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남태평양 한국 4
청와대 집무실.
전 세계 최고의 석유탐사 업체인 베리오스사의 조지프 책임 엔지니어가 내 앞에 나타났다.
그가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그런 탓일까.
이용현 비서실장이 영어로 그를 꾸짖었다.
"교황 성하에게 오체투지의 예를 취하십시오."
그제야 조지프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향해 오체투지의 예를 취했다.
묵묵히 그를 내려다보며 이용현에게 말했다.
"실장님은 이만 나가보세요. 단 둘이 할 말이 있으니까."
"예. 교황님."
그를 내보낸 뒤.
오체투지의 예를 취하고 있는 조지프에게 영어로 말했다.
"자리에서 일어나세요."
조지프가 내 앞에 공손히 시립했다.
그를 유심히 쳐다보며 나직한 어조로 물었다.
"석유 탐사 준비가 언제쯤이면 끝날까요?"
그가 정중한 태도로 즉답했다.
"석유탐사를 하려면 DMZ에 매설된 수백만 개의 지뢰를 먼저 제거해야 합니다. 탱크를 지원해 주시면 한달 안에 지뢰 제거 작업을 완료할 수 있을 겁니다."
"좋습니다. 원하시는 대로 지뢰 제거용 탱크를 지원해 드리죠."
"그리고 정식으로 계약을 체결하고 싶습니다."
"원하시는 조건을 말씀해 보세요."
"석유 탐사 비용으로 3천만 달러(420억)를 주십시오. 그리고 석유를 발견할 경우, 성공사례금으로 1억 달러(1,400억)를 지급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의 요청을 흔쾌히 수락했다.
"좋습니다. 그럼 말이 나온김에 오늘 당장 계약을 체결합시다."
"감사합니다. 교황님."
잠시 뒤.
이용현이 내 앞에 나타났다.
그의 손에는 계약서 2장이 들려있었다.
"실장님이 스트롱 스카이 인베스트먼트와 베리오스의 석유탐사 계약서의 공증을 서 주세요."
용현은 변호사 자격증을 갖고 있었다.
"예. 교황님."
잠시 후.
계약체결이 끝난 뒤.
스트롱 인베스트먼트의 국내 계좌를 오픈했다.
그 후, 인터넷 뱅킹을 이용해서 베리오스의 공식 계좌로 미화 3천만 달러를 이체했다.
"돈을 이체했으니까 계좌를 확인해 보세요."
조지프가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폰을 이용해 회사 계좌를 확인했다.
그는 돈의 입금을 확인한 뒤.
미국인 특유의 밝은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와 악수를 교환한 뒤.
소파에 앉아서 다과를 즐기는 한편.
조지프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그가 은근한 얼굴로 질문을 해왔다.
"정말 한국의 영토가 남태평양으로 이동한 게, 태양신인 한울님의 은총 때문인가요?"
그에게 솔직히 대꾸했다.
"맞습니다. 저의 아버지이신 한울님은 오래전부터 북한과 중국, 러시아, 일본 등의 적성국에 둘러싸인 한국의 현실에 마음 아파하셨습니다."
"그런 이유로 법력을 써서 한국을 지상천국 같은 환경을 가진 남태평양으로 이동시킨 거죠."
당연히 조지프는 반신반의하는 눈치였다.
"실례지만 한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정말 교황님은 태양신인 한울님의 독생자인가요?"
"예. 사실이에요. 저는 아버지가 영적으로 낳은 유일한 독생자죠."
"그럼 교황님은 태양신인 한울님처럼 기적을 펼칠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신가요?"
"어느 정도 그런 능력을 갖고 있지만, 지금은 때가 아닌 관계로 능력 사용을 자제하는 중입니다."
그가 미심쩍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기적을 펼칠 능력도 없는 주제에, 내가 이런저런 핑계를 댄다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날 밤.
삼청동 안전가옥에서 삼승그룹의 강학수 회장과 만남을 가졌다.
그는 나를 향해 오체투지의 예를 취한 뒤.
내 면전에 시립했다.
그 후,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저의 조그마한 성의라고 생각하십시오."
그리 말하며 나에게 해외은행의 잔고 증명서를 내밀었다.
잔고증명서에는 1억 달러(1,400억)가 예치되어 있었다.
그에게 물었다.
"이 돈을 나에게 주는 이유가 뭐죠?"
"통치자금으로 사용해 주십시오. 그리고 저의 청을 한가지 들어주십시오."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사업을 하다보면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어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로 발생합니다. 그러다보니 본의아니게 불법을 저지른 경우가 꽤 있습니다."
학수는 그리 말하며 간절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정상참작을 할 내용이 있으면, 내가 재량껏 해드릴테니 그점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지만 대한신국의 신민을 상대로 물리적인 범죄를 자행한 사실이 드러나면 그건 제가 봐드릴 수가 없어요."
그가 반색하는 얼굴로 화답했다.
"감사합니다. 교황 성하."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말했다.
"세수가 많이 부족해요. 그런 이유로 법인세를 기존보다 2배 이상 인상할 방침이에요. 그러니 삼승그룹이 솔선수범을 보여주세요."
학수가 화들짝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그 말씀이 정말인가요?"
"네. 이미 법안 착수에 돌입했어요. 며칠 내로 국무회의에서 의결이 될 거에요."
"재고를 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법인세를 2배나 인상하면 자금난이 심화될 우려가 있습니다."
고개를 저으며 그에게 한국의 찬란한 앞날에 대해서 차분한 어조로 설명했다.
"내년에 한국에 10억 명에 달하는 신생아가 출생할 겁니다. 그러면 신생아들이 사용하는 기저귀와 분유, 각종 의약품 등의 수요가 폭발할 거에요."
"그리고 신생아들이 커가면서 그들이 한국 내수 시장의 핵으로 등장하겠죠. 한마디로 한국 기업들은 중국에 버금가는 엄청난 내수시장을 갖게 되는 거에요.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그가 긴가민가하는 표정을 지었다.
내 말이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미 건강한 성인 남녀의 정자와 난자를 이용해서 인공수정 작업에 돌입한 상태에요. 10억 명의 인공수정을 목표로 하고 있죠."
학수가 까무러칠듯 놀란 얼굴로 확인하듯 되물었다.
"정말 인공수정을 통해서 10억 명에 달하는 신생아를 출생시킬 계획인가요?"
"네. 사실입니다. 그러니 회장님은 법인세 인상에 대해서 전폭적인 지지를 해주십시오."
그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삼청동 안가를 나설 찰나.
정찬수가 내 앞에 나타났다.
급히 할 말이 있는 눈치였다.
"대한신국의 이지스함과 전함, 잠수함이 인천에 도착했습니다."
나는 해군의 함선을 남태평양으로 이동시키지 않았다.
그들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동해와 남해에 정박 중이던 함선과 잠수함을 이끌고, 남태평양으로 근거지를 이동한 한국땅에 도착했다.
"해군들에게 휴식처를 제공하세요. 그리고 가족들을 만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세요."
"예. 교황님."
"그리고 제주도의 분위기는 어떤가요?"
"태양신의 한울님의 은총을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남태평양으로 오고 싶어 한다는 말씀인가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나는 제주도를 남해에 남겨둘 생각이었다.
그곳에 해군기지를 만들어서 중국과 일본, 북한을 견제할 속셈이었다.
"제주도에 대규모 해군기지를 건설할 계획이에요. 그러니 수상님이 해군기지 건설을 책임져 주십시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교황님."
*
새벽 무렵.
성진그룹의 이태천 회장과 그의 동생인 이수천 부회장, 그리고 군부의 실력자인 7군단의 전무성 장군이 서울 모처에서 만남을 가졌다.
태천이 눈을 번뜩이며 말문을 열었다.
"정체도 불분명한 이강천이라는 놈이, 날마다 피바람을 일으키고 있어요."
수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이강천이라는 개자식을 장군님이 처단하시면, 한국 역사상 최고의 영웅으로 등극하실 겁니다. 그러니 이제 장군님이 전면에 나서는 게..."
"흐으음..."
전무성이 옅은 한숨을 내쉬며 고뇌에 찬 표정을 지었다.
그런 모습을 유심히 살피고 있던 태천이 테이블 위에 커다란 가죽 가방 4개를 올렸다.
"가방 안에 500억이 들어있습니다. 그 돈으로 7군단의 장교와 하사관, 사병들을 회유하십시오."
"그리고 쿠데타에 성공하시면, 장군님에게 3천억에 달하는 통치자금을 따로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그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 후, 동생인 수천을 대동한 채.
장내에서 재빨리 사라졌다.
무성은 자택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쿠데타에 대해 심사숙고하는 시간을 가졌다.
무신론자인 그는, 태양신인 한울이 한국을 남태평양으로 이동시켰다는 사실을 전혀 믿지 않았다.
그런 탓인지 태양신의 독생자로 알려진 강천에 대해서도 아무 거리낌이 없었다.
나름 쉽게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쿠데타는 다른 문제였다.
계엄사령관이자 수방사령관인 김승화는 거의 만명에 달하는 무장 병력을 청와대에 배치시킨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7군단을 이끌고 청와대로 진격한다면 한국은 하루아침에 내전에 휩싸이게 된다.
게다가 7군단에도 태양신교의 신도들이 많았다.
남태평양으로 한국이 이동한 이후, 7군단에 속한 사병과 하사관, 장교 대다수가 태양교에 귀의했다.
무성이 가장 우려하는 일이었다.
태양신과 그의 독생자인 강천을 신처럼 떠받드는 군인들에게 청와대로 진격하라고 명할 경우.
도리어 군인들이 그를 향해 총부리를 겨눌 가능성이 있었다.
허나 7군단은 대한신국 최강의 기계화 군단이었다.
7군단의 화력은 대한신국 육군전력의 90퍼센트에 달하는 수준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무성은 자신이 청와대의 주인이 되고 싶었다.
쿠데타에 성공한 자신의 모습이 뇌리를 쉴 새 없이 스친 탓이다.
비숫한 시각.
경찰청 정보과에 소속된 이현도 경위의 검정색 밴이 7군단의 최고 사령관인 전무성 장군의 관용차를 은밀히 추적하고 있었다.
그는 한달 전부터 성진그룹 오너 일가의 비리를 수사해오고 있었다.
계엄사령부의 오더가 떨어진 탓이다.
그는 전무성 장군이 태천과 수천 형제를 만난 사실이 범상치 않다고 판단했다.
본능적인 직감이었다.
그가 올라탄 검정색 밴은 도감청 설비가 완비된 차량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현도는 그들의 대화 내용을 감청하는데 끝내 실패했다.
그들은 도감청방지 시설이 완비된 룸에서 밀담을 나눴다.
바로 그점이 더욱 수상했다.
일반적인 장소가 아니라 도감청방지룸에서 밀담을 나눴다는 사실이 너무 의심스러웠다.
그런 이유로 현도는 무성의 관용차를 추적하는 한편.
상부에 긴급 보고를 올렸다.
그의 보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김승화 계엄사령관의 귀에도 들어갔다.
정해진 수순이었다.
*
청와대의 너른 경내를 산책할 무렵.
김승화가 내 앞에 나타났다.
그는 나를 향해 오체투지의 예를 표했다.
승화에게 일어날 것을 명하자.
그가 공손한 태도로 내 면전에 시립했다.
"나에게 할 말이 있나요?"
"예. 교황님에게 보고드릴 사안이 있습니다."
"말씀해 보세요."
"오늘 새벽 02시경에 서울 강남 인근의 사무실에서, 성진그룹의 이태천 회장과 이수천 부회장이 전무성 7군단장과 밀담을 나눈 모양입니다."
공교로운 일이었다.
빌어먹을 놈들의 이름이 승화의 입에서 튀어나온 것이다.
"그들의 대화내용을 감청하셨나요?"
"감청은 실패했지만, 뭔가 내밀한 대화가 오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내밀한 대화라...?"
"예. 교황님."
"그들이 쿠데타를 모의했다고 생각하시나요?"
"네. 저는 그렇게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확신하시는 근거가 있나요?"
승화가 눈을 빛내며 대답했다.
"전무성은 권력욕이 대단한 인물입니다. 그리고 타고난 무신론자죠. 그런 이유로 태양신인 한울님과 교황님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게다가 7군단은 대한신국 최강의 무력집단인 관계로, 7군단만 수중에 확실하게 장악하면 쿠데타에 성공할 확률이 높습니다."
평범한 인간에 불과한 전무성은 간덩이가 많이 부은 모양이었다.
"전무성과 이태천, 이수천을 모두 잡아들이세요. 그리고 고문을 해서라도 자백을 받아내세요."
승화가 군기가 바짝 든 얼굴로 복명했다.
"교황님의 말씀대로 조치하겠습니다."
- 작가의말
선추코 부탁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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