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무역전쟁 1
그녀의 이름은 박아라였다.
부모님은 모두 서울에 소재한 국립대 교수였고.
당연히 있는 집 딸내미였다.
허나 그녀는 공부머리가 부족한 탓인지, 지방 국립대를 졸업한 뒤.
세명그룹 비서실에 취업했다.
그곳에서 그룹의 후계자인 박동찬 부회장을 만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그의 여자가 되었다.
아라가 나에게 밝힌 내용이 그랬다.
나름 솔직한 그녀였다.
아라는 여배우가 되고 싶어했다.
그런 탓으로 청소년 시절에 오디션을 여러차례 봤고, 영화와 드라마에 단역으로 출연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아라는 내가 전 세계 최고 최대의 엔터 회사인 스타 엔터의 오너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자신의 일평생 소망을 간절한 태도로 읍소했다.
결국 나는 못 이기는 척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마음먹었다.
*
오후 무렵.
송승한 스타일의 얼굴로 역용한 뒤.
스타 엔터의 상암동 사옥에 출근했다.
그 후, 탑층에 위치한 회장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회장실 문 옆에 위치한 인포 데스크에 앉아 있던 여비서가,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반겼다.
그녀에게 친근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매니지먼트 12팀의 이기한 팀장을 호출해 주세요. 그리고 달달한 커피 한잔 부탁드려요."
그녀가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화답했다.
"예. 회장님."
잠시 뒤.
회장실의 창가에 우두커니 선 채.
커피를 여유롭게 음미할 찰나.
등 뒤에서 이기한 팀장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회장님."
창밖에 시선을 고정하며 그에게 되물었다.
"거의 1년 만에 보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회장님."
곧바로 소파로 그를 이끌었다.
맞은편에 앉아있는 그에게 박아라의 프로필 사진을 내밀었다.
기한은 아라의 섹시한 비쥬얼이 한가득 드러난 스틸 사진에 못 박힌 듯 시선을 고정했고.
그러기를 얼마 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 여성분이 누구인지 알 수 있을까요?"
그에게 즉답했다.
"여배우 지망생이죠. 비쥬얼도 좋고, 성격도 착해요. 그리고 연기학원에서 3년 이상 연기를 배웠다고 하더라고요."
"흐으음..."
기한의 입에서 옅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는 나와 아라의 관계에 대해서 속으로 생각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기한에게 솔직한 태도로 의중을 드러냈다.
내 속내가 뭔지, 그에게 확실하게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박아라를 주중 미니 시리즈에 비중 있는 조연으로 캐스팅 하세요."
그제야 녀석이 내 본심을 파악했는지, 군기가 바짝 든 얼굴로 복명했다.
"말씀대로 일을 추진하겠습니다."
"그리고 엄한 놈들이 아라 곁에 얼씬대지 못하도록 철저히 관리하세요.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잘 알고 있습니다. 회장님."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재차 말했다.
"12팀에 신규 드라마 제작비를 지원해 줄테니까, 스타 2 채널의 편성 본부장을 만나보세요."
"예. 회장님."
*
스타 엔터의 상암동 사옥.
54층에 위치한 매니지먼트 12팀에 스타 2 채널의 장일도 편성 본부장이 나타났다.
이기한은 안쪽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장일도와 만남을 가졌다.
기한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스타 2 채널에 신규 주중 미니 시리즈를 론칭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이미 금년 편성 스케쥴이 꽉 찼는데."
"회장님의 엄명입니다. 그러니 묻지도 따지지도 마시고 드라마를 신규 편성하세요."
도일이 확인하듯 되물었다.
"정말 회장님의 오더가 떨어진 건가요?"
"네. 정 그렇게 믿기지 않으시면 회장실로 올라가서 확인해 보시죠."
기한이 자신만만한 어조로 대꾸했다.
그제야 도일은 그의 말이 사실이라는 걸 눈치챘는지, 곤혹스러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신규 주중 미니시리즈를 론칭하려면 기존에 편성된 미니 시리즈를 연기해야 하는데..."
도일이 말끝을 흐리며 그를 슬쩍 쳐다봤다.
그같은 모습이 답답했는지, 기한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할 말이 대체 뭡니까? 속시원히 말씀해 보세요."
그가 기라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지금 현재 편성된 미니시리즈의 남녀 주연들이 하나같이 대한민국 톱배우 레벨이에요. 게다가 이미 개런티도 전부 지급했고."
"그런 상황에서 중간에 신규 미니시리즈를 갑자기 론칭하면,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나올 겁니다."
허나 기한은 그의 말을 귀담아 듣는 눈치가 아니었다.
"회장님의 엄명을 거부하면 그날부로 해고에요. 그러니 변명은 그만하시고 석달 안에 신규 주중 미니시리즈를 론칭하십시오."
그리 말하며 테이블에 아라의 프로필 사진첩을 올려놓았다.
"이 여자를 비중있는 조연으로 기용하세요. 회장님의 뜻입니다."
도일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프로필 사진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러기를 얼마 뒤.
아라의 프로필 사진첩을 서류가방에 수납하자마자 장내에서 도망치듯 사라졌다.
며칠 후.
상암동의 스타 방송국 사옥에 아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얼마 후, 그녀는 관계자의 안내를 받으며 24층으로 올라갔고.
그곳에 위치한 스튜디오에서 카메라 테스트를 받았다.
카메라 테스트의 총 책임자는 스타 2채널의 장도일 편성 본부장이었다.
장도일은 그녀의 비쥬얼이 대단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절감했다.
특히 카메라를 통해서 보이는 그녀의 모습은, 시청자들을 강렬하게 빨아들이는 흡입력이 있었다.
허나 도일은 내심 씁쓸한 심경이었다.
아라가 스타 엔터의 절대자인 강천과.
그렇고 그런 관계라는 말을 이기한에게 전해들은 탓이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시종일관 시무룩한 얼굴로 그녀가 카메라 테스트를 받는 광경을 지켜봤고.
카메라 테스트가 끝나자마자 기한에게 곧바로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
청와대의 집무실에서 결재서류에 기계적인 날인을 할 찰나.
내 신경을 거슬리는 서류가 시야에 들어왔다.
'지상파 채널의 다변화 정책을 위해서 케이블과 종편 채널 개방'이 시급한다는 제안서였다.
나는 그 서류를 갈기갈기 찢자마자 삼매진화를 이용해서 무자비하게 불태웠다.
내 심기를 몹시 거스른 까닭이었다.
대한신국에는 지금 현재 지상파 채널 4개만 존재했다.
과거의 종편 채널과 케이블 방송은 역사속으로 사라진지 오래였다.
당연히 스타 엔터는 지상파 채널 4개를 모두 소유하고 있었다.
내 강력한 의지의 산물이었다.
스타 1채널은 뉴스와 다큐멘터리를 주로 방송했고,
스타 2채널은 하루 24시간 K 드라마를 방영했다.
그리고 스타 3채널은 K 영화와 K 예능, 스타 4채널은 K팝을 방송했다.
CNN 뉴스같은 외국 채널은 인공위성 장비를 갖춘 가구들만 시청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나는 대한신국의 방송계를 모두 장악하기 위해.
스타 엔터를 이용해서 지상파 채널 4개를 사유화했다.
그 덕분일까.
독점적인 방송 지위를 지닌 스타 방송국의 4개 채널은 엄청난 시청률을 자랑했다.
인기 프로의 경우 시청률 50퍼센트가 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그같은 이유로 엄청난 광고수입을 올리고 있었다.
11억 명에 달하는 대한신국의 방송시장을 완벽하게 독점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종편과 케이블 채널의 신설을 허용한다면, 스타 방송국이 누리는 독점적인 지위가 송두리째 흔들릴 게 불을 보듯 훤했다.
나는 이런 돼먹지않은 제안서를 올린 녀석이 알고 싶어졌다.
그런 탓으로 이명수 경제부총리를 면전에 호출했다.
10분 정도가 지났을까.
명수가 내 앞에 나타났다.
그는 나에게 오체투지를 표한 뒤.
내 앞에 공손히 시립했다.
그에게 물었다.
"기획재정부의 곽영일 사무관이 누구죠?"
"갑자기 그건 왜, 물어보시는 겁니까?"
"그 작자가 아주 돼먹지 않은 제안서를 작성해서 결재서류로 올렸어요."
명수가 긴장이 역력한 얼굴로 되물었다.
"종편과 케이블 채널 시장의 개방에 관련된 서류였습니까?"
"네. 맞습니다. 왜, 그런 쓸데없는 기획안이 결재서류에 올라온거죠?"
"죄송합니다. 교황님. 제가 미처 신경을 쓰지 못했습니다."
그에게 강한 어조로 말했다.
"스타 엔터와 스타 방송국은 태양신교와 관련이 깊은 곳이에요. 그래서 독점적인 지위를 보장하는 거죠.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잘 알고 있습니다. 교황님."
허나 그는 아직 잘 모르는 눈치가 역력했다.
"다시 한번 말할게요 잘 들으세요. 강천석유개발과 스타엔터, 스타방송국 모두 태양신교에서 벌이는 사업이라고 생각하십시오."
명수를 향해 강렬한 눈빛을 내비치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그 3개의 회사가 벌어들이는 돈은 당연히 대한신국 국민들에게 사용되는 겁니다."
"태양신교나 마찬가지인 저 3개 회사의 독점적인 지위를 위태롭게 하는, 그 어떤 법안이나 제안서를 결코 만들 생각 자체를 하지 마십시오."
그가 군기가 바짝 든 얼굴로 복명했다.
"명심하겠습니다. 교황님."
"그리고 이상한 제안서를 올린 사무관의 뒤에 누가 있는지 조사해 보세요."
"말씀대로 조치하겠습니다."
명수를 내보낸 뒤.
벽면을 장식한 대화면 TV에 이목을 집중했다.
TV에서는 CNN 방송국의 긴급 속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미합중국의 탐 브라운 하원의장은 대한신국의 완전한 자유무역주의 정책에 대해서 반대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앵커의 말이 끝나자, 미국 의회로 화면이 넘어갔다.
내 시선은 브라운 하원의장의 입에 모아졌다.
그자가 무슨 개소리를 하는지 알고 싶어서였다.
-우리 미합중국은 고유의 무역정책을 고수할 것이며, 미국의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즉각적인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실행할 것입니다.
-대한신국의 교황이라는 자가 추진하는 완전한 자유무역주의를 결코 수용할 수 없습니다.
-우리 미합중국 의회는 슈퍼맨같은 능력을 보유한 대한신국의 교황에게 결코 굴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대한신국의 교황이 우리 목숨을 위협한다면, 그 즉시 대한신국을 목표로 수천 수만발의 핵미사일을 발사할 것을 명백히 밝히는 바입니다!
대놓고 나를 자극하는 성명이었다.
솔직히 내가 가장 우려하는 일이 벌어진 셈이었다.
나는 11억 명에 달하는 대한신국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야할 막중한 사명이 있었다.
내 마음대로 함부로 움직일 수 없는 처지였다.
미국 의회의 지도자들을 죽일 경우 그들은 지구촌 전역에 비밀리에 은닉한 핵미사일을, 한국을 향해 발사할 가능성이 높았다.
물론 한국 역시 그들에게 핵반격을 가할 수 있었지만.
결과는 공멸 외에는 없었다.
허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내가 추진하는 완전한 자유무역주의를 대놓고 반대하는 그들에게, 뭔가 그럴 듯한 대가를 선사해주고 싶었다.
그런 탓으로 나는 TV를 끄자마자, 세종시 관저에 있는 정찬수 수상에게 한통의 전화를 걸었다.
1시간 후.
정찬수가 내 앞에 나타났다.
나는 면전에 서 있는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지시를 내렸다.
"내일 국무회의에서 넷플릭스와 유튜브, 마소를 한국 시장에서 퇴출하는 안건을 제출하세요."
찬수가 화들짝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방송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미국 의회가 감히 우리 대한신국이 추진하는 자유무역주의 정책에 반기를 들었어요."
"하지만 미국을 상징하는 IT 기업을 한국 시장에서 퇴출하면, 미국 역시 경제보복을 해올 겁니다.
그에게 강경한 어조로 대꾸했다.
"미국 시장 따위는 관심 없어요. 어차피 우리는 11억 명의 내수 시장이 있으니까. 그리고 1억 명에 달하는 미국 남부연합 시장이 있으니 별다른 걱정을 하지 마십시오."
그제야 찬수가 내 말귀를 알아 들었는지 군기가 바짝 든 얼굴로 복명했다.
"내일 국무회의에 교황님이 지시한 안건을 상정하겠습니다."
그날 밤.
스타 호텔의 펜트하우스에 조성된 루프탑 풀장에서 그녀와 함께 오붓하게 수영을 즐겼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아라가 감동한 얼굴로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정말 고마워. 오빠. 사랑해."
그리 말하며 내 입술에 정열적인 키스를 남발했다.
그녀는 주중 미니시리즈에 비중있는 조연으로 캐스팅 된 상태였다.
모두 내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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