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너희들을 위해 준비한 특별한 승급심사.
유난히 쨍쨍한 해를 바라보며 레안은 상념에 잠겼다. 벌써 8월이 되었던가. 정말 수직으로 떨어지는 폭포보다 빨리 흐르는 시간에 레안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어쩜 그렇게 시간이 빨리 가서 이따구로 귀찮게 하는지.
슬슬 다가오는 승급 심사를 생각하는 레안의 표정은 정말 뭐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일그러져 있었다. 워낙 더위에 약하기도 한 그녀였기에, 8월의 날씨는 정말 좋지 않았다. 물론 다른 나라나 지역에 비하면 이 정도면 양호한 편이라곤 하지만 그녀에게는 어쨌든 더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덜 덥든, 더 덥든 더운건 더운 거 아니겠는가?그리고 그런 날 애들 승급심사를 위해 밖에 나가야 한다는 사실이 매우 마음에 안들었다. 맘같아선 난 몰라 니들이 해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예 손을 놓을 수는 없었다. 솔직히 자신이 준비만 하면 진행은 단장놈들이 알아서 해서 막상 승급심사를 할 때는 별로 할 일이 없지만 어쨌든 밖에 나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싫은 그녀였다.
하아. 정말 싫어.
레안은 답지 않게 어린애 같은 얼굴로 투정부리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노크소리가 들리며 하륜이 들어왔다.
“뭐냐?”
“아무래도 말씀 드려야 할 일이 생긴 것 같아서 말입니다.”
진지한 얼굴로 말하는 하륜의 얼굴은 평소와 다른 무언가를 품고 있었다. 다른 이라면 느끼지 못했을지 모르겠지만 레안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모처럼 자신의 여유로운 시간을 방해한 하륜의 행동을 특별히 용서해주기로 했다.
“뭔데?”
“느낌이 좋지 않습니다.”
흐응?
그래서?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 라는 의미를 담은 시선이 하륜을 향했다.
“몸에 특별히 이상이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근래 들어 자주 이상한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나 자주 무언가 특별한 일이 없음에도 불쾌한 기분이 듭니다.”
저 신중한 하륜이 단지 가벼운 감정 기복으로 저렇게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할리는 없을 테고. 레안이 드물게 진지한 표정으로 하륜에게 다가가 그의 손목을 잡아 그를 통해 자신의 기운을 그의 몸 안에 흘러 넣었다.
확실히 하륜의 말대로 별다른 이상은 느껴지지 않았다.
“어떻습니까?”
그녀의 착각일까. 그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긴 불안할테지.
“괜찮아. 그러니까 가서 훈련이나 해. 짜증난다고 물건 때려 부수지 말고.”
풋.
하륜은 그녀의 농담을 알아듣곤 작게 웃음소리를 내었다. 저렇게 무심한 얼굴로 농담을 하자니 뭔가 귀여웠다. 물론 그 농담이라는 게 다른 이들이 들었다면 농담인지도 모를 말이지만 그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것이 그녀 나름의 농담이라는 것을.
은근히 자신을 신경 써주고 있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자 괜스레 가슴 한 켠이 아릿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륜이 나가고, 레안은 잠시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아까 하룬에게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아주 미세한 무언가를 느꼈다. 그 움직임이 너무 미약해 그녀도 순간 모른 척 넘어갈 뻔 했을 정도로. 다만 그게 큰 위협같은 건 아니었기에 대충 넘어갔지만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할 필요가 있었다. 어쩌면 그 움직임은 마룡의 움직임을 암시하고 있는 지도 모르니까.
승급심사 날. 황실 기사단 전체가 모인 훈련장 앞에 레안이 서있었다.
“알지? 다들 적어도 한번은 해봤으니까 귀찮게 설명 안한다. 그럼 시작해......라.”
대충 귀찮음에 손을 휘저으며 말하던 레안은 달갑지 않은 존재의 발견으로 말 끝을 흐렸다.
도대체 저 작자가 또 왠일인지. 올 때마다 귀찮은 일 하나는 꼭 들고 오는 것 같은 느낌에 레안이 인상을 와락 구겼다. 그러나 유리안은 그런 레안의 반응 따위 보이지 않는다는 듯 생글생글 웃으며 레안에게 다가왔다. 친절히 안녕하고 인사한 그는 이내 앞에 정렬한 기사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자, 그동안 훈련 하느라 힘들었지?”
음, 어떻게 대답하여야 하나.
힘들다고 말하기도 그렇고, 그러고 안 힘들다고 말하자니 미치도록 힘든게 사실이고, 혹시나 더 굴릴지 모르고 그렇다고 무시하자니 황제고.
고민하는 기사들을 바라보며 유리안이 눈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알아. 힘든 거. 그래서, 특별히 이번 승급심사 때는 조건을 내걸지. 이번 승급심사에서 일등을 한 사람은 일주일 포상 휴가에 원하는 소원 한가지를 들어줄게. 황제의 권한으로 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 어떤 것이든!”
호오. 파격적인 제안에 기사들 전체가 술렁였다.
“꺼져.”
“레안도 참. 아무튼 다들 힘내라고~”
레안은 향해 싱긋 미소를 지으며 윙크를 하고는 유리안은 발랄하게 사라졌다. 하여간 귀찮게. 또 무슨 짓을 벌일려고. 말로는 소원을 들어준다고는 하지만 과연 순순히 그럴까 싶은 마음이 들어 레안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거기다 아무리 자신이 황제라도 멋대로 일주일 포상 휴가라니. 그래도 뭐 상관없겠지. 모처럼 쉬는 것도.
그런 생각에 레안은 대충 유리안의 의견에 따르기로 속으로 결정하곤 승급심사를 시작했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일까.
1:1 대련을 무사히 마치고, 3:1 대련을 시작한 리엔은 속으로 욕을 읆주렸다. 하필이면 왜 저녀석들이냐! 의도적인것인지, 아니면 정말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륜과 카엘과 대련하게 된 리엔은 잔뜩 울상을 지었다. 나머지 한명이야 누군지 알 것 없고, 리엔의 눈에는 오직 하륜과 카엘만이 보였다. 솔직히 다른 녀석들이라고 해도 세명은 애초에 무리였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었다. 차라리 카엘과 1:1 대련이라면 모를까 둘이라니, 거기다 하륜이 있다니. 그동안 하륜이 싸우는 모습을 보며 아, 정말 친구라서 다행이다 라고 생각한 적이 얼마나 많은데. 차라리 마물이 나아! 친구인 하륜을 마물과 비교하며 마물이 낫다고 생각한 것은 정말로 미안했지만 실제로 그랬다. 하륜의 검이 얼마나 집요하고 날카로운데.
자신이 일로 저 셋을 감당하나, 자신이 셋으로 저 일, 하륜을 감당하나 별다를 것 없다는 생각에 리엔은 그저 한숨만을 내쉬었다. 그런 그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카엘이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그도 하륜과 대련을 하라면 살짝 꺼려지는 것은 마찬가지였기에.
어찌되었든 대련은 시작되었고, 시작하자마자 리엔은 그 특유의 스피드를 이용해 몸을 빠르게 낮추며 가장 만만한 타겟인 주작단의 엘시안을 공격했다. 순식간에 시야에서 몸을 피해 달려드는 리엔의 날카로운 검술에 엘시안이 앗차 한 사이 그의 검이 그의 어깨를 향해 직선으로 다가왔고, 미처 엘시안은 피하지 못하고 그의 어깨를 내주어야 했다. 그리고 리엔이 엘시안을 향해 검을 찌른 그 순간을 기다린 하륜이 검을 리엔을 향해 사선으로 휘둘렀다. 이에 리엔이 한발짝 물러섰고, 그 때 뒤에서 카엘이 다가와 횡으로 검을 휘둘렀다. 하륜과 카엘의 공격을 둘다 무사히 피하지 못한 리엔의 몸에는 검에 베인 옷이 흩날렸고, 피가 살짝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부상에 몸을 추스릴 틈도 없이 하륜이 조용히 그에게 달려왔고, 당연히 정면을 향해 내지를 줄 알았던 검은 하륜의 점프로 위에서 아래로 휘둘러졌다.
아래로 피하려던 리엔은 그것을 느끼고 황급히 뒤로 피했으나 중심이 낮아져 있었던 탓에 완벽하게 뒤로 물러서지 못했고, 살짝 삐끗한 순간 하륜의 검이 다시 그를 향해 휘둘러졌고, 덕분에 리엔의 머리카락이 한웅큼 잘려나갔다.
하여간! 아주, 잡아 먹어라, 잡아 먹어.
물론 그가 봐줄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고, 그러길 바라지도 않았지만 막상 이렇게 그의 매서운 공격 앞에 놓이니 새삼 그가 원망스러웠다.
그렇게 카엘이나 엘시안이 끼어들 틈도 없이 하륜에게 몰아쳐진 리엔은 대련의 끝을 알리는 소리를 들으며 가까스로 몸을 뉘일 수 있었다.
쳇. 그러나 아직 세 번의 싸움이 남아 있었다. 하륜과 카엘과 엘시안. 그래도 이번엔 혼자가 아니라 셋이 하나를 공격하는 것이라는 사실에 그나마 리엔은 자신의 처지를 위로할 수 있었다.
호오.
하륜 등의 대련을 지켜보던 레안은 작게 감탄했다. 확실히 원래부터 능력이 있는 녀석들이라 그런지 지난 승급심사 때 보여주었던 실력에 비해 한층 더 성장되어 있었다. 특히나 그 성장이 다른 이들에게 비해 월등해서, 저기 같이 껴있는 엘시안이 매우 묻힐 정도였다. 애초에 특별히 저 셋만을 붙여놓을 걸 그랬나. 어찌됐든 정말 놀랄 만한 성장에 레안이 드물게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특히나 리엔과 하륜의 성장은 괄목상대 수준이었다. 하륜이야 원래부터 가진 능력이 무궁무진했기에 저런 성장이 놀랍지 않았지만 리엔은 예상 외였기에 레안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떽떽 거리더니 그래도 발전은 하고 있었네.
“우아아. 죽을 것 같아.”
상처야 대충 치료했다지만 모처럼 과하게 움직인 몸의 근육통은 치료하지 않았기에 온 몸이 삐걱거리는 것을 느끼며 리엔이 죽는 소리를 했다. 그것은 카엘 역시도 마찬가지인지 카엘의 표정도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크크, 넌 어째 멀쩡하다?”
확실히 그들에 비해 멀쩡한 하륜을 바라보며 카엘이 부럽다는 시선을 던졌다.
“아아. 워낙 살벌한 임무와 훈련을 하다보니까?”
새삼 그동안 겪은 임무의 강도와 훈련을 생각하며 하륜은 작게 쓴 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훈련에 터치를 안 한다지만 훈련을 조금이라도 느긋하게 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게 하고 있으면 그 즉시 임무를 통해 응징을 가했기에 하륜은 좀처럼 훈련을 쉴 수가 없었다.
이것이 보이지 않는 위협인가.
바로 며칠 전에 임무에서 얻은 어깨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그때의 임무를 떠올렸다. 상처가 남아 있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큰 상처는 아니었고, 그저 가벼운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껏 그가 겪었던 상처에 비해선 나름 크다고 볼 수 있었기에 하륜의 충격은 꽤 컸다. 나름 그 자신의 실력에 대해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쩌면 그것을 알고서 일부러 그런 더 어려운 임무에 자신을 보낸 것인지도 몰랐다. 원래라면 부단장이나 다른 기사 한명과 같이 가야할 그곳에 하륜 혼자만을 보냈으니.
“헤에, 어떤데?”
“그냥. 죽어라 훈련 하는 정도?”
“끙, 그래?”
카엘이 저런 말을 했다면 단박에 비웃어줬을 테지만 하륜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았기에 리엔은 쿨하게 받아드리기로 했다.
“선물이다.”
“악!”
혼자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던 리엔에게 무언가가 날라왔고, 전통으로 얼굴을 맞은 리엔이 소리를 지르며 물건이 날아온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레안이 뚱한 표정으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무슨 짓이에요!! 막 승급심사 끝나서 피곤한 사람한테!”
“그래서 주는 건데? 근육통 있는데다 붙이면 효과 즉빵이야.”
헤에?
믿을 수 없는 레안의 말에 리엔이 불신 가득한 시선을 던졌다.
“싫음 내놔.”
“누가 싫대요! 갑자기 저한테 주니까 그래서 그런 거에요.”
“뭐, 그동안 열심히 고생한 것에 대한 보상. 실력의 성장 면에선 네가 제일 월등하니까.”
졸지에 레안에게 칭찬을 받아버린 리엔은 자신이 헛것을 들었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레안이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전 안 줍니까?”
갑자기 끼어든 하륜의 말에 레안이 비스듬히 그를 바라보았다.
“넌 왜?”
“저도 열심히 훈련 했습니다.”
착각인가.
마치 자기도 칭찬해달라고 조르는 강아지처럼 느껴져 레안이 갸웃거렸다.
“큭, 저도 주십시오.”
저건 또 뭐야.
뭐랄까. 순식간에 덩치 큰 개 두 마리에게 휩쌓인 느낌이 들어 레안이 인상을 찌푸렸다.
“꺼져.”
귀찮은 듯 레안이 등을 돌렸고, 하륜이 아쉬운 눈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사라지고, 괜스레 하륜이 리엔을 향해 툭툭 거렸다. 특히나 리엔이 파스를 붙여달라고 말했을 때는 어찌나 감정을 담아 팍팍 붙여대는지 리엔이 고통에 소리를 지를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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