再試測
당문호가 쳐낸 두개의 공은 포심이었다.눈대중으로 97마일 정도 되어 보이는 빠른 공을 정확하게 쳐냈다.
스카우터는 승부와 상관없이 더 보고싶다고 하면서 산체스에게 공을 더 던지게 했다.연속 두개를 얻어맞았으나 산체스는 전혀 흔들림이 없이 자신의 공을 던졌다.당문호는 볼이 되는 포심 하나와 잘 던진 스플리터를 걸러내고 나머지 포심과 체인지업을 전부 때려냈다.
마지막 공으로 다시 던진 스플리터를 얻어맞은 산체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더블에서 0점대 방어율을 자랑하는 자신이었고,실투가 아닌 공을 때려내는 타자가 드물었는데,오늘은 한두달치를 원없이 얻어맞은 것 같았다.
가져온 장비들을 수습하고 함께 점심식사를 한 뒤,산체스는 먼저 보냈다.작별할 때 맥이 일당이라면서 백달러짜리와 함께 명함을 건넸다.계약금을 전부 집으로 보내고 비시즌 기간에 패스트푸드점에서 임시공으로 일한다는 얘기에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샘솟은 것이다.
오후에는 스카우터의 인솔에 따라 헬스클럽과 재활센터를 겸업하는 듯한 곳에 가서 여러가지 측정을 했다.키는 183까지 자랐고 몸무게는 76키로였다.체력도 런닝머신에서 40분을 가볍게 뛰었고,허리힘,팔힘,손목힘 등도 측정했는데,스카우터가 만족하는 눈치였다.
측정을 마친 뒤 좋은 소식을 기다리라면서 스카우터는 먼저 떠났다.돌아가기에 시간이 애매한 지라 근처를 돌며 구경을 하고 값싼 호텔을 찾아 하루 묵은 뒤 이튿날에 집으로 돌아갔다.
11월이 다 되어서야 스카우터의 연락이 왔다.맥과 당문호가 도착한 곳에는 구단 단장보좌와 타격코치 그리고 몇명의 구단직원이 더 있었다.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뒤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몇바퀴 천천히 뛰었다.
그리고는 심폐기능을 비롯해서 여러가지 기능들을 측정했다.골밀도 측정도 있었고 반응력 테스트도 있었다.키나 몸무게 뿐만 아니라 허벅지 둘레,상박둘레,하완 둘레 등 더욱 자세히 측정했고,악력과 손목,팔힘 등도 다시 한번 측정했다.무슨 필요가 있는지 머리둘레도 측정했다.육체적인 부분들의 측정이 끝난 뒤,설문조사지 같은 걸 받아서 멘탈측정도 받았다.
일련의 과정을 다 마치고 나서 반시간 정도 쉬고 있으니 테스트에 참여할 몇명의 투수들이 나타났다.여러명의 투수들이 던지는 여러가지 공을 상대하고 나니 잠깐의 휴식뒤에 수비테스트를 진행했다.당문호가 중학교때 뛰었던 유격수 위치에서 주로 테스트 하였고,외야수도 잠깐 테스트했다.
모든 테스트를 마치자 육체적인 피로는 없었지만 정신적으로 많이 피곤했다.내력이 체력회복뿐만 아니라 정신력 회복에도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테스트가 끝난 뒤 당문호는 여전히 타격훈련에 매진했다.구종예측은 거의 빗나가지 않지만 투수가 잘 던진 공은 제대로 쳐내기 힘들었다.자신의 타격존에 들어오는 공은 무조건 쳐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며,스윙훈련에 예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 전에는 열심히 하긴 했지만 목숨걸고 까지는 아니었다.예의 경지에 이르고 나서 잠깐 우쭐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하지만 미국에 와서 수준높은 투수들을 상대해보니 영상으로 보던것과는 차이가 있었다.특히 변화구의 변화가 투수마다 달랐고,심지어 어떤 투수의 슬라이더의 휘는 각이 공마다 달랐다.
예측타격은 변수에 약하다.당문호가 일반적인 예측타격과는 다르지만 변화구의 변화가 생각했던 것과 달랐을 때의 대처가 아쉬운 면이 있었다.경험이 쌓이면 기막힌 배트컨트롤로 극복해 낼 수 있겠으나,아직 당문호는 능력이 있으나 경험이 없어서 대처가 미흡하다.그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당문호는 여러가지 상황을 상정하여 스윙연습을 하고 있지만 효과가 그닥 좋지는 않았다.그래서 당문호는 아예 기본기만 수련하기로 했다.
새벽의 개인수련 시간을 제외한 시간에,야구 방망이를 들고 우직하게 기본기만 수련했다.야구와 전혀 상관이 없는 내려치기와 올려치기,찌르기도 수련했다.기본기의 수련은 육체의 제어에도 도움을 준다.비록 쓸모는 없지만 열심히 수련하면 자신의 몸을 더욱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당문호가 마음을 다잡고 수련을 시작할 무렵,자이언츠 구단은 단장보좌의 주최하에 며칠전 테스트한 당문호에 대한 평가회의를 시작했다.
"우선 피지컬 방면에서는 합격점입니다.물론 아직 발전의 여지가 더 많이 있어서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특이점이라면 체력과 힘이 신체조건에 비해 지나치게 뛰어납니다."
"이 친구 일본인인가요?멘탈 테스트 결과를 보니 재밌는 친구네요."
"국적은 남한으로 되어 있습니다.멘탈 테스트는 합격인가요?"
"네,물론 합격입니다.여기 재밌는 답이 있는데,'벤치클리어링때 팀의 동료가 상대팀 선수에게 맞았습니다.당신은 어떻게 대처할 겁니까' 라는 물음이 있는데 '열배로 갚아주고 잘못을 뉘우칠 때까지 괴롭힌다' 라고 답했군요."
"그리고 '9회말 2아웃 상황에 당신이 안타를 치면 동점,홈런을 치면 역전승입니다.어떻게 하겠습니까' 라는 질문이 있는데 '홈런을 노려 최소한 안타를 만든다' 라고 답했구요."
"그럼 타격부분은 어떤가요?"
"합격입니다.직구계열은 거의 백프로로 때려냅니다.변화구에 조금 약세를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아주 잘 맞춥니다.장타율이 8할이 넘구요.단타는 전부 변화구를 상대할 때 나왔습니다."
"그렇다고 변화구를 못치는 건 아닙니다.다만 직구를 상대할 때와 비교해서 아쉬울 뿐이지 절반은 안타로 연결했습니다."
"그리고 특이사항이 하나 있는데,스윙을 하면 전부 안타입니다.때려내지 못한 공들은 아예 배트를 돌리지도 않았습니다.선구안이 아주 좋은것 같습니다."
"자,그럼 주루는 어떨까요?"
"스피드가 괜찮습니다.메이저 상위수준입니다.문제는 테스트 당시 에이전트와 대화해 본 결과,이제껏 홈런과 3루타만 때려서 주루를 해본 경험이 거의 없다고 합니다."
"한번 전문적으로 달리기 훈련을 시켜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그리고 주루야 어차피 눈치와 타이밍이니,잘 가르치면 될 것 같습니다."
"자,이번에는 수비쪽 의견을 들어보죠."
"실제 경기에서 뛰는 것을 봐야 정확히 평가하겠습니다만 기본기가 아주 좋습니다."
"특히 순발력이 뛰어납니다.공의 낙점 판단도 아주 뛰어나구요.송구도 흠잡을 데 없습니다.어깨만 보면 데려다 투수라도 시키고 싶습니다."
"하하,이렇게 잘 치는 타자를 데려다 투수로 만들면,팬들이 단장 사무실에 불 지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희 팀이 요즘 투수력이 아쉬워서 그런거지요.그리고 수비는 어차피 실전에서 확인해야 됩니다.기술적으로 완벽해도 멘탈이 받쳐주지 않으면 수비에서 에러를 자주 범하거든요.특히 7회이후 체력이 떨어지면서 집중력도 같이 떨어지는데,이건 시합에서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잘 알겠습니다.종합해보면 완벽한 오툴 플레이어네요.구체적으로 어떻게 키울지는 마이너에서 담금질하면서 천천히 생각해도 될 것 같군요."
"자,영입에 동의하는 분들 손 드십시오.저는 동의입니다."
만장일치로 통과한 뒤,단장보좌는 계약관련 직원을 불러서 계약사항을 지시했다.
"시작은 루키리그,계약금은 최대 50,기타 사항은 남미쪽 유망주들의 계약을 참고하시고."
"당첨가능성이 높은 복권이지만,원래 복권은 마지막 숫자까지 긁지 않으면 당첨여부를 확신할 수 없습니다."
"구단에 최대한 부담이 적은 쪽으로 계약을 유도하세요."
그뒤로 이주의 시간이 흐른 뒤,구단의 계약담당 직원은 맥의 집 근처에 도착한 뒤에야 전화로 맥에게 연락했다.노련한 에이전트들한테는 안 먹히지만,이렇게 애를 태우다가 갑자기 상대를 찾아가 실수를 유발하기도 한다.맥이 에이전트로서 아직 성과가 없는것을 확인한 직원은 맥을 부르는 대신 자신이 직접 발품을 팔았다.
그렇게 찾아간 맥의 집 마당에서는 당문호가 야구 방망이를 들고 가만히 서있었다.신기하게 바라보는 계약담당자에게 현재 수련중라고 말해준 맥은 객실에 손님을 모시고 커피를 타기 시작했다.
맥이 커피를 타는 동안 창문을 통해 당문호를 지켜본 잭은 당문호가 가만히 서있는게 아니라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아까 볼 때보다 방망이 끝이 확실하게 조금 더 아래로 내려가 있었다.
"동양의 신비로운 수련법인가?"
맥이 가져다준 커피를 마시면서 잭은 우선 커피의 맛을 품평한 뒤,이 동네 날씨에 대해 품평했다.결국 계약 이야기를 먼저 꺼낸 것은 맥이었다.
잭은 요 몇년간 유망주 육성에서 구단이 얼마나 대단한 성과를 이룩했는지 자랑하며 계약조건을 조목조목 짚었다.이 조건은 현재 트리플에서 뛰는 누구보다 더 좋은 조건이고,이 조건은 트레이드 된 후 메이저에서 활약하는 누구랑 동일한 조건이다 라고 하면서.
사실 잭은 굳이 수고를 할 필요가 없었다.어차피 맥과 당문호는 계약금하고 어느 레벨부터 시작하는지만 중요하고 나머지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이 부분에서 잭은 30에 루키리그를 고집했고 맥은 차라리 20에 더블A로 해달라고 했다.
잭은 한동안 더 실랑이를 하다가 40에 루키리그로 딜을 할 예정이었다.맥이 계약금과 시작레벨 두가지를 동시에 더 높게 요구하면 잭이 운신할 범위가 적어지는데,협상경험이 부족한 맥은 그만 이부분에서 실수하고 말았다.40에 더블A를 부른 뒤,40과 더블A 중에 하나를 이루어내야 하는데,맥에게 이런 협상기술은 기대할 만한 부분이 아니었다.
두 사람의 계약협상은 수련을 마치고 들어온 당문호때문에 일시 중단되었다.잭과 악수를 하고 간단히 인사를 나눈 당문호는 빠르게 씻고 나와 협상테이블에 참여했다.
당문호는 계약금을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어차피 맥이 미리 계약금을 많이 받지 못할 것이라고 얘기해줬다.하지만 루키리그부터 시작하면 메이저까지 올라가는데 5,6년이 걸릴지도 몰랐다.루키 위에 싱글A-,싱글A,싱글A+,더블A,트리플A 이렇게 5개의 관문이 더 있다.
반면 싱글A에서 시작하면 위에 3개의 관문밖에 없다.일년에 한단계씩 올라가도 스물이면 메이저 무대에 설 수 있다.더구나 당문호는 자신이 루키리그에서 얻어낼 만한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요며칠 수련에 어느정도 성과를 얻었기 때문이다.
잭이 목격한 장면이 바로 당문호가 얻어낸 성과다.상위레벨의 타자들을 보면 포심을 겨냥하고 한 스윙으로 체인지업을 때려내기도 한다.구종을 알아도 변화구의 변화는 완벽한 예측이 어렵다.예상과 다른 변화를 마주쳤을 때 그 변화에 맞춰 스윙을 변화시켜야 한다.
휘두르는 도중 아무때나 스윙을 바꿀 수 있으면 그게 최선이다.하지만 인간의 신체구조때문에 두손으로 잡고 휘두르는 야구배트는 한손으로 휘두를 때보다 자유도가 떨어진다.하지만 두손 스윙은 두 어깨와 손이 삼각형을 이루면서 파워나 정확도에서 한손 스윙에 비해 몇배나 우수하다.그렇기 때문에 결국에는 두손으로 스윙하면서 변화구의 변화에 맞춰 스윙을 조절해야 한다는 뜻인데,그게 얼마나 어려운지는 변화구에 헛스윙한 수많은 타자들이 증면해 줬다.
당문호는 자신이 원하는 때에 스윙을 변화시킬 수 없다면,스윙을 변화시킬 수 있는 포인트들을 만들어두려고 했다.어깨의 각도,팔꿈치의 각도,손목의 각도에 따라 분명 스윙에 힘을 가해 변화를 주기 더 쉬운 포인트가 있고 더 어려운 포인트가 있다.그러한 포인트들을 찾아낸 뒤,쉬운 포인트에서만 변화를 시도하는게 당문호의 목표다.
이렇게 포인트들을 찾아두면 어쩔수 없이 어려운 포인트에서 변화를 줘야 할 때,몸이 알아서 힘을 더 많이 쓸 것이다.즉 전체적인 스윙레벨이 올라가는 것이다.
그러한 포인트들을 찾기 위해,당문호는 최대한 느리게 스윙을 하면서 포인트를 찾고 그 포인트에서 스윙각이나 스피드에 변화를 주려면 어떻게 힘을 줘야 하는지 확인했다.그리고 느린 스윙의 좋은 점은 스윙과정에서 어떤 근육들이 힘이 들어가는지 더 명확히 감지 가능했다.그냥 모르고 휘두르는 것보다 어떤 근육에 힘줘야 하는지 알고 휘두르는게 분명 많이는 아니지만 스윙을 더 부드럽게 했다.
이제 당문호가 해야 할 수련은 스윙을 하면서 다양한 변화를 주고,점점 스윙을 빠르게 가져가면서도 포인트에서 정확히 변화를 주는 수련을 하는 것이다.이 수련이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지만,이 수련을 완성하는 날 메이저리그의 무대를 밟고 싶었다.
때문에 당문호는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로 했다.
"시작 리그는 싱글A 입니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양보가 있을 수 없습니다."
"양보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양보를 하죠.계약금 안 받겠습니다.그리고 타율이 3할 이하로 떨어진 시점에서 구단에게 저를 마음대로 하위리그로 내릴 권한을 드리죠."
"대신 받아야 할 게 하나 있습니다.제가 두자릿수 홈런과 5할의 타율을 동시에 달성한 시점에서 콜업을 요구하면,구단은 반드시 저를 상위리그로 올려줘야 합니다."
"어떻습니까.구단에는 전혀 해가 되지 않는 훌륭한 계약이지 않습니까?만약 이 조건에 더 변화를 준다면 저는 구단에서 저를 영입할 의지가 전혀 없는 것으로 판단하겠습니다."
잭은 전화로 단장보좌에게 당문호의 요구조건을 전달했고 오케이 사인을 받은 후,계약서를 수정했다.수정된 계약서를 한부 받아둔 후,쌍방은 12월 12일,당문호의 생일날에 맞춰 정식계약을 할 것을 약속했다.
- 작가의말
당문호는 구단에게 당첨확률 높은 복권,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저런 복권 해마다 몇개씩 긁거든요.대접이 시원찮다고 섭섭해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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