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빌어먹을 세상 따위 6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그가 갑자기 창문을 열어젖혔다.
그 뒤, 흡연을 즐기기 시작했다.
정찬수의 행동 반경과 습관을 확인한 뒤, 서울의 밤거리를 발길 가는 대로 무작정 걸었다.
그러기를 얼마 후, 선불폰을 이용해 레스터 영감님에게 익명 메시지를 전송했다.
<정찬수 중앙지검장의 신상파일을 최단 시간 안에 보내주세요.>
<그자 역시 아드레노와 연관되었을 확률이 높아서 그래요.>
말도 안되는 익명 메시지를 연달아 보냈다.
아니나 다를까.
영감님의 메시지가 아이폰에 들어왔다.
<자네의 말을 한번 더, 믿어보기로 하겠네.>
마음 씀씀이가 바다처럼 넓은 영감님이었다.
참으로 고마운 노인네였다.
속으로 그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아이폰에 들어온 메시지를 삭제했다.
*
랭글리 CIA 본부.
CIA 신임 국장으로 취임한 레스터가 널찍한 국장 사무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무미건조한 얼굴로 사무실을 잠시 동안 둘러본 뒤.
육중한 마호가니 책상에 좌정했다.
레스터가 턱에 손을 괸 채,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기를 얼마 후, 게리 스톤 수석작전요원을 면전에 호출했다.
국장 사무실에 나타난 게리 스톤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축하의 인사말을 건넸다.
"국장님으로 승진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허나 레스터는 무덤덤한 얼굴로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공치사는 됐고, 혹시 국정원에 우리쪽 사람이 있나?"
게리 스톤이 즉답했다.
"국정원 2차장이 우리측 사람입니다."
레스터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그려졌다.
"정찬수 중앙지검장에 관해서, 그자에게 문의를 넣게."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그럴 일이 있네. 지금 당장 문의를 넣어봐."
게리 스톤은 그의 심복이었다.
그런 이유로 더 이상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채, 충견스러운 면모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말씀대로 조치하겠습니다."
국장실을 나선 게리 스톤은 김형석 국정원 2차장에게 곧바로 익명 메시지를 전송했다.
*
밤 11시경.
강남역 개찰구 근처에 위치한 사물함으로 다가갔다.
여섯자리의 비번을 입력하자 사물함이 열렸고.
사물함 안에는 갈색 봉투가 놓여져 있었다.
개찰구 앞의 벤치에 자리한 채.
봉투 안의 내용물을 살폈다.
봉투 안에는 '정찬수 존안자료'라는 서류가 들어있었고.
서류 하단에는 국정원의 보안 스탬프가 찍혀있었다.
국정원에서 흘러나온 자료였다.
국정원에서 암약하는 CIA 협력자가 제공해준 파일 같았다.
서류에 시선을 모으자, 정찬수의 일평생이 일목요연하게 기재되어 있었다.
나는 그의 어린시절과 학창 시절, 결혼 등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런 탓으로 정찬수가 특수부 검사로 재직하면서부터 발생한 사건사고에 시선을 집중했다.
<피의자와 참고인을 대상으로한 무분별한 별건수사와 집요한 강압수사로 인해, 피의자와 참고인들이 수사 도중 자살하는 사건이 다수 발생.>
<특수부 검사로 재직한 이후, 대기업 등에서 50억 대의 금품과 각종 향응을 제공받은 것으로 확인됨.>
<검찰총장을 끝으로 정치계에 입문할 계획을 갖고 있음>
<피도 눈물도 없는 잔인한 성품으로 알려짐.>
<외아들의 성폭행 사건을 무마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의 부모들을 협박한 것으로 알려짐.>
국정원이 작성한 존안자료가 사실이라면, 정찬수는 천하의 개자식이었다.
그말은 내가 함부로 막대해도 되는 존재라는 의미였다.
내 입장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강남역을 나선 뒤, 길가를 배회하는 택시에 몸을 실었다.
"유엔빌리지로 가주세요."
"예. 손님."
유엔빌리지의 고급 주택가에 도착했다.
내 시선은 정찬수의 자택에 모아졌다.
그는 2층 서재의 책상에 앉아서, 컴퓨터 모니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더불어 흡연까지 즐기고 있었다.
그런 탓인지 창문을 활짝 열어둔 상태였다.
서재 창문을 통해서 집안에 잠입하면 될 것 같았다.
어둠이 내려앉은 주변을 둘러보자, 행인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내가 앉아있는 벤치와 그의 집은 대략 100미터 거리였다.
도약 한번에 충분히 도달할 수 있었다.
벤치에서 몸을 일으킴과 동시에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100미터에 달하는 공간을 단숨에 좁히며, 2층 서재의 창문을 통해서 집안으로 잠입하는데 성공했다.
그런 탓일까.
정찬수가 귀신을 목격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온몸을 벌벌 떨었다.
보기보다 겁이 많은 작자였다.
공포에 질린 얼굴로 책상에서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그의 마혈과 아혈을, 내공이 감도는 손으로 전광석화처럼 제압했다.
이제 정찬수는 말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고.
몸을 움직이고 싶어도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식물인간 상태로 전락했다.
서재에 놓여져 있는 소파에 편한 자세로 등을 기대며 책상에 뻣뻣하게 굳은 자세로 앉아있는 정찬수에게 나직한 어조로 말했다.
"미국에 유학간 당신 아들이 미국 마약단속국에 체포를 당했어요. 마약밀매 혐의죠. 증거가 완벽한 관계로 최소 20년 형 이상의 중형이 선고될 거에요."
그리 말하며 책상 위에 USB 메모리를 올려놓았다.
"마약단속국에 체포당하는 장면을 촬영한 동영상이 USB 안에 들어있어요.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면 확인해 보세요."
"물론 내 말 한마디면 당신 아들인 정민혁은 자유의 몸이 될 거에요. 내일 밤 9시에 당신 휴대폰으로 전화를 할 테니까 무조건 받으세요. "
그말이 끝나자마자 서재의 열려있는 창문을 통해서 밤하늘로 날아올랐다.
그의 아혈과 마혈은 3시간 정도가 지나면 자연적으로 해혈될 예정이었다.
아주 미세한 내공을 주입한 탓이다.
*
정찬수는 해가 중천에 떠오른 시각임에도 중앙지검으로 출근할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는 아침 식사도 거른 채, 2층 서재로 올라갔다,
그 뒤, 흙빛으로 물든 낯빛을 드러낸 채 뭔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그는 USB의 내용물을 확인했다.
아들이 코리안타운의 룸살롱에서 마약단속국 요원들에게 체포당하는 생생한 영상을.
그의 아들인 민혁의 폰은 꺼진 상태였다.
체포를 당하는 과정에서 압수된 게 틀림없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미국 정보기관에 인맥이 있는 성진그룹의 이명석 회장에게 도움을 구하기로 결심했다.
귀신처럼 자신의 서재에 나타난 사람에게, 아들의 구명을 요구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의 정체가 너무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정찬수는 아들의 체포에 그자가 관여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다른 채널을 통해서 아들을 구명할 생각이었다.
그는 마음을 정하자마자 이 회장에게 한통의 전화를 걸었다.
그날 저녁.
정찬수는 강남에 위치한 성진호텔을 방문했다.
탑층에 위치한 프라이빗 클럽에서 이 회장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그는 탑층에 조성된 프라이빗 클럽의 VIP 룸에서 이 회장과 독대를 가졌다.
이 회장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CIA 쪽에 문의를 해봤는데, 별로 도움이 안될 것 같소. 미안하오. 정 지검장."
정찬수가 참담한 얼굴로 읍소했다.
"이번 한번만 도움을 주시면 이 은혜를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회장님."
"나도 도움을 주고 싶은데, 쉽지가 않소. 미국 현지에서 발생한 사건이라."
"그럼 내 아들놈을 구할 길이 없는 겁니까?"
"법무부에서 공식적으로 미국 정부에 문의를 해보는 게 좋을 것 같소."
정찬수가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비공식적으로 이번 사건을 해결하고 싶었다.
아들놈이 마약밀매 혐의로 체포당했다는 소식이 한국에 전해진다면, 그의 검찰 인생은 그날부로 끝이었다.
그리고 정치권에 진출하는 것도 난관에 부딪힐 것이 불보듯 훤했다.
그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최종 목표였다.
원대한 포부를 갖고 있는 정찬수는 한점의 의혹조차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런 탓으로 이번 사건은 극비리에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는 어제 밤에 자택에 유령처럼 등장한 괴한에게 아들의 구명을 하기로 결론내렸다.
내키지 않는 일이었지만 그 길이 최선이었다.
*
밤 10시경.
위장마스크를 착용하고, 이촌 한강공원에 들어섰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산책로에 위치한 벤치에 앉아있는 50대 남성이 시야에 들어왔다.
정찬수는 시종일관 불안한 눈빛을 드러내며 주변을 살펴보고 있었다.
'목이 빠져라' 나를 기다리는 모양새였다.
인기척을 내며 그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 탓일까.
그가 공포와 분노가 번갈아 교차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에게 나직한 어조로 말문을 열었다.
"저와 사업을 같이 하시죠. 내 제안을 수락하시면, 정민혁을 무사히 풀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수백억대의 비자금도 챙겨드리죠."
채찍과 당근을 유효적절하게 구사한 탓일까.
그가 흔들리는 눈빛으로 나를 주시했다.
속내가 극도로 복잡한 모양새였다.
정찬수가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당신의 정체가 뭡니까? 먼저 그점을 밝혀 주십시오."
"내 정체가 그리 궁금하신가요?"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 답변을 재촉했다.
정찬수에게 솔직한 언사를 내뱉었다.
그가 원하는 대로.
"저는 일신에 초인적인 힘을 갖고 있어요. 내가 마음먹으면 이 세상에 못죽일 사람이 없죠."
횃불같은 안광을 의도적으로 내비쳤다.
동시에 단전에서 끌어올린 열양진기를 베이스로, 오른손에 삼매진화를 발현했다.
손바닥 위에 떠오른 맹렬한 불꽃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불태울 기세였다.
정찬수가 공포에 질린 얼굴로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쓸데없이 두려워하지 마세요. 저는 사람 목숨을 함부로 잡는 인간백정이 아니니까."
그리 말하며 오른손 위에 솟구친 삼매진화의 불꽃을 '없을 무'로 되돌렸다.
그제야 아저씨가 놀란 마음을 가까스로 가라앉히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당신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정말 내 아들을 풀어줄 겁니까?"
그에게 즉답했다.
"당연히 그래야죠. 남아일언은 중천금이잖아요. 하하하...!"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유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왠지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정찬수가 공손한 태도로 나를 올려다봤다.
내 초인적인 능력에 진심으로 감복한 모양새였다.
아저씨에게 나직한 어조를 내뱉었다.
"지검장님이 김상곤 중원시장을 횡령 배임 혐의로 수사한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그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아까전에도 말했다시피 내가 원하는 건 부동산 개발이에요. 그런데 아주 좋은 땅이 중원시에 있더라고요."
그리 말하며 정찬수를 슬쩍 쳐다봤다.
그는 내 말을 세이경청하는 태도를 견지했다.
말하는 것보다 듣는 걸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아무튼 내가 원하는 토지가 하필이면 중원시의 시유지(市有地)라고 하더라고요. 김상곤 시장의 협조가 절대적이라는 의미죠."
내 말을 조용히 듣고만 있던 아저씨가 처음으로 질문다운 질문을 해왔다.
"김상곤 시장의 수사를 중단하라는 말씀인가요?"
"그건 조금 앞서나간 것 같고, 중요한 건 지검장님과 내가 원팀이 되는 거죠."
그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원팀이라는 게 대체 무슨 뜻입니까?"
"말 그대로 한팀을 먹는 거죠. 한마디로 부동산 개발 회사의 이사 명단에 지검장님의 이름을 올리겠다는 의미죠."
정찬수가 난색을 표명했다.
"저같은 공직자는 사기업의 이사진 명부에 이름을 올릴 수 없습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차명으로 이사 명단에 이름을 올리면 되니까. 그리고 일이 성사됐을 경우 거액의 보상금을 따로 지급해 드릴게요."
그리 확언하자 아저씨가 고민하는 얼굴이 되었다.
그러기를 잠시 후, 그가 간절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먼저 저의 아들을 자유의 몸으로 풀어주십시오. 그렇게만 해주시면 당신이 시키는 대로 다하겠습니다. 진심입니다."
"죄송하지만 그렇게는 못하겠어요. 사람이란 게 원래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다른 동물이거든요."
그리 대꾸하며 장내를 유유히 빠져나왔다.
뜸을 들일 시간이 필요했다.
어차피 시간은 내 편이었다.
- 작가의말
선작 추천 부탁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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