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이제 우리는 화해해야 할 시간~!
느긋하게 자신의 집무실로 향한 유란은 자신의 책상 위에 한가득 놓여진 서류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분명 며칠 전에 서류 처리 다 해놓은 걸로 알고 있는데?이해할 수 없음에 유란은 서류를 확인하기 위해 책상으로 향했다. 책상 위에 곱게 놓인 서류더미 중 하나를 집어 읽어보니, 이것은 부단장의 승인을 거친 서류였다.
원래 모든 서류들은 최종적으로 단장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이것은 그 최종적인 승인을 받기 위해 대기타고 있는 서류였다.
하지만 분명 어제 처리했다고, 그런데 이건 무슨!!
이 모든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유란은 훈련장에 느긋하게 앉아서 독서를 하고 있는 카렌에게 달려갔다.
“카렌, 제 책상 위에 서류들이 있던데, 어제 다 처리한 거 아니었나요?”
“그건 어제 분 서류였습니다.”
자신의 독서를 방해받은 사실이 불쾌했는지 카렌이 싸늘히 답했다.
하아. 그건 어제분이라고?
“그럼 제 책상 위에 있던 게 오늘 분 서류라고요?”
“네.”
왜 자꾸 말 시키냐는 듯 카렌이 다소 귀찮아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아.
달갑진 않았지만 카렌의 대답에 책상 위의 서류들을 쌓아 놓을 수도 없기에 처리하기 위해 다시 집무실로 향했다. 그러나 잠시 훈련장을 살펴본 유란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들이 자유롭게 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가 애들 훈련을 시킨 것 같은데요..?”
가려다 말고 다시 말을 거는 유란의 행동에 카렌은 책을 덮고 유란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시켰습니다.”
“놀고 있는데요?”
유란의 말에 카렌의 시선이 잠시 주작단의 기사들을 향했다.
“알아서 훈련할 때 되지 않았습니까? 애들도 아니고 굳이 따로 지시 내려야만 하는 겁니까?”
하?
제나도 만만치 않게 성격이 싸가지 없었지만 이건 제나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싸가지 없었다. 이에 유란이 어이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지만 카렌은 자신은 할 말 다했다는 듯 다시 책을 펴서 읽고 있었다.
이걸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
유란은 진지하게 고민이 들었지만 애써 화를 참으며 기사들에게 대충 지시를 내리곤 집무실로 향했다. 그렇게 집무실로 향한 그녀는 짜증어린 표정으로 거칠게 서류를 처리했다. 어느새 서류 처리를 끝내니 날은 벌써 어두워져 있었다. 한 거라곤 서류 처리 밖에 없는데, 벌써 하루가 갔구나.
하루 종일 글자만 보느라 피곤해진 눈가를 문지르며 유란이 힘겹게 숙소로 향했다.
다음날.
분명 모든 서류를 완벽히 처리했건만 또다시 쌓여있는 서류에 유란의 인상이 와락 구겨졌다. 다시 따지기 위해 카렌을 찾아가니 카렌은 아주 띠꺼운 표정으로 오늘 분 서류라고 답할 뿐이었다.
아니, 무슨 기계도 아니고 그 많은 서류를 순식간에 처리해내는지.
“상대를 배려해서 그 서류 처리 속도 조절할 생각은 없으신가봐요?”
이대로 가다간 일주일 내내 서류에 시달려 과로에 걸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유란이 애써 웃으며 말을 건넸다.
“능력이 없으면, 능력에 맞는 자리를 찾아가시면 되는 겁니다. 본인이 더 발전해야 겠다는 생각은 안듭니까? 일반 기사들이야 검만 잘 휘두르면 되겠지만 단장인 이상 서류 처리하는 능력도 기르셔야죠.”
원래 이렇게까지 싸가지가 없지는 않지만 자꾸만 귀찮게 구는 유란의 행동에 짜증이 나 자연스레 카렌의 말투는 더더욱 싸늘했다.
이에 유란이 발끈하며 욕설을 내뱉었다. 그러나 카렌은 들리지 않는다는 듯 책을 읽었다.
그 모습을 살기어린 모습으로 유란이 바라보다 거친 발걸음으로 집무실로 향했다. 그제서야 카렌이 고개를 들었고, 짜증어린 혼잣말을 내뱉었다.
“더럽게 귀찮게 구는군.”
“제대로 들고 있어.”
딱히 그녀가 부관이 필요한 건 아니었지만 맡을 사람이 없어 졸지에 리엔을 맡게 된 레안이 리엔을 향해 삐딱하게 말했다. 이에 지름1.5.m가 되는 우산을 들고 있던 리엔이 인상을 마구 찌푸렸다.
아니, 도대체 자신이 왜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건가! 자기가 무슨 하인도 아니고.
“비도 안 오는데 우산은 왜 들고 있어야 하는데요?”
“오늘따라 햇살이 세서.”
그럼 나오질 말던가!
굳이 나와서 귀찮게 우산을 들게 하는 이 못된 심보의 레안에 리엔은 화가 났다. 안그래도 류에게 잔뜩 시달려서 청룡단에서 나가게 해달라고 했는데, 다시 또 이렇게 부려먹는 꼴이라니. 괜히 류가 레안의 부하가 아니라는 생각에 리엔은 투덜거렸다.
“물 떠와.”
“네?”
설마 아니겠지 하는 표정으로 리엔이 레안을 향해 되물었다.
“물 떠오라고. 한번만 더 같은 말 또 하게 하면 땅에다 거꾸로 박아버린다.”
뭐, 이딴!
순간적으로 반항심이 솟았지만 계속 꾸물거리다간 정말로 땅에다 박아버릴 것 같은 태세의 모습에 리엔은 꿍얼거리며 물을 떠왔다. 그러나 그가 떠온 물은 차갑지 않다는 이유로 바닥에 버려졌고, 그는 다시 물을 떠와야 했다.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했을까. 겨우 합격점을 받은 그는 지친 기색으로 우산을 들었다. 그리고 지친 그가 실수로 우산을 삐끗했고, 그 우산은 그대로 레안의 머리에 박았다. 그 모습에 리엔은 차마 대놓고 웃지는 못하고 속으로 웃었다. 그렇게 사람을 부려먹더니. 그러나 그는 이내 지옥을 경험해야 했다.
화가 난 레안이 그의 팔과 다리를 바닥에다 못을 박고서 그 못에다 묶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그가 누운 배 위에 50L 크기의 물통에 물을 가득 담아 올려 놓았다. 그리고 도대체 그 물통에 무슨 짓을 한 것인지 물통에서 계속 얼음물 보다 훨씬 더 차가운 물이 흐르며 그의 몸을 적셨다.
“혹시나 물 엎지르면 그냥 널 얼음 속에 쳐박아 놓을 거라는 사실 명심해.”
하아?
자신이 류 밑에서 일하며 온갖 괴상망측한 일을 다 당했다지만 이런 지독한 일을 처음이라 뭐라 할 말을 잃었다. 적어도 이런 식의 고문은 하지 않았다고!
솔직히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믿기지도 않지만 그는 철저히 모든 것이 장난이었다. 벌도 장난처럼 주는 것이 류였다. 즉, 이렇게 살벌한 모습으로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들지 않는단 말이다! 그는 고문같은 장난이지, 고문이 아니라고!
자신의 슬픈 현실에 씩씩 거리던 리엔의 행동에 물통이 살짝 쓸렸고, 놀라 굳어있는 리엔의 몸에서 결국 물통은 쓰러졌다.
그런 리엔의 행동에 레안은 그저 말없이 어디선가 가로 50cm 세로 200cm의 얼음을 집어 오더니 바닥에 던져 놓고선 그 위에 리엔을 매달고, 다시 그의 사지를 묶어 바닥에 고정시켰다. 그리고 다시 리엔의 배 위에 물통을 얹어놓았다.
아니,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지.
애초에 들다보니 힘들어서 우산 좀 삐끗할 수도 있는 거잖아!
실수 하나에도 가차 없는 레안의 행동에 리엔은 암담함을 느꼈다. 이 상태로라면 화도 못 내겠는 것이, 자칫 화내다 다시 물통을 엎지르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할 수 없었다.
물론 그동안 절대 레안이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새삼 바로 옆에서 있자니 그녀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음. 뭡니까, 이 상황은?”
자신의 친우인 리엔이 얼음 위에 놓여 물통을 배 위에 올려 놓고 있는 모습에 하륜이 다소 당황스런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는 그저 레안을 보니 반가워 잠시 쉬는 시간에 그녀를 보러 온 건데, 예상치 못한 친구의 모습이라니.
“보면 몰라?”
“물론 보면 무슨 상황인지는 알겠습니다만 왜 저런지 궁금해서 말입니다.”
“내 대가리에 우산 박아 넣길래.”
심플한 레안의 대답에 하륜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실수로 그런 것 같은데 바로 저런 벌을 받는 리엔의 처지에 다소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어쩜 그렇게 상관에 대한 운이 없는지, 아니 어쩌면 리엔의 성격 그 자체가 문제일지도.
“가십니까?”
뭐가 불만인지 인상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레안을 향해 하륜이 되물었다.
“왜 불만이야?”
레안이 삐딱하게 그를 바라보며 대꾸했다.
“불만은 없습니다만 다소 아쉽습니다. 그보다 리엔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아쉽다는 말에 인상을 찌푸리는 그녀를 다소 귀엽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며 하륜이 말을 이었다.
“네가 알아서 이따 저녁때 풀어줘. 그때까지 죽지는 않겠지.”
죽을 만한 벌은 아니라 죽지는 않겠지만 상당히 고통스러울 것 같은데. 하지만 그런 하륜의 의견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굳이 그도 같이 리엔의 옆에서 벌을 받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레안이 사라지고, 리엔이 제발 풀어달라는 표정으로 간절히 하륜을 바라보았지만 하륜은 풀어주지 않았다. 솔직히 리엔을 풀어주지 않음으로써 듣게 될 짜증과 원망이 지금 리엔을 풀어줌으로써 얻게 될 고통보다 훨씬 더 나았기 때문이었다.
끔찍했던 일주일이 지나고, 라이너 들이 레안의 집무실에 모였다.
도대체 일주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들의 몰골은 장난 아니게 야위어 있었다. 특히나 리엔의 몰골은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래, 이제 어떻게 할래?”
레안이 책상 위에 놓인 차를 마시며 그들을 향해 물었다.
“카렌을 돌려 받겠다.”
가장 먼저 라이너가 입을 열었다.
라이너의 말에 레안이 카렌을 바라보았다. 넌 어떠냐는 무언의 질문에 카렌이 입을 열었다.
“저도 라이너님 밑으로 가고 싶습니다.”
사상 최초로 의견이 맞는 것을 느끼며 둘은 나름 서로를 향해 아주 약간의 애정을 표시했다.
이어서 류가 입을 열었다.
“나도 이안!! 이안이 더 좋은 것 같아요!”
그 말에 이안은 그저 아무 말 없이 흐느적거리며 류의 옆으로 가서 앉았다.
결국 그들은 일주일간의 고생 끝에 자신의 자리를 다시 찾을 수 있었다.
“흠흠. 뭐 돌아와서 기뻐.”
유란이 쑥스러운 듯 헛기침을 내뱉으며 다시 보게 된 제나를 향해 말했다.
이에 제나 역시 나름 쑥스러운 미소와 반가움을 담아 말했다.
“저도요, 단장님.”
그 훈훈한 모습에 레안은 드물게 미소를 지었다.
“저는요.”신경 거슬리는 소리에 옆을 보니 리엔은 뾰루퉁한 얼굴로 레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넌....”
“저도 그냥 청룡단으로....”
막 돌아갈래요 라는 말을 꺼낼려는 찰나, 레안의 손이 리엔의 뒤통수를 가격했다.
“말 끊지마. 넌 그냥 절로 가.”
단지 말을 끊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뒷통수의 고통을 겪게 된 리엔은 아주 불량스런 눈길로 레안을 놀려보며 류의 옆으로 갔다. 그리고 류의 옆에 앉은 그는 레안의 찻잔에 그대로 이마를 내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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