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世界
강영호는 삼대독자이다.그리고 강영호의 아들 강한성은 사대독자다.그리고 곧 사대독자였다로 바뀔 예정이다.
의사가 임신한 둘째가 아들이라는 것을 강영호에게 알려주고,강영호가 그것을 첫번째로 아버지한테 알렸을 때,강영호의 아버지 강철우는 전화기를 붙잡고 대성통곡 했다.
강철우의 아버지는 더 많은 아들을 보려고 결혼을 세번이나 했지만 강철우 하나의 자식만 봤다.강철우와 강철우의 아내도 자식을 많이 낳으려고 부단히 노력했으나 강영호 하나의 자식만 슬하에 두고 있었다.
보통 삼대독자 사대독자 해도 남형제가 어린 나이에 요절하거나,여자형제가 있는 경우가 있는데,강영호는 진골 삼대독자이다.강영호도,강영호의 아버지도,강영호의 할아버지도 형제 하나 없다.
강영호네 집은 아버지 강철우때부터 가구공장을 운영했다.큰돈을 벌 생각을 안 하고 그저 가구공장의 일꾼들하고 같이 밥이나 벌어먹고 살려고 수십년을 운영했고,그렇게 쌓인 인지도와 신용이 강영호가 이어받은 후에 크게 빛을 봤다.
넉넉치 않은 살림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 크게 되라고 일본유학까지 보냈다.일본에서 얻은 인맥으로 가구에 많이 사용되는 소모성 부품과 대량생산 아니면 이문이 남지 않는 작은 부품의 생산계약을 따냈다.
기계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시기에 발빠르게 일본으로부터 가공기계를 의뢰해서 공장에 들여놨다.소모성이 많고 작은 부품들은 기계들이 알아서 척척 가공하고 적게는 십수년,많게는 수십년의 경험을 가진 일꾼들은 값비싼 수제가구를 만드는데 동원되었다.
전기와 약간의 기름만 먹는 기계가 밤낮 가리지 않고 나무 문고리나 삼각지지대 같은 대부분의 가구들에 사용되는 작은 부품들을 규격에 맞게 가공해 내고 아무런 기술이 필요없이 힘만 좋은 젊은 일꾼들이 그걸 포장해서 일본으로 보낸다.거기에서 나오는 돈만 해도 공장 사람들을 먹여살리고도 남을 정도였다.
거기에 수십년의 신용을 쌓고 인근지역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강씨네 가구를 브랜드화 하였다.강씨네 라는 상표를 정식으로 등록하였고,공을 들여서 캐나다에서 수입한 고급목재를 이용해서 고급수제가구를 제작해서 강영호의 친구에게 공짜로 선물했다.
서울청에 검사로 있던 강영호의 친구는 고급스러운 가구를 동료들에게 자랑했고,강영호는 곧 검사와 판사,변호사들로부터 대량의 주문을 받을 수 있었다.강영호는 이문을 거의 남기지 않으면서 인맥을 쌓아갔고,대학교나 도서관 같은 굵직굵직한 계약들을 따낼 수 있었다.
사업에서 승승장구하는 강영호였지만 근심걱정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집안의 반대에 불구하고 고등학교 동창인 첫사랑과 결혼에 성공했으나 결혼한지 10년이 되도록 소식이 없었다.
집안에서는 빨리 이혼하고 새장가 들라고 푸념질이고 아내는 밖에 나가 고개를 들고 다니지 못했다.삼대독자 집안에 시집와서 10년동안 임신 한번 못한게 아주 큰 압박감이 되었다.
그런 아내가 11년 되던 해에 임신해서 한번에 아들까지 낳자,강철우는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며느리를 상전처럼 모셨다.본인도 한번 가보지 못했던 유럽여행도 시켜주고 며느리 명의로 별장 한채 지어주었다.
그러던 차에 2년만에 또 임신했는데 의사가 아들이란다.이제는 완전 며늘님이 아니라 선녀님 대접을 해줘도 시원찮을 판이다.그래서 출산예정일 일주일전부터 아들,며느리 데리고 별장에 내려왔고,서울에서 유명한 산부인과 의사를 출장 불렀다.
첫째를 낳을 때도 16시간이나 진통을 겪으면서 힘들게 낳은 며느리를 위하여 본인이 가장 편하게 여기는 장소인 본인 명의의 별장에서 출산을 하게끔 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강철우의 배려가 무색하게끔,20시간이나 되었는데 아기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강영호가 몇번이나 제왕절개를 하자고 했지만 산모 본인이 극구 반대했다.어디선가 제왕절개한 아기는 정상적으로 낳은 아기보다 모자라다는 낭설을 들은 까닭이다.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가 불도 안 붙이고 뻑뻑 빨아댄 뒤,담배를 버린다.냉장고를 열어 뭐 있나 한참 보다가 냉장고문을 그대로 닫는다.2층으로 오르는 계단을 몇개 밟았다가 며느리의 찢어지는 비명소리에 다시 발길을 돌린다.
그러다 소파에 앉아 꾸벅꾸벅 졸다가 화들짝 놀라서 깬다.그러고는 화장실에 가서 시원한 물로 세수를 하고,괜히 찬물로 입도 헹군다.그렇게 안절부절 못하는 강철우에게 2층에서 내려온 의사가,제왕절개를 다시 한번 권한다.
산모의 진통이 그렇게 크지는 않다.다만 출산예정일인데도 아이가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보통 이런 경우에는 대부분 제왕절개를 한다.태아가 산모 뱃속에 더 오래 있으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 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강철우가 며느리의 의사를 무시하고 제왕절개를 강행할까 고민하는 도중,갑자기 별장이 쩌렁쩌렁 울렸다.
"으아아아앙"
깜짝 놀란 강철우가 나이가 무색할 만큼 잽싸게 2층으로 올라갔다.올라가자마자 아들 강영호에게 눈짓으로 질문했다.아들이 고개를 젓는 것을 본 강철우는 빠르게 내려와 앞마당 뒷마당 그리고 창고와 별채까지 돌아봤다.
어디에서도 방금 들은 그 우렁찬 소리를 낼만한게 없다는 것을 확인한 강철우는 별장 담벼락 밖을 한번 확인해 볼 요량으로 대문을 열고 나갔다.그리고 거기서 알록달록 여러가지 색깔의 보자기에 꽁꽁 쌓인 갓난아기를 발견했다.
"고놈 참 잘생겼다."
강철우는 아기를 바로 집안으로 안아들였다.밖에서 얼마동안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빠르게 따뜻한 곳으로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아기는 얼굴이 아직 쭈글쭈글한 걸 보니 태어난지 얼마 안 되는 것 같았다.
팔다리가 길쭉길쭉하고 어깨가 넓었다.가슴도 두툼했고 허리가 통짜허리다.강철우가 잘생겼다고 한 것도 쭈글쭈글한 얼굴이 아니라 잘 빠진 몸을 말한 것이다.왠지 힘 잘 쓰게 생긴 장사아기였다.
"뭐여,늙은이가 재주도 좋아.그새 나가 바람 피고 왔네."
강철우가 웬 아기를 안고 집에 들어가자 시종 침착을 유지하던 강철우의 마누라가 농을 건넸다.아들 하나밖에 출산하지 못해 평생 마음고생 하던 강철우의 마누라는 아들 내외 덕분에 늙으막에 더없는 해방감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 20시간째 출산을 못하고 있는 것도 아기가 나올 생각이 없는 것이지,산모나 아기나 아무 문제도 없었다.며느리가 고집을 꺽는 순간 제왕절개로 아기를 꺼내면 아무 문제 없이 둘째 손주와 대면할 수 있다.
"누가 버리고 간 거 같아.근데 이놈 장군감이야.대문 밖에서 우는데 여기서까지 들리다니."
"그놈 뭐여,꼬추여?"
마누라의 질문에 강철우는 보자기를 들췄다.체형은 사내아이 같았으나 아기들은 모른다.
"사내야.울음소리도 우렁찬게 커서 장군이 되겠어."
김정자 여사는 남편 손으로부터 아기를 받은 후,능숙한 솜씨로 기저귀를 갈아주고는 아기를 남편한테 돌려줬다.
"애한테 분유 좀 타줄테니까,달래고 있어.근데 이놈은 똥싸고도 안 우네.내일 병원가서 한번 검사해 봐야 할거 같아."
당문호는 누군가의 손길에 의해 옮겨진 것을 몰랐다.속에 울렁거리는 것을 뱉어낸 후 잠깐 기절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김정자 여사가 분유타러 주방에 가고,강철우가 졸음을 쫓기 위해 당문호를 소파에 눕혀놓고 화장실로 세수하러 간 후,정신을 차린 당문호는 몰려오는 졸음을 쫓기 위해서 다시 한번 소리를 질렀다.
"으아아아앙,으아아앙"
당문호의 울음소리에 화장실에서 나온 강철우는 빠르게 당문호를 안아들고 흔들어댔다.큰손주는 울다가도 이렇게 흔들어 주면 바로 울음을 그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문호의 울음소리에 응답한 것은 강철우만이 아니었다.5분의 시간이 지난뒤,별장의 2층에서 우렁찬 남자아이의 울음소리가 터졌다.
김정자여사가 타준 분유를 배터지게 먹은 당문호는,끝내 진실과 마주할 수 있었다.만난 그 순간부터 울음을 멈추지 못한 여자는 아무래도 당문호의 엄마인 것 같다.그리고 어떠한 사정으로 당문호를 버린 것이다.
나는 죽은 뒤 환생한 것인가?환생이라면 왜 전생의 기억이 있지?당문호가 많은 사람을 만난 것이 아니지만,자신의 전생을 기억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그건 보편적으로 사람은 전생을 기억못한다는 뜻이다.즉,현재 전생을 기억하는 당문호는 보편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환생한 것이라면 차라리 잘되었다.당문호의 기억을 전부 가지고 있으니 당문에 찾아가서 사정을 말하면 분명히 받아줄 것이다.어차피 당문호는 내공을 수련하지 못하는 몸을 가졌기 때문에 무공을 제대로 수련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보통 여덟살에서 열살에 시작하는 내공수련을 어릴때부터 시작하면 성취도 빠르고 더욱 정순한 내공을 쌓을 수 있다.내공은 상당히 위험한 거라 수련시에 조심 또 조심해야 하는데,나이가 어릴 때 수련이 잘못되면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잘못된 수련 방법이 버릇 들어서 나이 먹은후에도 성취를 얻지 못할 수 있다.하지만 당문호는 어린 나이부터 내공수련을 시작할 수 있다.
내공이 어느 정도 성취를 이룬 뒤 당문에 찾아가서 신분을 밝히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다.최대한 빠르게 암기술과 권술,쌍곤술을 일정 경지까지 끌어올린 뒤 찾아가면 더욱 쉽게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미래를 차곡차곡 계획하던 출생 1일 미만의 당문호는 몰려오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당문호가 다시 눈을 뜬 건,자의가 아닌 타의였다.강찬성의 형 강한성,이미 2년전에 태여나서 이 세계에 적응을 마친 이 꼬맹이는 동생을 맞이할려고 눈을 뜯으며 기다리다가 수마를 이기지 못하고 잠들었다.
자고 깨고 또 자고 깬 강한성은 커다란 침대위에 나란히 누운 두 동생때문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어떻게 동생이 둘이지?동생은 하나여야 하는데?강한성의 상식속에서 동생은 하나여야 했다.동생이 둘인 상황은 이미 강한성의 허용범위를 초과하고 있었다.그래서 강한성은 둘을 깨워서 직접 물어보려 했다.왜 동생이 둘인지.
두 동생은 강한성의 질문에 울음과 침묵으로 대답했다.궁금함을 참는 법을 배우지 못한 강한성은 할아버지를 보자마자 왜 동생이 둘이야?라고 질문했다.대답이 궁한 강철우는 너가 조금 더 크면 알려줄게 라는 모범답안으로 응수했다.
"그럼 한성이 동생 이름은 뭐야?"
"너랑 닮은 동생은 찬성이고,여기 덩치 큰 동생은 장군이야."
그렇게 되어 강철우네 일가는 당문호를 장군으로 부르게 되었다.
당문호에게는 아주 다행스럽게,강영호를 제외한 일가족은 전부 별장에 남기로 하였다.강영호의 아내 전영림은 공기가 맑은 별장에 남아서 애기를 키우기로 했다.별장이 있는 곳이 전영림의 고향이다.중학교까지는 여기서 다니다가 고등학교부터 서울에서 다녔다.아는 사람도 많고,별장에서 병원까지 10분 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거기다가 강철우 부부도 남아서 손주들 돌봐주기로 했다.강영호도 아내와 아이들과 같이 하고 싶었지만 한창 사업확장을 하느라 자리를 오래 비울수가 없었다.
이후 당문호의 생활은 챗바퀴처럼 돌아갔다.당문호는 배가 고프면 울어야 하고,똥오줌을 싸도 울어야 하고,불편한거 있어도 울어야 하고,찬성이가 울면 같이 울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러지 않으면 자꾸 병원이라고 부르는데로 가야 하는데,거기에 갈때마다 당문호는 불편함을 느꼈다.
반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후에야 당문호는 정상적인 아기가 되었다.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많이 고민하고 했는데,반년이 되는 순간,찬성이가 하는 행동 똑같이 따라 하면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내공수련은 시작도 못했다.근본적으로 정신집중이 어려웠다.그리고 내공감지도 어려웠다.그래도 매일 내공을 느끼려고 노력은 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당문호의 걱정은 커져만 갔다.병원 갈때마다 타는 빠르고 편안한 마차는,재질이 철로 된 것 같다.밖이 훤하게 보이는 창문,자기 모습이 그대로 비치는 거울,작은 버튼을 누르면 별의별거 다 볼수 있는 티비라는 이름을 가진 마술상자.이러한 세상이 자신이 살던 세상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분명 이곳은 신세계가 분명했다.
근심걱정은 커져갔지만,절망하지는 않았다.어차피 이 세계로 올 수 있으면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이 세계로 어떻게 환생했는지 밝힐수만 있다면 말이다.우선은 이 세상을 알아가는게 우선이다.
티비를 볼 기회가 생기면 당문호는 집중해서 티비에서 나오는 모든 장면을 기억하려고 노력했다.주변 사람들 말 한마디 한마디를 주의깊게 들으면서 그 의미를 파악할려고 했다.이러한 당문호의 아기답지 않은 집중력에 강철우는 장군이를 정식으로 입양해서 키울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궁금왕 강한성이 유치원에 가야 할 나이가 되었다.강철우 일가족은 서울로 옮기면서 별장을 비우기로 결심하였다.강철우는 장군이도 같이 데리고 서울로 갈려고 했으나 일가족의 반대로 장군이를 보육원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보육원 원장이 지역에서 명망이 있는 신사이고,강철우의 오래된 친우이다.그리고 강철우가 보육원의 주요 기부자중 한명이다.그래서 강철우는 장군이를 큰 걱정없이 보육원에 맡기고 서울로 떠날 수 있었다.믿을만한 친구가 아니라면 고집을 부려서라도 장군이를 서울로 데리고 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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