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강한남자의 전설 4
늦은 밤, 청와대 관저.
정찬수 대통령은 침실에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뜬 눈으로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고 있었다.
그는 걱정이 태산이었다.
강천이라는 귀신이 곡할 존재가 그의 인생에 다시 나타난 까닭이다.
솔직히 말해서 찬수는 강천을 모처로 유인해서 무자비하게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차마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강천의 신비한 능력을 숱하게 목도한 탓이다.
비밀 요원을 이용해서 암살을 시도할까도 생각해봤지만.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일이 실패할 경우, 자신의 목숨은 물론이고 처자식의 생명 역시 위태로워질 것이 불보듯 훤했기 때문이다.
찬수는 강천의 잔인한 면모를 잘 알고 있었다.
그의 밑에서 10년 동안 하수인으로 활동하면서 온갖 험한 꼴을 생생히 목격했다.
사람 목숨 알기를 파리처럼 아는 강천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찬수는 시간이 지날수록 고민이 점점 깊어졌고.
강천의 요구를 이행하는 게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현재 한국은 여소야대 정국이었다.
한마디로 정부의 예산을 야당이 현미경처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아무 쓸모없는 폐유전과 폐광을 비싼 가격에 매입할 경우, 야당과 언론이 들고 일어날 게 불보듯 훤했다.
허나 그는 그같은 사실을 강천에게 함부로 전달할 수 없었다.
강천은 초인적인 능력을 갖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아는 찬수는 자나깨나 입조심을 해야 하는 형편이었다.
그의 얼굴에 고심이 역력한 표정이 떠올랐다.
동시에 미간에 깊은 내천자가 그려졌다.
하지만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마땅한 해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초조와 불안에 휩싸였다.
강천의 지시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갑자기 쓸만한 아이디어가 찬수의 뇌리에 번쩍하고 떠올랐다.
신의 가호같았다.
잠시 뒤.
그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그려졌다.
*
호주 시드니의 다운타운에 위치한 애플 매장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아이패드를 구입한 뒤.
약속 장소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러기를 얼마 후, 노천 카페에서 자원개발 브로커와 만남을 가졌다.
브로커와 악수를 교환한 뒤.
능숙한 영어로 그에게 본론을 내뱉었다.
"겉으로 보기에 그럴 듯한 폐유전이 있습니까?"
브로커는 내 의도를 단번에 훤히 꿰뚫었다.
그런 탓인지 노회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쓸만한 물건이야 많죠. 물론 가격만 제대로 쳐준다면 제가 성심성의껏 중개를 해드리겠습니다."
"어디에 있는 물건이죠?"
"아르카링가 베이즌 지역에 위치한 물건이죠."
"남부 호주에 있는 물건인가요?"
"맞습니다. 뉴스에도 자주 나온 유전이죠."
"그 유전지대에서 가장 저렴한 물건이 얼마나 하죠?"
"이 자리에서 말하기는 그렇고, 관심이 있으시면 투어를 시켜드릴 용의가 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화답했다.
"좋습니다. 투어 일정이 정해지면 저에게 연락을 주십시오."
그리 말하며 메모지에 내 연락처를 적어서 그에게 내밀었다.
그날 밤.
시드니 다운타운 인근의 호텔방에서 저녁 식사를 하는 한편.
아이패드를 이용해 국내 뉴스에 이목을 집중했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내 시선을 사로잡는 뉴스가 경제 사회면의 메인을 장식했다.
[한국 자원개발공사! 아무 쓸모없는 해외 유전을 매입하는 대가로 국민혈세 수조원 낭비!]
내 가슴이 뜨끔해지는 기사였다.
공교로운 일이었다.
왜, 이런 기사가 갑자기 나타난 걸까?
속으로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기사의 세부내용으로 시선을 모았다.
당연히 내용은 예상대로였다.
비리 정치인과 공무원의 결탁으로 경제성이 전혀 없는 해외 유전에, 조단위의 국민혈세를 투입했다는 게 기사의 주된 내용이었다.
기분이 괜스레 찜찜해졌다.
나도 의식하지 못하는 새, 양심에 심한 가책을 느끼는 모양새였다.
한심한 노릇이었다.
큰돈을 벌기 위해 악착같이 살겠다고 단단히 마음먹었는데.
국민혈세를 착복하는 행위가 너무 마음에 걸렸다.
확실히 나는 보기보다 마음이 여린 스타일이었다.
그러했으니 이토록 마음이 무거운 것이다.
나는 발상의 전환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쓸모없는 폐유전과 폐광을 한국 정부에 되팔기보다는, 내가 직접 전도유망한 유전과 광산을 발굴하기로 작심한 것이다.
내 수중에는 한화로 1조 4천억이 있었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유전과 광산을 개발할 수 있었다.
나름 자금 여력이 충분했다.
결심을 굳히자마자 자원 브로커에게 한통의 전화를 걸었다.
며칠 후.
자원개발 브로커의 안내를 받으며 아르카링가 베이즌의 유전 지대를 방문했다.
이 곳은 척박한 사막지대였다.
그런 탓인지 개발이 중단된 폐유전이 지천에 널려있었다.
나는 전방에 시선을 주시한 채.
단전에서 끌어올린 한줄기 내공을 뇌간 깊숙이 숨어있는 뇌호혈에 주입했다.
직후 상단전이 활성화됨과 동시에 내 심중에 사막 아래 깊숙이 숨어있는 속살이 생생히 드러났다.
30분 뒤.
나는 상단전에 주입했던 내공을 모두 거둬들였다.
예상대로 이곳에는 쓸만한 유정이 없었다.
사막 깊숙이 숨어있는 내밀한 속살을 정밀 스캔한 결과였다.
석유 한방울 존재하지 않는 곳이었다.
그런 탓으로 내 옆에 우두커니 서 있는 자원 브로커에게 넌지시 물었다.
"금광지대를 구경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폐금광을 원하시는 건가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반색하는 얼굴로 화답했다.
"빅토리아주에 위치한 골드필드에 폐금광이 많습니다. 원하신다면 오늘 당장 그곳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좋습니다. 말이 나온김에 그곳으로 당장 갑시다."
"예. 회장님."
우리는 곧바로 픽업 트럭에 몸을 싣고, 골드 필드 지역으로 향했다.
다음날 오전.
골드 필드 지역에 산재한 수백여 개의 폐금광을 대상으로 정밀 스캔에 돌입했다.
상단전에 내공을 주입한 채.
금맥의 흔적을 찾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경주했다.
허나 금맥은 당최 발견되지 않았다.
확실히 이곳은 폐금광 지대였다.
단 한톨의 금맥조차 발견되지 않은 탓이다.
상단전을 모조리 개방했음에도 금맥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허탈한 순간이었다.
결국 자원 브로커에게 소개비 조로 미화 3천 달러(420만원)를 지불한 뒤.
골드 필드의 폐금광 지대를 재빨리 빠져나왔다.
그날 저녁.
골드 필드 인근의 레스토랑에서 안심 스테이크를 안주삼아 포도주 10병을 물처럼 들이켰다.
나는 자동적으로 전신 대주천이 운행되는 까닭에.
알코올이 저절로 체외로 기화됐다.
천년내공의 순기능이었다.
배를 든든히 채운 후, 레스토랑을 나섰다.
그 뒤, 야밤의 창공으로 몸을 솟구쳤다.
시속 1천킬로에 육박하는 불꽃같은 스피드를 과시하며 밤하늘을 비쾌하게 갈랐다.
그 덕분일까.
2시간 40분 만에 서울 강남에 도착하는데 성공했다.
강남역 인근의 오피스텔로 들어서자마자 편한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환복했다.
그 후, 인근의 헬스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헬스장에서 3시간 동안 근력운동을 즐긴 후, 오피스텔로 되돌아갔다.
오피스텔의 샤워실에서 온몸을 정갈히 세척한 뒤.
거실에 놓여져있는 푹신한 가죽 소파에 온몸을 깊숙이 파묻었다.
그러기를 얼마 후, 정찬수의 대포폰으로 한통의 전화를 걸었다.
"준비는 잘 하고 계십니까?"
폰에서 찬수의 머뭇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게, 조금 사정이 있습니다. 회장님.
"무슨 사정이 있다는 말씀이죠?"
-아무 쓸모없는 유전이나 광산을 매입할 경우, 야당이 눈치를 챌 우려가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지금 현재 여소야대 정국이라, 정부의 예산집행을 야당이 현미경처럼 들여다보고 있거든요.
"그래서 내 요구를 거부하겠다는 말씀인가요?"
-당연히 그건 아닙니다. 단지 시간이 많이 필요할 것 같아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정말 그 정도로 정부의 예산집행을 야당이 감시하고 있나요?"
-네. 사실입니다. 그러니 저에게 시간을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회장님.
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톤이 많이 간절한 것 같았다.
내가 너무 성급했던 것일까.
속으로 그같은 생각을 하며 나직한 어조를 내뱉었다.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도 돈이 급하거든요."
-그래서 말인데, 제가 돈 나올 구멍을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죠?"
-회장님의 미국 인맥을 활용하면 큰 돈을 만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세히 말씀해 보세요."
-뉴스를 보셔서 아시겠지만, 차기 미국 대통령이 유력한 공화당의 올리버 스탠 후보는 강력한 보호무역 정책을 대선공약으로 내세웠습니다.
-그런 이유로 한국의 대기업들이 요즘 연일 올리버 스탠 후보에게 줄을 대려고 난리도 아닙니다.
찬수의 의도를 알 것 같았다.
"한국의 재벌그룹을 대신해서 미국 로비에 나서라는 말씀인가요?"
-예. 맞습니다. 회장님이 원하신다면 내일 당장 한국의 재벌 회장들과 만남을 주선해 드리겠습니다.
"안그래도 국민 혈세를 착복하는 것 같아서 내심 마음에 걸렸는데, 차라리 잘된 일 같네요. 좋습니다. 재벌 회장들을 만나볼테니 대통령님이 자리를 만들어 주세요.
수화기 너머에서 찬수의 반색하는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아무튼 제가 책임지고 자리를 만들어보겠습니다.
"저 대신 수고를 해주세요."
그말을 끝으로 전화통화를 종료했다.
이틀 후.
정장 양복을 차려입고 서울의 L호텔을 방문했다.
1층 로비 라운지에 조성된 카페에서 과일 주스를 음미할 찰나.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남자가 내 앞에 나타났다.
그가 내 위아래를 유심히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강천 회장님이 맞으신가요?"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화답했다.
"네. 제가 이강천입니다."
"그럼 저를 따라오시죠. 펜트하우스에서 회장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럽시다."
우리는 곧장 탑층에 위치한 펜트하우스로 올라갔다.
탑층에 들어서자 경호원들이 나를 맞이했다.
그들은 몸수색이 끝나자, 그제야 나를 펜트하우스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펜트하우스에 딸린 서재로 들어서자 육중한 책상에 앉아 있는 50대 남성이 보였다.
삼승그룹의 강학수 회장이었다.
강학수는 한국에서 돈이 제일 많은 사람이었다.
그는 표면적으로 드러난 재산만 250조에 육박하는 재벌이었다.
비자금을 포함할 경우, 그의 재산은 아무리 못해도 300조가 넘을 것으로 세간에서는 추정하고 있었다.
그가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미국 정가에 인맥이 많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자, 강 회장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잠시 뒤.
그와 악수를 교환한 후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강 회장에게 나직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공화당의 올리버 스탠 후보에게 로비를 하고 싶어서, 저를 만나자고 하신 겁니까?"
그가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올리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될 확률이 90퍼센트가 넘는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나름대로 로비업체를 알아보고 있는데, 신통치가 않더라고요. 그러던 차에 청와대에서 이 회장님을 추천하더군요."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정확히 나에게 원하는 게 뭐죠?"
강 회장이 기다렸다는 듯 대꾸했다.
"공화당의 올리버 후보는 삼승전자의 반도체 공장 대다수를 미국 현지에 이전하라고 강도높은 압박을 넣고 있습니다. 그걸 무마해 주시면 섭섭치 않게 사례를 해드리죠."
"확실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이번 사안을 내가 무마해주면 얼마나 주실 겁니까?"
그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뭐라고 확답을 드리기가 좀 그렇네요. 미국 대선은 한달 정도가 남아 있으니까 돌아가는 상황을 봐서..."
학수가 내 눈치를 살피며 말끝을 흐렸다.
"좋습니다. 그럼 본격적인 논의는 미국 대선이 끝난 이후에 하기로 하죠."
- 작가의말
선작 추천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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