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함께 있어 행복...할까요?
정말 운도 더럽게 없다는 생각에 리엔이 인상을 찌푸렸다. 하필이면 오늘 비가 올게 뭐람.
안그래도 잠을 설친 덕분에 피곤해죽겠건만 기어코 비까지 쏟아져 길이 험해지자 리엔은 금방이라도 죽어갈 듯한 분위기였다.
“쟨.. 좀비냐?”
유난히 더 늦어지는 리엔의 걸음 덕분에 기어코 레안이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에 리엔의 친구인 하륜은 어색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이런 말 하긴 미안하지만 친구인 그가 봐도 현재 리엔의 몰골은 좀비 저리가라 할 정도였다.
“큭. 혹시 모릅니다. 정말 좀비일지.”잘도 농담을 던지는 카엘의 모습에 단장들의 묘한 시선이 그를 향해 박혔다. 확실히 이전부터 느낀 거지만 이 놈의 새로운 신입들은 뭔가 참 독특했다.
“그보다 좀 쉬다 가는 것이 어떨까요?”
아무래도 끝없이 이어지는 숲을 비가 내려 질척한 상황에서 건너가려니 영 속도도 붙지 않고, 평소보다 더 힘들어 라힌이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그의 제안에 다른 이들 역시도 같은 생각을 했었지만 묘한 기대감을 담아 레안을 바라보았다.
“싫은데?”
어째 비가 와서 바닥에 잔뜩 망가졌음에도 별다를 것 없이 평온하게 걷던 레안이 단칼에 거절했다. 힘들어 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좀 쉴까 싶기도 했지만 얼마 가지도 못했는데, 지금 쉬기엔 사안이 너무 급했다. 미안하게도 이녀석들 훈련시키느라 이미 시간을 지체하기도 했고. 나름 훈련이겠거니 생각하며 레안은 그들을 무시하며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저렇게 냉정하게 거절하는데 재차 요청할 수도 없어 그들은 한숨을 내쉬며 레안의 뒤를 따랐다.
“이거 완전 폭우 아닙니까?”
정말 왜 이렇게 날씨가 유난스러운지, 비가 내린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드문 날씨이건만 전설 속의 우기도 아니고, 우박 내리듯 퍼붓는 비에 바론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얼마나 비가 많이 내리는지 앞이 잘 안 보일 지경이었다.
“그만 쉬지?”
아쉬운 소리 하는 것이 싫어 애써 참고 걷던 라이너 역시도 슬슬 한계가 왔는지 싸늘하게 말했다.
“닥치고 그냥 걸어. 조금만 더 가면 동굴 나오니까, 거기서 쉰다.”
어차피 그녀도 상황이 이런 이상 더 이상 강행하기도 뭐해 쉬려고 했었기에 뚱하니 대답했다.
하지만 조금만 더 가면 된다더니 30분을 걸은 것 같은데도 보이지 않는 동굴에 리엔이 표정을 와락 구겼다. 잘하면 레안한테 덤벼들지 않을까 싶은 것이, 아슬한 상황 속에서 다행히 리엔이 발악하기 전에 동굴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동굴을 발견한 이들은 일제히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서둘러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그들을 보며 레안이 머리를 살짝 긁적였다.
저기, 늑대 살고 있는 곳인데.
원래는 말을 하고 늑대 처리한 후에 가서 쉬려고 했건만 급한 녀석들의 행동 덕분에 미처 뭐라고 하기도 전에 들어 가버려 레안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역시나 동굴 안에서 짜증어린 녀석들의 소리가 들렸다. 그에 레안은 느긋하게 근처 나무에 올라 몸을 뉘었다. 동굴 안에 늑대가 있다고는 하나 다 A급이었기에 굳이 도와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레안이었다. 거기다 비 때문에 옷이 젖어 몸에 달라붙는 것은 짜증나지만 이런 식으로 퍼부어지는 비를 맞는 것도 오랜만이라 좀더 비를 맞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어차피 이미 젖은 옷, 더 젖는다고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고.
대충 나무에 기대 하늘을 보며 비 구경을 하던 레안은 안이 대충 정리가 된 것 같자 나무에서 내려와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레안의 예상대로 동굴 안은 착실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거기다 무인도 생활이 꽤 영향이 컸는지, 이전 여행에서 마물 먹자는 레안의 말에 극도로 띠꺼워 하던 단장들과 그 외 인간들이 자신이 말도 하기 전에 손수 몇 마리의 늑대의 가죽을 벗기고 친히 고기를 굽고 있었다. 새삼 무인도에 보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 레안이 피식 웃었다.
“너무한 거 아니에요?”
자신들은 기껏 피곤에 지친 몸을 이끌고 늑대들을 처리했건만 일이 다 끝나자 여유롭게 들어오는 레안의 모습에 리엔이 욱하며 따졌다. 그러나 레안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며 리엔의 목덜미를 잡아 살포시 던질 뿐이었다.
“안 춥습니까?”
자신들이야 대충 젖은 옷을 피운 불 근처에 놓고 말리고 있다지만 아직도 젖은 옷 그대로 입고 있는 레안의 모습을 보며 하륜이 걱정스레 물었다.
“여자야.”
응?
무슨 말인가 싶던 하륜은 뒤늦게 그녀가 말한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녀가 아니더라도 제나와 유란도 옷을 입고 있었다. 아무래도 여자인 이상 남자들만큼 옷을 벗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럼 불 가까이 가서 말리지 그럽니까?”
흐응.
하륜의 말에 레안이 묘한 표정을 지으며 하륜을 바라보았다.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것이 뭔가 싶었다. 하지만 왠지 무시하면 더 귀찮게 굴 것 같아 끼적끼적 불 근처로 갔다.
“레안님, 춥겠다.”
아무리 단장이라고 해도 어린 모습 때문일까. 그녀 역시도 젖은 옷을 입고 있어 추워보였지만 유난히 레안의 모습이 더 추워보이는 것이, 유란이 자신이 덮고 있던 모포를 들고서 레안 곁에 앉아 같이 모포를 덮었다.
친절한 행동에 레안이 피식 웃었다. 확실히 기사단에서 여자가 레안과 유란-제나는 예외의 인물로 여자란 범주에서는 빼도록 하겠다- 밖에 없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저 유란 성격이 독특해서인지 유난히 유란은 레안에게 극도의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레안님 은근히 몸매 좋으시네요?”
풉.
제나의 말에 몸을 녹히려 따뜻한 물을 마시던 이들이 일제히 사례에 걸려 콜록 거렸다. 그만큼 제나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물론 젖은 옷 덕분에 몸의 선이 완전히 드러나 레안의 몸매를 확인할 수 있었고, 실제로 생각보다 라인이 살아있는 것이 좋다고 할 수 있었지만 대놓고 말하는 제나의 행동에 그들은 패닉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어머, 제나. 레안님에게 그런 말이라니. 거기다 여장남자인 네.가 할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설마요. 남.자 같은 단장님이야 말로 감히 레안님 옆에 앉아서 모포를 같이 덮고 있는 것은 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둘다 좀 닥치지?”
이상한 말을 하더니 기어코 싸움까지 하려는 듯 싸울 듯한 분위기 조성에 레안이 싸늘히 말했다. 그에 유란이 울상을 지었다.
“레안님 너무해요.”
하여간.
귀찮다는 듯 레안이 시선을 돌리며 멍하니 불을 바라보다 바로 잠이 들어버렸다. 딱히 몸이 피곤한 것은 아니었지만 따뜻한 불과 함께 있으려니 노곤노곤한 게 의도치 않게 그렇게 되어 버렸다.
어느새 잠이 들어 꾸벅이는 레안의 모습을 보며 유란과 제나가 눈을 빛내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솔직히 평소에는 상당히 카리스마 있는 레안이었지만, 외모 자체가 워낙 귀여워 이렇게 무방비하게 자는 모습을 보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거기다 평상시에는 이렇게 빤히 쳐다보다간 왜 쳐다보냐면서 살기를 흘릴 것을 알고 있었기에 레안의 외모를 두근두근 하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는 지금뿐이었다.
하지만 같은 여자임에도 유란이 다른 이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이 기분 나빴던 것일까. 기어코 라이너가 유란을 끌고와 제품에 앉히고는 같이 모포를 덮었다. 그에 유란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감히 어딜 보냐는 듯 유란의 고개를 자기 쪽으로 돌리는 라이너의 행동에 유란이 싱긋 웃으며 라이너의 목을 팔로 감았다.
그동안 라이너와 유란이 부부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 둘이 함께하는 모습을 볼 일이 거의 없었기에 그들의 애정행각을 본 적이 없던 하륜과 카엘, 리엔은 다소 멍한 표정을 지었다. 특히 리엔의 쇼크는 컸다.
“흐응. 처음 봐?”
류야 단장이라 그들과 같이 숙소를 썼기에 자주 보아왔던 상황이라 담담했는데, 충격 받은 리엔의 모습을 보니 신선한 마음이 들어 리엔에게 쓱 다가가며 물었다. 그에 리엔이 펄쩍 뛰며 물러났다. 그에게 류는 핵폭탄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그 행동 덕분에 기분이 나빠진 류는 리엔을 괴롭히기 시작했고, 덕분에 리엔은 완전 시체꼴이 되어버렸다.
정말 얼마나 오래 잤는지 몸까지 찌뿌둥한 것이 레안이 가볍게 스트레칭을 했다. 그래도 다행히 오래 내릴 비는 아니었는지 하루 만에 그쳐 있었다. 그래도 워낙 많이 내린 덕에 바닥은 여전히 흙탕물에 질척거리곤 있지만.
“일어나.”
깨우기도 귀찮아 대충 근처에 있던 리엔을 들어 옹기종기 모여 자고 있는 일행들에게 던졌다. 그에 리엔을 포함한 다른 이들이 갑작스러운 충격에 비명을 지르며 일어났다. 특히 리엔의 경우는 뛰어난 반사신경으로 발을 날린 라이너 덕분에 발길질까지 당해야 했다. 딱히 리엔을 노린 것은 아니었지만 결국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된 리엔에게 레안이 어깨를 으쓱했다. 크게 다친 것도 아닌데 굳이 미안해 할 필요도 없고.
레안의 과격한 기상으로 머뭇거릴 틈도 없이 일어난 일행들은 바로 행군을 시작했다. 그래도 비가 멈춰서 어제보다는 편해진 행군에 좀더 속도를 낼 수 있었다.
그렇게 길을 가던 레안과 그 일행들은 자신들의 앞을 막고 있는 살기등등한 사내들의 등장에 인상을 찌푸렸다.
도대체 이놈의 도적들은 질리지도 않는지. 이전에도 키란 왕국으로 출장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도적을 만나 귀찮은 일을 한 적이 있던 라이너와 류 외 일행들의 표정은 더욱 좋지 않았다.
“뭐냐, 니들은.”
딱히 궁금하지도 않았지만 바로 검부터 날리면 삭막할 것 같아 답지 않은 배려를 한 레안이었다. 거기엔 그냥 꺼져라 하는 의미도 담겨 있었다.
“죽을 녀석이 알 필요는 없지.”
호오.
일반 도적들이라고 보기에 좀 살벌하다 했더니만 간 큰 발언에 레안이 피식 웃었다. 그러나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사내들이었는지 레안이 뭐라 다시 말을 하기도 전에 그들은 검을 휘둘렀고, 레안은 가볍게 그 공격을 피하며 검을 꺼낼 필요도 없이 발로 그의 복부를 차서 던져버렸다. 그 상황에 놀랄 법도 하건만 사내들은 전혀 동요하는 기색이 없었다.
하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그들이 도적들과 다른 것은 말이 적고, 표정이 없다 정도였다. 그 외에는 결국 레안 및 일행들에게 당해 제대로 밟힌다는 결말은 똑같았다.
“이거 다소 수상하군요.”
“도적 맞아. 듣자 하니 암살자 출신의 도적들이 있다던데 그녀석들인가 보지.”
어쩐지 피 냄새도 짙고 살기도 진한 것이 이상하다 했더니만.
분명 이 도적들의 손에 꽤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으리라.
“늦었으니까 빨리 움직이기나 해.”
아직 몸에 묻은 피도 제대로 처리 못했건만 바로 걸음을 옮기는 레안 덕에 일행은 한숨을 내쉬며 걸음을 옮겼다. 이러다 마을에 도착하면 자신들을 보고 사람들이 놀라서 소리부터 지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 작가의말
아직은 죽음의 숲 전..
과연 죽음의 숲에선..?!!
펜그렌 님/ 향란지몽 님/레드러너 님 댓글 감사합니다.
네, 그들은 다함께 마룡 퇴치하러 고고..
죽음의 숲은.. 죽음의 숲이라 상당히 위험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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