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빌어먹을 마룡 새끼!
숲속 한가운데 숲에서 가장 커 보이는 나무의 두꺼운 가지에 앉은 레안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기대 앉아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햇살을 감상했다.
귀찮게 구는 녀석 하나 없이 즐기는 혼자만의 시간이란 너무도 달콤했다. 가끔씩 사고칠까 걱정되긴 했지만 그럴리 없으리라 믿기로 했다. 만약 정말, 혹시나, 사고를 쳤다면 사지를 으깨버려서 다시는 못 치게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며.
‘설마. 아니겠지.’
정말, 아주 순간 갑자기 그녀는 소름이 돋는 걸 느끼곤 아주 잠깐 걱정했다.
그러나 이내 절레절레 흔들며 나무 아래로 내려갔다.
꽤 높이가 있음에도 가볍게 내려온 레안은 흔들림 없이 안전하게 착지했다.
대충 주위를 둘러본 레안은 이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고, 저녁 때쯤 한 도시에 도착했다.
“흐음, 여기서 어디로 가야하더라.”
무작정 방향만 잡고 쭉 걸어온 레안이었기에 정확한 위치를 알지 못해 순간 당황했다. 분명 이 도시 근처였던 것 같은데.
서쪽이라는 것만 인지한 채 걸어왔기에 머리를 긁적이며 망설였다.
그러다 이내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로 하고 길을 가던 비교적 순해보이는 한 꼬마를 잡았다.
“여기 향기의 숲으로 가려면 어떻게 가야되?”
무작정 붙잡고 물어보는 레안의 행동에 꼬마는 당황스런 표정을 지었다.
“저..저기로 가면 되요.”
꼬마는 우물쭈물하며 한 곳을 가리켰다.
그 모습을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말없이 바라보던 레안은 꼬마의 목덜미를 잡고 올리더니 몸을 탈탈 털었다.
후두둑.
꼬마의 몸에서 레안의 것이 분명한 주머니가 떨어졌다.
‘어쩐지.’
유난히 자신이 잡으니까 놀라고, 말하는 것이 횡설수설하는 것 같더니.
가볍게 말만 하면 될 것을 유난히 시간 끌며 수선스럽게 굴길래 수상하여 몸을 털었더니 역시나 였다.
그런 레안의 행동에 꼬마는 당황한 듯 했지만 오리발을 내밀었다.
“이..이게 무슨 짓이에요!!”
마치 피해자인 듯 말하는 꼬마의 모습에 레안은 인상을 찌푸렸고, 사람들이 그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럼 넌 무슨 짓인데?”
순식간에 모여든 시선에 당황할 법도 하건만 레안은 당당히 대꾸했다.
이에 꼬마는 사람들의 시선을 이용하기 위해 눈물을 흘리며 불쌍한 척을 했다. 레안이 과격하게 우락부락한 남자였다면 효과는 더 컸겠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적어도 체격이나 여러면에서 레안이 꼬마보다는 우세했으므로. 그러니 어느 정도 효과는 있으리라.
물론 저 다소 순진해보이고 천진난만한 얼굴이 걱정되긴 하지만.
“저...저한테... 제가.. 무슨.... 잘못을... 죄송해요..”
횡설수설 말을 내뱉으며 눈물을 뚝뚝 흘리는 꼬마의 모습은 안쓰러웠다. 그 모습에 저 소녀가 가해자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소녀의 모습이 너무 어리고 순진해보여서 사람들은 갈팡질팡했다.
그것을 느낀 꼬마는 더욱 크게 울먹이는 소리를 내며 계속 잘못했다고 빌었다. 그러면서 발 밑에 떨어진 주머니를 챙기는 것은 잊지 않았다.
“꼬맹아, 잘못 건드렸어.”
피식 입꼬리를 올리며 웃는 레안의 모습에 순간 꼬마는 두려움을 느꼈지만 그래봤자 연약한 소녀가 무슨 짓을 하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도둑질을 한 녀석은 손목을 자른다지? 거기다 기사의 수행을 방해한 자는 사지를 자르고?”
레안은 살기를 띠우며 꼬마의 손을 펴서 꼬마가 손에 쥐고 있던 배지를 들어보였다.
배지엔 황실 기사단의 기사임을 나타내는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이에 꼬마는 급격히 당황하며 버벅거렸다.
“다시는 이딴 짓 하지 않는게 좋을거야. 난 어리다고 봐주지 않으니까.”
가볍게 꼬마의 배에 주먹을 박아넣은 레안은 자신의 물건들을 줍고 꼬마가 가리킨 방향으로 움직였다.
꼬마를 거침없이 때린 레안의 행동에 사람들은 울컥했지만 레안의 배지를 확인한 사람들은 이내 꼬마가 가해자임을 깨닫고서 시선을 돌렸다.
그래도 제법 힘 조절을 했는지 잠시 고통스러워하던 꼬마는 이내 일어섰고, 자신의 손에 쥐어진 조그만 주머니를 확인하곤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흔히 말하는 병주고 약주고인가?’
생각보다 금방 향기의 숲 입구에 도착한 레안은 앞을 가로막은 기사들을 바라보며 짜증어린 표정을 지었다.
“여긴 들어갈 수 없습니다.”
레안의 어린 외모때문인지 기사는 비교적 상냥하게 말했다.
“왜?”
“마물들의 출몰지라 현재 출입을 금하고 있습니다.”
하긴. 근위 기사단이 그 꼴로 당했으니 출입을 금할만 하지.
대충 수긍하며 레안은 품 속에서 배지를 꺼내 보였다.
뭔가 하고 살펴보던 기사는 사방신이 모두 그려져 있는 것을 보고 당황했다. 분명 그의 기억이 맛이 간게 아니라면 저걱은 분명 황실 기사단의 총단장임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고작 이렇게 어린 꼬마가 총단장이라니.
설마 훔친건가?
“이거 어디서 났니?”
그래도 꼴에 어린애라고 배려하겠다는 건지 시선을 맞추며 상냥하게 물어보는 기사의 모습에 레안은 조소를 금치 못했다. 특히나 훔치지 않았냐는 물음에 레안은 어이가 없었다.
애초에 이딴거 훔침 당할 정도면 그게 총단장이냐?
잠시 한숨을 내쉬던 레안은 사방신 문양이 박힌 검을 꺼내들어보였다.
배지라면 훔칠 수 있을 지 몰라도 검은 아니었다. 총단장 및 단장들에게 내려지는 검은 특별히 황실 소속의 연금술사 특수제작하여 주인만 만질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쯤 되자 기사는 자신의 행동을 깨닫고는 당황하며 길을 비켰다.
자신의 무례에 대해 깊이 사죄하며.
다행히도 평소의 레안이었다면 보초 기사들을 엎었겠지만 숲 안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장난이 아니었기에 대충 넘어가기로 했다.
레안이 아무말도 없이 숲 안으로 들어가자 기사는 살았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음습한 숲의 분위기에 레안은 인상을 찌푸렸다. 이토록 가득한 마기하며 끈적거리는 공기라니.
숲 안에서 꽤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온통 혈향이 가득했다.
언제나 깨끗한 공기를 선호하던 그녀였기에 탁한 공기를 마시자 순간 토기가 이는 것을 느꼈다.
치밀어오르는 토기에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호흡을 고르던 레안은 주변에 느껴지는 마물들의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피식 웃었다.
레안은 느긋하게 웃으며 한발짝 한발짝 걸음을 옮겼고, 마물들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확실히 이상해.’
다람쥐치곤 지나치게 강한 마기하며, 50cm에 불과한 다람쥐가 1m 가까이 되는 크기를 가진 거 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레안은 이내 상관없다는 듯 검을 휘둘렀다.
단 세 번의 휘두름으로 50마리에 가까운 다람쥐를 순식간에 동강 낸 레안은 귀찮다는 듯 거칠게 검을 휘둘렀고 이내 주변의 다람쥐는 모두 몰살되었다.
길에 걸리는 족족 검을 휘두르며 앞으로 걸어가던 레안의 걸음이 순간 멈췄다.
숲을 장악하던 짙은 마기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마룡이군.’
이토록 순수하고 짙은 마기라면 당연히 마룡밖에 없었다.
그러니 그 꼴이 나지.
‘쯧’
껄렁거리는 발걸음으로 레안이 마룡의 레어로 보이는 곳에 걸어갔고, 레안은 손쉽게 그의 결계를 뚫고 안으로 들어갔다.
자신의 결계를 뚫고 들어온 존재에 마룡, 에비루스는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호오, 어떻게 들어온거지?”
분명 보통 사람이라면 결계에 가득한 마기에 의해 미쳐서 온 몸이 갈갈이 찢겨졌을 것이다. 그런데 저토록 멀쩡하게.
인간이 아닌 것인가?
“그냥 죽어.”
대답도 하기 귀찮다는 듯 레안은 에비루스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거친 바람소리와 함께 검은 에비루스를 향해 솟구쳤고 에비루스는 비교적 수월하게 검을 피했다.
“어리석군.”
고작 인간 따위가 자신에게 검을 휘두르는 모습에 에비루스는 조소를 금치 못했다.
잠시 레안의 공격을 구경하듯 바라보며 피하던 에비루스는 이내 씨익 웃으며 어느새 솟아오른 손톱을 내세우며 그녀를 향해 휘저었다. 그와 동시에 그의 손 끝에서 마기가 흘러나와 그녀를 갈랐다.
그러나 그녀 주위에 서린 청명한 기운이 마기를 막았다.
그 기운에 에비루스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분명 이 기운은.. 하지만 인간일 텐데..?
놀람도 잠시 아까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빠르기로 공격해오는 레안의 행동에 에비루스는 가까스로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도 연속적인 그녀의 공격에 점점 틈을 보이며 몸 이곳저곳에 생채기를 남겼다.
“커헉.”
조그만 상처만을 남기던 공격은 어느새 그의 어깨에 깊은 상처를 남겼고, 어깨를 타고 흐르는 피에 에비루스는 분노하며 본체로 돌아갔다.
레안과 비교 할 수도 없이 큰 마룡의 모습에 레안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나 상관없다는 듯 레안은 피식 웃으며 검을 휘둘렀다. 그 모습에 우습다는 듯 가볍게 피하던 마룡은 자신이 피한 장소를 가른 검에서 강렬한 기운과 함께 자신의 레어를 반토막 내듯 잘라버린 레안의 공격에 순간 당황했다.
이건 인간이 아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더 이상 봐줄 수 없다는 에비루스도 전력을 다하여 레안을 공격했다.
그 덕분에 처음의 깨끗했던 레안의 몸에는 여기저기 베인 상처와 함께 마기로 인해 침식당한 검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레안의 자체 치유력으로 인해 피는 금세 본래의 붉은색을 되찾았다.
잠시 거친 공격 끝에 서로 거리를 벌리며 호흡을 고르던 그들을 마지막 공격을 퍼붓는 강렬하게 몸을 움직였다.
숲을 날려버릴 듯한 커다란 폭발과 함께 땅이 울렸고, 휘몰아치는 기운 속에서 레안이 콜록 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곳에 에비루스는 없었다.
“빌어먹을.”
놓쳤다는 생각에 레안은 욕설을 내뱉었다. 물론 그가 가까스로 도망가긴 했어도 멀쩡하진 않으리라. 정확히 그의 하트를 노렸으니까.
그러나... 이상하다.
그의 피는 무언가와 공유하고 있는 듯 보였고, 그의 하트는 반만 존재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그의 하트를 나눠준 것 처럼.
‘설마?’
문득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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