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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유원's story.

그냥 끄적끄적


[그냥 끄적끄적]

풀잎 부대끼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 적막 속, 창백한 모습의 한 여자가 서글픈 모습으로 서 있었다.
네가 원하는 것이 이것인가.
검을 타고 흐르는 피를 바라보는 여자의 표정은 어딘가 모르게 처연했다.

왜 그랬어?”
낯익은 목소리에 여자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엔 한때 그녀의 친우였던 이가 서있었다. 원망 가득한 시선을 던지며.

그 모습에 여자는 피식 웃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여자는 잠시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것을 바라보았다. 몇 명인지 셀 수도 없는 시체들과 그 시체들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피.

얼마나 고통스럽게 죽어간 것인지 시체들의 표정은 저마다 고통스러워 보였고, 그 무엇 하나 멀쩡한 시체가 없었다.

팔다리가 잘린 것은 기본이요, 대부분은 고깃덩이처럼 잔인하게 짓이겨져 있었다.

그들은 모두 그녀의 동료였다. 언제나 함께 웃고, 함께 요괴들을 처리했던.

그래, 내가 왜 그랬을까? 왜 이렇게 됐을까?
소리 없는 여자의 물음이 까맣기 만한 밤하늘을 가득 채웠다. 오늘따라 별 하나 없는 밤하늘은 희망 하나 없는 여자의 마음 같았다.

대답해. 왜 그랬어?”
도대체 무슨 대답을 듣고 싶은 걸까.
어쩔 수 없었다고? 아니면 내가 한 게 아니라고, 그러니까 나 좀 믿어달라고? 하지만 아쉽게도 그녀가 한 것이 맞았다. 친우의 눈에 서린 간절한 희망을 보면서도 여자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피가 흐르는 검을 바라보며 슬픈 듯 차가운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런 여자의 모습에 친우가 허리에 맨 검을 꺼냈다.

왜 그랬을까. 도대체 왜 그래야 했을까?”
친우가 했던 그 말을 그대로 다시 던지는 여자의 말에 친우는 인상을 찌푸렸다. 여자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본인이 죽여 놓고, 왜냐니. 그래도 믿고자 했던 자신의 믿음을 배신한 주제에.

상관없겠지. 이미 일어났으니.”
슬프게 웃던 여자는 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그것은 여자의 버릇이었다. 항상 무언가 힘든 일을 할 때 마음을 다 잡기 위해 하던 행동이었다.

듣지 못하겠지만.
속으로 서글픈 미소를 삼키던 여자가 친우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이미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죽을 수 없으니 죽일 수 밖에.

그나마 그녀와 비등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던 친우도 너무도 쉽게 졌다. 너무도 쉽게 죽었다.

싸늘한 시체가 되어버린 친우의 몸을 끌어안고 여자는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어째서 자신은 이 사람들을 만난 것일까.

어째서 자신은 그와 엮인 것일까.
이따위 운명, 절대 가지고 싶지 않았다.

왜 하필 자신일까.
미치도록 원망스러웠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소리없이 그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 말고는.

조용히 친우의 몸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던 여자는 친우의 몸에 검을 박아 넣었다. 그와 동시에 친우의 몸에서 흘러나오던 피가 사라지며 친우의 몸이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여자는 지옥이 되어버린 공간을 보며 불을 피웠다.

사납게 피어오르는 불길을 보며, 그 불길 속에 먹히고 있는 옛 동료들을 보며 여자는 그저 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몸을 돌렸다.


댓글 1

  • 001. Lv.54 레드러너

    13.10.24 10:23

    어어어??? 이런 글이 잇었다니요!!!
    이런 분위기 개인적으로 좋아합니다ㅋㅋ
    다크다크한 분위기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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