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아아, 재미없네~
“신입, 어때?”
카엘이나 리엔이 승급 심사 전부터 기사단에 배정되어 있던 것과 달리 승급 심사 후에 배정된 하륜이었기에 혹시나 기사단에 잘 적응했을까 하는 생각에 레안이 물었다.
현무단은 특히 4개 기사단 중에서 가장 적응하기 힘든 곳이니까.
가장 개인 플레이가 심하고, 성격들이 다 남에게 관심가지고 다가가는 것과 거리가 먼 데다가 훈련 난이도나 기사단의 기사들 수준이 4개 기사단 중에서 가장 높으니까.
애초에 그래서 왠만해선 절대 신입 기사들을 배정하지 않았지만 하륜만큼은 현무단에 보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훈련 중에 보여주는 모습이나 그의 실력은 신입 기사임에도 현무단에 배정할 수 있을 만큼 훌륭했다.
“.........글쎄.”
특별히 신입 기사에게 신경을 쓴 적이 없던 라이너는 레안의 물음에 달리 대답할 말이 없었다. 애초에 모든 훈련은 각자가 알아서니 굳이 자신이 신경을 쓸 필요가 있겠는가?
라이너의 대답에 레안의 살벌한 시선이 라이너를 향했다.
딱히 라이너에게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저건 너무하지 않은가? 아니, 신입 기사가 누군지는 알까?
“관리는 해. 아무리 자유롭게 풀어준다고 해도 단장 권한 아래 있는 녀석들이야.”
라이너의 무심한 시선이 레안을 향했다.
“늑대 S급 40마리, A급 80마리니까 알아서 애들 꾸려서 가. 카렌이랑 하륜, 꼭 보내고. 나머지 하나 더 추가해서 임무 보내. 넌..."
잠시 말을 멈춘 레안은 라이너를 빤히 바라보았다.
“근위 기사단 애들 좀 도와주고 오고.”
“굳이 내가 가야 하나?”
애초부터 근위 기사단과 황실 기사단의 마물 수비 범위가 다를 텐데 갑자기 근위 기사단을 도와주라는 말에 라이너가 기분 나쁜 듯 인상을 찡그렸다.
“B급이랑 S급 섞여 있다잖아. 잔말 말고 가.”
레안의 말에 라이너를 인상을 찌푸린 채로 집무실을 나갔다.
그리고는 카렌에게 임무 수행 할 사람 명단을 적어 건넸다.
리엔 때와는 달리 현무단의 임무 수행 인원은 상당히 조촐했다. 원래부터 많은 인원들이 한꺼번에 이동하는 일은 없었지만 그런 것 치고도 현무단의 임무 수행 인원은 매우 적었다.
하지만 레안 나름으로는 상당히 봐준 것이었다.
원래는 하륜과 카렌, 단 둘만 보낼까 했었지만 그래도 첫 임무였기에 신입에게 임무에 대해 알려줄 사람이 필요할 것 같아 한명을 더 추가한 것이었다.
뭐, 원래부터 친절한 곳이 아니라 그런 것이 필요할까 싶긴 했지만 그래도 첫 임무에서 괜히 사고쳐서 부상을 입는 것 보단 과한 친절을 베푸는 것이 낫기에 첫 임무에 한해서만 배려를 해주는 것이었다.
“원래 이렇게 인원이 적습니까?”
단촐한 인원에 하륜이 물었다.
“원래 이래.”
류나가 뚱하니 대답했고, 그 대답을 마지막으로 그들 사이에선 어떠한 대화도 오가지 않았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하륜이 뭐라 말을 꺼낼까 했었지만 원래부터 이런 분위기인 것 같아서 굳이 입을 열지 않았다.
솔직히 하륜이 속한 패거리들이 시끄러워서 그렇지 하륜은 말이 많은 편이 아니었다. 할 말이 있지 않은 이상 입을 잘 열지 않았으므로.
그렇기에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하륜은 기분 좋은 긴장감을 느끼며 마물 출몰지로 향했다.
“보통 단장과 부단장은 따로 임무를 수행하는 편입니다. 주로 S급과 A급 마물들을 동시에 처리하는 경우가 있어 A급 마물들은 기사들이, S급 마물들은 단장이나 부단장이 처리를 합니다. 백호단이나 주작단의 경우, 단체로 행동하는 기사단이기에 그쪽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답지 않게 카렌이 길게 말을 하며 하륜에게 설명했다.
자세한 설명과는 달리 카렌의 표정엔 귀찮음이 가득했다.
그 모습이 웃겨서 하륜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주위에 느껴지는 마물들의 기운을 느끼며 서서히 살기를 피워올렸다.
긴장감 없이 담담한 하륜의 모습에 카렌은 작게 감탄을 하며 빠르게 검을 내질렀다. 이에 가장 먼저 달려든 S급 마물이 순식간에 사선으로 잘려졌고, 뒤를 이어 나타난 A급 늑대를 하륜이 흥분 어린 미소를 지으며 그의 배를 갈랐다.
그것을 시작으로 그들은 각자 자신들의 몫의 늑대를 찾아 가차없이 검을 휘둘렀다.
온 몸에 피를 묻힌 하륜은 흥분감에 몸이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이런 진한 피비린내라니.
비록 인간이 아닌 늑대였지만 향긋하게 느껴졌다.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늑대들의 수가 늘어날수록 하륜의 검은 점점 더 빨라지며 깔끔하게 그들을 베어 넘겼다.
그런 하륜의 활약에 류나는 그저 나무 위에 앉아 그를 구경했다. 굳이 자신이 끼워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며.
그런 류나의 공백을 느끼지도 못할 만큼 하륜은 거칠 것 없이 날뛰었다.
80마리의 늑대들은 순식간에 20마리로 줄어들었다.
600마리의 늑대를 혼자 처리하느라 지칠 법도 하건만 하륜에게선 전혀 지친 기색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신난다는 듯 더욱 날뛰고 있었다.
20마리밖에 남아있지 않게 된 늑대들은 처음의 당당한 모습을 지운 채 점차 하륜에게서 물러나며 주춤거렸다. 그들 사이엔 기묘한 긴장감이 넘쳤다.
잠시의 정적, 하륜은 느긋한 표정으로 팔을 늘어뜨리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때 다섯 마리의 늑대들이 그를 둘러싸더니 순식간에 그에게 달려들었다. 동시에 달려드는 그들에 금방이라도 하륜이 찢어발겨질 것 같았다.
숨 막히는 긴장감에 느긋하게 구경하던 류나는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키며 금방이라도 달려갈 듯한 태세를 했다. 하지만 의외로 상황은 쉽게 종결이 났다.
5마리의 늑대들은 모두 정확히 다섯 토막이 났다.
직전의 긴박한 분위기와는 달리 싱겁게 끝난 상황에 류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동시에 하륜을 향해 날카로운 시선을 보냈다.
정말 신입이 맞을까? 저건 원, 닳고 닳은 고참 기사같은데.
저 망설임 없는 몸놀림하며, 첫 임무에서 보여주는 긴장감으로 인한 몸의 경직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 하며.
어느새 상황이 정리되고 류나는 나무에서 사뿐히 내려와 하륜에게 다가갔다.
자신이 늑대들을 향해 거침없이 검을 휘두르는 것을 본 류나가 나무에 앉아 자신을 구경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새삼 피에 쩔은 자신과 달리 깨끗한 류나의 모습에 하륜은 인상이 찌푸려졌다.
“혹시 전에 마물 사냥 해 본 적 있어?”
“처음입니다. 마물 사냥꾼이 아니라 현상금 사냥꾼이었으니까요.”
하륜이 대답에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하륜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하지만 카렌의 등장으로 류나는 시선을 돌렸다.
첫 임무 후, 쓰러지듯 잠들어 다음날 골골 거리던 리엔과는 달리 하륜은 너무도 멀쩡했다. 누가 보면 임무를 갔다 온 사람이 맞는지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그런 하륜을 보며 카렌과 라이너는 묘한 시선을 던졌다.
남들에게 그리도 무심한 그들이었건만 하륜의 특출남에 시선이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레안님이 그토록 신경을 쓰는 건가?’
유독 신입 기사들에게 많은 관심을 보이는 레안의 행동을 떠올리며 라이너는 속으로 생각했다. 하긴 저 실력이라면 관심 가질 만도.
“관심 없는 척하더니.”
갑작스럽게 들린 목소리에 시선을 돌리니 레안이 그들이 앉아 있는 곳에 다가와 하륜을 바라보고 있었다.
“...........”
잠시 레안을 빤히 바라보던 라이너는 그냥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싸가지 없는 라이너의 행동에 레안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다 옆에 있던 카렌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자신을 향하는 시선에 카렌이 무슨 일이냐는 표정을 지었다.
딱히 할 말이 있어서 본 게 아니었던 레안은 그냥 어깨를 으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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