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쓸 때는 승급심사, 읽을 때는 지옥 훈련.
오늘도 어김없이 승급심사를 위해 단상에 선 레안은 묘한 표정으로 훈련장에 서있는 기사들을 바라보았다. 어제의 승급심사가 많이 힘들었는지 훈련장에 서있는 기사들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꼭 3일 굶고서 S급 마물과 1:1로 싸운 느낌이랄까?
하지만 그런 그들의 모습에도 레안은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다음부터 승급심사의 난이도를 높여야 겠다는, 아주 아주 끔찍한 생각을 할 뿐이었다.
“오늘은 시뮬레이션 심사야. 어제가 개인적인 능력 평가라면 오늘은 각 단에 적합한 능력을 소유하고 있는지에 대한 평가지. 각 단별로 기사단의 특징에 맞춰 시뮬레이션 작동시켰으니까 알아서 잘 싸우고 오면 되. 아, 그리고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시뮬레이션이라고 우습게 보지마. 상처는 나지 않아도 고통은 그대로 전해지니까. 고통만 나니, 치료는 당연히 불가능할 테고. 또 하나 참고로 이야기하자면 내일도 훈련 있어. 그러니 알아서 처신해.”
레안의 맘을 들은 기사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중 승급심사를 처음 하는 하륜들의 표정엔 경악이 살짝 서려 있었다.
혹시나 했지만 휴가 없이 바로 훈련을 할 줄이야. 역시 괜히 황실 제이로 제국의 황실 기사단이 최강이란 단어가 붙는게 아니었어.
레안이 단상에서 내려가자 각 기사단은 자신들의 훈련장으로 향했다. 훈련장에는 레안이 준비한 시뮬레이션 장치가 마련되어 있었다.
어째 전보다 정교해진 모습에 시뮬레이션 심사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단장들도 묘한 긴장감을 느꼈다. 레안이라면 단장들인 자신들을 위한 완벽한 시뮬레이션을 준비해 놓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백호단 훈련장.
“백호단의 시뮬레이션 룰은 단체전입니다. 단장과 부단장을 제외한 기사 전원이 시뮬레이션에 동시에 응하면 되는 거지요. 저희가, 아니 댁들의 타겟은 S급의 호랑이 10마리와 A급의 호랑이 30마리. 부디 훌륭히 완수하시길.”
호랑이라니!!
아니, 왜 도대체 하필이면 그 보기 힘든 호랑이가 타겟이란 말이더냐!!
타겟이 호랑이라는 사실에 연차 있는 기사들도 꽤 울컥하는지 울상을 지었다.
이 놈의 승급심사는 어째 나날이 난이도가 올라가는지..
“불만은 절대 없으시겠죠?”
이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당당히 손을 들고 불만을 외치려던 휴는 웃으며 살기를 풍기는 라힌의 말에 살풋이 생각을 접었다. 이에 결국 백호단의 기사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심사에 참가해야 했다.
“으아악!! 이런 빌어먹을!!”
너무도 간단히 자신의 검을 튕겨내는 S급 호랑이에 휴가 욕을 내뱉었다. 실제가 아니라 시뮬레이션이라 실제로 자신의 팔에서 피가 나진 않겠지만 실제로 호랑이에 긁힌 것 같은 아픔이 그대로 느껴졌다. 그 덕분에 휴는 정신이 바짝 들었다.
“크, 이거 장난 아니구만.”
그동안 수많은 전투를 해왔지만 이 정도로 힘겨웠던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기사단에 들어와서 모처럼 제대로 마물과 싸울려니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도 단체라 그나마 다행이긴 했지만. 주변을 둘러보니 몸에 상처 하나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랜만이네, 이런 긴장감.”
막내인 히란을 구하려다 어깨를 다친 하륜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상처로 인해 고통스러울 법도 하건만 그의 표정엔 고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런 하륜의 모습에 카엘은 그동안 수없이 많이 봐았음에도 적응이 안되는지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자신도 이런 긴장감은 처음이라 설레기도 하지만.. 이 정도의 격렬함은 감당불가였다.
“얼마나 남았어요?”
평소의 발랄함을 접은, 지친 기색의 에이스가 연장자인 카를로스에게 물었다. 그러나 카를로스는 대답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S급 마물 7마리, A급 마물 10마리입니다.”
하아, 그래도 반은 처리했구나.
그럼에도 많이 남아있는 마물에 하륜의 대답을 들은 기사들은 일제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 조그만 틈도 용납 할 수 없었던 호랑이는 가장 만만해 보이는 비앙카를 향해 덤벼들었고, 가까스로 몸을 방어한 비앙카는 바닥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그런 그를 보호하며 하류인이 다시 덤벼드는 호랑이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호랑이의 거친 앞발에 그의 검은 호랑이에게 별다른 상처를 주지 못했다. 그때 하륜이 뒤에서 호랑이를 공격했고, 미처 인지하지 못한 호랑이는 그대로 하륜의 검에 목이 꿰뚫렸다.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하류인의 인사에 하륜은 다시 공격해오는 다른 호랑이의 목에 검을 찔러 넣으며 인사를 받았다.
청룡단의 훈련장.
“우리는 개인 플레이인거 알지? 그래서 우리는 각자 맡기로 했어♥ 그리고 알다시피 원래 우리가 능력치 이상을 발휘해야 하잖아? 그런 고로 타겟은 모두 동일하고, 타겟은 표범 S급 두 마리다~ 불만은 접수 안해~”
허. 류의 말을 들은 리엔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어제 처음 만난 다른 청룡단의 단원들도 마찬가지 였는지 다들 벙찐 표정이었다.
하지만 최근 며칠간 류를 겪은 리엔이 류를 향해 함부로 말할 수 없듯이, 류를 몇 달간, 혹은 몇 년간 겪은 단원들은 류의 말에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운이 없다며 신을 저주할 수 밖에.
“으아아아아아악!!”
아무리 그동안 류에게 시달리느라 실력이 전에 비해 많이 향상되었지만 이건 아니었다. 자긴 끽해야 A-로드였다. 그런 자신에게 S급 두 마리라니!! 한 마리도 처리할 능력이 안되건만.
절대적인 능력 부족에 리엔은 그저 며칠간 다듬었던 기막힌 체력과 스피드를 통해 겨우겨우 표범의 공격을 피할 뿐이었다. 그러나 완전히 피하지는 못해 그의 몸 곳곳엔 상처가 새겨져 있었다.
결국 잠깐 숨을 돌리던 찰나, 공격해온 표범의 공격을 제대로 막지 못한 리엔은 어깨부터 가슴까지 깊은 상처를 입었다.
“빌어먹을!! 애초에 황실 기사단 따위 들어오는게 아니었다구!!”
새삼 치솟는 분노에 리엔은 표범을 류라고 생각하며 온 힘을 다하여 덤벼들었다. 류에 대한 분노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컸던 것인지 리엔의 공격은 효과적으로 먹혀들어갔고, 표범은 꽤 깊은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능력의 차이를 이길 수 없었는지 표범을 죽이는 것은 실패했다.
느긋한 마음으로 자신의 작품을 구경하며 돌아다니던 레안은 가장 얌전한 현무단의 훈련장으로 향했다. 역시나 가장 조용한 기사단답게 정신 사나운 다른 훈련장과는 달리 그야말로 비명 소리 하나 없이 조용했다. 그나마 들리는 거라곤 마물들의 울음소리와 검 휘두르는 소리랄까.
그 모습에 만족감을 느끼며 느긋하게 나무 그늘에 앉아 기사들을 평가하는 라이너의 곁으로 다가갔다.
“결과는 어때?”
“나쁘진 않아.”
라이너가 레안을 슬쩍 쳐다보다 시선을 돌리며 대답했다.
“쟤들이? 아니면 저것이?”
“둘 다.”
“그래.”
재미없는 라이너의 대답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 레안은 접이식 의자를 피고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카렌에게로 향했다. 책에 너무 집중을 한 건지 카렌은 레안이 바로 눈 앞에 와도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몇분간 카렌을 구경하던 레안은 재미없다며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드디어 이틀 간의 승급심사가 끝이 났다.
기사단 전원은 일제히 바닥에 드러누웠다. 이 이상 움직이는 것은 무리였다. 온 몸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고, 극도로 몸을 혹사시킨 탓인지 눈은 저절로 감기고 있었다.
그 모습에 레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단상에 올라갔다.
“지금부터 10분 내로 기숙사로 복귀하지 않으면, 내일 훈련은 아침 7시부터 시작할 테니까 오후 훈련만 하고 싶다면 10분 내로 기숙사로 들어가서 씻어. 더러운 건 딱 질색이니까.”
레안의 말이 끝나자 죽은 듯 누워있던 기사들이 일제히 눈에 불을 키고 일어나 기숙사로 뛰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레안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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