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빌어먹을 세상 따위 4
"정찬수 지검장의 인적사항을 알려주세요. 본인과 와이프, 자식들까지 모두 다."
김문성이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정찬수는 강남 8학군 부잣집 출신이고, 와이프도 마찬가지로 상류층 집안 출신이라고 하더라."
고개를 저으며 그에게 말했다.
"그런 피상적인 정보 말고, 우리가 치고 들어갈 만한 빈틈이 있는 정보를 말해보세요."
녀석이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나름 쓸만한 정보를 알려왔다.
"외동아들이 고등학교에서 사고를 치는 바람에 미국 대학으로 도피 유학을 갔다는 소문이 있기는 한데... 나도 자세한 건 모르겠어."
"어느 대학이죠?"
"캘리포니아 쪽 대학인가봐."
"그놈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세요."
"한번 알아볼게."
"정보를 파악하는 즉시 연락을 주세요."
"오케이."
다음날.
김문성이 내 호텔방에 다시 나타났다.
녀석의 손에는 갈색 봉투가 들려있었다.
그가 건넨 봉투 속에는 정찬수 지검장의 외동아들인 정민혁의 내밀한 정보가 들어있었다.
녀석에게 물었다.
"정민혁이 같은 학교 여고생을 정말 성추행 했나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건을 어떻게 무마한 거죠?"
"당연히 부모 빽을 썼겠지."
충분히 납득이 되는 설명이었다.
정찬수는 저 하늘에 날아다니는 새마저도 떨어뜨릴 수 있는 중앙지검장이었다.
중앙지검장은 현직 대통령조차 소환조사할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었다.
그런 탓일까.
재벌과 고위 공직자, 정치인들은 특수부를 총괄하는 중앙지검장을 극도로 두려워했다.
무소불위의 기소권과 수사권을 독점한 탓이다.
외동아들의 성추행 사건을 무마하는 건, 그의 입장에서 일도 아니었다.
일반 시민에 불과한 피해자들이 무슨 재주로 중앙지검장의 아들을 고소할 수 있겠는가.
"정민혁이 지금 어느 대학에 있죠?"
"캘리포니아에 있는 UC 버클리 대학."
나는 정민혁의 사진에 시선을 모았다.
야비함과 오만함이 공존하는 쓰레기 같은 눈빛과 쌍판데기였다.
얼굴을 보기만 했을 뿐인데, 괜스레 화가 치밀었다.
그 정도로 낯짝이, 사람을 열받게 만드는 스타일이었다.
머릿속에서 그럴 듯한 그림이 그려졌다.
그 방법을 사용하면 일을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이 방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영감님의 막강한 권력이 필요했다.
그의 도움이 없으면 내가 그리는 그림이 완성될 수 없었다.
문성에게 넌지시 말했다.
"선배님이 점찍어둔 맹지나 보러 갑시다."
"나도 그러고 싶은데, 오늘은 급한 선약이 있거든. 나중에 보러 가면 안될까?"
녀석은 씨알도 안먹힐 핑계를 대고 있었다.
말하는 태도를 보아하니, 나에게 맹지를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는 눈치였다.
내 성격은 직진이었다.
말을 빙빙 돌리는 걸 제일 싫어한다.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솔직히 말해보세요. 나에게 맹지를 보여주기 싫은 거죠?"
녀석이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내 눈치를 살폈다.
그러기를 잠시 뒤, 변명하듯 말을 늘어놓았다.
"투자금도 납입하지 않았고, 그리고 아직 중앙지검장 일도 처리하지 못했잖아. 그래서 그런 거니까 니가 좀 이해해주라."
그에게 단호한 어조를 내뱉었다.
"그건 내 알바 아니고요. 내일 맹지를 보여주세요. 만약 내 요구를 끝까지 거부하시면, 저는 이 일에서 발을 뺄게요."
내 완강한 태도가 먹혔음인지, 문성이 체념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내일 오후 1시에 호텔 앞에서 만나자."
그 말을 끝으로 내 호텔방에서 도망치듯 자취를 감췄다.
*
오후 1시경.
호텔 앞으로 나가자 문성이 고급 외제차를 끌고 내 앞에 나타났다.
우리는 곧장 경기도 인근의 중원시로 향했다.
1시간 정도가 지났을 무렵.
창밖에 야산과 도로에 둘러싸인 아무 쓸모없는 땅이 보였다.
우리는 차에서 내린 뒤, 본격적인 임장(臨場)에 나섰다.
맹지는 생각 이상으로 방대한 면적이었다.
녀석에게 넌지시 물었다.
"평수가 얼마나 되죠?"
"1만평이 조금 넘을 거다."
"이 정도 넓이면 아파트를 얼마나 건설할 수 있나요?"
"3종 주거지역으로 용도변경이 된다면, 30평대 기준으로 4천 세대 이상을 건설할 수 있겠지."
그에게 재차 질문을 던졌다.
"3종 주거지역으로 용도변경이 되면 몇층까지 아파트를 올릴 수 있는 거죠?"
"원래는 50층 이상까지 올릴 수 있지만, 채산성 문제로 49층이 한계라고 생각하면 될거다."
"50층 이상까지 올릴 수 있는데, 왜 49층에서 멈추는 거죠?"
그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50층 이상까지 올리면 까다로운 소방법 때문에 각종 규제가 엄청 심해지거든. 그리고 50층부터 기술적으로 공사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고 하더라."
귀에 쏙쏙 박히는 문성의 친절한 설명이었다.
맹지와 주변 풍경에 시선을 모았다.
맹지가 위치한 지역은 강남 배후에 해당하는 장소였다.
자차 기준으로 1시간 정도면 강남 진입이 가능한 곳이었다.
이런 곳에 신축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선다면 30평대 기준으로 최소 10억 이상을 호가할 가능성이 높았다.
더군다나 몇년 뒤면 수도권 아파트가 대폭등에 접어들 시기였다.
30평 아파트 기준으로 20억도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그런 탓일까.
나는 엄청난 돈냄새를 맡은 기분이었다.
그에게 나직한 어조로 질문을 이어갔다.
"토지 주인이 누구죠?"
그가 즉답했다.
"이 땅은 중원시 소유야. 김상곤 시장이 그래서 중요한 거지."
그의 말에 십분공감했다.
"그의 문제를 해결해준다면 이 맹지를 헐값에 구입할 수 있나요?"
녀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그리고 용도변경까지 된다면, 우리는 앉은 자리에서 떼돈을 버는 셈이지."
맹지 주변을 유심히 관찰했다.
맹지 뒤편에는 나지막한 야산이 있었고, 3면은 도로에 포위된 형국이었다.
아파트가 들어선다면 야산을 통해서 신설 도로와 출입구를 내야 할 것 같았다.
우리는 임장을 끝마친 뒤, 차를 타고 강남으로 되돌아왔다.
그날 밤.
호텔의 중식당에서 짜장면과 짬뽕으로 늦은 저녁 식사를 해결한 후.
디저트로 나온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카푸치노를 음미하며, 부동산 시행사업에 관해서 진지하게 고민했다.
큰돈이 될만한 잠재력을 가진 맹지를 둘러본 탓일까.
부동산 개발사업을 내가 직접 해보고 싶은 욕망에 불타올랐다.
이제 더 이상 문성은 필요 없었다.
그가 없어도 내가 얼마든지 부동산 개발사업을 할 수 있었다.
돈이 될만한 토지와 섭외할 인물들의 정보를 모두 파악한 탓이다.
그가 설립한 부동산 개발회사에 투자할 필요가 없었다.
내 힘만으로도 모든 걸 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 뒤에는 무소불위의 파워를 자랑하는 CIA의 레스터 부국장이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5갑자에 달하는 경이적인 힘이 있었다.
힘과 배경 모든 걸 일신에 완비한 셈이었다.
문성에게는 미안하지만, 나 혼자 모든 걸 독식하기로 작심했다.
원래 자본주의 사회는 능력자가 모든 걸 독차지한다.
나는 그저 자본주의 룰에 순응할 뿐이다.
녀석이 나를 비난하거나 말거나, 내 알 바 아니었다.
스트롱 인베스트먼트의 한국 자회사 명의로 부동산 개발회사를 설립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자세한 내용은 법무사에게 문의를 해봐야 알 것 같았다.
다음날.
30대의 동양인 위장 마스크를 쓰고 강남구청 인근의 법무사를 방문했다.
소파에 앉자마자 법무사에게 문의를 넣었다.
"외국 법인이 부동산 개발회사를 설립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가 친절한 얼굴로 대답했다.
"주식회사의 경우에는 자본금이 최소 5억 이상이 필요하고요. 주식회사가 아닌 경우에는 출자금이 5억 이상이어야 법인 설립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국내 영업소 설치등기도 필요하고, 상근직원 2명을 고용하셔야 할 거에요."
"사무실도 필요한가요?"
법무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본론으로 진입할 차례였다.
그에게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법인설립을 대행해 주시나요?"
"일정 액수의 수수료를 지불해 주시면 제가 책임지고 법인 설립을 완료해 드리겠습니다."
"수수료가 얼마죠?"
"200만원입니다."
"사무소 등기도 필요한가요?"
"예. 법인설립을 신청할때 사무소 등기도 필요합니다."
그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지금 사무실을 구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해야 하죠?"
"사무실을 구하시면, 저에게 주소를 보내주세요.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사무소 등기를 해드리죠."
마음에 드는 서비스였다.
"좋습니다. 그럼 오늘 계약금으로 20만원을 드릴테니까 법인 설립 일체를 대행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사장님."
법무사와 법인설립 대행 계약서를 작성한 뒤.
그에게 계약금 명목으로 20만원을 건네며, 나직한 어조로 말했다.
"회사 이름은 '강천개발'로 해주세요."
내 이름을 본 뜬 법인명이었다.
"예. 사장님."
"사무실을 얻으면, 곧바로 사무소 주소를 문자로 보내드릴게요."
"그래주시면 저야 고맙죠."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법무사에게 작별 인사를 전했다.
"나중에 다시 올게요."
법무사가 나를 따라서 몸을 일으키며 정중한 태도로 명함을 건넸다.
"명함에 나온 연락처로 언제든지 연락을 주십시오. 사장님."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사무실을 나섰다.
법무사 사무실 주변에는 부동산 사무실들이 많았다.
나는 그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부동산 중개업소로 들어갔다.
강천개발의 사무실을 구하기 위함이었다.
부동산 사장에게 문의를 넣었다.
"10평 내외의 사무실이 필요한데, 물건이 나온 게 있나요?"
그가 반색하는 표정을 지으며 화답했다.
"때마침 이 근처에 아주 좋은 사무실이 공실로 나왔는데, 관심이 있으신가요?"
"잘됐네요. 지금 볼 수 있나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저를 따라오시죠."
"그럽시다."
부동산 사장은 5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사무실을 나에게 소개해 주었다.
15층에 위치한 사무실이었다.
평수는 12평 내외였고.
사무실 안에는 책상과 소파, 회의용 테이블 등의 집기가 놓여져 있었다.
"사무용 가구는 기본 옵션인가요?"
"예. 기본 옵션입니다."
"보증금과 월세가 얼마죠?"
"보증금은 5천만원이고, 월세는 130만원입니다."
가격도 적당해 보였다.
"오늘 당장 계약이 가능한가요?"
그러자 부동산 사장이 반색하는 얼굴로 화답했다.
"당연히 얼마든지 가능하죠. 헤헤헤...!"
나는 그날, 보증금 5천만원 월세 130만원에 강남 사무실을 임차헸다.
*
오후 5시 무렵.
중앙지검 인근의 벤치에 자리한 채.
머릿속에 나름 멋드러진 그림을 그려나갔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내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떠올랐다.
나는 채찍과 당근을 유효적절하게 구사할 계획이었다.
타겟은 정찬수 중앙지검장이었다.
그를 내 심복으로 만들 속셈이었다.
나에겐 그만한 능력이 있었다.
CIA 조직의 무소불위한 권력과 초인적인 신체능력을 일신에 두루 구비한 까닭이다.
정찬수를 잘만 활용하면 조단위의 부동산 개발 이익을 수년 안에 쟁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여러번 생각해도 결론은 같았다.
그 즈음, 중앙지검의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오는 관용차량이 시야에 포착됐다.
짙은 선팅을 했지만 천안통을 시전한 나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
내 시선은 뒷좌석에서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나누는 50대 남성에게 모아졌다.
그가 바로 정찬수 지검장이었다.
내 목표물이었다.
나름의 상견례를 끝마친 뒤, 호텔로 발걸음을 옮겼다.
호텔방에 들어서자마자 선불폰에 새로운 유심을 삽입했고.
곧바로 영감님에게 익명 메시지를 전송했다.
<UC 버클리에 재학중인 한국인 정민혁을 마약 밀매 사범으로 체포해 주십시오. 녀석의 나이는 미국 나이로 21살입니다.>
잠시 뒤.
영감님의 익명 메시지가 아이폰에 들어왔다.
<아드레노의 코인 지갑 주소를 찾으라고 한국에 보냈더니, 지금 대체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건가? 자네는 내가 명령한 일에만 신경을 쓰게.>
선불폰에 다른 유심칩을 끼우자마자, 다시 익명 메시지를 전송했다.
<아드레노와 관련됐을 가능성이 있어서 그런 거에요. 그러니 묻지도 따지지도 마시고, 지금 당장 정민혁을 마약밀매 혐의로 체포하세요.>
직후, 영감의 짤막한 메시지가 아이폰에 재차 들어왔다.
<이번 한번만 속는셈치고 자네의 말대로 해주겠네.>
레스터 부국장은 아낌없이 퍼주는 노인네였다.
그래서 내가 이 영감님을 좋아한다.
- 작가의말
선작 추천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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