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킬재벌 개망나니 2
우라은행에 개설한 강천개발의 법인 계좌에는 1억 5천만원이 예치되어 있었다.
찬수와 성곤, 영민은 강천개발의 지분 10%를 받는 대가로, 1인당 5천만원을 출자금 용도로 납입했다.
우라은행에 예치된 자금과 킹덤 캐피털에 예치된 40만 달러(5억 2천만원)를 모두 합할 경우.
내가 지금 현재 사용할 수 있는 가용 현금은 13억 7천만원 정도였다.
현오동 맹지를 일시불로 구입하기에는 많이 부족한 자금이었다.
허나, 나는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다.
맹지 구입 대금을 분할 납부하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목돈이 없어도 상관이 없었다.
계약금을 주고 맹지의 권리를 취득하자마자, 3종 주거지역으로 용도변경을 추진할 계획이었다.
이미 시의회 의장과 시의원 대다수를 포섭한 상태였다.
내 계획을 막을 수 있는 세력은 중원시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다음날.
강남 사무실에서 웹서핑을 하며 시간을 때울 무렵.
카드 배달원 아저씨가 사무실에 나타났다.
아저씨는 우라은행에서 발급한 강천개발의 법인카드를 나에게 전달한 뒤.
장내에서 재빨리 사라졌다.
법인카드를 지갑에 수납하자마자 곧바로 사무실을 나섰다.
그 뒤, 사무실 인근에서 성업 중인 렌터가 업체를 방문했다.
렌터카가 전시된 1층 로비에 들어서자, 직원이 가식적인 미소를 입가에 드러내며 나를 반겼다.
곧바로 그에게 용건을 밝혔다.
"법인 차량을 렌트하고 싶은데, 절차가 어떻게 되나요?"
"법인 렌트를 하고 싶으신가요?"
"네. 그럴 생각입니다."
"그럼 2층에 있는 사무실에서 자세한 대화를 나누시죠."
그리 말하며 2층 사무실로 나를 안내했다.
사무실에서 그와 진솔한 대화를 이어나갔다.
"법인 차량을 렌트하면 어떤 혜택을 받을 수 있나요?"
그가 즉답했다.
"법인 렌트의 경우 자동차세와 보험료가 렌트료에 모두 포함되어 있고, 비용처리도 간편하죠. 그리고 법인의 신용등급이나, 대출 한도에 영향을 미치지도 않습니다."
직원에게 다시 질문을 던졌다.
"장점만 말씀하신 것 같은데, 법인 렌트의 단점은 없나요?"
그가 쓴웃음을 지으며 솔직한 태도로 즉답했다.
"렌트카 전용의 하,허,호 차량 번호와 8천만원 이상의 고가 차량일 경우 연두색 번호판을 의무적으로 사용하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죠."
나는 차의 넘버링과 번호판 색깔에 아무 관심이 없었다.
자질구레한 허례허식 따위는 내 사전에 존재하지 않았다.
"차량을 1년 이상 장기 렌트할 경우, 비용이 얼마나 하죠?"
그가 친절한 태도로 답변했다.
"국내산 중형차를 기준으로 48개월 계약기간에, 연간 2만킬로의 주행거리를 표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렌트 차량 가격의 30%를 선납하시면, 한달에 30만원 정도의 가격에 이용이 가능하죠."
조금 이해 안되는 말이 있었다.
고개를 갸웃하며 그에게 재차 질문을 던졌다.
"렌트 차량 가격의 30%를 선납하라는 말이 무슨 뜻이죠?"
그가 즉답했다.
"선불 렌탈료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 조건으로 한달에 30만원의 저렴한 가격으로 차량을 이용할 수 있는 거죠."
"그럼 4년 만기가 되면 선납금한 돈은 0원이 되는 건가요?"
"맞습니다. 사장님. 대신 운행 차량이 고장이 나면, 동종 차량으로 즉시 대체하는 서비스를 제공 받으실 수 있습니다."
국내산 중형차의 차량 가격은 풀옵션 기준으로 대략 4천만원 수준이었다.
4천만원의 30% 수준이면 아무리 못해도 1,200만원이 넘을 것 같았다.
그런 탓일까.
렌트카에 천만원이 넘는 돈을 선납하는 게 조금 아깝게 생각됐다.
허나 렌트카는 나름의 장점이 많았다.
특히 자동차세와 보험료를 면제받는 게 컸다.
게다가 차가 고장이 나면, 다른 차로 즉시 교체받을 수 있었다.
자동차와 관련된 자질구레한 문제에서 해방되는 셈이었다.
"좋습니다. 차를 한번 보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저를 따라오시죠."
나는 그날, 강천 개발 명의로 성진자동차에서 출시한 중형 세단을 48개월 동안 렌트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그 대가로 1,100만원에 달하는 선납금을 일시불로 지불했다.
*
미국의 11월 대선에서 승리가 확실히 되는 민주당의 워렌스 후보는 한중일이 미국에 수출하는 자동차와 철강 품목을 대상으로, 징벌적인 반덤핑 과세 정책을 대선공약으로 발표했다.
워렌스는 미국의 자동차 노조와 철강 연맹 노조원들을 확실한 지지층으로 만들기 위해, 한중일 삼국에서 수출하는 자동차와 철강을 주요 타겟으로 선정했다.
당연히 그 중심에는 한국의 성진자동차와 성진철강이 있었다.
워렌스는 성진자동차와 성진철강이 미국에 수출하는 자동차와 철강에, 200%에 달하는 징벌적인 반덤핑 과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했다.
성진그룹의 이명석 회장 입장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형국이나 마찬가지였다.
늦은 밤.
성진호텔의 탑층에 위치한 펜트하우스에 이명석이 나타났다.
그는 펜트하우스에 조성된 라운지바에 착석한 채.
나홀로 칵테일을 음미하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그의 곁에 신현철 경제부총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회의가 길어지는 바람에 약속 시간에 늦게 되었습니다.
"이해합니다. 어서 자리에 앉으시죠."
이 회장은 그리 대꾸하면 신현철에게 의자를 빼주었다.
잠시 뒤.
그들은 칵테일을 음미하며 진지한 대화를 이어나갔다.
신현철이 조심스러운 태도로 말했다.
"지금 현재로서는 마땅한 해법이 없는 것 같습니다. 11월 대선 이후에 들어설 미국의 신정부와 본격적인 협상을 진행하는 게 최선으로 사료됩니다."
이 회장이 넌지시 되물었다.
"워렌스의 민주당 신정부를 염두에 두라는 말씀인가요?"
"네. 가드너의 공화당 정권은 이제 사실상 가망이 없으니, 워렌스 후보에게 로비를 하는 게 최선 같습니다."
그는 신현철의 말처럼 여유를 부릴 형편이 전혀 아니었다.
"미국의 반덤핑 과세 정책이 11월 대선 이후에 본격적으로 실시된다면, 손실금액이 조단위를 넘어서게 될 겁니다. 그리고 워렌스를 대상으로한 로비가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고."
"흐으음..."
신현철이 옅은 한숨을 내쉬며 뭔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그러기를 잠시 뒤.
진지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한국 정부 차원에서 미국 정부와 물밑 협상을 추진해 보겠습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회장님."
그말을 끝으로 장내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허나 이 회장은 전혀 안심할 수 없었다.
그는 워렌스가 미국 대통령이 될 경우.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반덤핑 과세 정책을 실행에 옮길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그래서였을까.
CIA에 줄을 대서, 이 난국을 타개하기로 내심 결론을 내렸다.
그는 마음을 정하자마자 CIA 지인에게 한통의 익명 메시지를 전달했다.
*
워싱턴 DC.
조지타운대학 인근의 공원에 레스터 CIA 국장과 이즈마엘 교수가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공원 벤치에 자리한 채.
나직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었다.
이즈마엘이 무덤덤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성진그룹의 이명석이 도움을 요청하더군."
레스터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그말을 왜, 내게 하는 건가?"
이즈마엘이 은근한 어조로 대꾸했다.
"이명석은 강천의 친부일세. 그러니 잘 생각해보게."
이즈마엘은 그리 말하며 장내에서 유유히 사라졌다.
벤치에 홀로 남은 레스터의 뇌리에 그럴 듯한 그림이 스치고 지나갔다.
성진그룹은 한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재벌집단이었다.
허나 강천은 서자 출신인 탓에, 성진그룹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평소 레스터는 그점을 아쉽게 생각했다.
그는 강천에게 성진그룹의 요직을 안겨주기로 마음먹었다.
강천의 이용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함이었다.
며칠 뒤.
뉴욕 미드타운 인근의 고급 레스토랑에 이명석과 레스터가 나타났다.
그들은 점심 오찬을 즐기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명석이 본론을 꺼냈다.
"민주당의 워렌스 대선 후보가 성진자동차와 성진철강을 대상으로한 징벌적인 반덤핑 과세 정책을 대선공약으로 내세우는 바람에, 저희 그룹이 아주 난처한 입장이에요."
레스터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래서 말인데, 국장님이 저희 그룹에 도움을 주시면 이 은혜를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죄송하지만 저에게는 그만한 힘이 없습니다."
명석이 간절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국장님이 워렌스와 막역한 친분을 갖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어요. 그러니 제발 이번 한번만 도움을 주십시오."
그리 말하며 테이블 위에 백지수표를 올려놓았다.
"수표에 원하시는 금액을 기입하시면, 그에 상응하는 돈을 국장님이 지정하시는 계좌에 곧바로 입금하겠습니다."
명석이 비장의 한수를 꺼내든 덕분일까.
레스터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러기를 잠시 뒤.
백지수표에 1천만 달러를 기입했다.
명석이 백지수표를 확인하며 물었다.
"원하시는 계좌를 알려주십시오."
레스터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백지수표에 비밀 계좌를 적어넣었다.
그는 명석에게 백지수표를 되돌려주며, 나직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이번 일에는 강천의 조력이 필요합니다."
명석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워렌스 후보와 강천의 사적인 인연이 아주 깊습니다."
명석의 얼굴 가득 놀란 표정이 번져갔다.
"그 말씀이 정말인가요?"
레스터가 고개를 끄덕이며 즉답했다.
"워렌스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서는 강천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저 혼자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죠."
명석은 그의 말이 당최 믿기지 않았다.
"솔직히 저는 국장님의 말씀이 믿기지 않는군요."
레스터가 빙긋 웃으며 대꾸했다.
"강천은 회장님의 생각 이상으로 출중한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강천에게 그룹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십시오."
명석이 뭔가를 눈치챈 얼굴로 질문을 던졌다.
"국장님이 내 아들놈을 관리하는 겁니까?"
레스터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고급 포도주 한모금을 입안으로 가져갔다.
그같은 모습을 유심히 관찰한 명석이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놈을 위험한 일에 끌어들이지 마십시오."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절대 그럴 일은 없으니까."
그제야 명석이 다소 안심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들놈이 카투사에 입대한 것도 국장님이 힘을 써준 건가요?"
이번에도 레스터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흔히 말하는 무언의 긍정이었다.
*
성진자동차의 세단을 몰고 일산 자유로를 질주할 무렵.
아이폰에 영감님의 익명 메시지가 들어왔다.
[조만간 자네 부친인 이명석 회장이 뭔가를 부탁할 걸세.]
[그 대가로 자네는 성진그룹의 경영에 참가할 기회를 모색하게.]
뜬금없는 메시지였다.
지금은 선불폰이 없었다.
결국 호텔방으로 전속력으로 차를 몰았다.
영감님에게 메시지를 전송하기 위함이었다.
호텔방에 들어서자마자 서재로 들어갔다.
책상 서랍에서 선불폰과 유심칩을 꺼냈다.
선불폰에 유심칩을 삽입한 뒤, 영감님에게 익명 메시지를 전송했다.
허나 영감님은 내 메시지를 읽고 씹었다.
그후로도 여러개의 익명 메시지를 전송했으나, 영감님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사람을 열받게 하는 태도였다.
끓어오르는 화를 가까스로 가라앉힐 찰나.
아이폰이 요란한 울음을 토했다.
폰을 귓가에 가져가자 이 회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당장 만났으면 하는데, 어디로 가면 되느냐?
"갑자기 무슨 말씀이시죠?"
-너에게 할 말이 있어서 그래.
이 회장 답지않게 사근사근한 말투였다.
영감님이 보내온 메시지가 사실인 모양이었다.
정말 이 사람이 나에게 부탁할 일이 있는 건가?
속으로 그같은 생각을 하며 나직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강남역 근처에 있는 스타벅스 3층 창가로 오늘 밤 9시까지 오세요."
그리 대꾸하며 내 멋대로 전화를 끊었다.
이 회장의 마음 따위는 내 알 바 아니었다.
그날 밤.
강남역 인근의 스타벅스 3층 창가에서 카라멜 마키아토를 음미하는 한편.
창밖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드디어 이 회장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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