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초강대국 미국의 쓸쓸한 퇴장 1
늦은 밤.
청와대 관저의 응접실에서 이명수 경체부총리와 밀담을 나눴다.
이명수가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미국과 서유럽, 중국, 러시아의 증시가 연일 대폭락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1929년의 대공황을 능가하는 수준입니다."
"그런 이유로 서유럽 각국에서 대한신국의 원화를, 달러화를 대체하는 기축통화로 지정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에게 물었다.
"미국의 반응이 궁금하군요."
"당연히 아주 불쾌한 반응을 드러내는 중입니다. 원화를 기축통화로 지정해야 한다는 서유럽 각국의 정상들에게 노골적인 반대의견을 표명했다고 하더군요."
명수의 생각이 궁금했다.
"부총리님은 대한신국의 원화를 기축통화로 지정하는 문제에 대해서 찬성하시나요?"
그가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즉답했다.
"미국은 이제 전 세계의 경제를 선도할 역량이 없습니다. 국토의 4분의 1이 대지진의 여파로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심각한 흑백 인종갈등으로 인해 국내 치안이 엉망인 상황이죠."
명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더구나 미국은 자국산업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들먹이며 징벌적인 반덤핑 관세를 밥먹듯이 부과하는 패악질을 일삼고 있습니다."
그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미국은 세계 경제의 암적인 존재로 등극한지 이미 오래였다.
기축통화국의 자격이 오래전에 사라진 상황이었다.
"게다가 우리 대한신국에는 전 세계 시민들이 300년 이상 사용할 수 있는 양질의 석유가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높은 개인 소득을 자랑하는 11억 명의 인구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기축통화국의 자격이 충분한 거죠."
그에게 넌지시 물었다.
"영국과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이 우리 한국의 원화를 기축통화로 원하는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교황님."
"그들 나름대로 원하는 게 있을 것 같은데...? 그점을 파악하셨나요?"
"어느 정도 파악한 상탭니다."
"서유럽 국가들이 진짜로 원하는 게 뭐죠?"
명수가 기다렸다는 듯 즉답했다.
"전 세계 경제를 좀 먹는 보호무역주의의 완벽무결한 철폐입니다."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정책을 완전히 폐기하라는 뜻인가요?"
"그렇습니다. 진정한 자유무역주의를 대한신국이 표방해 주기를 원하는 것 같습니다."
그에게 나직한 어조를 내뱉었다.
"한국의 원화를 기축통화로 지정하는 문제에 대해서 고민을 해봅시다."
"알겠습니다. 결심이 서시면 저에게 말씀을 해주십시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나가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창밖에 시선을 던지자 인왕산 정상에 자리잡은 거대한 암석이 시야에 들어왔다.
대한신국은 전 세계 최고 최대의 경제대국이었다.
군사력도 미국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증강된 수준이었다.
육군 병력은 200만 명에 달했고. 해군 전력 역시 미국을 제외하면 상대가 없는 레벨이었다.
게다가 8세대 스텔스 전투기도 7천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모두 한국의 자체 방산기술로 만든 녀석들이었다.
미국을 대체하는 세계의 경찰 국가 노릇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역량이 있었다.
더군다나 한국에는 전 세계 인들이 수백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양질의 원유가 매장된 상태였다.
대한신국은 기축통화국의 기본 조건인 압도적인 내수시장과 석유자원, 막강한 군사력을 두루 보유하고 있었다.
원화가 기축통화로 지정된다면 세계 경제는 대한신국을 중심으로 돌아가게 된다.
한국이 원하는 대로 경제 정책을 펼칠 수 있고, 통화량의 조절도 한국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전 세계가 한국의 눈치를 보게 된다.
더불어 저렴한 공산품을 전 세계 각지에서 공급 받을 수 있었다.
물가 안정 측면에서 국민들에게 많은 혜택이 돌아가는 셈이다.
당연히 한국의 질 좋은 공산품도 세계 각지에 자유롭게 수출할 수 있었다.
보호무역주의가 완전하게 철폐된, 진정한 자유무역주의 덕분이었다.
속으로 그같은 생각을 할 찰나.
이용현 비서실장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김의철 국정원장이 독대를 요청했습니다."
"급한 일인가요?"
"그래보였습니다."
"그럼 내 앞으로 데려오세요."
"예. 교황님."
잠시 후, 김의철이 내 앞에 나타났다.
그가 침중한 얼굴로 보고를 올렸다.
"미국 남부의 12개주가 남부연합을 결성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확실한 정보인가요?"
"네. 현지 언론에도 파다하게 소문이 나돌고 있을 정돕니다."
"남부 11개 주가 정확히 어느 지역이죠?"
김의철이 즉답했다.
"텍사스 주를 필두로 루이지애나 주, 아칸소 주, 미시시피 주, 캔자스 주, 아이오와 주, 미주리 주, 오클라호마 주, 앨라배마 주, 테네시 주, 조지아 주 등입니다."
그에게 물었다.
"지진 피해에서 운좋게 벗어난 지역들 인가요?"
"맞습니다. 그리고 대다수 백인들로 구성된 인종분포를 자랑하는 지역들입니다. 한마디로 순수 백인 국가 창설을 목표로 남부연합을 구성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후, 안쪽에 조성된 홈바로 걸어갔다.
그 후, 홈바에서 마니티를 음미하며 면전에 공손히 서 있는 의철에게 재차 질문을 던졌다.
"남부 11개 주의 인종 분포를 말씀해 보세요."
그가 즉답했다.
"백인이 대략 92퍼센트 정도고, 라틴계가 7퍼센트, 흑인이 1퍼센트 안팎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의철의 보고가 확실하다면 남부 11개 주는 백인 국가 창설을 목표로 하는 게 틀림없어 보였다.
"11개 주의 대표자가 결정되었나요?"
"현지에서 전해오는 정보에 의하만 텍사스 주의 쿠오모 주지사가 남부 연합의 초대 대통령이 유력한 것 같습니다."
"그럼 남부 연합의 수도가 오스틴이 되는 건가요?"
"그럴 확률이 높습니다. 그리고 남부 연합은 결성하는 즉시 '아메로'라는 자체 통화를 발행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국이 망해가는 게 틀림없었다.
"남부 연합의 발족 시기를 파악하셨나요?"
"며칠 내로 남부 연합이 출범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습니다."
"미국 연방이 수수방관할 것 같지 않은데, 뭔가 군사적인 충돌이 발생할 여지가 없나요?"
의철이 부정적인 견해를 표명했다.
"미국은 50개 주로 이루어진 연방국가입니다. 그말은 주마다 자체적인 주방위군이 존재한다는 의미죠. 그리고 당연히 주방위군의 최고 통수권은 주지사가 갖고 있습니다."
"남부 연합을 군사적으로 압박하는 순간 제 2의 남북전쟁이 발발하는 것과 진배 없다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연방 정부가 남부 연합에 손을 댈 수 없다는 말로 들리는군요."
"현실이 그렇습니다. 교황님."
"일단 두고봅시다. 진짜 남부 연합이 출범하는지."
그를 내보낸 뒤.
찬수를 면전에 호출했다.
그에게 저간의 사정을 설명한 뒤.
나름의 지침을 하달했다.
"남부 연합이 공식적으로 출범하면,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남부 연합과 국가 관계를 수립하는 조치에 착수하세요."
찬수가 놀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남부 연합을 국가로 인정하면 미국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어차피 미국은 종이 호랑이에 지나지 않아요."
그리 대꾸하며 입가에 담배 한개피를 베어물었다.
그 후, 찬수를 향해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내 의중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번 기회에 남북으로 분단된 미국과 등거리 외교(어떤 국가와도 특별한 관계를 맺지 않는 외교 방식)를 펼치면서 대한신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정책을 펼치는 게 상책이에요."
허나 찬수는 여전히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미국을 쓸데없이 자극하는 정책은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일단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천천히 대응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고개를 저으며 완강한 어조를 내뱉었다.
"남부 연합을 국가로 인정하는 조치를 취하는 대가로, 대한신국의 원화가 기축통화로 지정되는 문제에 관해서 그들의 지지를 받을 생각이에요."
"그래도 저는 미국이 걱정됩니다."
찬수는 그리 말하며 고심이 역력한 표정을 지었다.
"쓸데없는 걱정은 몸에 해로워요. 그러니 내가 지시한 대로 남부 연합과 국가 관계를 수립할 준비에 착수하세요."
그러나 오늘따라 그의 노파심은 끝간데를 모를 정도였다.
그런 탓인지 찬수의 입에서 잔소리가 끊이지 않고 새어나왔다.
"대지진의 여파로 국토의 4분 1이 사라졌고, 경제도 엉망에다가 치안마저 개판오분전으로 변한 미국이 무슨 짓을 할지 알 수가 없습니다."
"무슨 말인지 잘 알겠으니까, 이만 나가보세요."
그제야 찬수가 잔소리를 중단하고 장내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며칠 후.
청와대 집무실에서 TV 뉴스에 이목을 집중했다.
-텍사스 주 오스틴의 주청사 건물에서 남부 연합 11개 주의 공식적인 선포식이 거행됐습니다.
-남부 연합을 대표하는 초대 대통령에 선출된 텍사스 주의 쿠오모 주지사는 강력한 반이민 정책과 백인 국가 건설, 미국을 좀먹는 PC 문화 근절을 주요 공약으로 발표했습니다.
-남부 연합은 조만간 '아메로'라는 공식 통화를 발행하고, 세계 각국과 정식으로 국교를 체결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반면 미국 연방의 럼스팰트 대통령은 남부 연합의 주지사들이 공개적인 반란행위를 즉각 중단하고 연방에 복귀하라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미국 연방과 남부 연합이 군사적으로 충돌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중략...
국정원장의 보고대로 남부 11개 주를 중심으로 하는 남부 연합이 공식적으로 출범하는 모양새였다.
이제 남부 연합의 대통령으로 선출된 쿠오모에게 전권 특사를 보낼 순서였다.
마음을 정하자마자 올리버의 위성폰으로 한통의 전화를 걸었다.
*
텍사스 주 오스틴에 위치한 남부 연합 대통령의 관저에 올리버가 나타났다.
얼마 후, 그는 관계자의 안내를 받으며 쿠오모 남부 연합 대통령의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올리버와 쿠오모는 악수를 교환한 뒤.
배석자 없이 밀담을 나눴다.
올리버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대한신국 정부는 남부 연합과 공식적인 국교 수립을 원하고 있습니다."
쿠오모가 반색하는 얼굴로 확인한 듯 되물었다.
"그 말씀이 정말인가요?"
"네. 사실입니다. 교황님이 저에게 직접 전해준 얘기니까 믿으셔도 좋습니다."
쿠오모가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정말 소문대로 대한신국의 교황님과 호형호제를 하시는 겁니까?"
"뭐, 그렇다고 보시면 될 겁니다."
올리버가 자부심 가득한 얼굴로 그리 대꾸하자, 쿠오모의 얼굴 가득 부러워하는 표정이 역력해졌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태양신교의 독실한 신자입니다. 그런 이유로 오래전부터 교황님을 뵙고 싶었습니다."
올리버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교황님을 영접할 기회를 저에게 주실 수 있으십니까?"
"교황님을 영접하고 싶으신가요?"
"예. 제 일평생의 소원이었습니다."
"알겠습니다. 제가 교황님에게 대통령 각하의 말씀을 전해 드리죠."
순간 쿠오모가 감격한 얼굴로 올리버의 손을 두손으로 공손히 마주잡았다.
"고맙습니다. 이 은혜를 죽을 때까지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별말씀을. 아무튼 대한신국은 남부 연합과 공식적인 국교 수립을 맺고 싶어합니다. 그 대가로 원화를 기축통화로 지정하는데 전폭적인 지지를 원하더군요."
쿠오모가 고개를 끄덕이며 화답했다.
"국교를 수립해 주신다면 대한신국의 원화를 기축통화로 지정하는 문제에 대해서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조만간 교황님과 자리를 만들어 드리죠."
올리버는 시카고의 별장으로 향하는 전용기 안에서 미국의 앞날을 걱정했다.
미국은 이제 찬란했던 과거의 영광이 모두 사라진 상태였다.
대지진의 여파로 국토의 4분 1이 사라졌고, 경제는 대공황을 능가하는 수준으로 급전직하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시민들은 치안이 부재된 현실 속에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었다.
북미 전역에서 범죄가 들끓은 것이다.
반면 경찰력은 형편 없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천달러 미만의 범죄는 기소하지 않는다는 법률 덕분에.
미국은 범죄자들의 천국으로 전락한지 오래였다.
그런 참담한 상황 속에서, 남부 11개 주가 남부 연합을 결성하고 미국 연방에서 하루아침에 탈퇴했다.
초강대국 미국에 사형선고가 내려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 작가의말
선작 추천 부탁해요.
Comment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