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우리 한번 놀아볼까? (2부)
피구가 끝나고, 잠시의 휴식 시간 동안 기사단들은 일제히 바닥에 주저앉았다. 단지 피구 하나만 했을 뿐인데도 어찌나 집중을 했는지 온 몸이 녹초가 된 기분이었다. 그러나 아직 게임은 세 개나 남아 있었다. 그 사실은 기사단의 기사들은 너무 우울했다.
분명 운동회를 하는 것은 친목 도모와 쉬기 위해 그런 것이건만 이것은 훈련 못지 않은 중노동이었다. 물론 그만큼 부상이 크긴 했지만.
10분 정도의 휴식 후 그들은 줄다리기를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단별로 줄을 섰다.
“이번에는 청룡단이랑 주작단, 그리고 현무단이랑 백호단이야. 대충 규칙 알지? 세판 중에 두판 이기면 이기는 거야. 우선 청룡단이랑 주작단부터 시작해.”
귀찮은 표정으로 휘휘 저으며 말한 레안이 청룡단과 주작단 사이에 줄을 던져 주고는 유리안을 불렀다.
갑작스런 레안의 부름에 나무 그늘 아래 느긋하게 구경하던 유리안이 눈을 빛내며 쫄래쫄래 걸어왔다.
“넌 이거 심판 해. 이 선 넘어가면 지는 거니까 그렇게 하고. 혹시나 쓸데없이 끼어들어서 헛짓거리 하게 하면 앞으로 네가 처리해야 할 서류가 두 배 이상 늘어날 거야.”
세상 그 어떤 협박도 두렵지 않은 유리안이었지만 결재 서류가 늘어날 거라는 레안의 협박에 샐쭉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구경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맘에 들었기에 유리안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줄다리기가 시작되고 초기에는 팽팽한 모습을 보였으나 아무래도 체력 면에서는 주작단이 청룡단보다 좀더 좋았기에 후반부에 갈수록 청룡단의 힘이 떨어져 결국 처음 한판에서는 우승을한 청룡단은 이내 다음 두판에서 져버리는 바람에 결국 지고 말았다.
두 번째 대결인 백호단과 현무단의 시합은 좀처럼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으며 몇분의 대치 상태를 유지했다. 그러나 결국 현무단의 독기 가득한 기세에 결국 백호단은 현무단에게 지고 말았다.
다시 결승전에서 현무단과 주작단이 붙게 되었고, 피구와는 달리 줄다리기 시합에서는 라이너가 별다른 터치를 하지 않았다. 그로인해 제 실력을 발휘한 현무단은 줄다리기 시합에서는 우승을 차지했다.
격한 힘 싸움 때문인지 줄다리기가 끝나자 기사들은 일제히 거친 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을 유리안이 호오, 하며 묘한 표정으로 구경했다.
두 게임이 끝나자 어느새 오전 시간이 지나 점심시간이 되었고, 기사들은 지친 몸을 이끌고 점심식사를 하러 갔다.
“크, 장난이 아닌데?”
황실 기사단이었기에 운동회라고 해도 놀기만 하지 않겠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격렬한 게임에 카엘이 다소 지친 표정으로 어깨 근육을 풀었다.
“이게 무슨 운동회야!! 그냥 게임을 빙자한 훈련이지!!”
솔직히 웃으면서, 즐기면서 할 수 있는 게임일 수도 있지만 3일 간의 휴가라는 부상 때문에 다들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통에 자연스레 게임은 험해질 수 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 체력 소비는 엄청 났다.
거기다 특히나 리엔은 류와 같은 단으로써 류의 온갖 등쌀과 째림을 감당해야 했기에 그로서는 절대 경쟁을 하는 모든 훈련 및 게임이 좋지 않았다. 왜그렇게 승부욕이 강한지 무조건 이겨야만 하는 그의 못된 성격 때문에 항상 게임에 지거나 할 때면 청룡단의 기사들을 대신해 갈굼 및 괴롭힘을 당하는 것은 모두 리엔의 몫이기 때문이었다.
실제 점심시간을 알리는 소리와 함께 밥을 먹으러 가려던 리엔은 류의 아주 유치한 다리 걸기로 인해 일부러 넘어져야 했고, 그를 손수 업어 밥을 먹는 곳까지 대령해야 했다.
“하지만 꽤 재밌군.”
다소 힘들긴 하지만 시끌벅적하면서도 활기 넘치는 분위기에 하륜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런 하륜의 말에 리엔이 격하게 흥분하며 하륜을 이해할 수 없다는 강한 눈빛을 보내며 그에게 친히 의원에게 가볼 것을 권했다. 하지만 카엘 역시도 재미있다는 하륜의 말에 동조를 함으로써 다수 대 소수로써 오히려 리엔이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린 분위기에 리엔이 입을 삐죽이며 이해할 수 없는 녀석들이라며 투덜거렸다.
“흐음, 분위기가 좋네.”
여유롭게 기사들이 밥을 먹으며 수다를 떠는 모습을 보면서 유리안이 보기 좋다는 듯 훈훈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 모습을 레안이 뚱한 표정으로 대충 보다 이내 고개를 돌리곤 묵묵히 밥을 먹었다.
최소한 응, 이라는 한마디라고 해주는 것이 말을 한 사람에 대한 예의이건만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밥만 먹는 레안의 행동에 유리안이 상처 받은 표정을 지으며 레안은 아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러나 레안은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하지만 아예 무시하기에는 거슬렸는지 대충 밥을 먹은 레안은 유리안을 버려둔 채 하륜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순식간에 자신을 버리고 가는 레안에 유리안이 애처로운 모습으로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고, 레안은 아주 상큼히 무시했다.
“뭐에요?”
불쑥 자신들의 테이블에 와서 앉는 레안의 행동에 리엔이 입을 삐죽이 내밀며 따지듯 말했다.
“뭐?”
귀찮은 듯 레안이 인상을 쓰며 되물었고, 이에 뭐라 대답하려던 리엔은 하륜과 카엘의 강력한 저지로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레안님은 참가 안 하십니까?”
하륜의 말에 항상 팔짱 끼고 구경만 하는 레안의 모습을 떠올리며 카엘 역시 동의를 표했다. 이에 레안의 인상은 더욱 찌푸려졌다.
“절대 거절이야. 애초에 운동회 여는 것 자체만 해도 심각하게 무리한 일이야.”
더 이상의 권유 및 물음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레안이 싸늘히 일갈했다.
이에 하륜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을 레안이 뚱하니 바라보았다.
“너무하네.”
어느새 버려진 유리안이 다가와 레안의 어깨에 얼굴을 들이밀며 상처 받은 목소리로 말했다. 갑작스런 유리안의 합류에 하륜 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들이 아무리 대담한 기사들이로서니 아무리 그래도 황제 앞에서는 다소 기가 죽을 수 밖에 없었다.
“꺼져.”
레안이 짜증난다는 목소리로 말을 하며 귀찮다는 듯 얼굴을 그대로 잡아 옆으로 내던졌다.
과격한 그녀의 행동에 보던 리엔과 카엘이 헉 하며 놀랐다. 다만 하륜만이 담담할 뿐이었다.
“너무한 거 아니야?”
유리안의 상처 받은 목소리에 레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하륜 들을 데리고 피신을 할 뿐이었다.
졸지에 레안의 손에 이끌려 가게된 하륜들은 다소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다소 산만한 점심시간 끝에 다시 운동회 2부가 시작되었고, 세 번째 게임은 이어 달리기였다. 하지만 이어 달리기는 사람의 추가가 기록이나 등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단장과 부단장은 기본으로 다 출전하는 것으로 하고, 기사단 내에서 5명을 뽑아서 총 7명이 하기로 결정했다.
그 결과 청룡단에서는 쥬이렌, 리엔, 첸, 히얀, 가륜, 현무단에서는 하륜, 류나, 란휘, 칸, 루이, 백호단에서는 카를로스, 에이스, 히란, 한, 카엘, 주작단에서는 류안, 하시엘, 엘시안, 체이스, 야한이 나가기로 했다.
첫 번째 주자는 무조건 단장이, 그리고 마지막 주자는 무조건 부단장이 하기로 하였기에 첫 이어 달리기는 단장들의 스타트로 시작되었다.
확실히 스피드에 있어서는 네 개의 기사단 중 가장 으뜸이라는 청룡단이었기에 단장인 류의 속도는 압도적이었고, 자연스레 나머지 세명의 단장들이 경쟁을 하게 된 꼴이 되었다. 이어서 주자들이 바통을 터치하며 달렸지만 역시나 그들도 청룡단의 위력을 넘어서기엔 무리였는지 결국 청룡단이 1등의 자리를 확고하게 지켰고, 나머지 2,3,4등은 현무단, 백호단, 주작단 순으로 차지했다.
드디어 라스트 게임인 술래잡기가 남았고, 마지막 게임이라는 생각에 기사들의 눈에서 형형한 살기 비스므리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거기다 레안이 중간 점검 결과 점수 차이가 너무 커서 재미가 없다며 극적 효과를 내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면 땡깡을 부리는 유리안에 의해 술래잡기 점수를 1등 150, 2등 70, 3등 50, 4등 30 으로 조정해버리는 바람에 이 형형한 분위기는 더욱 심화되었다.
특히나 꼴찌인 백호단의 기사들은 이번판에서 1등을 하면 전체 1등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저마다 눈을 희번뜩이며 다짐하다 못해 결의를 다지고 있었다.
그렇게 대미를 장식하기 위한 술래잡기가 시작되었다. 규칙은 매우 간단했다. 훈련장 내에서 각각의 기사단들이 가지고 있는 스티커를 옷에 붙이면 되는 거였다. 스티커가 붙은 사람은 그 즉시 아웃으로, 주어진 시간 동안 가장 많은 사람이 살아남는 단이 1등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전 게임은 단 대 단으로 1:1로 겨루었던 것에 비해 이번 게임은 모든 단이 한꺼번에 참가를 했기에 어떻게 보면 이번 게임이 가장 어렵게 느껴졌다.
“으악, 꺼져라. 이 청룡단 새끼야!!”평소 입이 걸걸하긴 하지만 욕을 하지 않던 카를로스였지만 극한의 상황 속에선 그로서도 어찌할 수가 없는지 욕이 나왔다. 그 욕으로 인해 시비가 붙을 만도 하건만 상대 청룡단 기사인 히얀도 그런 것에 한눈을 팔 만큼 여유가 있지 않았기에 둘은 서로 스티커를 붙이고, 스티커가 붙여지지 않기 위해 엎치락뒤치락 했다. 그 결과 체격 차이 때문일까 결국 히얀에 비해 거구인 카를로스가 히얀의 몸에 스티커를 붙이는 것에 성공했다.
그렇게 겨우 한명을 아웃시키고 한숨을 돌리려는 찰나, 어느새 나타난 칸에 의해 카를로스는 허무하게 아웃 당했다.
“이얏호!”
당당히 동료인 카엘을 아웃시킨 리엔이 환희의 소리를 질렀다.
실제 실력은 카엘이 리엔보다 훌륭했지만 단지 그런 요소로 술래잡기 게임에서 이기기엔 변수가 너무 많았기에 카엘은 결국 리엔에 의해 아웃당했다. 그리고 그 잠깐의 틈에 주작단의 차우가 리엔을 공격했고, 리엔은 가까스로 피할 수 있었다.
“키키, 우리 이럼 너무 재미없다고~”
첸이 싱글싱글 웃으며 대치 상태의 하륜을 보며 말했다.
“아니오, 이게 더 재밌습니다.”
생긴 건 솔직히 좀 고지식하고 말 잘 못할 것처럼 생긴 녀석이 번번히 자신의 말에 유연스레 대꾸하자 첸이 호오, 하며 신기하단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거, 이것은 이거.
꼭 하륜을 아웃시키고 싶었기에 첸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빠지는 듯 하다가 하륜에게 달려 들었다. 그것을 가볍게 몸을 틀어 피한 하륜은 뒤를 돌아 자신에게 몸을 붙여오는 첸의 몸을 그대로 막으며 그의 등에 팔을 둘러 그를 저지 시킨 후 스티커를 붙이려고 했다. 하지만 첸이 유연하게 피했고, 결국 하륜은 실패했다.
시간이 끝나고, 레안이 훈련장에 남아있는 사람들을 주욱 훑어보았다.
꼴등이었던 백호단이었지만 마지막 게임에서 상대를 깨물기까지 하며 격렬하게 저항한 끝에 백호단 에이스, 휴, 지얀 등 3명이 살아남아 1등이 되었고 나머지 기사단들은 현무단 하륜, 란휘 등 2명, 청룡단 가륜 1명, 주작단 0명이 살아남았다.
결국 전체 우승은 백호단이 2등은 현무단, 3등은 청룡단 4등은 주작단이 되었다.
이에 백호단은 다들 와아 하면 환호성을 내질렀고, 나머지 기사들은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특히나 리엔의 표정은 아주 죽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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