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화 그들의 속사정
“왜그리 꿀꿀해?”
답지 않게 진지+찌푸린 얼굴로 의원실에 찾아와 침대에 드러눕는 레안의 모습을 보며 은월이 삐죽거리며 말했다.
“마기 중화제 하나만 있으면 줘봐.”
“왠 마기 중화제?”
“한 놈이 마룡의 하트를 선물 받아서 지 심장에 박아 넣었더라고.”너무도 가볍게 말하는 레안의 말투에 같이 가볍게 넘어가려던 은월은 생각보다 심각한 내용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레안을 바라보았다.
“그거 미치면 어떡해?”
“아직은 괜찮아. 하트가 제어해주고 있으니 별다른 이상은 없을 거야. 다만 하트의 기운을 끌어다 쓸 만큼 깊은 상처를 입는 다거나 마룡이 그를 조종하게 된다면 상황은 달라지겠지만. 그래뵈도 마룡의 하트에 적응한 녀석인데 쉽게 다치지 않을 거고, 마룡이 조종하는 경우가 문제인데.. 다쳤으니까 당분간은 얌전하겠지.”
“헤에, 걸리면 귀족이고 황제고 들고 일어날 텐데. 황제 녀석, 평소에 유들유들 해보여도 지 나라에 폐 끼치는 거엔 민감하잖아.”
“나도 엎지, 뭐.”
“마음에 들었나보지?”
처음부터 유난히 신입들에게 관심을 쏟던 레안의 모습을 떠올리며 은월이 물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 눈이 거슬렸어. 너무 텅 빈 느낌이었거든.”
그녀 역시 밝은 어린 시절을 보내지 못했다. 혼혈이라는 이유로 아버지의 종족에게 인정받지 못했고, 왠 알지도 못하는 남자의 아기를 뱄다며 어머니는 가족들에게 외면 받고 버림 받았다. 그나마 어머니가 살아계셨을 때는 어머니의 보호 속에서 자라날 수 있었지만 어머니가 죽은 후에는 감금되다 시피 살았었다. 친척들은 자신을 볼 때마다 경멸 가득한 시선을 보냈고, 틈틈이 그녀가 지내는 방에 암살자가 들어와 그녀를 공격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잠시 여행을 갔다 오라며 보낸 그녀를 그대로 숲 속에 둔 채 버리고 오기도 했다. 그 덕분에 그녀는 용병 및 현상금 사냥꾼들에게 쫓겼고, 질 나쁜 사람들에게 나쁜 짓을 당할 뻔 하기도 했다. 겨우 살아서 돌아갔을 때는 이미 가족 명부에 이름이 지워진 상태였다.
그렇게 가족들에게 버려져 그녀는 어린 나이에 홀로 보호막 없이 밖에서 살아야 했고, 그때 아버지를 만났다. 처음엔 믿지 못해 부정하기도 했지만 그가 보내는 애정어린 손길과 시선에 그를 아버지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겨우 행복해진 그녀는 다시 또 불행에 직면해야 했다. 그녀를 자신의 종족에 편입시키려던 아버지는 동족들의 반발을 이겨내야 했다.
물론 그 기나긴 노력 끝에 현재 그녀는 혼혈임에도 동족으로 받아들여졌다. 동족이 가져야 할 모든 조건을 그녀가 갖추고 있었으므로. 그저 단 한가지 본신이 인간의 모습이라는 것이 유일한 결점이었지만.
아무려면 어떠랴. 이젠 자신도 누군가에게 소속되었는걸.
그 전까지 그녀는 외로웠고, 언제나 공허함을 느꼈다.
그 것을 하륜의 눈에서 느낄 수 있었다. 아마 자신보다 더한 고통을 겪었으리라.
이제 겨우 행복해질려고 하는 그를 죽이고 싶지 않았다.
“흥, 우선 있는 거 다 줄게. 내가 보기엔 부족할 것 같으니까 더 필요하면 말해. 미리 만들어놓을 테니까.”
정말 다 줄려는지 서랍에서 병들을 와락 꺼낸 은월은 레안의 품에 그들을 안겼고, 레안은 띠꺼운 표정으로 고맙다고 인사했다.
“그럼 가.”내쫓는 은월의 행동이 괘씸해 레안은 한소리하려다가 이내 순순히 나갔다.
모처럼 눈을 뜬 하륜의 모습은 중간에 깨서 피곤해 보였지만 꽤 만족스런 표정이었다. 그동안 충분히 리엔과 카엘에게 위로 받고 있다 생각했었건만 오늘 들은 레안의 말은 그의 부족한 마음을 가득 채웠다. 그 덕분인지 하륜은 거의 매일 꾸다시피 하는 악몽에서 괴로워하지 않고 깨어날 수 있었다.
언제나 늘 쫓기는 꿈. 언제나 늘 누군가를 죽이는 꿈.
6살 때 골목길에 버려진 이후, 어린 그가 혼자 살아남기에 세상은 너무 거칠고 험했다. 살기 위해 어린 나이에 사람을 죽여야 했고, 쓰레기 통을 뒤지며 간간히 목숨을 부지 할 수 있었다. 어린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만만한 존재였고, 단지 그가 눈에 보였다는 이유만으로 온갖 구타와 폭행을 당했다.
그렇게 그는 강해져야 했다. 단지 덜 맞고, 좀더 오래 살아남기 위해.
누구의 도움 없이, 누구의 가르침 없이 홀로 검술을 깨친 그는 그 이후 돈을 벌기 위해 현상금 사냥꾼이 되어야 했다. 용병이 되기엔 그는 돈이 너무도 필요했고, 그럴 만한 여력이 없었다. 비록 용병 되기가 기사보다 쉽다고 하지만 아무 것도 없는 고아인 그가 용병이 되기엔 힘들었다. 특히 현상금 사냥꾼은 실력에 구애되지 않고 할 수 있었지만 용병은 철저한 테스트를 받아야만 했다.
그러다 리엔과 카엘을 만나고.. 그 구렁텅이 속, 온통 피로 얼룩진 상황 속에서 그는 빛을 보았다. 그들을 통해 강해졌고, 현재 기사의 자리까지 올라왔다. 자신도 인간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고 이제 겨우 행복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도 알지 못했던 이유로 다시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질 뻔한 그는 다시 그 행복을 잡을 수 있었다. 레안의 자비로, 배려로.
새삼 레안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는 미소지었다.
어쩌면 그녀에게 흥미를 느끼고 호감을 느낀 건 그녀가 가진 그 깊이 때문이 아니었을까?
- 작가의말
살포시 나오는 레안과 하륜의 과거.
하륜의 과거는, 나중에, 아주 나중에 좀더 제대로 나올 예정이랍니다!!
그렇다 해도 많은 분량은 차지하지는 않지만.
다들 굿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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