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打擊
마음을 달리 먹으면 세상이 달라보인다.당문호는 결심한 대로 매일 아침 내공수련을 한시간으로 늘렸다.그리고 수비연습,도루연습에도 매진하였고,스윙연습 시간도 늘렸다.타격훈련 시 홈런을 우선적으로 노리던 버릇을 버리려고 노력했고,애매한 공에도 과감히 배트를 휘둘렀다.
예전에 투수가 공을 던진 후 당문호는 가장 먼저 홈런이 가능한지 판단한다.홈런이 불가능 하다 판단될 경우,안타를 칠수 있는지 가늠한다.구속이 빠르거나 구위가 좋은 공은 타격 타이밍을 잃는다.하지만 홈런이 가능한지보다 타격이 가능한지만 판단하면 더 많은 공을 타격할 수 있다.타격스킬이 좋은 당문호라 홈런이 오히려 더 많아질수도 있다.
홈으로 돌아와 6연전을 준비하게 되었다.우선 맞이한 상대는 로키스이다.4선발 카알이 6이닝 5실점으로 승수는 따내지 못했지만 타선의 폭발로 팀의 승리를 따냈다.당문호는 9회에 3루타를 예상하고 친 공이 홈런이 되는 행운도 맞이했다.
그 다음 경기에 5선발 페드로프가 등판해서 똑같이 6이닝 5실점을 했지만 패전투수가 되었다.당문호는 전타석 안타를 쳤지만 홈런은 없었고 1번타자 람의 1회 솔로홈런이 유일한 득점이었다.
로키스와의 3연전 마지막 경기에 에이스 하인리히가 7이닝 무실점으로 시즌 2승째를 챙겼다.점수차가 많이 나는 상황이라 로버츠는 등판하지 않고 벨이 경기를 마무리했다.연속 위닝 시리즈로 팀의 사기가 하늘을 찔렀다.당문호도 홈런은 없지만 안타로 여러개의 타점을 챙겼다.
뒤이은 홈 3연전 상대는 디백스였다.2선발 호세가 6이닝 3실점으로 마운드를 내려간 뒤 불펜이 대량실점을 하였다.당문호는 큰 점수차로 뒤진 상황에 투런 홈런 하나를 때려냈다.팀은 6점차로 패했다.
이어진 2차전에서 테일러가 선발등판했다.4선발 카알이 믿음직한 카드는 아닌지라 스윕패를 면하려면 이번 경기는 꼭 잡아내야 한다.그래서 투수나 야수나 각오가 이전 경기들보다 남달랐다.
위기는 1회부터 있었다.심판의 좁은 스트라이크존에 적응하지 못한 테일러는 디백스 1,2번 타자를 볼넷으로 연속 출루시켰다.3번 타자가 테일러가 스트라이크 잡으려고 던진 바깥쪽 낮은 코스의 직구를 강하게 때렸다.안타를 직감한 두 주자는 타격을 확인함과 동시에 주루플레이를 하였다.
당문호는 타자가 타격을 하는 순간부터 귀에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주변 사물들이 부옇게 보이면서 타구가 천천히 투수의 왼손편으로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느리게 움직이는 공을 향해 뛰어가 공을 잡자마자 갑자기 무음으로 돌렸던 티비의 소리를 다시 켠 것처럼 오만가지 소리가 귀를 때렸다.
포수 비에리의 2루로 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경황이 없는 와중에 당문호는 재빨리 2루로 달려갔고,코앞까지 온 1루주자를 터치아웃 시켰다.그리고 뭘 해야 할지 몰라 포수를 바라보는데 동료들이 달려와서 당문호를 두들겼다.
이닝이 끝났다는 것을 안 당문호는 긴장을 풀었고,자신을 위해 기립박수를 해주는 홈팬들을 향해 꾸벅 인사를 했다.당문호덕에 위기상황에서 벗어난 테일러는 당문호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뽑아들었다.
당문호의 호수비로 팀의 사기가 올랐다.좁은 스트라이크존은 디백스 투수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었다.1회말부터 상대팀 투수를 두들기기 시작한 자이언츠 타선은 람과 미니의 연속 안타로 무사 2,3루를 만들었고 토머스가 희생타로 두 사람을 홈으로 불러들였다.
4번타자 에디슨이 볼넷으로 출루한 뒤 5번타자 하인스는 범타로 물러났다.6번타자 로멜로는 볼로 판단한 공을 주심이 스트라이크 판정을 내려 삼진으로 물러섰다.
2회에 테일러는 세명의 타자를 전부 범타처리했다.3개의 뜬 공을 2개는 당문호가 잡았고 1개는 3루수 토머스가 잡았다.흥이 오른 홈팬들은 평범한 수비에도 환호와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2회말 당문호는 솔로홈런으로 공격의 포문을 다시 열었다.백업포수와의 기량차이 때문에 출전경기수가 많아 후반기에 항상 체력적인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비에리가 3루타를 치고 출루했고,테일러가 희생플라이를 날려 타점을 하나 올렸다.1아웃 상황에서 람과 미니가 연이어 출루했고 토머스의 2루타가 2타점을 올렸다.에디슨의 잘 때린 타구는 아쉽게도 호수비에 막혔고 토머스는 3루까지 진출했다.하인스가 포수 플라이로 물러나면서 타자일순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3회에는 좌익수 미니가 멋진 수비를 보이며 실점을 막았다.연속 두타자를 내야 땅볼로 막은 테일러는 마지막 타자를 상대로 실투를 던졌다.다행스럽게도 타구판단을 일찍 한 미니가 슬라이딩까지 해가며 공을 포구해서 실점을 막았다.
연이은 호수비덕에 무실점으로 3회까지 막아낸 테일러는 오늘 호수비를 한 야수들에게 저녁식사를 대접할 것을 약속했다.타선이 연이어 터지고 호수비도 잇달아 터지는 상황에서 더그아웃이나 관객석이나 분위기가 더 좋을 여지가 없었다.
3회말 당문호는 2루타로 로멜로를 홈으로 불러들여 타점을 하나 챙겼다.비에리의 단타로 3루까지 진출한 당문호는 테일러의 두번째 희생플라이로 홈으로 복귀했다.멘탈이 갈기갈기 찢어진 디백스 선발투수는 힘겹게 3회를 추가실점 없이 막아내고 마운드를 불펜에 넘겼다.
9실점을 했을 때도 흔들림 없이 자기 투구만 해왔던 강철멘탈의 사나이 테일러는 타선의 득점을 등에 업고 공격적인 피칭을 이어갔다.디백스의 타자들은 테일러의 구위에 밀려 번번이 내야 플라이나 내야 땅볼로 물러섰다.
경기가 8회에 접어들 때 경기장의 공기가 바뀌었다.테일러가 7회초 무실점으로 이닝을
마친 뒤,잔치분위기이던 관객석이 고요해 지고,그전까지 웃고 떠들던 테일러도 더그아웃에서 바나나로 체력보충을 하면서 조용히 있었다.1루수 에디슨은 수비가 좋은 햄리슨으로 바뀌었고 좌익수 미니는 눈을 감고 기도하는 것 같았다.
타석에 선 당문호는 투수의 공 3개를 지켜만 보고 루킹삼진으로 물러섰다.자이언츠의 타자들은 타격의지를 상실했고 연이어 루킹삼진으로 물러났다.8회초가 되어 테일러가 마운드를 향하자 AT&T는 도서관이 되었다.
마운드에 오른 테일러는 포수와 야수들을 불러모았다.
"나는 앞에 7이닝과 똑같이 던질거야.믿으니까."
야수들은 피식 웃으며 긴장을 풀었다.테일러는 자신도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야수들의 긴장을 풀어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미니의 굳어져서 어색해 보이던 얼굴이 자연스럽게 풀렸다.당문호도 몸에 들어간 힘을 조금 뺄 수 있었다.
점수차는 이미 13점이다.전혀 뒤집을 여지가 없는 경기지만 디백스 타자들의 타격의지는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7회부터 스트라이크존이 조금 커졌다.다른 주심들보다는 아직 작지만.그래서 타자는 굳이 홈플레이트에 바짝 붙을 필요는 없었다.
필요한건 안타다.볼넷도 필요없고 몸맞는 공도 필요없다.득점까지도 필요없이 안타 하나면 된다.디백스의 4번 타자는 각오를 다시 한번 되새기며 타석에 섰다.
테일러는 자신의 말대로 삼진 잡는 피칭이 아니라 맞춰잡는 피칭을 했다.구위로 승부를 보는 테일러가 갑자기 스타일을 바꿔서 삼진잡는 피칭이 가능할리도 없고,테일러는 진심으로 동료들의 수비를 믿었다.
바깥쪽으로 집요하게 승부하다 몸쪽으로 던진 공을 타자가 때려냈다.하지만 오늘 테일러의 구위는 8회에도 죽지 않았다.힘에서 밀린 타자의 타구는 2루수쪽으로 향했고 람이 가볍게 잡아냈다.
5번타자는 바깥쪽 공을 때려 내야땅볼로 아웃됐다.6번타자는 풀카운트까지 끌고가서 집요하게 커트를 하다가 오늘 처음 던지는 커브에 헛스윙삼진을 당했다.당문호는 그 상황에서 커브를 던지는 테일러의 심장에 감탄했다.
평소의 당문호라면 저 커브를 무조건 쳐낸다.하지만 안타를 쳐내야 한다는 커다란 부담감을 안은 상황에서라면 타격 타이밍을 잡을 수 있을까?그것도 경기내내 하나도 안 던진 공을 말이다.
당문호가 투수의 투구폼으로 구종을 맞추기는 하지만,그렇다고 투수의 구종을 미리 예측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투수가 당문호가 예측한 구종을 던질 때 가장 빠르게 판단이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당문호가 슬라이더를 예측했다고 하자.그럼 투수가 공을 던지면 당문호는 슬라이더 맞나 라고 먼저 확인한다.만약 아니라면 무슨 구종이지를 판단한다.만약 투수가 슬라이더를 던지면 당문호는 조금 더 여유를 갖고 타격에 임할 수 있다.슬라이더를 예측했는데 100마일짜리 직구가 들어오면 당문호도 타격 타이밍을 놓친다.
그래서 2스트라이크 상황이 되면 당문호는 되도록 예측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하지만 그래도 머릿속에서는 투수가 던졌던 공들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중요한 순간일 수록 그 공들에 대해 집중할 수밖에 없고,그런 상황에서 처음 던지는 커브를 보면 타이밍을 잡기가 힘들어 진다.
당문호의 현재 타격 매커니즘은 확실히 한계가 있다.물론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세계 최고의 무대인 메이저리그에서 당당히 주전을 차지하고 있지만,당문호가 추구하는 경지로 가는 길은 이 길이 아니다.작년에 얻은 깨달음이 뭔지만 알아내면 길이 보일 것 같은데 아직 뭔가 자격이 부족한 것 같다.
선두타자로 나선 테일러는 홈플레이트에서 멀찍이 서서 전혀 타격의지가 없음을 어필했다.뒤이어 타석에 선 람과 미니도 루킹삼진으로 물러섰다.타선이 태업을 하는데도 관중들은 오히려 박수를 쳐줬다.
9회초 테일러는 마운드로 걸음을 옮기면서 다시 한번 홈구장을 도서관으로 용도변경 했다.당문호는 테일러를 바라보면서 테일러가 지배자 같다고 생각했다.당문호도 홈런을 친 후 아주 잠깐의 순간 지배자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하지만 등장부터 경기장 전체를 지배하는 테일러를 보며 부러운 느낌이 들었다.
아마 강호에서 무인들이 무공수련에 목숨을 거는 것도 같은 목표일 것이다.내가 있는 공간을 내가 지배하는 것.무인들은 그것을 위해 위험도 마다하지 않고 고된 수련도 마다하지 않는다.
당문호는 문득 자신이 뭔가 발견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이내 생각을 떨쳐내고 집중력을 끌어올렸다.세명의 타자만 처리하면 된다.하위타선이라 대타카드를 쓸게 분명하다.하지만 대타로 올라와서 안타를 치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특히 이런 분위기에서 타자의 압박감도 투수 못지 않다.
작년에 겁없이 대타로 올라가서 퍼펙트 상황에서 투수의 공을 홈런으로 때려낸게 얼마나 대단하고 어려운 일이었는지,당문호는 이제서야 느낄 수 있었다.그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상대한게 오히려 당문호에게는 잘된 일이었다.
과연 대타로 올라온 선수는 몸이 굳어있었다.이런 상태의 스윙은 히트포인트를 제대로 못 맞춘다.가끔 빚맞아서 오히려 다행인 경우도 있지만 그건 말그대로 가끔이다.평소대로 스윙을 못한 대타는 4구째에 2루수 땅볼로 물러났다.
8번타자는 그대로 올라왔다.남은 카드중에 8번타자보다 나은 카드가 많아야 한장이라는 뜻이다.8번 타자는 8구까지 끈질기게 버텼으나 9구재 몸쪽 투심을 타격해서 투수앞 땅볼로 물러났다.
투수타석에서 대타로 나온 타자는 우타거포의 타자였다.수비가 약해서 주로 대타로 출전하는데 타격재능이 있는 타자이다.하지만 아메리칸리그에 가서 지명타자로 주전자리를 꿰찰 정도는 아니라서 내셔널리그에서 대타로 활약하고 있다.
포수와 테일러는 초구 사인을 신중히 주고받았다.사실 이미 투심으로 정했지만 타자를 교란시키려고 일부러 연기를 하는 것이었다.몇번 고개를 젓는 연기를 한 테일러는 집중력을 끌어올리고 타자 몸쪽 코스로 투심을 던졌다.
투심의 구위는 평소 테일러의 투심보다 조금 떨어진 상태다.타자는 투심이 올 것을 미리 알았다는 듯이 때려냈다.내야에서 잡기에는 공이 조금 높았고 외야에서 공을 잡을 때면 발빠른 타자라면 2루까지도 가능한 공이었다.
총알처럼 날아오는 공을 본 당문호는 2루수 람을 외쳤다.당문호의 호출에 람은 외야쪽으로 달렸다.당문호는 그냥 "람" 이라고 이름만 불렀을 뿐이고,람은 당문호가 왜 자신의 이름을 불렀는지 머리는 이해 못했지만 몸이 알아서 달렸다.
있는 힘껏 점프한 당문호는 글러브의 끝으로 공을 건드렸고,직선에 가까운 포물선으로 날아가던 타구는 당문호의 글러브에 스친 뒤,큰 포물선을 그리며 궤도를 수정했다.람은 궤적이 바뀐 공의 낙구지점에 달려가서 떨어지는 공을 글러브로 소중히 받아냈다.
AT&T 구장은 곧바로 시장통이 되었다.흥분한 홈팬들은 아마 자신도 의미모를 단어들을 입밖으로 마구 내뱉었다.2년간 팀의 성적으로 분노하고 고통받던 팬들은 드디어 분출구를 찾아냈다.
슈퍼플레이로 테일러의 노히터를 지켜낸 람과 당문호는 서로 부둥켜 안았다.잠깐 기쁨을 나누고 오늘의 주인공인 테일러를 향했을 때,그들은 9실점을 하고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던 강철심장 테일러의 눈물을 목격하고 말았다.마운드에 모인 선수 모두가 서로 부둥켜 안았다.요란한 세레모니는 없었지만 더욱 가슴속에 깊이 파고드는 장면이었다.
수훈선수로 인터뷰에 임한 테일러는 자신의 눈물에 대해 아래와 같이 해석했다.
나는 오늘 나의 노히터보다,우리 팀이 하나가 되어 뭔가를 이루어냈다는 것이 더 기쁘다.2년간 힘든 시간을 보냈고 우리는 각자의 걱정을 안고 서로에게 소홀해졌다.오늘 우리는 다시 한번 우리는 하나였고 우리는 하나이며 우리는 하나여야 한다는 것을 확인했다.이렇게 당연한 사실을 잊고 지냈던 지난 시간들이 너무 서글퍼서 눈물이 흘렀다.
인터뷰 이후,테일러는 팀의 모든 선수와 감독,코치들을 저녁식사에 초대했다.비록 이튿날 경기때문에 술은 자제했지만 다들 술을 양껏 마신 기분으로 식사를 즐겼다.당문호는 오늘의 경험으로 팀에 대한 애정이 더 깊어진 느낌을 받았다.
- 작가의말
무타격은 노히터를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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