聚一心
노히터의 여파는 그 다음경기까지 미쳤다.주심의 스트라이크존에 대해 언론은 날선 비판을 했고,그런 악조건속에 노히터를 달성한 건 팀 전체가 한마음이 되어 이루언 낸 성과라고 칭찬했다.그래서 카알이 선발투수로 나오는 경기에서 스트라이크존은 정상보다 반개정도 커졌다.
여파는 주심의 스트라이크존에만 멈추지 않았다.전날 노히터를 당한 디백스의 타선은 타격감을 잃었다.스윙 할 때 몸에 힘이 과하게 들어가 스윙이 부자연스러웠다.토머스는 자기 타격리듬을 잃으면 저렇게 된다고 당문호에게 경고했다.평소에 스윙훈련을 많이 해서 몸에 정확한 스윙폼을 각인시켜야 저런 상황에서 빠르게 벗어날 수 있다고 가르쳤다.
지난 경기 설발출전시 더그아웃에서 대화를 거부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던 카알도 다른 투수들과 간간히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였다.테일러처럼 타자들의 영역까지는 침범하지 않았으나 두경기만에 여유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카알은 괜찮은 구속,괜찮은 제구,괜찮은 구위를 가진 투수이다.셋 중 하나만 괜찮은이 아닌 훌륭한으로 변했으면 2선발도 노려봄직하다.오늘 제구가 평소보다 잘 되는지 6이닝 1실점의 훌륭한 결과를 내고 마운드를 불펜에 넘겼다.1이닝 정도 더 던질 수 있는 투구수이지만 감독이나 코치들은 카알을 무리시킬 생각이 없어보였다.
오늘 최대 피해자는 당문호였다.존 밖에서 존 안으로 들어오는 변화구에 약한 약점을 아직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상항에서,반개쯤 커진 주심의 스트라이크존 때문에 2볼넷 1삼진의 성적으로 7회에 햄리슨에게 교체되었다.
하지만 경험많은 다른 타자들은 주심의 스트라이크존에 영향을 크게 받지 않고 안타를 연신 쳐냈다.디백스의 투수가 변화구위주로 승부하는 투수라 주심의 스트라이크존에 이득을 취해야 하는 상황인데,오늘 제구가 잘 안 되는지 신나게 얻어맞고 있었다.
3점이 넘는 점수차로 9회초에 벨이 경기를 마무리 지었다.실투로 2명의 타자를 출루시켰지만 침착하게 무실점으로 끝냈다.또 한번의 위닝시리즈에 홈팬들이 환호했다.일부 홈팬들은 노히터 경기 인터뷰에서 테일러가 한 말을 인용해서 YOU + ME = WE 라는 카드를 단체로 제작해 경기내내 들고 있었다.
경기를 끝낸 선수들은 휴식할 사이도 없이 전용기에 몸을 실었다.이번 시즌 이미 한번 만났던 로키스와의 원정 4연전을 위해 콜로라도로 출발했다.
호텔에 도착한 뒤 당문호는 시차를 가늠하고 한국으로 전화를 걸었다.예전에는 전화비가 아까워서 자주 전화를 못했지만 요즘은 자주 한다.강원장은 요즘 아이들을 새로 들여서 보육원이 활기가 넘친다고 했다.강한성은 요즘 훈련에서 제구에 신경을 많이 쓴다고 했고,강찬성은 야구를 그만두고 공부에 몰두한다고 했다.
한참 서로 시답잖은 얘기를 하고 두 형제와의 통화를 마친 당문호는 곧바로 씻고 자리에 누웠다.누운지 얼마 되지 않아 눈이 스르르 감기면서 깊은 잠에 빠졌다.잠에 취한 당문호는 타석에서 투수의 공을 지배하는 꿈을 꾸었다.
당문호가 배트를 휘두르자 투수의 공이 궤적을 바꿔 알아서 당문호의 배트에 맞아나갔다.타구가 멀리 날아가는 사이 주위가 조용해졌고,구장에는 당문호만 남았다.갑자기 배트가 갈라지더니 검은색 용 한마리가 나와서,당문호를 향해 불을 뿜었다.
당문호가 꿈에서 깬 시각은 평소 기침시간보다 반시간 정도 빠른 시간이었다.꿈속에서 놀란 가슴을 달랜 당문호는 편한 자세로 앉아서 내공수련을 시작했다.내공수련을 마치고 눈을 뜬 당문호는 시간이 한시간 반이나 지난 것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원래 당문호가 내공수련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반시간이다.이번 시즌에 와서 한시간으로 늘렸지만 그건 억지로 늘린 것이다.반시간뒤부터 떨어지는 집중력과 몰려오는 잡념과 사투를 벌이며 내공수련을 해야 한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는 편한 상태에서 내공수련을 하였고,내공수련을 끝내고 자연스럽게 눈을 떴다.모르는 사이에 뭔가 발전을 이루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알수가 없었다.잠깐 고민을 이어가던 당문호는 곧 포기했다.
머리로 생각해서 어떻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강호의 천년역사에서 수많은 기인이사들이 강호를 호령했으나 자기 깨달음을 후세에 남긴 사람은 손에 꼽는다.남긴 깨달음도 바람을 만지고 구름을 만지는 듯 명확하지 않다.
노히터 경기에서 잠깐 뭔가 느낀것 같았다.그리고 오늘은 몸이 꿈을 빌려 당문호에게 알려준 듯 했다.당문호는 정신을 집중하여 내공을 움직여 보려 했으나 내공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당문호의 내공은 몇번 움직인 적 있었다.멧돼지와 조우했을 때도 그렇고,당문호가 간절히 바라거나 혹은 아무 생각없이 뭔가를 행할 때 내공이 움직였다.생각이 하나로 집중 된 일념 상태거나,아무 생각 없는 무념상태였다.하지만 평소에는 아무리 시도해봐도 내공은 움직이지 않는다.
수련이나 전투중에 내공이 움직일 기미를 알고,내공격발을 해낼 수 있으면 이류고수다.원하는 때에 내공을 움직여 전투에 사용할 수 있으면 일류고수다.내공을 호흡하듯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으면 절정고수이다.보다시피 일류고수와 절정고수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존재한다.강호 대부분의 천재라 불리던 자들이 평생 일류에 머무는 까닭이다.
당문호의 현재 상황은 이류에도 못 미치는 상태다.내공격발에 대해 이론만 알고 자의로 내공격발을 이루어 낸 적이 없다.아는 이론대로 해봐도 내공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일류고수쯤 되면 전타석 안타도 꿈이 아닐턴데,라고 생각하면서 당문호는 실소를 지었다.
로키스의 홈구장 쿠어스필드의 첫인상은 시원한 느낌이었다.토머스에게 미리 이 구장에서 비거리가 더 잘 나온다는 말을 전해들었다.선발투수 페드로프는 얼굴에 이미 근심 반 걱정 반으로 차있었다.더구나 오늘 포수는 올시즌 첫출전하는 백업포수 보나비치이다.
보나비치는 타격이 강하나 도루저지가 약하다.어차피 투수 실점이 많은 구장이라 차라리 공격으로 맞불을 놓자는 감독의 의지였다.주전포수의 체력도 관리해 줄겸.
1회초에 자이언츠 타자들은 훌륭한 타격감을 보였다.하지만 운이 없는지 타격하는 족족 수비수 앞으로 배달됐다.반면 로키스 타자들의 타구는 빈공간을 기막히게 찾아갔다.1회에 2실점을 한 페드로프는 산소호흡기를 얼굴에 대고 눈을 감고 휴식을 청했다.
2회초에 하인스의 솔로홈런과 당문호의 솔로홈런으로 동점상황을 만들었다.하지만 페드로프는 2회에서 1실점을 하면서 또 다시 점수가 뒤쳐지게 되었다.3회초에 득점없이 물러난 상태에서 3회말 3실점을 추가해 2:6으로 점수차가 벌어졌다.
쿠어스 필드는 투수들의 무덤이라 불린다.단순히 투수들이 많이 맞아나가는 게 아니라,투수가 조기 강판 되면서 불펜소모도 심해진다.쿠어스에서 불펜관리를 제대로 못하면,그 뒤의 경기들에도 영향을 받는 것이다.
페드로프도 자신이 최소 6이닝은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그래서 팀공격 상황에서 타석에서는 스윙도 없이 아웃되었고 1회부터 산소호흡기를 사용하며 체력소모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4회초 1사 1,2루 상황에서 당문호가 타석에 섰다.오늘 로키스의 선발투수는 팀의 에이스 투수이다.1회초부터 공격적인 피칭으로 2개의 솔로홈런을 제외하고,타격감이 괜찮은 자이언츠 타선을 잘 틀어막고 있었다.
초구로 던진 바깥쪽 낮은 코스로 잘 제구된 포심을 당문호는 단타를 때려 2타점을 올렸다.좀 더 지켜보고 홈런을 노릴 수도 있으나,당문호는 초구부터 타격을 시도했다.
투수가 타자의 멘탈을 흔드는 방법은 다양하다.파워에 자신 있는 타자를 구위로 찍어누른 다든가.배트스피드가 빠른 타자를 구속으로 눌러버리다든가.유인구로 스윙삼진을 잡아내도 되고,타자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공으로 루킹삼진을 잡아내도 된다.
이런 상황에서 멘탈이 흔들리지 않는 타자는 없다.다만 경기내내 흔들리느냐 아니면 흔들린 멘탈을 강제로 붙잡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반대로 타자가 투수의 멘탈을 흔드는 방법도 여러가지다.커트에 커트를 거듭하며 투구수를 늘리는 방법도 있고,홈플레이트에 바싹 붙어서 투수의 신경을 건드릴 수도 있다.일부러 타석에서 물러나 시간을 끌며 투수를 자극할 수도 있다.
당문호가 생각한 투수의 기세를 누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투수가 가장 자신있어하는 공을 때려내는 것이다.홈런을 때려내면 가장 좋겠지만 안타도 나쁘지 않다.홈런을 노리고 실투를 기다리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지만,당문호는 구속 99마일의 잘 제구된 초구를 안타로 때려냈다.
잘 던진 공이 안타를 맞아 자존심이 상한 로키스의 에이스투수는 정신을 추수를 사이도 없이 오늘의 포수 보나비치에게 투런홈런을 맞았다.타석에 선 보나비치는 몸쪽공만 노리고 스윙을 했다.방금전에 바깥쪽 공이 안타를 맞았으니 초구가 몸쪽으로 올거라 생각한 것이다.
페드로프는 여전히 타석에서 타격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고 삼진으로 물러섰으며 1번타자 람은 7구째에 몸맞는 공으로 출루했다.미니의 잘 때린 공이 아쉽게도 펜스앞에서 와야수에게 잡혀 이닝이 끝났다.
동료들의 득점지원에 힘입은 페드로프는 4회말 처음으로 무실점으로 이닝을 종료했다.4회초에 3개의 안타와 하나의 홈런으로 4실점을 한 투수는 제구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5회초 토머스가 안타로 출루한 뒤,에디슨이 희생플라이로 1점 추가했다.하인스와 로멜로도 괜찮은 타격을 했지만 로키스 외야수들의 호수비에 막혔다.
7:6으로 역전한 가운데 페드로프는 2실점을 해 점수가 다시 뒤집혔다.얼굴이 약간 창백해진 페드로프는 더그아웃으로 오자마자 산소호흡기부터 찾았다.
6회초 선두타자로 나선 당문호는 2구째 실투를 놓치지 않고 홈런을 때려냈다.타석에 선 보나비치는 또 초구를 노려 백투백 홈런을 때려 점수를 역전시켰다.페드로프는 여전히 타격의지가 없었다.
람과 미니에게 연속 안타를 맞은 로키스의 선발투수는 마운드를 떠났다.마운드를 이어받은 로키스 불펜은 토머스에게 단타를 맞아 1실점을 한 뒤,에디슨을 잡아냈다.5번타자 하인스는 심판의 볼판정에 항의하다 경고를 먹고 삼진으로 물러났다.
6회말에 페드로프는 1실점으로 이닝을 마무리한 뒤 기진맥진한 상태로 마운드를 불펜에 넘겼다.
7회초 타석에서 당문호는 잘 때린 공이 외야수에게 잡히면서 아웃되었다.보나비치는 아쉽게 펜스상단을 맞추는 공으로 2루에 안착했다.홈런인 줄 알고 유유자적 하다가 허급지급 2루로 달리는 보나비치의 모습은 뜻밖의 즐거움을 가져다 주었다.
7회말 제임스가 무실점으로 이닝을 끝냈다.8회초 람과 미니,토머스가 범타와 삼진으로 물러서고 더그아웃으로 돌아와서 심판의 존이 이상하다고 툴툴댔다.
8회말 마운드에 올라간 베인스는 구속 100마일을 찍었고 산발성 안타 2개를 얻어 맞았으나 무실점으로 이닝을 끝냈다.
9회초 토머스는 3루타로 출루했다.홈런처럼 보였지만 보나비치와는 달리 처음부터 전력질주를 했다.불의의 일격을 맞은 로키스의 마무리는 에디슨과 하인스에게 23구를 사용하여 삼진을 잡아냈다.
지난 로키스전에서 페드로프는 6이닝 5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되었다.전날 타선이 폭발해 역전을 거두어낸 팀 답지 않게 경기내내 1실점으로 꽁꽁 묶엿다.당문호가 경험한 제일 답답한 경기였다.
지금 구단과 팬들은 3연승을 원한다.그리고 페드로프는 승리투수가 되기를 원한다.로버츠는 세이브를 원한다.그리고 지금 타석으로 향하는 당문호는 홈런을 강렬하게 원했다.
경험이 일천한 당문호이지만 이렇게 양팀 타선이 대량득점을 한 경기에서의 승패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다.맥도 그렇고 토머스도 그렇고,요즘 친해진 람에게서도 많은 얘기를 들었다.베테랑들의 경험담은 당문호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어주었다.
홈런을 친다.타석에 선 당문호의 머릿속에는 이 생각밖에 없었다.3점차 리드를 만들어 경기를 확실하게 가져간다.당문호는 온 신경을 투수에게 집중했다.
초구를 지켜보며 투수의 구위를 가늠한 당문호는 2구째 온힘을 다해서 배트를 휘둘렀다.쭉쭉 뻗은 타구는 멀리멀리 날아갔고 중계측에서 측정한 비거리는 490피트였다.베이스 런닝을 끝내고 더그아웃에 돌아간 당문호는 페드로프와 힘차게 하이파이브를 했다.
9회말에 로버츠가 1실점으로 이닝을 종료하면서 팀은 3연승을 가져왔다.한경기에 홈런이 두자릿수에 가깝게 나왔고 득점은 양팀 합쳐 20점이 넘었다.자이언츠 뿐만 아니라 로키스의 선수들도 경기 마지막 타석까지 투지가 살아있었다.
경기후 수훈선수 인터뷰에서 당문호는 페드로프에게 승리투수가 된 것을 축하한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현재까지 메이저리그에 잘 적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리포터의 말에,팀의 베테랑들에게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고 대답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온 당문호는 눈을 감고 마지막 홈런을 되새겼다.마지막 홈런을 칠 때 내공이 움직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하지만 홈런을 치는 데 너무나도 집중한 나머지 확실히 내공이 움직였는지 장담할 수 없었다.
당문호는 마음을 급하게 먹지 않기로 했다.강호에서 보통 서른이후에 일류고수의 경지에 접어든다.아직 이류 수준도 되지 않은 당문호가 급하게 일류의 경지를 탐할 필요는 없다.당문호는 갓 17살이 되었고,언제 죽을지 모르는 흉험한 강호와는 달리,여기에서는 안전하고 안정적으로 수련할 수 있다.
야구를 열심히,그리고 진지하게 해나가면,언젠가는 해답을 찾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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