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契約
그후 지명타자가 없는 내셔널리그 팀과의 경기들에서 당문호는 투수가 교체되는 타이밍에 투수타석에 한번씩 대타로 서고 선발출전은 없었다.타이밍이 안 맞는 경기는 아예 출전을 못했다.물론 이것때문에 당문호의 앞날을 걱정하는 멍청이는 없었다.
화이트삭스와의 삼연전 이후로 10번의 타석을 더 서게 된 당문호는 한개의 홈런과 2개의 삼루타 2개의 볼넷과 5개의 삼진의 성적을 얻었다.특정 유형의 변화구에 약세를 보이는 약점이 들켰지만 마지막 타석에서 약점을 보이던 슬라이더를 홈런으로 때려내 어느 정도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맥의 에이전시도 변화가 생겼다.밀려오는 광고건의 때문에 골치를 썩히던 맥은 당문호의 제의에 따라 파트너를 구했다.에이전시 지분 30%를 댓가로 예전에 당문호와 관련해서 두번 도움을 받았던 변호사 동료를 영입했다.
검은눈에 검은색 곱슬머리의 제니퍼는 30대 초반의 이탈리아계 여성이었다.눈에 확 들어오는 미인은 아니지만 보는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단정한 인상이다.당문호가 보기에 제니퍼가 맥을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지만,맥의 이상형은 금발벽안의 섹시한 여자였다.
제니퍼가 계약상대인 선수와의 협상,구단과의 협상,광고주와의 협상 등 협상부분을 맡고,맥이 나머지 부분을 맡기로 했다.그리고 제니퍼의 첫번째 임무는 자이언츠와 당문호의 계약이었다.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맥은 계약서에 근거하여 당문호가 메이저리그에서 두자릿수 홈런과 타율 5할 이상을 달성했으니 상위리그로 콜업해 달라고 요청햇다.어이없는 요구를 받은 구단직원은 곧바로 빌렌츠에게 보고했고,빌렌츠는 본인이 직접 책임지고 해결한다고 나섰다.
그래서 당문호는 자이언츠와 새로운 계약을 맺기로 했다.제니퍼는 협상에서 계약금을 150만불 받아냈다.그리고 40인 로스터를 보장하는 메이저리그 계약이었다.빌렌츠는 새계약을 대대적으로 홍보하였고,팬들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제니퍼에게는 비밀이지만,이는 사전에 약속돤 계약이었다.기존 계약의 허점을 먼저 발견해 맥에게 알려준 것도 빌렌츠였다.당문호는 현재 어느정도 능력을 증명한 상태이다.가능성만 보고 계약을 체결하는 신인이 아니다.그런 당문호를 150만불의 계약금으로 잡아냈다는 건,빌렌츠의 우수한 협상능력을 말해준다.
빌렌츠는 실패하면 되돌아와 자기 심장에 꽂힐 수도 있는 부메랑을 던진 것이다.당문호가 계약무효를 외치며 다른 팀과 계약할 가능성도 있었다.하지만 빌렌츠의 도움을 여러차례 받은 당문호는 빌렌츠의 계획에 동참했다.당문호 입장에서는 어떤 팀을 가든지 상관이 없었다.야구선수로서의 성공을 바라는게 아니라 야구를 통해 자신의 경지를 끌어올리는 게 목적이기 때문이다.
계약금액이나 나머지 사항들도 미리 상의된 부분들이다.제니퍼는 계약금과 여러 조항에서 더 많이 양보를 받아낼려고 했으나 결국은 맥과 빌렌츠가 사전에 합의한 대로 계약을 하게 되었다.
시즌이 끝나면서 당문호도 휴식시간을 가졌다.매일 아침마다 내공수련과 안법수련만 하고 오후에 가볍게 30분 정도 뛰는게 다였다.당문에 있을 때도 매년 2개월씩 수련을 쉬는 기간이 있다.발전이 없는 상태에서의 지속적인 수련은 주화입마의 첩경이다.
당문호는 지난 몇년간 거의 쉬지 않고 수련해 왔다.물론 여러가지 여건이 부족해서 수련강도가 그렇게 높지는 않았었다.하지만 미국에 온 뒤로 수련강도도 훨씬 높아졌고 수많은 새로운 것들을 접하면서 정신적인 피로가 심해졌다.그래서 당문호도 휴식을 결심했다.
자이언츠와의 계약이 마음에 차지 않은 제니퍼는 당문호를 위해 두건의 계약을 맺었다.첫번째는 스폰서 계약이었다.야구배트를 제작하는 회사로서 미국에서 시장점유율이 2위이다.1년 스폰 계약금으로 30만불을 받고,홈런을 칠 때마다 금액이 추가된다.삼루타,이루타,단타도 소정의 금액이 추가되며,특이조항으로는 배트가 부러질 때도 금액이 추가된다.
그외에도 일정 타석을 넘어서면 추가되는 금액이 있고,올스타 출전,챔피언 시리즈 출전,월드시리즈 출전 등에도 금액이 붙었다.회사측에서는 3년 계약을 맺으려 했으나 제니퍼는 무조건 1년단위로 계약해야 한다고 밀어붙여서 성과를 냈다.
그 다음 광고는 라면광고였다.한국회사로부터 온 광고였는데,처음 당문호는 안 한다고 했다.스폰서 계약과는 달리 광고촬영을 위해서 연기를 해야 하는 것이다.가끔 티비에 나와서 라면 한입 먹고 음 하면서 콧소리를 내고 엄지손가락을 내미는 광고를 본적 있는 당문호는,도저히 그걸 해낼 자신이 없었다.
결국 맥과 제니퍼의 설득과 더불어 계약조항에 광고촬영시 당문호가 거부하면 광고 콘티를 수정한다는 조항을 넣고 나서야 계약이 성사되었다.반년짜리 광고계약으로 100만불의 수익을 올린 제니퍼는 나머지 광고들은 일단 전부 거절하였다.
야구 연습장에 당문호가 서있었다.피칭기계로부터 160키로에 육박하는 고속구가 쏘아져 나왔다.몸을 부드럽게 회전시킨 당문호는 배트로 공을 정확하게 맞추었다.공이 날아가는 순간,공의 궤적과 속도를 측정한 후 계산을 마친 기계가 중후한 남성의 목소리로 결과를 통보했다.
"홈~런~!"
기계가 또 하나의 공을 통해냈고 당문호는 또 하나의 홈런을 때려냈다.그리고 세번째 공이 날아오는 도중 화면이 멈췄다.그리고 화면에 자막이 입혀졌다.
이름 : 당문호
나이 : 16세
소속 : 메이저리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성적 : 메이저리그 28타석 11홈런,홈런율 40%,메이저리그 타율 60%
목표 : 야구선수 세계1위
자막이 서서히 지워지면서 공과 당문호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따악 하는 소리뒤에 아련하게 들려오는 홈런 판정을 뒤로하고 화면이 바꼈다.
한대의 기계가 있었다.철컥 소리와 함께 라면이 포장된다.포장된 라면은 차곡차곡 쌓여서 라면박스안에 들어갔다.당문호 때와 마찬가지로 반복되는 작업도중 화면이 멈추면서 자막이 입혀졌다.
이름 : 라면기계
나이 : 1세
소속 : 라면제작회사 (주) 농부
성적 : 라면제작율 100%,라면포장율 100%,스프누락율 0%
목표 :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 제작
갑자기 화면이 이분되며 한쪽에서는 당문호가 홈런을 연신 쳐내고 한쪽에서는 빠른 화면으로 라면을 끊어서 스프와 함께 포장하는 화면을 보여주었다.그러다 화면이 암전되면서 자막이 입혀졌다.
세계1위를 향한 도전,이미 시작되었습니다.
티비에서 라면광고를 확인한 강한성은 지체않고 당문호에게 전화를 걸었다.훈련이나 시합중에 연락이 안 되는 시즌중과는 달리 요즘은 전화벨 소리가 2번 울리기 전에 전화를 받는다.광고로 한참 놀려댄 강한성은 이번 겨울 미국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구단과의 계약과 광고계약으로 얻은 금액들은 세금을 제하고도 큰돈이다.당문호가 보육원을 돕고 싶다는 말에 제니퍼는 한국에 재단을 설립하고 재단을 통해 도움을 줄 것을 건의하였다.재단 이사장으로 강원장을 모시고 보육원의 중년부부도 재단직원으로 채용했다.그리고 추후 보육원에서 일하게 될 직원들도 전부 재단직원으로 정식 채용했다.
광고와 재단 관련사항도 전부 끝마친 당문호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휴식에 충실했다.매일 영화 한편씩 보고 영어공부에도 시간을 할애했다.그리고 등산과 낚시도 자주 다녔다.가만히 집에서 쉬는 것보다 등산이나 낚시가 더 휴식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맥은 두번째 계약선수가 생겼다.일전에 한번 본적이 있는 트리플 유망주 산체스였다.비시즌기간에 패스트푸드점에서 임시직으로 일하던 산체스는 부주의로 손을 다쳤다.비시즌기간에 선수 부주의로 손을 다치는 건 계약위반사항이다.
이틀간 고민하다가 끝내는 에이전트에게 알린 산체스는 에이전트에게 끌려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하였고,의사로부터 염증으로 일부 신경이 손상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일반인이라면 아무 문제도 없지만 손을 정밀하게 사용하는 전문직이라면 문제가 될수도 있다고 했다.
상처치료를 받고 완치된 후 투구를 했는데 공의 구위가 예전과 차이가 많이 났다.신경손상으로 잡아채는 타이밍이 미묘하게 느려진것이다.며칠 지켜보던 에이전트는 산체스의 계약위반으로 계약을 해지했다.
빚많고 형제많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여난 산체스는 자이언츠와 계약하면서 받은 계약금 전부를 집안의 빚을 갚는데 사용했다.아직 남은 빚이 있지만 산체스가 성공하면 쉽게 갚을 수 있는 금액이라 빚쟁이들도 예전처럼 가족들을 괴롭히지 않았다.
하지만 만약 산체스가 부상을 입어 야구를 하지 못하게 된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라도 하면 다시 태도가 돌변해서 가족들을 괴롭힐지도 모른다.그렇게 어쩔줄 몰라 막연히 있던 산체스는 맥의 명함을 찾아내서 맥에게 연락했다.
당문에서도 암기술을 익히기 위해 손을 약물로 강화하다가 실수로 손가락이 무뎌지는 경우가 가끔 있다.그때는 그저 독기가 손에 침투했다 정도로 이해했지만 지금의 당문호는 약물에 신경이 손상받은 것임을 알수 있었다.침투한 독은 치유가 가능하지만 치료를 해도 손상받은 신경은 회복되지 않는다.
맥은 열정 넘치고 긍정적인 사람이지만 바보는 아니다.산체스의 손이 가망이 없다는 건 명약관화한 이야기이다.하지만 차마 도움을 바라는 사람을 뿌리치지는 못했다.전화로 자세한 얘기를 안 듣고 덜커덕 만나버린 것이 문제였다.전화로 전말을 듣고 냉정히 거절했으면 되는 일인데,직접 대면하고 나니 거절하기가 힘들어졌다.
심심해서 맥을 따라온 당문호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였다.당문에서 온갖 방법을 사용해도 느려진 손가락을 회복하는 방법은 없었다.내공으로도 치유가 불가능했다.그리고 인터넷을 조금만 뒤져봐도 신경세포는 재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신경손상은 현재의 의학수준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오른손의 치료가 끝난 산체스는,일상생활에서 오른손을 사용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하지만 산체스는 오른손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왼손만 사용하고 있었다.비단 신경손상뿐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문제가 생긴 것이다.
생각에 잠긴 맥을 놔두고 당문호는 산체스와 대화를 이어나갔다.그러다 대화 도중에 산체스에게 도움이 될 만한 힌트를 얻었다.산체스가 오른손 부상을 입기 전부터 일상생활에서는 왼손도 많이 사용해 왔다는 것이다.그래서 당문호는 산체스에게 왼손으로 던지는 건 어떠냐고 제안했다.
셋은 곧바로 주변 공원을 찾아갔다.맥의 승용차에 항상 야구장비를 싣고 다닌 터에 산체스의 왼손을 테스트 하는데는 문제가 없었다.당문호가 포수를 보고 맥이 스피드건을 들었다.
첫 테스트 결과는 실망이었다.제구가 전혀 안 되어 있고 구속도 평범했다.하지만 맥은 오히려 가능성을 봤다.구속이 평범하다는 건 나쁘지는 않다는 것이다.투구폼도 정립되지 않고 처음 왼손으로 던지는데 나쁘지 않은 구속이 나왔다는 것은 희망적인 메시지이다.
멘탈은 크게 문제없고,제구에 대한 감각도 타고났다.성공에 대한 본인의 열망도 크고 옆에서 잘 도와줘서 야구에만 전념하면 성공할 수도 있다.맥이 에이전트가 된 건 바로 생활고때문에 야구를 포기하는 선수들을 돕기 위해서다.산체스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고 하지만,맥은 돕기로 결정했다.
맥에게 도움을 요청하고도 폐만 끼치는게 아닌지 걱정했던 산체스는,당문호로부터 맥과의 이야기를 전해듣고 염치없지만 맥에게 신세 지기로 했다.성공해야 할 이유가 하나 또 늘었다면서 각오를 다지는 산체스를 보면서 맥은 뿌듯함을 느꼈다.
당문호도 산체스에게 도움을 주었다.당문의 약물에 비해 효과는 미비하지만 대신 안전한 당문호가 제작한 약물에 산체스의 왼손을 담그게 했다.강한성도 이 약물 덕분에 손에 물집이 잘 생기지 않고,손가락 껍질이 벗겨지거나 손톱이 깨지는 일이 드물었다.하지만 당문의 물약은 위험성이 존재하나 손가락의 감각을 높여주는 면에서 모험을 할 가치가 있었다.
그러다 강한성이 미국으로 오자 당문호와 산체스도 합류했다.제인키는 산체스를 지도하면서 한몫 더 챙기게 되어 기뻣고 셋은 함께 훈련할 사람이 생겨서 더욱 기쁘게 훈련에 임했다.
그 와중에 강한성도 당문호에게 고민을 털어놨다.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프로에 데뷔하고 싶은데,미국에 오면 자신이 성공할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었다.고등학교 레벨에서 강한성은 일이위를 다투는 투수이다.하지만 자신은 예전부터 매년 미국에서 투수코치를 받았다.더이상 발전의 여지가 없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었다.
형제 많은 집안에서 자란 산체스는 강한성과도 쉽게 친해졌다.패시브로 사람과 친해지는 스킬을 장착한 사람 같았다.산체스는 솔직하게 강한성의 현재 능력으로는 더블A에서도 고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대신 선발이 아닌 마무리로는 괜찮을 거라고 말했다.
강한성의 직구 구속이나 구위,그리고 잘 제구된 슬라이더는 보자마자 쳐낼 정도로 숙련도가 낮지 않다.하지만 선발로 출전하면 타순이 돈 뒤부터 쉽게 얻어맞아 나갈 것이다.하지만 마무리라면 더블A 수준까지는 버틸 수 있고 그 사이에 발전을 꾀하면 된다.
산체스는 마이너리그에서 버티는 것 자체가 성공이라고 말하면서 웃었다.아마 내년 산체스는 더블A 혹은 더 낮은 레벨에서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하지만 산체스의 얼굴에는 그 어떤 후회나 두려움도 없었다.성공을 향한 흔들림 없는 각오만 엿보였다.
그런 산체스를 바라보면서 강한성은 자신도 당문호의 실력이나 산체스의 멘탈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드래프트까지는 아직 반년 조금 안 되는 시간이 남았다.그전까지 충분히 고민하고 결정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렇게 세 청춘은 한달내내 아름다운 해변가에 눈길 한번 안 주고 훈련에 훈련만 거듭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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