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그녀와 함께 하는 나들이 시작?
평소와 다름 없는 하루를 느끼며 레안은 느긋하게 창 틀에 걸터 앉아 차를 마셨다.
미친 마룡도 해결했고, 사고 친 녀석들도 이젠 완치되어서 제대로 훈련하고 있고.
모처럼의 여유에 레안은 기분이 좋았다. 왠일인지 올해에만 연달아 터지는 사건에 꽤 골치 아팠었지만 다 해결되었으니 뭐.
기분 좋음에 레안은 차를 마시고 훈련장으로 향했다. 하륜이 있는 현무단의 훈련장으로 향한 레안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하륜을 쳐다보곤 이내 나무에 기대 앉아 기사들의 훈련 모습을 구경했다.
며칠 빡세게 임무를 수행 한 탓인지 전에 비해 그들의 분위기는 제법 날카로워졌고 훈련 분위기도 꽤 살벌했다. 하긴 원래 살벌하긴 했지만.
그래도 전보다 제법 성장한 실력들에 레안은 속으로 앞으로도 종종 임무 과부하를 시켜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들이 알았다면 칼을 빼들고 죽겠다고 할 만한 생각을 하는 레안의 표정은 흥미롭다는 듯 피식 웃고 있었다.
나름 훈련의 강도를 높여 검을 휘두르던 하륜은 낯익은 시선을 느끼곤 시선을 던졌다. 역시나 하륜의 예상대로 나무에 느긋하게 기대 앉아 기사들을 바라보고 있는 레안의 모습에 하륜은 피식 웃었다.
원래부터 레안에게 흥미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때 그 사건 이후로 부쩍 레안에 대한 하륜의 관심은 커졌다. 자신도 모르게 자꾸 시선을 보낼 정도로.
레안을 잠시 쳐다보던 하륜은 레안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려는 것을 느끼고 이내 시선을 돌려 다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급한 황제의 부름에 황제의 집무실에 향한 레안은 소파에 누워 자고 있는 유리안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분명 자신이 왔음을 눈치 챘음에도 불구하고 자는 척 누워 있는 모습을 보니 괜히 아니꼬웠다.
어쩔까 고민하던 레안은 유리안에게 다가가 누워있는 그의 배를 약간 세게 발로 눌렀다.
순간 욱 하는 신음소리와 함께 유리안이 콜록 거리며 일어났다. 꽤 세게 눌렸는지 거칠게 숨을 내쉬는 유리안의 모습을 보며 레안은 고소하다는 피식 웃었다.
비웃음 가득한 레안의 웃음에 유리안이 쳇 하는 소리와 함께 소파에 똑바로 앉았다.
“뭔데?”
원래부터 서론 없이 본론으로 들어가는 레안의 성격을 알고 있었음에도 용건부터 말하라는 듯 재촉하는 레안의 행동에 유리안이 삐진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에 레안은 그저 재수 없다는 듯 머리카락을 당길 뿐이었다.
잡아 당겨진 머리가 아파왔지만 유리안은 손을 떼내거나 화내지 않았다. 그녀 나름의 장난인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뭐 본인은 장난이라 해도 안 아픈 것은 아니었지만. 어쩌면 아프라고 하는 장난일지도.
“아무래도 출장 나가야 할 것 같아.”
출장?
또?
번번히 일어나는 큰 일에 레안이 인상을 찡그리며 눈으로 되물었다.
그 시선에 유리안이 어색하게 웃었다.
“키란 왕국이랑 카먼 왕국 사이에서 마물이 출몰해서 처치 곤란인가봐. 국경 지역이라 함부로 건드리기도 뭐하고.”
“근데?”
“그래서 카이란 제국 황제와 이야기 좀 해봤는데 우리가 처리하는 게 좋을 것 같더라고. 그쪽도 그러길 원하는 것 같고. 보니까 그쪽에 요즘 마물 출몰이 부쩍 많아져서 국경 지역 일까지 감당하기엔 인력이 딸린대.”
“근데?”
“너도 알다시피 거기가 주 교역 장소잖아? 마물 때문에 옆 제국이랑 교역에 좀 차질이 있다고 해서. 그래서 빨리 처리해야 하는데. 이런 시급한 일에는 근위 기사단보다 황실 기사단이 적합하지 않겠어?”
쓸데없이 말을 놀리기에 뭔가 했더니 역시나 하는 내용에 레안이 표정을 와락 구겼다.
“그리고 거기 나오는 마물들 중에 A급 이상 인 것도 있어서 근위 기사단만으로는 무리야.”
그건 딴 놈 보내면 되는거지.
말도 안되는 변명에 레안은 표정을 더욱 구겼다.
굳이 자신까지 불러서 이야기 하는 것을 보니 이 일에 단장급 기사를 보낼려고 하는 것 같은데.
“거기다 하나의 마물이 아니라 여러 종류의 마물이 출몰한다고 해서 아무래도 황실 기사단이 처리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나름 애교인지 마지막에 싱긋 웃으며 윙크를 하는 유리안을 보며 레안은 싸늘한 시선을 던졌다.
어째 저 꼬라지를 보니 자신도 가야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래서, 나도 가라고?”
하하.
애써 화제를 돌리며 불시에 던질려고 했건만 금새 자신의 의도를 알아채고 물어보는 레안의 질문에 유리안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게 국경지역이라서.. 잘못해서 시비가 붙거나 사고가 나면 곤란하니까. 그러기 위해선 그쪽에서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계급의 기사가 필요하달까?”
“그래서 그 마물들 어떻게 되는데?”다행히도 큰 반발이 없는 레안의 모습에 유리안이 답지 않게 긴장했던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담이 큰 그라지만 그에게도 레안은 꽤 무서운 존재였다.
“늑대 S, A급, 너구리 B급, 발발이 F급, 반달곰 S급, 표범 S급, 고양이 A급 등등 몇 마리인지는 잘 모르겠다.”
“거긴 물건 뿐만 아니라 마물들도 교역한대? 온갖 마물이 다 모여있다? 아주 마물 박물관 만들어도 되겠네.”
두 종류의 마물이 같이 있는 것도 신기하건만 6종류 이상의 마물이 한 곳에 출몰한다는 말에 레안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음, 그거 재밌다. 마물 교역이라.. 신선한대?”
“병신. 언제 출발하면 되는데?”
“되도록 빨리?”
레안의 말에 배를 움켜잡고 박장대소를 터뜨리던 유리안이 흐흐 거리며 힘겹게 대답했다.
“그래.”
집무실에 앉아 유리안이 건넨 서류를 바라보며 레안은 고민에 잠겼다.
누굴 데려가야 하나.
어설픈 놈들은 데리고 가면 귀찮으니까 이왕이면 좀 센 놈들이어야 하는데.
그리고 아무래도 그때 그 마룡 사건 때문에 죽음의 숲에 있던 마물 몇 놈이 국경 지대로 흘러 들어온 것 같은데. 만약 그렇다면 꽤 위험할 수 있기에 확실히 실력 좋은 놈이 필요했다. 뭐, 이미 들은 마물만 해도 꽤 강한 축에 속하는 녀석들도 있었고.
으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레안은 결국 결정을 내렸고, 레안의 집무실에 설치된 황실 기사단의 훈련장과 직속으로 연결된 전화기로 기사들을 집무실로 불렀다.
레안의 지시가 전달 된 후, 몇 분도 채 되지 않아 레안이 부른 기사들이 집무실로 들어왔다.
“앉아.”
우르르 서있는 기사들-라힌, 라이너, 류, 하륜, 리엔, 카엘을 바라보며 소파에 손짓 했다.
“니들 내일 임무 나갈 거니까 오늘 짐 싸서 준비해. 멀리 갈 거니까 그리 알아.”“꽤 인원이 많네요.”
현무단에 비해 백호단이 임무 수행 시 같이 가는 인원이 많은 편이긴 하지만 7명이나 같이 간 적이 없었기에 라힌이 의아한 듯 말했다. 거기다 그 구성 자체가 워낙 훌륭한 지라 라힌의 의아함은 더했다.
“그래서 불만이야? 원한다면 너랑 나 둘만 갈 수도 있어. 만약 그렇게 된다면 네 혼자 다해야 겠지?”
둘만 가는 거야 문제가 없지만 보아하니 꽤 힘든 임무 같은데 혼자 처리하기는 무리다 싶은 생각에 라힌이 어색하게 웃었다.
“혹시나 하는 말이지만 가서 사고치는 새끼 있으면 그대로 용족 구역에 던져놓고 올 테니까 그리 알아.”
모두에게 하는 말치곤 너무나 또렷하게 리엔과 류를 응시하며 레안이 경고하듯 말했다. 그에 아직 임무 수행 중 이탈로 인해 훈련 받은 기억이 깊이 새겨져 잊혀지지 않은 리엔과 류가 움찔했다.
“에이, 그럴 리가 없잖아요~~”“잡일 담당은 너니까 네가 다 쳐해.”보나마나 또 귀찮은 일은 리엔 시키겠지 란 생각에 레안이 뚱하니 내뱉었다. 이에 류가 뾰루퉁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튼 네 놈 포함해서 전부 다 사고치면 용족 구역에 던질 뿐만 아니라 그대로 사지를 아작 내버릴테니까 명심해둬. 혹시나 잊고 사고 치면 기억력에 대한 고찰을 위하 머리 속 뇌도 해부 해버릴 거야,”
점점 살벌해져가는 레안의 말에 단장들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라이너 제외)
“어디로 가는 겁니까?”
조용히 듣고 있던 하륜이 조심스레 물었다.
“키란 왕국과 카먼 왕국 사이에 있는 국경 쪽 숲. 아마 키란 왕국에 가야 할 거야. 그쪽에서 원조 요청이 들어온 거니까.”
귀찮은 듯 휘휘 대답한 레안의 말에 기사들은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키란 왕국이라...
그러고보니 마침 축제 기간이라던가.
새삼 나들이 같은 생각이 들어 류와 라힌이 빙긋 웃었다.
“그럼 그렇게 알고 가서 훈련해.”
레안은 손을 휘휘 내저으며 앉아 있던 소파에 드러누웠다. 그 모습을 하륜이 피식 웃으며 바라보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집무실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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