그러나 표정으로는 조금도 불만을 드러낼 수 없었다.
여기서 더 맞으면 진짜 송장이 되어 끌려갈지도 모르니까.
한참을 쉴 틈 없이 달려가던 레안은 어느새 해가 지고 밤이 된 것을 깨닫곤 그 즉시 멈췄다. 갑작스런 브레이크에 그녀를 따라가던 이들이 제대로 멈추지 못하고 충돌하며 몇몇은 바닥에 쓰러졌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그녀가 한심하단 눈으로 바라보았다.
리엔이 씩씩 거렸지만 그를 붙잡는 카엘과 류의 행동에 리엔은 가만히 입을 삐죽였다.
“자자.”
헐, 여기서?
아무리 그래도 여기 이 많은 사람이 누울 곳이 어디 있다고?
말도 안된다는 리엔의 시선이 레안을 향했다.
“깔고 자기 전에 얌전히 쳐자.”
쳇. 리엔은 잠자코 그래도 빈 공간을 찾아 몸을 뉘었다. 뒤를 따라 다른 일행들도 막 자리를 찾아 몸을 자리 했을 즈음, 조그맣게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연신 부스럭 거리는 소리를 보아 한두개가 아닌 듯 했다. 마물이든 인간이든.
“리엔이랑 라이너가 처리하고 와.”
우와아. 라고 말하는 듯한 리엔의 시선이 레안을 향했지만 리엔은 그저 라이너의 손에 이끌려 질질 끌려갈 뿐이었다.
미처 그들이 근원지로 향하기도 전 스물 남짓한 건장한 사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드물게 검이 아닌 다른 무기들을 집어든 그들의 모습은 흉흉한 기세를 내뿜고 있었다.
보아하니 현상금 사냥꾼 겸 산적을 하고 있는 모양인 것 같았다.
그들을 대충 힐끔 쳐다보던 레안은 귀찮다는 듯 다시 눈을 감았다.
자신들이 등장했음에도 별다른 동요가 없는 그들의 모습에 대장으로 보이는 이가 인상을 찌푸렸다. 특히나 가장 어려 보이는 계집이 자신을 비웃듯 던지는 시선에 자존심이 와락 상하는 것을 느꼈다. 보아하니 높은 계급의 딸인 것 같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
설사 자신들이 그녀를 겁탈한다고 해서 어찌 할 수는 없으리라. 명예를 중시하는 귀족이 과연 그 사실을 인정이나 할려고 할까?
멋대로 상상의 나래에 빠지는 그를 바라보며 라힌이 한숨을 내쉬었다.
“흐흠, 우리는 붉은 머리 산적단의 두목이 호크다. 필히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 봤을 터, 순순히 저 계집과 가진 것을 모두 내놓으면 살려주마.”
호기어린 두목의 말에 라이너는 피식,하고 비웃었다. 워낙 표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 그였지만 이번만큼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에 두목은 발끈했다.
“네놈들이 오늘 살고 싶지 않은 모양이구나? 갈갈이 찢어 마물들 밥으로 던져주마.”
식상한 대사에 레안이 눈을 뜨곤 그들을 노려보았다. 협박한다는 말이 고작 저런 대사 밖에 못하는 건지. 진부하고 너무 재미없는 대사에 레안은 진한 비웃음을 날렸다.
이에 결국 두목이 참짐 못하고 도끼를 휘둘렀다. 호를 그리며 큰 동작으로 도끼는 가장 만만해 보이는 류를 향해 나아갔다.
그러나 그의 도끼가 반도 향하기 전 두목의 손목은 류가 휘두른 검으로 인해 몸과 분리되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속도가 빨리 미처 자각하지 못했던 두목은 류의 움직임을 포착하지 못했고 그래서 류가 자신의 도끼에 당연히 목이 베인 줄로 착각했다.
뒤늦게서야 자신의 손목이 도끼와 함께 잘린 걸 발견한 두목은 손목을 부여잡고 소리를 질렀고, 그 소리에 부하들이 움찔한 순간 카엘과 리엔, 라이너가 제각기 그들을 제압했다. 이대로 쉽게 끝낼 생각은 없었기에 목숨에 지장 없이 죽지 않을 만한 곳 한군데만 적당히 조져 논 그들은 실실 쪼개며-물론 라이너 제외-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들 나름대로 그 지역-카먼 왕국-에서 유명한 도적단이었기에 너무 쉽게 제압 당한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이것은 두목으로서 항상 우월감을 느끼며 부하들을 부리던 호크가 가장 심했는데 그는 이성을 잃고 그에게 덤벼 들었다. 그러나 양손잡이가 아닌 이상에야 한번도 쓰지 못한 왼손으로 무기도 제대로 휘두르기 힘들뿐더러 그 무기도 빼앗겨 몸 밖에 없던 그의 반항은 손쉽게 막혔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는 그 근성에 류는 호오 하며 탄성을 내뱉었다.
“아참, 우리 소개 안 했지? 난 제이로 제국의 황실 기사단 소속 청룡단 단장인 류라고 해. 쟤는 내 부하고, 나머지는 그냥 황실 기사단.”
생글 웃으며 말하는 그의 말에 산적들은 일제히 경악어린 표정을 지었다. 어쩐지 자신들을 너무도 쉽게 제압하더라니.
어쩌자고 황실 기사단을 건드려서..
아니 애초에 황실 기사단이면 기사단이라는 표시를 내면 좀 좋아?
그들의 말없는 불평이 표정에 떠올랐다.
“류, 저 두목이라는 놈. 그 놈은 제대로 조져. 혹시나 내가 봤을 때 부족하다 싶으면 그만큼 네가 맞는다.”
역시 계집이라는 소리가 꽤나 거슬렸는지 그때까지 잠자코 있던 레안이 류를 향해 불쑥 말했다. 그 말에 류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씨익 웃으며 두목을 잡아 올렸다.
그들이 떠난 그 자리에는 살아도 절대 산 거라고 볼 수 없는 산적 일행과 처참히 으깨져 버려진 산적 두목이 덩그러니 버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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