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환생 3
아니나 다를까.
아버지 대신 그녀가 나섰다.
김해숙이 2층 계단으로 올라왔다.
그 뒤, 나를 잡아죽일 듯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우리가 그 말을 어떻게 믿지?"
그녀에게 즉답했다.
"100억을 받는 대가로 일체의 상속을 포기하겠다는 계약서를 작성해 드리죠. 그리고 원하시면 호적에서 저를 파내세요.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요?"
"흐으음..."
아버지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는 100억으로 모든 인연을 쫑내자는 내 제안이 마음에 걸리는 눈치였다.
반면 김해숙은 내 그럴 듯한 제안이 마음에 든 눈치였다.
그녀의 반색하는 얼굴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안그래도 이 잡종새끼 때문에 창피해 죽겠다고요. 그러니까 100억을 주고 호적에서 파내자고요!"
김해숙의 말을 시작으로 태천과 수천이 차례로 말을 이었다.
"그래요. 아버지. 저 잡종새끼 때문에 재벌가 모임에 나가지를 못할 지경이라구요."
"맞아요. 이번 기회에 저 호로새끼를 호적에서 파내요. 100억이면 싸게 먹히는 장사잖아요?"
본처인 김해숙과 두명의 아들까지 그리 말한 탓일까.
이 회장이 못 이기는 척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냐?"
"네. 저한테 100억만 주시면 원하는 대로 상속권리를 포기할게요. 호적에서 파내셔도 반대하지 않을게요."
"잘 생각해 보거라. 나중에 오늘의 일을 후회할지도 모르니까."
"전혀 후회할 생각이 없으니 100억을 주세요. 어차피 저는 아버지와 큰엄마, 이복형들에게 아무 감정이 없으니까."
그리 말하며 이 회장의 두눈을 싸늘한 시선으로 주시하자, 그가 뜨끔한 표정을 지으며 내 시선을 회피했다.
다음날 오후.
점심 식사를 끝마치고, 2층 서재로 올라가자.
이 회장과 김해숙, 그리고 양복 정장을 차려입은 아저씨가 보였다.
그는 이 회장의 고문 변호사인 장채일이었다.
이 회장이 말했다.
"장변이 작성한 계약서를 살펴보거라."
고개를 끄덕이며 계약서에 시선을 모았다.
<이명석 회장의 3남인 이강천은 현금 100억을 증여받는 대가로 일체의 상속권리를 포기한다.>
<이강천은 만으로 20세가 되는 시점에 이명석 회장과 법적인 모친인 김해숙과 완전히 절연하는데 합의한다.>
계약서를 대충 살핀 뒤.
장변에게 물었다.
"아버지의 호적에서 내 이름을 뺄 방법은 없나요?"
"없습니다. 한국은 2008년 호적 대신 가족관계등록제도로 변환된 이후, 법적으로 부모 관계를 끊을 수 없습니다."
그의 설명이 계속 이어졌다.
"대신 부모의 재산을 상속포기 하겠다는 계약서가 유효한 수단으로 대체하는 중입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계약서에 내 자필서명과 인주를 이용해서 열손가락의 지장을 찍었다.
계약절차가 끝나자, 김해숙이 싸늘한 목소리로 일갈했다.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내 집에서 무조건 나가. 100억이 있으니까 어디가도 굶어죽지는 않을거야."
"안그래도 그럴 생각이니까 너무 보채지 마십시오. 큰엄마."
그러자 김해숙이 열받은 얼굴로 소리쳤다.
"여보 봤죠? 개잡종이 말하는 싸가지를? 저 새끼가 맨날 저런 태도로 나오니까 내가 미치는 거라구요!"
이 회장이 골치아픈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나가라는 손짓을 해보였다.
그에게 인사를 하자마자, 서재를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그날 밤,
내 방에 김도형 비서실장이 나타났다.
그의 손에는 통장과 내 개인도장, 인터넷 뱅킹이 가능한 보안카드가 들려있었다.
그에게 물었다.
"통장 비번이 뭐죠?"
"1487입니다."
"보안카드를 이용해서 인터넷뱅킹을 하면 되나요?"
"네. 그렇게 사용하시면 됩니다."
"인터넷 뱅킹의 1일 이체한도가 얼마죠?"
"하루 10억으로 설정했습니다. 혹시 몰라서 그렇게 설정했는데, 마음에 드시나요?"
김도형은 내 마음에 쏙들게 일을 처리했다.
재벌회장님의 비서실장에 걸맞는 탁월한 일처리였다.
그가 은근한 얼굴로 질문을 던졌다.
"갑자기 100억을 원하는 이유가 따로 있는 건가요?"
그에게 대충 둘러댔다.
"그냥 100억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요. 그럼 이만 나가보시죠."
매정한 축객령을 내리자, 김도형이 내 방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그가 방에서 사라지자마자 아이폰에 국면은행 어플을 설치하고, 재빨리 회원가입을 끝마쳤다.
그 후, 내 계좌에 예치된 돈을 확인했다.
<10,000,000,000 원>
정확히 100억이었다.
그런 탓일까.
밥을 안먹어도 배가 터져 죽을 지경이었다.
다음날.
나는 학교에 가는 대신, 은행 계좌에 예치된 돈을 감상하는데 몰두했다.
수많은 삶을 경험했지만, 내 수중에 이렇게 많은 거액이 들어온 적은 처음이었다.
그런 이유로 계좌에 들어있는 돈을 보기만 해도 기분이 황홀해졌다.
그날 저녁 무렵.
저녁 식사 시간에 모습을 보인 아버지가 매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제 내일부터 학교에서 공부를 하거라."
그러자 김해숙과 이복형들이 싸늘한 시선으로 내 입을 주시했다.
"고등학교 3학년인데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집에서 놀기만 해서 되겠느냐?"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아버지에게 말했다.
"내일부터 학교에 갈게요. 그럼 됐죠."
그러자 김해숙이 확인하듯 물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무조건 내 집에서 나가. 약속을 했으니까 반드시 지키라구."
"당연히 그럴 생각이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 대꾸하며 다이닝룸을 박차고 나왔다.
그 후, 인근의 이촌 한강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강공원에서 조깅을 하며 내 몸을 점검했다.
나는 이촌 한강공원을 시작으로 잠실쪽 한강공원까지 단 10분 만에 주파했다.
그것도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서 스피드를 많이 줄인 결과였다.
확실히 5갑자에 달하는 내공 덕분에, 내 몸은 초인 반열에 오른 것 같았다.
나는 서전트 점프력이 궁금했다.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졌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인지한 탓이다.
사람이 없는 새벽 시간대를 노려서 서전트 점프력을 확인해봐야 할 것 같았다.
*
그날 새벽.
가벼운 옷차림으로 한남동 집을 나섰다.
그 후, 길가를 오가는 택시를 찾아타고 경기도 인근의 야산을 찾았다.
점프력을 테스트하기 위함이었다.
카드로 택시비를 결제한 뒤.
차에서 내렸다.
그 뒤, 야산의 정상으로 한달음에 달려올라갔다.
등산 챔피언을 능가하는 스피드를 과시하며 산정상까지 눈깜빡할 새에 도착했다,
산정상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홀가분한 심경에 휩싸인 채.
발 한가운데에 위치한 용천혈에 전신공력을 주입했다.
동시에 하늘 높이 몸을 솟구쳤다.
바람을 가르는 파공성이 귓가를 스쳤다.
나는 놀랍게도 무려 100미터 가까이 점프를 하고 있었다.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초월한 압도적인 점프력이었다.
그후로도 한참 동안 점프력 테스트를 만끽한 뒤.
다음 테스트로 넘어갔다.
야산에는 큼지막한 바위들이 많았다.
나는 주변에 수북이 쌓여있는 암석을 목표로 전신공력이 가득 들어찬 원투 스트레이트를 쉴 새 없이 퍼부었다.
펑펑펑펑펑펑펑펑!
그런 탓일까.
폭탄이 터지는 듯한 폭음이 울려퍼지며, 암석들이 산산조각으로 터져나갔다.
허공을 가득메운 암석들의 파편에 시선을 고정했다.
5갑자에 달하는 내공이 깃든 내 주먹은 핵펀치를 능가하는 수준이었다.
나는 진정한 이 시대의 강자로 환골탈태했다.
압도적인 스피드와 점프력, 그리고 강력한 주먹, 총알에 맞아도 끄덕없는 강철 육체.
그런 탓일까.
수호신에게 내심 진심어린 감사인사를 올렸다.
그 후, 산 아래로 몸을 날렸다.
*
다음날.
나는 지하철을 타고 일반 고등학교로 등교하고 있었다.
재벌가 로열패미리와 거리가 먼 학교였다.
그런 때문인지, 나를 학교에 바래다주는 사람자체가 없었다.
완벽한 찬반 신세.
바로 나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성진그룹 이명석 회장의 막내아들임에도, 나는 평범한 일반학생과 마찬가지로 지하철을 이용해 등교했다.
김해숙의 하해와같은 배려 덕분이었다.
속으로 그녀에게 쌍욕을 퍼부으며 3학년 건물이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나는 강천의 기억을 200% 접수한 탓에, 녀석의 반이 어느 곳인지 잘 알고 있었다.
반에 들어서자, 학생들이 거의 모두 도착한 상태였다.
고 3이라 그런지 이른 아침부터 자습에 열중하는 모양이었다.
당연히 녀석들은 나를 없는 사람으로 취급했다.
걸핏하면 학교를 빼먹은 탓에, 녀석들은 나에 대해 아무 관심이 없었다.
존재감없는 그저그런 친구로 여긴 탓이다.
녀석들의 무관심을 온몸으로 만끽하며 맨 뒷자리에 착석했다.
아무 의미없는 참고서를 꺼내서 볼펜으로 낙서하는데 열중할 찰나.
담임 선생님이 교실에 나타났다.
그는 맨 뒷자리에서 낙서에 집중하는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일주일 동안 학교에 안 나온 이유가 뭐지?"
아버지와 큰엄마인 김해숙은 학교에 아무 연락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학교 측도 부모님에게 별다른 연락을 취하지 않은 것 같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무관심한 모양새였다.
선생님에게 입에서 나오는 대로 대충 둘러댔다.
"장염이 심해서요. 그래서 결석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름 의젓하게 대답한 탓일까.
선생님은 더 이상 나를 추궁하지 않았다.
예상대로 나에 대해서 별다른 관심이 없는 눈치였다.
*
이명석은 회사로 향하는 차 안에서, 옆에 동승한 김도형 비서실장을 향해 넌지시 말했다.
"막내가 왜, 갑자기 돈을 달라고 난리를 쳤을까?"
"코인이나 미국 주식에 투자할 생각인 것 같습니다."
"정말 그렇개 생각하나?"
"예. 요즘 젊은 친구들 사이에서, 미국 주식과 코인이 대세라고 하더군요 ."
이 회장의 얼굴이 잔뜩 찌푸려졌다.
그는 강천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사건건 부모에게 대드는 성격이 정말 싫었다.
이 회장은 원래 강천을 호적에 입적할 계획이 전혀 없었다.
허나 그의 친모인 윤경미가 숨을 거두기 직전에.
강천을 호적에 입적하지 않으면, 언론사에 모든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하자.
결국 그는 못 이기는 척 강천을 호적에 입적하고, 한남동 집으로 데려왔다.
허나 이 회장은 얼마안가 자신이 커다란 실수를 했다고 자책했다.
강천은 그와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장대한 기골이 그 증거였다.
강천은 키가 무려 193센치였다.
그리고 어깨도 넓었고, 팔다리도 길었다.
반면 이 회장은 160센치가 될까 말까한 작은 키와 좁은 어깨. 짫은 팔다리의 소유자였다.
누가 보더라도 강천은 그의 핏줄이 아니었다.
그런 때문일까.
이 회장은 남몰래 강천과 자신의 유전자 검사를 실시했다.
허나 놀랍게도, 유전자 검사결과 그와 강천은 99.99% 유전자가 일치했다.
하지만 이 회장은 여전히 강천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의 싸가지 없는 성격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100억을 주고 그와 연을 끊기로 결심한 것이다.
김도형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말 막내 도련님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집에서 내보낼 생각입니까?"
이 회장이 냉랭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정이 전혀 안가는 자식놈이 제발로 집구석을 나가겠다고 난리를 치는데, 내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지."
"그래도 남들의 시선이 있는데... 재고(再考)를 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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