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안녕, 나의 친구들~
“으아아악!!!”
이른 아침, 리엔의 절규가 청룡단의 훈련장을 가득 메웠다.
“힘내~”
고통에 울부짖는 신입 기사를 바라보며 라윤은 선임 기사로서의 여유를 보여주며 그를 다독였다. 그러나 류의 횡포에 질려버린 리엔에겐 아무런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어떻하면 저 끔찍한 단장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 까 하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승급 심사가 끝난 지 이틀이 지났다지만 아직 그때의 피로가 풀리지 않아 몸 이곳 저곳이 아프고 쑤셔서 죽을 판인데 딱 그곳을 툭 치다니!! 그러고 잘났다는 듯이 나 잡아봐라 하고 도망치다니!! 저 무슨 망할 잡것이!!!
맘 같아선 당장이라도 잡아다가 후려패고 싶었으나 지금 자신의 상태론 무리였다. 아니, 멀쩡한 상태로도 무리지만..
괜히 억울한 마음에 리엔은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그 모습을 청룡단의 기사들이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섣불리 그를 도와줄 생각은 하지 않았다. 쓸데없이 엮여서 단장에게 시달리고 싶지 않았으므로.
“흐음.”
며칠 밤새서 끝낸 서류들을 보며 레안이 뚱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겨우 끝낸 서류들을 보니 기분이 묘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왜 저것들 때문에 이 고생을 했는가, 또는 이제야 겨우 끝냈구나, 그런데 기분이 왜 요따구일까 하는 복합적인 생각들 때문에.
거기다 이제 겨우 일반 기사들의 심사는 끝냈지만 단장과 부단장들의 심사는 어찌해야 할 것이며 꼭 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들로 레안의 머릿 속은 뒤죽박죽이었다.
물론 그렇게 아무리 머리 싸매고 고민해봐야 얻을 것도 없지만.
그렇게 한참을 뚱한 표정을 지으며 서있던 레안은 황실 내의 전화를 통해 각자의 집무실에 있을 단장들을 불렀다. 그리고 특별히 떠돌아 다니기 좋아하는 류는 친히 찾으러 납시며.
다른 기사단의 훈련장까지 돌아다니며 바쁘게 놀고 있는 류의 모습을 발견한 레안은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아직 어린 아기를 상대로 온갖 개지랄을 떨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비록 저녀석에게 리엔을 던져준 것은 자신이었지만 원, 저거는 너무 과하지 않은가.
무릇 강약조절이 필요한 법이거늘. 거기다 좀처럼 자리에 앉아 있지 못하고 싸돌아다니기 바쁜 그 때문에 자신이 여기까지 나와 그를 찾아야 했다는 사실이 더해져 류에 대한 분노는 점점 커져갔다. 이러한 분노는 바로 뛰어다니기 바쁜 류를 한 손에 낚아채 바닥에 내다 꽂는 걸로 1단계 분노가 발현되었다.
갑작스런 레안의 행동에 리엔을 놀리느라 바빴던 류는 당황했다. 특히 자신을 보는 시선이 너무도 날카로웠기 때문에 순간 두려움도 엄습했다. 하지만 레안의 행동에 당황한 것은 류만이 아니었다. 류를 잡기 위해 류를 쫓아다녔던 리엔도 레안의 등장에 당황했다. 비록 지금 자신의 최대의 적은 류이지만 레안도 만만치 않지 않은가!
애초에 자신을 류에게 갖다 바친 것도 레안이고!!
하지만 그렇다 해도 지금 이 순간 레안의 행동은 무지 반가웠다. 사랑해요라고 말하며 달려들고 싶을 정도로.
“야, 병신.”바닥에 꽂힌 후유증이 컸는지 비척 거리며 일어난 류는 자신을 발로 차며 내뱉는 레안의 말에 왜요라는 의미를 담은 상큼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 미소에 레안은 더 울컥해 그의 뒷통수를 아주 크게 후려 갈겼다.
“윽. 아프잖아요.”
류가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으며 눈물이 글썽거리는 표정으로 레안에게 말했다. 그 행동에 레안은 말없이 그의 복부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이번엔 강도가 꽤 셌는지 류는 신음을 흘리며 바닥에 주저앉았고, 레안은 그의 뒷덜미를 질질 끌고 집무실로 향했다.
“너, 며칠 휴가 줄 테니까 좀 쉬어라. 류가 징징 거리면 나한테 말하고.”
안쓰러운 모습의 리엔을 보며 레안이 말했고, 생각지도 못한 휴가에 류에 대한 해방에 리엔은 만세를 표하며 레안에게 진심어린 감사의 인사를 보냈다.
그 생기 넘치는 모습에 레안은 피식 웃으며 류를 질질 끌고 갔다.
집무실에 도착하니 라이너와 라힌, 유란이 도착해있었다. 그들은 레안의 손에 질질 끌려온 류를 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꽤 살벌하게 끌려오네요.”
웃긴 듯 미소를 지으며 라힌이 말했다. 라힌의 말에 레안은 그를 슬쩍 쳐다보다 대충 바닥에 류를 집어 던졌다.
“보니까 거슬리길래. 발발이도 아닌게 방방 거리며 돌아다니는 것도 짜증나고.”
아직도 바닥에서 끙끙 거리는 류의 모습에 레안은 류를 향해 살기를 보냈고, 살기에 움찔한 류는 비척 거리며 소파에 앉았다.
“이거 승급 심사 결과. 별다를 건 없고, 신입 기사들 재배치했어. 하륜은 현무단으로 옮겼고 나머지는 그대로야. 둘이야 그대로니 별로 신경 쓸 건 없지만 한 놈은 처음이니 네가 알아서 잘 다뤄. 물론 꽤 근성 있는 놈이라 혼자 둬도 잘할 것 같긴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말이지만 괜히 류처럼 오버하지 말고.”
레안의 말에 라이너는 알았다는 눈빛을 보냈다. 그런 그를 잠시 노려보던 레안은 이내 류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발발이. 리엔 당분간 휴가니까 그리 알아. 괜히 근처 얼쩡거리면서 괴롭히다간 너 청룡단 단장이 아니라 내 샌드백이 될 줄 알아.”
“으엑!!”
그동안의 낙인 리엔이 사라지다니!!
너무도 충격적인 말에 류는 울상을 지었다.
“이건 말이 안되요!!”
“돼.”
“안되요!!”
“돼”
“안되요!!”
“그 아가리 찢어놓으면 말이 될까,응?”
한참을 말씨름하던 레안은 드디어 분노가 폭발했는지 류를 향해 무시무시한 살기를 내뿜으며 대답했다. 그 모습에 류는 움찔하며 금새 풀죽은 표정을 지었다. 다소 동안인 그였기에 그런 그의 모습은 아이 같아 안쓰러웠지만 이미 그에게 적응할 대로 적응해버린, 특히나 그의 본성을 아는 레안은 그런 그의 모습에 꿈적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저기에 왠 귀찮은게 있어 하는 표정으로 데리고 들어올 때처럼 그의 뒷덜미를 끌고서 밖으로 내다 버렸다.
“우리 주작단엔 아무도 없는 거에요?”
기껏 미남이라서 기대했건만. 자신의 기사단에만 없는 신입기사에 유란이 상처받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꼬우면 반 나눠 가지던가. 그리고 그 전에 나한테 몇 대 좀 맞고.”안그래도 류의 미친 짓 때문에 머리가 아파진 레안은 투덜거리는 유란의 말에 잔뜩 날카로워졌다. 그 모습에 여기서 더 건들이다간 큰일 나겠다는 생각에 유란과 다른 단장들은 서둘러 집무실을 나갔다.
“자아, 기쁜 소식이 있어요.”
진한 라힌의 모습에 백호단의 기사들은 잔뜩 긴장했다. 저런 미소에 저런 말이라니, 절대 좋은 내용이 아닐 거라는 상상을 하며.
“그동안 우리와 함께 했던 하륜 군이 현무단으로 옮기게 되었어요. 자, 지금 당장 하륜군은 현무단 훈련장으로 가시면 되요.”
상큼히 웃으며 말하는 라힌의 말에 하륜은 뭔가 묘하게 불안한 감정을 느끼며 사람들에게 작별인사를 한 후 현무단 훈련장으로 이동했다.
기사단에 들어와서 항상 함께 했던 이들과 떨어진다는 것이 다소 아쉽긴 했지만 영원히 안 보는 것도 아니기에 그리 섭섭하지는 않았다. 다만 재미가 다소 옅어지겠다는 생각에 살짝 쓸쓸할 뿐.
“왔습니까? 단장님은 사랑스런 아내분과 부부싸움하느라 바쁘셔서 그냥 가서 알아서 훈련하시면 됩니다. 추가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저희는 개인 훈련입니다. 알아서 잘 훈련하시면 됩니다. 다만 저희 기사단은 다른 기사단에 비해 임무 수행이 과격하고 위험하니 죽지 않을 정도로 하시면 될 겁니다.”
훈련장 한 구석탱이가 마련된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던 카렌이 책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무덤덤한 어조로 하륜에게 말했다.
그런 카렌의 말에 현무단에서의 생활이 백호단에서 보다 힘들겠구나 하고 하륜은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바로 현실화되었다. 일주일에 한번씩 단장과 대련을 하면서.
“레안님, 진짜진짜 우리 주작단엔 아무도 없는 거에요?”
레안의 집무실에 찾아온 유란이 본인 나름대로의 애교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레안에게 물었다.
“없어.”
“히잉, 진짜로요?”
“히잉. 진짜로.”
유란의 콧소리 가득한 히잉과는 다르게 살벌하게 무뚝뚝한 어조로 히잉 거리는 레안의 모습은 묘하게 소름끼쳤다.
“나도 신입 기사 가지고 싶은데.”
좀처럼 떨어지지 않을 것 같은 유란의 모습에 차가운 눈초리로 유란을 쳐다본 레안은 말없이 전화기를 들었다.
“너 보고 싶어 한다. 빨리 와서 데려가.”
전화기를 끊은 레안은 다시 서류로 시선을 돌렸다.
“누구한테 전화한 거에요?”
혹시나 신입 기사일까봐 묘한 설렘을 담은 표정으로 유란이 물었다. 하지만 레안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문이 열리며 라이너가 들어왔고, 레안은 말없이 유란을 향해 눈짓했다. 그 시선에 라이너를 말없이 유란에게 다가가 유란을 데리고 사라졌다.
“어어, 안되요~~!!!”
라이너에게 붙잡혀 나가며 유란이 소리쳤지만 레안은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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