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삐뚤어질테다~!!
이 무슨 말도 안되는.
이제 겨우 두 번째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온 리엔은 자신을 마중 나온 류를 보고 순간 몸이 굳었다. 그리고 류의 입에서 나온 말도 안되는 헛소리에 귀를 막았다.
절대 그럴 리 없어. 휴식이 필요하다구.
필사적으로 귀를 막으며 현실을 부정하는 리엔의 상큼한 모습에 류가 생글 웃었다.
아무리 봐돠 리엔의 반응은 늘 신선하고 재밌었다. 다른 녀석들은 이제 질릴 대로 질려서 반응도 밋밋하고 재미없었지만 리엔만은 늘 처음 같았다. 팔딱팔딱 뛰는게 얼마나 신선한지.
먹잇감을 앞에 두고 군침을 흘리는 맹수마냥 류를 바라보며 하민은 한숨을 내쉬었다. 왠만해선 신경 쓰고 싶지 않지만 저건 어떻게 무시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자신의 그런 격렬한 반응이 더욱 상대방의 흥미를 불러 일으키고 심술을 자극한다는 것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번번히 반항하는 리엔의 모습에 하민은 이걸 말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하긴 뭐 말해줘봐야 들을 것 같지도 않고.
선천적인 성격처럼 느껴지는 욱하는 성격에 그저 하민은 쥐 죽은 듯 서있을 뿐이었다. 그저 자신이 어쩌다 더 단장과 함께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는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어쩌다가 류와 리엔이 같이 있는 곳에 자신이 동행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심각한 고찰을 하며.
“리엔 자기♥”
귀를 막으며 시선을 돌리던 리엔은 자신의 귀를 파고 드는 섬뜩하고도 오싹한 단어에 순간 움찔하며 경악한 표정으로 류를 바라보았다.
“으악.”
순간 보이는 아수라의 형상.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그저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으로 보일 류지만 류의 성격에 대해 잘 알고 있는-특히 전적이 있는-리엔의 눈에는 저승에서 올라온 악귀처럼 보였다.
놀란 리엔은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지만 그의 노력은 류가 그를 잡아챔과 동시에 실패했다.
결국 리엔은 류에게 붙잡혀 임무를 끝내고 씻지도 못 한 채 그대로 류와 하민과 함께 다음 임무를 수행하러 떠나야 했다.
“내..내가 왜요!!”
굳이 멀쩡한 점원을 두고 자신보고 음식을 가져오라는 류의 말에 리엔이 거칠게 반발했다. 그러나 류의 싱긋 웃는 미소에 리엔은 얼굴을 구기며 직접 주방에 가서 음식을 공수해와야 했다. 손님이 직접 주방에 와서 음식을 받으러 오자 요리사는 당황하며 가져다 주겠다고 했지만 자신이 꼭 가져가야 한다는 말에 어쩔 수 없이 요리가 담긴 그릇들을 그에게 건넸다.
도대체 얼마나 요리를 시킨 것인지 한꺼번에 들기엔 무리가 있는 양에 나눠 가져갈까 싶었지만 그랬다간 또 왈왈 댈 게 분명했기에 리엔은 아슬하게 그릇들을 모두 들었다. 그 모습에 요리사가 위험하다며 만류했지만 그의 쓸데없는 호의에 리엔이 살기를 내뿜으며 거절했다.
그렇게 겨우 아슬하게 음식을 가져온 리엔은 다소 거칠게 그릇들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하지만 그런 거친 동작 속에서도 그릇 속에 들어있는 음식들은 넘치지 않았다. 맘 같아선 아예 깨지게 하고 싶었지만 그 후에 일어날 일이 너무도 두려웠기에 적당히 힘조절을 했기 때문이었다.
“자, 아~”
이제 겨우 먹나 싶었던 리엔은 음식을 젓가락으로 집어 자신에게 내미는 류의 행동에 뭐 씹은 표정을 지었다.
이게 미쳤나 싶은 의미를 담은 눈으로 류를 바라보던 리엔은 자신이 먹을 때까지 물러나지 않을 듯한 모습에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류가 건넨 음식들을 받아 먹었다. 그 모습을 하민이 안쓰러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힘겹게 식사를 마친 류 일행은 바로 음식점을 나갔다. 아직 갈 길이 멀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 무식하게 굴린 탓인지 이젠 제법 임무의 규모가 작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밀려있는 일에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열심히 발을 놀린 그들은 조그만 숲에 도착했다.
“여기에요?”
무슨 숲이라는 것만 들은 리엔이 숲을 보곤 류에게 물었다.
“아니~ 여긴 그냥 중간에 있는 그냥 숲.”
그냥 숲은 도대체 뭐냐!
유난히 멀게 느껴지는 임무 수행지에 리엔은 한숨을 내쉬었다.
빨리 임무를 끝내야 숙소에 가서 쉴 수 있을 텐데.
“있지, 리엔~~”
급 생글 생글 웃으며 정답게 이름을 부르는 류의 모습에 리엔이 뒷걸음질 치며 물러났다.
그에 리엔이 한발짝씩 뒤로 물러날 때마다 류는 두발짝씩 앞으로 걸어갔고 결국 리엔은 류의 손에 잡혔다. 단단히 멱살이 붙잡힌 채로 리엔이 불안한 시선으로 류를 바라보았다.
“나 다리 아프다. 업어줘~”
무쇠도 놀랄 니 다리가 고작 이 정도로 아프다고?말도 안 되는 헛소리에 당장이라도 거절하고 싶었지만 점점 옥죄어 오는 그의 손에 리엔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류가 신난듯 리엔에게 달려 들어 업혔다.
순식간에 업은 지라 갑자기 느껴지는 무게에 잠시 비틀거렸지만 비교적 손쉽게 그를 업을 수 있었다. 몇 번 업은 적이 있었기에 그다지 어렵지는 않았다. 다만 기분이 더러울 뿐.
“리엔, 나 물 마시고 싶어~ 물 마시러 가자!”
물이라면 당신 허리에 달린 그 병은 그냥 폼이랍니까?
리엔이 띠꺼운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불행히도(?) 리엔의 등 뒤에 업혀있던 류는 볼 수가 없었다.
“물 마시러 어디로 가야 하는데요?”
“호수!! 자자, 저기로 가자~”
무등 탄 꼬마마냥 신나서 발을 동동 구르는 류의 모습에 리엔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안그래도 그리 가벼운 몸이 아니건만 성인 남자가 몸을 들썩 거리니 다소 무게가 늘어나느 것을 느끼며 리엔이 입을 삐죽 거리며 류가 가리킨 곳으로 향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좀처럼 걸어도 나오지 않는 호수에 리엔이 인상을 구겼다.
“여기 맞아요?”
“음, 아닌가. 나도 잘 모르겠다. 실은 나 여기 처음이거든.”
분명 고의다! 이건 필시 자신을 놀리기 위한 고의다.
애초부터 이상하다 했다. 이렇게 친절한 사람이 아닌데 호수가 있는 방향도 알려주고.
하지만 그래도 좀 진작 말해주면 좋았느냔 말이다.
일부러 고생시킬려고 그랬던건 알지만 이건 너무하지 않느냔 말이다!!
기껏 참고 참던 화가 터진 리엔은 류를 업고 있던 손을 놓아 바닥에 그를 던져놓았다.
“이젠 나도 모르니까 알아서 해요.”
거칠게-류가 보기엔 삐죽거리며-말을 내뱉은 리엔은 홧김에 발을 놀려 그곳을 벗어났다.
그 모습에 류가 심했나 하는 표정으로 갸웃 거렸다.
“그냥 저렇게 둬도 되는 거에요?”
쓸데없이 분란 속에 끼고 싶지 않아 조심히 쥐죽은 듯 있던 하민이 조심스레 류에게 물었다.
“뭐, 어때.”
“그래도 여기 마물 출몰지잖아요. 제가 알기론 여기 살쾡이 구역인 것 같은데 아니에요?”
흠칫.
“에엑?”
“거기다 아까 리엔이 향한 방향은 살쾡이 중에서도 SA급 마물이 있는 곳인 것 같은데..”
끽 해봐야 A급의 기사인 주제에 SA급 마물이 있는 곳에 발을 닿다니!
물론 여기가 어딘지 자세히 말해주지 않은 자신의 잘못도 있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렇게 막 나가는건 좀 아니잖아?
귀찮아졌다는 생각에 류는 한숨을 내쉬며 서둘러 발을 놀렸다.
임무 수행 중 실수로 인해 다치는 것에 대해선 엄격한 레안을 떠올리며.
그냥 순간 치밀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해 아무곳을 향해 걷던 리엔은 뭔가 묘한 분위기에 움찔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뭔가 어두침침하면서 음습하게 꼭 마물이라도 등장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워낙 숲은 마물들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인데다 알려지지 않은 마물들도 존재했기에 혹시나 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특히나 그럴 리는 없겠지만 정말 아주 재수가 없으면 숲 깊숙이 위치한 SA급 이상의 마물이 사는 구역을 침범해 그들의 공격을 받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워낙 드문 클래스의 마물인데다 정말 왠만한 사람 아니면 찾기 힘든 숲 속 아주 깊숙이 오지 같은 곳에 사는 마물이라 그럴 리는 없겠지만.
그런데 왜인지 불안했다. 그냥 뭔가 자꾸 불안했다.
그러고보니 류로 인해 숲 깊숙이 들어온 것 같긴 한데.. 설마..
“크르릉.”
“우악.”
지척에서 들리는 마물의 울음소리에 리엔이 놀라 넘어졌다. 얼결에 넘어져 마물과 시선을 맞추니 살쾡이였다. 그것도... 아마도 SA급의.. 설마 설마 했건만 불안한 리엔의 예상이 맞았던 것이었다.
‘S급도 불가능한데 SA급이라니..’
암담한 현실에 리엔은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능력이 안되니까 그냥 가만히 있다 죽어야지 라고 생각하기엔 지금 겪게 된 이 현실이 너무도 억울했다. 애초에 이 모든 일의 원인은 류가 아닌가.
그녀석 때문에 자신의 기사 생활이 엉망으로 일그러진 것도 짜증이 나는데 이렇게 세상을 떠나야 한다니 이건 말도 안된다.
리엔은 아까의 절망을 지우고서 단호한 표정으로 눈 앞의 마물을 노려 보았다. 그리고 마물이 공격하기 전에 서둘러 그를 향해 공격을 시도했다. 가볍게 지면을 박차고 점프한 리엔은 그대로 검을 휘둘렀고 위에서부터 휘두른 검은 큰 바람소리를 내며 살쾡이를 향했다. 그러나 그 나름의 야심찬 공격은 앞발을 휘두르며 검을 걷어낸 살쾡이에 의해 실패했다. 다행히도 검을 놓치진 않았지만 검을 타고 흐르는 충격에 리엔은 인상을 썼다. 쉽게 공격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이렇게 가볍게 실패하다니. 새삼 좌절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때 부스럭 거리는 소리와 함께 더 암담한 현실이 그에게 다가왔다. 그 곳엔 SA급 마물뿐 아니라 S급 마물도 함께 있었던 것이었다. 다행히도 수는 많지 않았지만 이미 그 클래스부터가 리엔의 능력을 벗어나 있었다.
“헉헉.”
도대체 얼마나 검을 마구 휘둘렀을까.
리엔의 몸 곳곳엔 살쾡이가 할퀸 흔적들로 가득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몰골로 리엔은 정신이 간당간당해져오는 것을 느꼈다.
“이 멍청이!!”
응?
자신이 환청을 들은 것일까?
순간 들려오는 낯익은 류의 목소리에 리엔이 갸웃했다. 사실 확인을 위해 시선을 돌리려던 리엔은 앞에서 마물이 공격해오는 것을 느끼곤 이내 다시 검을 고쳐잡고 휘둘렀다. 가까스로 방어만을 하고 있던 리엔이었기에 반격은 할 수가 없었다. 이어진 다른 마물의 공격.
죽겠구나 싶었던 리엔은 손쉽게 S급의 마물을 베어넘기는 누군가의 행동에 갸웃했다.
“넌 뒤로 빠져. 가드는 무리니까 알아서 구석에 짜져서 쉬고 있어. 하민, 내가 SA급 마물 처리하는 동안 주변 가드 좀 부탁할게.”
이럴 줄 알았으면 하민이 아니라 첸이나 이안을 데려올 걸 하는 생각을 하면서 모처럼 진지한 표정으로 류가 명령을 내렸다.
이에 리엔은 드물게 순순히 응하며 뒤로 빠졌고 류의 뒤에 하민이 마주 섰다.
하민이나 리엔이 비해선 단장이라 더 강했지만 그도 겨우 SA-유저일 뿐이었다. 즉, SA급 마물 한 마리만이 그가 처리할 수 있는 양인 것이다. 그런데 S급 마물이 플러스로 3마리나 있으니.
그래도 제법 리엔이 열심히 몸을 놀린 탓인지 S급 마물들이 많이 지쳐보이긴 했지만. 이제 겨우 A-익스퍼트인 하민이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애초에 하민보다 강한 리엔도 저 모양 저 꼬라지인데.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으니 단장의 위엄을 걸고 류는 사력을 당하여 마물들을 향해 공격을 시도했다.
몇 번의 공방 끝에 가까스로 SA급 마물을 처리한 류는 어깨에 깊은 상처가 생긴 것을 느끼며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오래 끌수록 좋지 않다는 생각에 속전속결로 처리했더니 숨이 가빠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아직 S급 마물이 남아 있었다. 힘겹게 그들과 대치하고 있는 하민을 보며 류는 애써 자세를 다시 잡고 그들을 향해 공격했다.
불가능 할 것 같은 상황은 죽음을 무릅 쓴 류의 전폭적인 공격과 노력으로 겨우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셋의 상황은 모두 최악이었다. 이 몰골로 과연 황성까지 갈 수 있을 까 싶을 정도로.
하지만 여기서 더 있다간 또 어떤 마물을 만날지 모르기에 류는 가까스로 버티고 서 있는 리엔을 부축하며 숲을 벗어났다. 류의 상태도 좋지 않았지만 리엔은 정신을 잃지 않고 있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최악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류가 그를 부축해야만 했다. 뒤 따라 오는 하민의 상태 또한 좋지 않았고.
- 작가의말
+레안의 정체는 작품 후반에, 아주 나중에 나올 예정이랍니다~~ 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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