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그들의 백호단 승격!
견습 기사들의 구경하고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온 레안은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낯익은 존재의 모습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 레안의 반응에 집무실에 있던 불청객은 반가운듯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입니다.”
“너 왜 왔냐?”불청객, 라힌의 반가운 표정과는 다르게 띠꺼운듯 한쪽 눈을 찡그리는 레안의 반응은 그닥 좋지 못했다. 상당히 귀찮은 물건을 본 듯한 모습이랄까?
“너무하네요. 기껏 레안님 볼려고 서둘러 돌아왔는데, 거기다 더 빨리 보려고 이렇게 집무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말이지요..”“그래서? 내가 너보고 빨리 오랬어? 니 혼자 보고 싶다고 빨리 온 걸 나보고 어쩌라고?”“뭐, 변함없는 모습이여서 그런 레안님 반응도 좋긴 하네요.”익숙한 듯 레안의 타박에도 백호단 단장 라힌은 웃으며 대답했다.
“어떻게 됐어? 뭔가 일이 있었던 것 같긴 하다만은..”아, 눈치 챈 건가. 들키지 않으려고 일부러 신경 써서 평소처럼 보이게 할려고 그렇게 노력했건만 너무도 쉽게 알아차린 레안의 눈치에 라힌은 다소 공허한 헛웃음을 내보였다.
“두 명이 사망했달까요.”
라힌의 끝에 보인 미소는 묘하게 슬퍼보였다. 그것을 레안도 느낀 건지 레안의 분위기가 아까보다 사뭇 부드러워졌다. 그렇다 해도 크게 부드러워진 것은 아니지만.
“어떤 멍청이들이..?”“멍청이라니 너무하네요. 그래도 백호단의 귀중한 인재였는데 말이지요.”
“그래서?”
애써 짓는 라힌의 미소가 거슬린 건지 레안은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물었다.
“저의 실수겠지요. 충분히 조심을 했어야했는데 바보처럼 마물들만 신경쓰느라 용족의 영역을 침범해버렸달까요. 덕분에 아까운 인재, 엘리사 양과 휴안 군만 잃어버렸네요..”
“.........”말을 듣자마자 잔소리를 잔뜩 해대며 온갖 욕을 내뱉을 것을 기대하고 단단히 마음 먹고 있던 라힌은 조용한 레안의 반응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라힌의 표정에 레안은 작게 욕을 내뱉으며 다소 차가운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
“병신 새끼. 용족이 지 영역 끔찍이도 아끼는거 뻔히 알면서 잘하는 짓이다.왜 아예 단체로 죽어나오지 그랬냐?”
“그러시면 레안님께서 저 보고 싶어서 울텐데 어떻게 죽을 수 있겠어요. 하아, 그나저나 설마 단 한번도 나오지 않았던 백호단 사상자를 제가 내게 될 줄이야.... 정말 병신 중에서도 상병신이네요.”드물게 보이는 라힌의 약한 모습에 다소 동정을 보일 법도 하건만 라힌을 쳐다보는 레안의 시선은 차가웠다.
“독수공방 하겠네? 곧 국수 먹겠구나, 하며 기대했는데 완전 날라가버렸네?”“.....?”
쌩뚱맞은 레안의 말에 라힌은 물음표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너 결혼 할 생각이었잖아? 엘리사랑. 아니야?”“하아, 가끔 보면 레안님 독심술이라도 배우는 건지 궁금해진달까요.”“됐고, 3일 휴가 줄 테니까 다같이 놀다와. 너뿐만 아니라 그놈들도 꽤 충격받았을 테니까. 뭐, 마누라 잃은 것보다야 덜 하겠지만 기사단 들어와서 처음으로 동료를 잃은 거니까.”
“후후, 그 녀석들 좋아하겠네요. 지금껏 휴가 제대로 받아본 적 없을텐데 이렇게 레안님께서 친히 휴가를 주시고 말이지요.”
“그래, 가봐.”
기사단원이 죽었다는 말에도 담담한 그녀의 모습에 다소 씁쓸한 미소를 짓던 라힌은 레안의 축객령에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레안의 말에 문고리를 잡은채 멈춰섰다.
“난 흔들리는건 용서해도 무너지는건 용서 못해. 죽음 하나 하나를 이겨내지 못하고 무너질 녀석은 우리 기사단에 필요없어. 그러니까 명심해. 애초에 우리 기사단에게 죽음은 너무나도 가까운 존재야. 물론 최대한 그 죽음을 줄일려고 노력은 하지만 아예 없앨 수는 없지. 그것을 이겨내지 못한다면 이 기사단에 있을수 없어. 그런 놈 하나 하나 맞춰가며 일 할 시간 없으니까.”
다소 싸늘하기까지 한 그녀의 말을 들으며 라힌은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자신만의 착각일까? 그녀의 눈에서 미묘한 일렁거림을 느낀건.
“명심하지요.”
애써 웃으며 집무실을 나서는 라힌의 뒷모습은 상당히 쓸쓸해보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레안은 괜스레 욕을 내뱉으며 짜증을 부렸다. 그녀 역시도 자신 휘하의 기사들의 죽음에는 태연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음날, 여전히 맑은 하늘을 바라보며 레안은 한가한 모습으로 또다시 견습 기사들의 훈련장을 찾았다. 어제처럼 기사들은 기마자세를 하며 땡볕 속에서 훈련을 받고 있었다. 그 모습을 레안은 무미건조한 눈으로 바라보며 자신의 지정 나무 그늘 아래에 앉아 자연을 구경했다. 좀더 다이나믹한 훈련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예를 들어 저 기마 자세하는 기사들의 엉덩이 아래에 검을 꽂아 놓는다거나, 달리기 실력을 기르기 위해 달리기가 가장 빠르다는 마물 하나를 풀어놓고 그 놈에게 물리지 않고 피하기 같은. 하지만 그랬다가는 단번에 황제 폐하께서...... 아, 황제 폐하는 좋다고 마구 고개를 끄덕일려나. 그 생각에 미치자 해볼만 하다는 생각을 하며 앞으로의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견습 기사들 괴롭힐 생각에 빠졌을까. 어느새 계속된 훈련에 지쳐 바닥에 주저 앉아버린 낙오자들이 보였다. 꽤나 끈기가 없구나란 생각에 한숨을 내쉬던 레안은 문득 저들 중에 누가 가장 오래 버틸까하는 궁금증이 생겨났다. 가장 오래 버틴 이들에게 백호단 입단의 기회를 주리라 생각하며. 그렇게 갑자기 생겨난 궁금증에 훈련장으로 시선을 던지는 레안의 얼굴에 다소의 흥미가 서려 있었다.
“또 애들 구경합니까?”갑작스런 목소리에 레안은 인상을 찌푸리며 시선조차 돌리지 않은 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얼마나 기분 나쁜지 아십니까? 무슨 사람 놀리는 것도 아니고. 작작 좀 구경하십시오.”
“닥쳐. 바론 찌끄러기.”
금방이라도 봇물 터지듯 불만을 털어놓으려던 바론은 레안의 살벌한 목소리에 얌전히 그녀의 옆에 앉아 같이 구경을 했다.
“바론 찌끄러기. 저 놈들 어떠냐?”
어느새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어제 대화를 나누었던 세명의 기사를 가리키며 레안이 물었다.
“저놈들이요? 뭐, 쓸만합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쓸만한 정도가 아니라 당장 기사단 시켜도 될 정도입니다. 뭐, 다만 경험이 문제죠.”
“그래? 쓸만 하다는 거지...”레안의 얼굴에 떠오르는 미소는 왜인지 불길해서 옆에 있던 바론은 순간 서늘함을 느꼈다.
“그럼 저 놈들 바로 백호단 입단 시켜버려.”
“네?”너무나 충격적인 발언에 바론이 이해가 안되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백호단 입단 시키라고. 견습 기사들은 그놈들대로 따로 굴리고.”
“에?!!너무 빠르지 않습니까?!! 거기다 공석도 없는데 무슨 신입 기사를 들인다고...”
“둔탱이 새끼. 어제 백호단 놈들 안 만났냐?”
“네. 못 만났는데요?”
“하여간, 병신. 백호단 두 놈 죽었어.”
“그.. 무슨...”
되묻는 바론의 표정에 불신감이 잔뜩 서려 있었다.
“너 국어 몰라?”
설마 그럴 리가, 라며 홀로 부정하던 바론은 레안의 진지한 모습에 그 말이 사실인 것을 비로소 자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그도 동료들의 죽음은 충격이 큰지 평소의 반항적인 모습은 싹 사라진채 진지한 모습만이 남아있었다.
“휴가 줬어. 3일 안에 회복해오라고.”
“그렇군요..”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홀로 생각에 잠기는 바론의 모습은 심각한 충격에 휩쌓인듯 눈이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던 레안은 바론의 뒤통수를 비교적 세게 때렸다.
“아악!!”뒤통수를 강타하다 못해 전신을 꿰뚫는 듯한 아픔에 바론은 지나가던 마물도 고막 터져 죽을 만한 비명소리를 내질렀다. 그러한 비명을 바로 옆에서 듣게 된 레안은 얼얼한 귀의 통각에 바론에게 살기를 내보냈다. 그 살기에 왜 때리냐고 소리를 지르려던 바론은 얌전히 입을 다물곤 왜 때리냐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정신차려. 동료 죽었다고 골골 되는 새끼 필요없으니까.”“누가 골골 거렸다고 그럽니까.”
“내가?”
“쳇, 아무튼 저놈들은 내일부터 황실 기사단 백호단으로 배정해놓을게요.”
“그래. 그럼 넌 들어가서 쉬어. 저 바닥에 주저 앉아 있는 놈들은 내가 알아서 굴려놓을테니까.”
“알았습니다.”
바론은 레안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이곤 자신의 숙소로 향했다. 그런 바론을 바라보며 레안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어제, 상상을 초월하는 레안의 빡센 훈련으로 자리에 서있기조차 힘든 기사들은 바론의 심각한 모습에 잔뜩 겁을 먹었다. 혹시나 오늘도 어제처럼 그럼 지옥에 온 것 같은 경험을 하게 될까봐.
“하륜, 리엔, 카엘. 지금 내가 호명한 녀석 지금 당장 레안님 집무실로 가도록.”“네에? 그게 무슨..!!”
안그래도 총 단장과 안 좋은 인연을 맺은 리엔이 갑작스런 호출에 잔뜩 인상을 구기며 바론에게 되물었다.
“그래서 싫다는 거냐?!!! 이놈들이 레안님 보다보니까 이제 내가 우습냐?!!”격한 바론의 반응에 리엔의 친구, 카엘과 하륜은 움찔하며 서둘러 리엔을 데리고 레안의 집무실로 향했다.
똑똑똑.
조심스레 노크를 한 하륜은 다시 한번 레안을 본다는 생각에 묘한 설레임을 느꼈다. 이렇게 사람에게 흥미를 가진 적은 이녀석들 말고는 처음인데.
“알아서 들어와.”
여전히 변함없는 띠꺼운 말투에 리엔은 마구 흥분하였지만 카엘이 그 전의 일을 상기시키며 리엔을 진정시켰다.
“무슨 일로 저희를 부르신 건지....”아무리 제이로 제국의 황실 기사단 총 단장이 괴짜라 하지만 일개 견습 기사를 집무실로 부르는 것은 단 한번도 없는 일이었기에 다소 긴장된 목소리로 카엘이 물었다.
“아, 너희 이제 백호단이야.”
“엑?!!”
너무도 간결하고도 갑작스런 발언에 리엔이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하지만 이해가 안되는건 비교적 감정변화가 적은 하륜도 마찬가지였는지 드물게 의아한 표정을 겉으로 드러냈다.
“아니 요새는 기사들 국어를 안 배우나. 왜이렇게 한번 말하면 못 알아들어? 니들 이제 백호단 단원이라고!!! 정식 기사 됐다고!!!”
“........”“.......”“흐음, 그 말 사실입니까?”그나마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하륜이 웃으며 되물었다.
“어. 그러니까 그렇게 알고 나가. 지금 단장이 휴가 중이라 당장 그놈들이랑 훈련 받는건 무리고 그놈들 모레면 복귀하니까 그때까진 그냥 견습 기사놈들이랑 같이 훈련 받아.”
“네, 알겠습니다.”
생각보다 까다로운 황실 기사단 입단 절차에 황실 기사단에 들어가려면 한참을 기다려야겠구나란 생각에 다소 실망하던 하륜은 예상외로 쉽게 풀린 상황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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