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강한남자의 전설 7
내 앞에서 고개를 깊숙이 숙이고 있는 찬수의 백회혈 쪽으로, 극미세한 한가닥의 기운을 주입했다.
그의 백회혈에 주입한 내공은 나와 일심동체였다.
내 주변 반경 10킬로를 기점으로 찬수의 존재를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일종의 위치발신기를 그의 두뇌에 삽입한 셈이었다.
그에게 나직한 어조로 말했다.
"앞으로는 청와대 근처의 안전가옥에서 시간을 정해서 만납시다."
찬수가 고개를 들며, 반색하는 얼굴로 화답했다.
"삼청동에 있는 안전가옥을 이용하시죠?"
"삼청동에 안가가 있나요?"
"예. 삼청동에 안전가옥이 있습니다."
"그럼 앞으로는 그곳에서 만남을 갖죠."
"알겠습니다. 저에게 연락을 주시면 안가를 준비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나중에 봅시다."
그말을 끝으로 청와대의 밤하늘로 몸을 날렸다.
한달 후.
모두의 예상대로 올리버가 미국의 대통령에 당선됐다.
나는 녀석을 축하하기 위해 백악관을 향해 보무도 당당히 발걸음을 옮겼다.
백악관의 상공에 좌정한 채.
3천명에 달하는 무장 군인과 백악관 보좌관들의 혼혈을 목표로 불꽃같은 격공점혈을 쉴 새 없이 발출했다.
그 덕분일까.
방금전까지 시끌벅적하던 백악관이 일순간에 고요해졌다.
백악관 웨스트윙에 위치한 오벌 오피스(대통령 집무실)에 들어서자, 올리버가 잔뜩 찌푸린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집무실에는 열명이 넘는 보좌관과 비서실장이 소파 혹은 맨바닥에 죽은 듯이 축 늘어져서 잠을 청하고 있었다.
"왜, 연락도 없이 갑자기 나타나서 깽판을 치는 거냐고?"
녀석은 그점이 불만인 모양이었다.
"그럼 백악관 출입증을 줬어야지."
"제멋대로 행동하는 버릇 좀 고치라구!"
올리버가 목소리를 높였다.
"앞으로는 먼저 연락을 하고 올게. 아무튼 시간이 없으니까 내 등에 엎혀라."
그리 말하며 녀석을 강제로 내 등에 엎었다.
그 뒤, 집무실의 창문을 통해서 워싱턴의 밤하늘로 쾌속하게 날아올랐다.
10시간의 비행 끝에 한국 남해의 절도에 도착했다.
절도의 섬주민들은 모두 해남시로 이주한 상태였다.
우리는 곧장 섬 지하로 내려갔다.
지하 120미터 지점에 위치한 금맥에 도착한 뒤.
강기검을 이용해서 어른 주먹만한 황금을 캤다.
녀석이 신기한 얼굴로 내 손에 들린 강기검과 황금을 번갈아 쳐다봤다.
"저 흰색의 검을 브로가 만든거야?"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강기검을 단전으로 회수했다.
그런 광경을 유심히 살피던 녀석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와우! 정말 브로처럼 신비한 사람은 난생 처음이라구!"
쓴웃음을 지으며 녀석에게 황금을 내밀었다.
"대통령 취임 선물이다. 부담갖지 말고 받아라."
"고마워. 브로. 하하하...!"
녀석이 즐거워하는 미소를 만면 가득 내비쳤다.
10시간의 비행 끝에 다시 백악관 근처의 공원에 도착했다.
지금은 저녁 무렵이었다.
예상대로 백악관은 난리가 났다.
거의 20시간 동안 미국의 신임 대통령인 올리버가 자취를 감춘 탓이었다.
물론 내 알 바 아니었다.
"절도에 있는 금맥의 정밀 조사를 진행해. 그게 내가 원하는 거다."
녀석이 질렸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정말 그 많은 황금을 미국 정부에 매각할 거야?"
"그래 임마. 그러니까 황금의 매장량을 빨리 조사하라고. 얼마나 매장되어 있는지 확인하는 게 급선무니까."
허나 녀석은 내 요구에 순순히 응하지 않았다.
갑자기 제멋대로 화제를 전환한 것이다.
"브로한테 백악관 비서관 타이틀을 달아줄테니까 앞으로는 정식으로 면담을 신청하라고."
녀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내가 선물로 준 황금을 손에 든 채.
백악관 쪽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자식이 내 말을 귀담아 듣는 눈치가 아니었다.
다음날 오전.
나는 백악관을 공식적으로 방문했다.
당연히 백악관의 경호원이 내 앞을 막아섰다.
"무슨 일로 백악관을 방문하셨습니까?"
그에게 당당한 어조로 대꾸했다.
"저는 백악관 비서관인 이강천입니다."
"그럼 백악관 출입증을 주십시오."
"아직 출입증이 나오지 않았거든요. 그러니까 비서실에 연락을 해보시죠."
그가 나를 경계하는 시선을 내비치며 무전기를 이용해서 백악관 비서실에 문의를 넣었다.
나는 양귀를 쫑긋 세운 채.
그가 비서실 직원과 나누는 대화를 엿들었다.
"이강천이라는 사람이 백악관 비서관이라고 주장하는데, 그 사람의 주장이 사실입니까?"
-오늘 고용한 사람이 맞아요. 비서실로 데리고 오세요.
"알겠습니다. 바로 올라가겠습니다."
잠시 후.
경호원의 안내를 받으며 집무실 옆에 위치한 비서실장 사무실로 들어갔다.
사무실 책상에 앉아있던 중년의 백인 남성이 탐색하는 눈빛을 내비치며 입을 열었다.
"대통령 각하께서 이강천 씨를 오늘 날짜로 동아시아 특별 보좌관으로 임명하셨습니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동아시아 특별 보좌관이란 단어가 쓰여있는 백악관 출입증을 나에게 건넸다.
"대통령 각하와 사적인 인연이 깊다고 하던데...? 그 소문이 사실입니까?"
"뭐, 오래전부터 인연이 있었죠. 그건 그렇고 올리버 대통령과 면담을 하고 싶은데, 지금 가능한가요?"
"집무실로 들어가십시오. 대통령 각하께서 이강천 씨를 기다리고 계시거든요."
"고맙습니다. 그럼 이만."
비서실장 사무실을 나서자마자 출입증을 목에 걸었다.
그 후, 옆에 위치한 집무실로 들어갔다.
집무실에는 올리버 혼자 있었다.
녀석은 집무실의 창가에 우두커니 선 채.
백악관의 아름다운 정원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곧바로 올리버의 옆으로 다가갔다.
"뭘 보고 있는거냐?"
녀석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한 채.
창밖에 시선을 고정했다.
쓸데없이 무게를 잡고 있었다.
결국 녀석을 뒤로한 채.
푹신한 가죽 소파에 온몸을 편히 기댔다.
그러기를 잠시 뒤.
녀석의 목소리가 귓전에 파고들었다.
"정말 황금을 미국 정부에 팔고 싶은 거야?"
"그래 임마. 그러니까 내가 날이 밝자마자 네놈을 찾아온거지."
"에휴... 내가 졌다. 원하는 대로 해줄테니까 오늘 밤 12시에 집무실로 찾아와."
"오케이. 진작에 그럴 것이지. 하하하...!"
내 입에서 절로 흡족한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날 자정 무렵.
올리버를 등에 엎고, 미국 동부의 밤하늘을 쾌속하게 갈랐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녀석이 은근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미국 정부가 달러가 넘쳐난다고 해도, 2조 달러(2,800조)는 너무 과도한 액수라구."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브로의 금광은 충분히 2조 달러의 가치가 있어. 하지만 내 마음대로 금광을 매입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야."
그의 말이 정답이었다.
제아무리 미국 대통령이라고 해도, 2조 달러를 집행하는 건 차원이 다른 얘기였다.
"합당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고.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어?"
"그럼 명분을 만들면 되잖아? 기축 통화 달러의 패권을 유지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황금을 미국이 갖고 있어야 하잖아."
"그야 그렇지만, 2조 달러를 투입해서 브로의 금광을 인수하는 건 다른 얘기라구."
녀석과 진지한 대화를 나눌 필요가 있었다.
그런 이유로 발아래에 드넓게 펼쳐진 애팔라치아 산맥의 중턱을 목표로 부드럽게 하강했다.
잠시 뒤.
우리는 산중턱의 평평한 자리에 나란히 주저앉은 채.
서로를 탐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녀석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미국 정부는 브로같은 슈퍼맨이 필요해. 미국 정부에 협조하겠다는 약속만 해주면, 내가 책임지고 브로의 금광을 인수해줄게."
"미국 정부의 끄나풀이 되라는 말이냐?"
"끄나풀이 아니라 협력자 노릇을 해달라고."
고개를 저었다.
"별로 내키지 않은 제의구나."
"내가 대통령으로 재임하는 동안만 미국 정부를 위해서 일을 해줘."
녀석이 간절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다.
그런 탓일까.
조금 마음이 흔들렸다.
올리버는 내 친동생이었다.
그런 녀석이 이렇게 부탁하는데, 매정하게 거절하는 것도 썩 내키지 않은 일이었다.
"쓸데없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사절이다. 인간백정 노릇은 딱 질색이거든."
"그건 걱정하지 말라구. 설마, 내가 브로한테 그런 일을 시키겠어."
"그리고 한국의 국익에 해가 되는 일도 사절이다."
"오케이. 염려말라구. 내가 확실히 보장해 줄테니까."
"그럼 니놈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면, 절도의 금광을 미국 정부가 인수해 줄거냐?"
"당연히 그래야지. 대신 한가지 조건이 있어."
"그게 뭔데?"
"상하원의 예산결산 의원들을 설득하려면 브로의 신적인 능력이 담긴 동영상이 필요해."
그에게 물었다.
"그들에게 내 정체를 노출할 생각이냐?"
녀석이 별일 아니라는 얼굴로 양어깨를 으쓱했다.
"브로의 금광을 매입하려면 예결위원회를 통과해야 한다고."
"그냥 정부 마음대로 예산을 집행하면 안되는 거야?"
"미안하지만 그렇게는 할 수 없어. 미국의 헌법이 그렇거든."
내 입가에 절로 쓴웃음이 내걸렸다.
녀석에게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 예결위를 통과하려면 내 능력을 드러내야 하는 거냐?"
올리버가 고개를 힘차게 끄덕거렸다.
녀석은 내 허락도 받지 않고, 백팩에서 4K 고화질 캠코더가 장착된 촬영용 드론을 제멋대로 꺼냈다.
"이제 시작해 보자고. 시간이 없어."
그리 말하며 오페라의 유령 마스크를 나에게 내밀었다.
결국 못 이기는 척 녀석이 건넨 마스크를 얼굴에 착용했다.
그 뒤, 촬영용 드론을 대동한 채.
애팔라치아 산맥 인근의 푸른 하늘을 한마리 새처럼 자유로이 비행했다.
1시간 동안 드론 촬영에 협조한 뒤.
녀석이 있는 산중턱으로 돌아왔다.
올리버는 드론이 촬영한 내 비행 영상이 마음에 들었는지, 얼굴 가득 함박 웃음을 지었다.
그러기를 잠시 뒤.
나를 향해 또 다른 요구를 해왔다.
"이제 브로의 장기인 강기검을 펼쳐봐."
결국 녀석이 원하는 대로 체외로 길이 1미터 남짓한 우윳빛의 강기검을 생성해냈다.
그 뒤, 이기어검을 발현하며 주변의 암석을 무자비하게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강기검을 이용해서 이기어검 술법을 1시간 동안 펼치자, 녀석이 극도로 만족한 얼굴로 '스톱'이라는 단어를 내뱉었다.
"이제 백악관으로 돌아가자구."
녀석은 그리 말하며 촬영용 드론을 백팩에 재빨리 수납했다.
잠시 후, 녀석을 등에 태운 채.
백악관을 목표로 전속력으로 내달렸다.
집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녀석에게 내 요구를 전달했다.
"빠른 시일 안에 절도에 매장된 황금의 양을 측정해줘."
"그 문제는 걱정하지마. 내일 곧바로 금광 조사팀을 구성해서 절도에 파견할 테니까."
"오케이. 그럼 나중에 보자. 브로."
그말을 끝으로 백악관의 밤하늘로 몸을 날렸다.
이틀 후.
절도에 미국 정부가 파견한 금광 조사팀이 나타났다.
나는 그들을 인솔한 채.
지하 120미터 지점에 위치한 금맥으로 안내했다.
조사팀장인 에펜스와 팀원들이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황금의 바다를 넋을 읽고 한참 동안 감상했다.
나는 그들을 뒤로한 채.
곧바로 지상으로 몸을 날렸다.
나머지 일은 그들이 알아서 할 일이었다.
*
오후 무렵.
백악관 집무실에 에펜스가 나타났다.
그는 육중한 책상에 앉아있는 올리버에게 정중하게 인사한 뒤.
절도의 금맥을 정밀 조사한 보고서를 제출했다.
올리버의 시선이 에펜스의 보고서에 모아졌다.
잠시 후.
그가 면전에 서 있는 에펜스에게 놀란 얼굴로 질문을 던졌다.
"정말 절도에 매장된 황금의 양이 1만톤이 넘는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채굴 비용을 제외해도 2조 달러(2,800조) 이상의 가치를 갖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날 밤.
백악관 집무실에 상하원의 예결위원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올리버는 공화당의 팰트맨 상원의원과 오마르 민주당 상원의원, 제너선 공화당 하원의원, 얀센키 민주당 하원의원, 아르센 공화당 하원의원 등과 차례로 악수를 교환한 뒤.
그들을 원탁 테이블로 안내했다.
상하원의 예결의원들은 원형의 테이블에 차례로 착석한 후, 의아한 얼굴로 상석에 좌정한 올리버를 쳐다봤다.
올리버는 대통령에 취임한지 일주일 만에, 전격적으로 상하원의 예결위원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했다.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 작가의말
선작 추천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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