滅世神獸
당문호가 가져온 글을 읽은 태자는 옥편의 해석을 중단시켰다.당문호가 가져온 내용은 그만큼 경천동지할 만한 내용이었다.
이 세상은 이미 멸세신수에 의해 두번이나 멸망당했다.이번이 세번째 세상이다.이번 세상도 멸망당했어야 하는데 멸세신수를 봉인하면서 멸망의 운명을 비껴갔다.
첫번째 세상은 천하가 전부 바다였다.바다에는 수많은 생명들이 살았다.하지만 어느날 멸세신수가 나타나서 수많은 생명을 해쳤다.멸망에 가까워지자 어인들은 다섯개의 뼈에 세상의 멸망과 자신들이 찾아낸 세상의 진실을 나누어 담았다.
두번째 세상은 용들의 세상이었다.용들도 인간과 별반 다를게 없이 똑똑한 용이 있고 둔한 용이 있었다.똑똑한 용들은 더욱 안전하게 살아가기 위해 자기들끼리 뭉쳐서 살았다.힘을 모아 식탐밖에 없는 용들로부터 자신들을 지켰다.
우연히 어인들이 남긴 다섯개의 뼈를 습득했다.그리고 기적적으로 어인들이 남긴 멸세신수에 대한 정보와 긴 시간동안 탐구하면서 얻어낸 지식들을 알아냈다.용들은 멸세신수에 대비해 힘을 길렀다.어인들의 지식이 용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모여살던 현명한 용들은 커다란 힘을 얻게 되었다.그들은 불과 물을 마음대로 다뤘고 불의 힘으로 바람을 일으키는 방법을 터득했다.물의 힘으로 벼락을 불러왔으며 물과 불의 힘으로 홍수도 일으키고 가뭄도 만들어냈다.
커다란 힘을 얻은 용들은 현명함을 점점 잃어갔다.어인들이 예언한 멸세신수가 다시 잠에서 깨여나는 시간이 오지 않았음에도 강제로 멸세신수를 깨웠다.어인들은 다섯개의 뼈에 멸세신수를 봉인시키거나 깨울 수 있는 힘을 불어넣었던 것이다.
일찍 깨여난 멸세신수의 힘은 세상을 멸할 정도로 강하지 못했다.그래서 용들과 오랜 시간 싸웠다.멸세신수는 점점 더 강해졌고 용들의 수는 점점 줄어들었다.자신들의 멸망을 감지한 용들은 어인들처럼 후세에 전할 정보들을 용들의 심장에 담았다.
첫번째 세상은 온통 바다였지만 멸세신수에 의해 많은 바다물이 사라지고 땅이 드러났다.두번째 세상에서 한덩어리였던 땅이 멸세신수와 용들의 싸움에 의해 조각이 나서 여러곳으로 흩어졌다.
세번째 세상이 오자 인간들이 번성했다.그중 용들의 유산을 찾은 인간들은 빠르게 문명을 꽃피웠다.황제도 용들의 유산을 수습한 자이다.그는 용들에게서 얻은 지식으로 부락을 빠르게 발전시켰다.
그때 치우가 황제의 부락을 침략했다.치우는 용의 힘을 얻은 자이다.용의 지식만 얻은 황제는 치우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치우는 평소에는 인간의 모습이지만 전쟁터에서는 세개의 머리에 여섯개의 팔을 가진 모습으로 싸웠다.치우의 강한 힘 앞에서 황제는 연신 패퇴하였다.
황제는 용의 지식을 통해 어인들이 남긴 다섯개의 뼈의 위치를 알아냈다.치우에게 투항을 하고 수하를 자처한 황제는 용의 힘을 얻은 치우를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멸세신수의 이야기를 적당히 각색한 뒤 멸세신수가 조만간 깨여날 것이라고 치우를 속였다.멸세신수가 깨여나면 세상이 멸망한다는 말에 치우는 자신이 직접 멸세신수를 처단하겠다고 나섰다.황제는 오행옥편을 이용해 제단속의 멸세신수를 깨웠다.
멸세신수는 너무 빨리 깨여나서 힘이 미약했다.하지만 용의 힘을 얻은 치우와 삼일 밤낮을 싸우면서도 지치지 않았다.멸세신수는 그대로인데 치우는 점점 지쳐갔다.치우는 멸세신수에게 큰 상처를 입힌 뒤 자신도 상처를 입고 물러섰다.
치우가 멸세신수를 당하지 못해서 몸을 피한 사이 황제가 오행옥편을 들고 멸세신수를 봉인시켰다.당시 우매한 부족민들이 보기에는 치우는 패해 도망가고 황제가 멸세신수를 처단한 모습이었다.
치우가 부상을 어느 정도 치유하고 돌아오자 황제와 염제는 부족민들과 함께 치우를 성토했다.자존심이 강한 치우는 더 이상 변명을 하지 않고 홀로 부족을 떠났다.
멸세신수는 잠을 자다가 세상의 기운이 어느정도 강성해지면 나타나서 세상을 멸망시킨다.하지만 강제로 깨워져서 부상까지 입은 탓에 봉인된 후 잠들지 않았다.멸세신수는 자신의 기운으로 사람이나 짐승들을 홀려서 악행을 하게 하였다.현재는 이야기로만 접할 수 있는 요괴들이 바로 멸세신수가 만든 것이다.
달기는 여우요괴이다.멸세신수의 힘으로 인간여자로 변한 달기는 더 강한 힘을 얻기 위해 주왕을 홀려서 악행을 저지른다.주왕은 매일 술에 파묻혀 살며 심심하면 사람을 죽였다.달기는 죽은 사람들의 피를 제단에 바쳐 멸세신수의 회복을 도왔다.
주왕의 악행이 도가 지나치자 제후들이 일어나서 주왕에게 맞섰다.주왕과 달기를 사로잡은 뒤 달기의 입을 통해 멸세신수의 존재를 알아냈다.멸세신수를 처단하기 위해 오행옥편을 찾아나섰다.
성은 부락이나 부락의 우두머리의 것을 따른다.하지만 씨는 거주지역이나 관직 등으로
달라진다.황제의 후손들은 공손,벽,설,헌원 등 여러가지 성씨를 사용하고 있었다.이들이 오행옥편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제후들은 오행옥편을 모아 제단을 열어 봉인된 멸세신수를 깨웠다.수만명의 목숨을 바쳐 멸세신수에게 큰 상처를 입혔다.하지만 아무리 병장기로 찌르고 자르고 해도 멸세신수는 결코 죽지 않았다.제후들은 어쩔 수 없이 멸세신수를 다시 봉인했다.
제후들은 멸세신수와 관련된 일을 누구도 문자로 남기지 않기로 약속했다.그리고 오행옥편을 황제의 후손들에게 나눠주었다.황제의 후손들은 이일을 후대에 알려야 할 필요성을 느꼈지만 제후들을 거역할 수 없었다.
그래서 글자의 순서를 섞어서 쉽게 알아보지 못하게 하려고 했다.오행옥편에 새길 글자들의 순서를 정하는데만 백년이상의 시간이 걸렸다.그리고 글자를 새길만한 능력이 있는자가 없어서 거의 이백년의 시간을 기다렸다.
춘추시대 초기에 귀곡자를 만나서 오행옥편에 글을 새길 수 있게 되었다.귀곡자는 수많은 제자가 있다.그 제자들의 활동한 시기들을 보면 귀곡자는 최소 삼백살까지는 살았을 것이다.그래서 사학자들은 귀곡자가 개인이 아닌 단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귀곡자는 삼백년이 아니라 사백년이상 인간세상에서 활동했다.그가 죽었는지 아니면 활동을 멈추기만 했는지 누구도 알 수 없다.다만 당문호의 현재 실력으로도 오행옥편에 글을 적어넣지 못한다.
흑색옥편이 다른 옥편들보다 글자수가 많은 것은 귀곡자의 예언을 적어넣었기 때문이다.황제력으로 계산해보니 귀곡자가 예언한 멸세신수가 깨여나는 시간이 삼년밖에 남지 않았다.
귀곡자는 멸세신수가 깨여나기전에 강제로 깨워서 상처를 입힌 후 다시 봉인하면 수백년의 시간을 벌 수 있을것이라 했다.자력으로 깨여난 멸세신수는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것이 귀곡자의 생각이다.
태자는 깊은 근심에 잠겼다.미리 깨워서 다시 봉인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하지만 다시 봉인하지 못하면 세상의 멸망을 삼년 앞당기는 것이 된다.자신이 세상의 운명을 결정할 권리가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문득 생겼다.
오행옥편들이 가까이 있을 때 내는 소리는 어인들의 언어이다.당문호는 언어에 재능이 있다.빠르게 배우면서도 해당 언어를 깊이 이해했다.자신의 이런 재능이 어인들의 언어에도 효과를 볼지 모르지만 매일 오행옥편을 놓고 소리들의 규칙을 찾으려 애썼다.
태자는 가만히 기다리는 것보다 살 가망이 높은 길을 선택했다.급히 사람을 보내 소림방장과 무당,화산의 장문인들을 경사로 불렀다.천하의 운명과 관련된 중요한 일이니 한시도 지체하지 말라고 전했다.
소림방장과 화산장문은 같은 날에 선후하여 도착했고 무당장문은 이튿날 도착했다.세명 다 절정의 경지이고 당문호보다 더 높은 경지로 보였다.소림방장은 바위처럼 단단해 보였고 화산장문은 물처럼 고요했다.무당장문은 산들거리는 바람과 같았다.
세명의 절정고수는 당문호의 기도에 깜짝 놀랐다.당문호가 지금 갓 이립이 넘은 젊은 나이인 것이다.그리고 절정고수는 깨달음에 의해 순식간에 경지가 오른다.물론 경지가 높은 것과 무력이 강한 것은 별개다.경지에 비해 무력자체는 약할 수도 있다.
태자는 그간 많은 준비를 했다.멸세신수와 관련되는 기록들을 찾아 당문호가 찾아낸 오행옥편의 비밀의 진실성을 뒷받침했다.세 대문파의 거두들도 관련된 기록들을 조금이나마 접할 수 있는 위치이기에 딱히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소림방장은 백색옥편을 갖다 놓은 것이 명교일 것이라는 의견을 제출했다.명교는 수많은 이름을 사용했다.그중에 멸세신교라는 이름을 사용한 적도 있다.그리고 명교의 교전을 보면 두명의 신을 섬긴다.창세신과 파괴신이다.
소림방장은 명교가 멸세신수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라 여겼다.명교의 일부 지파는 세상이 멸망해야 새로운 창세가 시작된다고 여기고 있다.멸세신수의 이야기와 아주 비슷하다.그리고 그 지파는 파괴신을 섬긴다.
태자는 가능한 모든 힘을 동원해서 세상이 멸망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소림방장과 무당화산의 두 장문인도 같은 생각이었다.세 사람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인력을 동원했다.
소림은 삼천의 무승을 득록현으로 보냈다.무당도 칠백의 도인이 무당산을 내려왔다.화산은 속가제자까지 포함해서 천명이 넘는 고수들을 동원했다.거기에 평소 인연이 있는 자들을 전부 득록현으로 불러들였다.
당문호는 당문과 청성에 서신을 보냈다.그리고 풍운장에 몸을 맡긴 정무맹주도 불렀다.당문은 십명의 고수를 보냈다.청성은 대장로를 포함한 오십명의 고수들을 파견했다.
태자는 자신의 수완을 다 동원해 동창과 이십육위에서 최대한 많은 고수들을 동원했다.그 결과 이만명을 동원할 수 있었다.모두 합치면 삼만명의 무인이 동원된 것이다.
태자는 군대를 동원해서 유적지 사방 백리를 비웠다.멸세신수와의 싸움에서 군대는 큰 도움이 못된다.동시에 멸세신수를 공격할 수 있는 인원이 제한되어 있는 관계로 군대보다는 무공을 수련한 무인들이 나았다.
태자는 원거리에서 투척할 수 있는 암기들과 활 및 화살을 충분히 준비해 두었다.삼만이나 되는 무인들을 재우려면 천막도 많이 준비해야 했다.다행히 경사가 최전선과 멀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물자들은 빠르게 구비할 수 있었다.
유적지를 에워싼 장벽에는 화포들도 배치시켰다.화포들은 어차피 한발밖에 쏘지 못한다.그래서 장전을 미리 해놓고 무인들이 불만 붙이면 된다.
유적지 주변에는 꽤 많은 양의 화약이 있다.화포를 발사하면 화약들도 터질 것이다.만약을 대비해 불화살도 쏠 것이다.
당문호는 소림방장에게서 배운 혜광심어를 생각하고 있었다.태자와 함께 만나서 멸세신수의 이야기를 끝낸 뒤 밤에 소림방장이 불쑥 찾아왔다.그러고는 인연의 끈이 보인다면서 혜광심어를 가르쳤다.
혜광심어는 언어의 장벽을 허물고 마음과 마음이 직접 소통하는 방식이다.상대의 마음에 자신의 마음을 전할 수도 있고 상대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도 있다.당문호가 사용하는 맹룡위보다 한수 더 높은 기예인 것이다.
방법만 안다고 가능한 기예가 아니다.하지만 소림방장이 말한것처럼 인연이 있는 것인지 당문호는 매우 쉽게 혜광심어에 성공했다.맹룡위의 기예를 자주 사용한 것이 도움이 된 것 같기도 하고 최근에 음양진경에서 조금 더 깨달음을 얻은 것이 도움이 된 듯도 했다.
당문에서는 당무호가 직접 왔다.자신에게 문제가 생기면 당인걸더러 가주위를 이으라고 미리 유언을 남기고 떠났다.암기술이 강한 자들로만 뽑아서 왔다.
청성파의 대장로도 평소와는 달리 진중한 모습을 보였다.청성의 제자들은 대부분이 처음 청성을 떠났다.청성에 있을 때와 달리 책임감을 느꼈는지 대장로는 제자들을 차분히 다독이고 있었다.
소림의 무승들은 승복의 왼쪽 소매를 찢었다.이는 살계를 열겠다는 뜻이다.생사를 건 전투에 임할 때 승복의 왼쪽 소매를 찢는 것으로 죽거나 죽이는데 주저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나타낸다.
기세가 삼엄한 소림과는 달리 무당은 질서정연한 가운데 자유로움이 느껴졌다.무당의 도사들을 보면 중대한 싸움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하지만 그럼에도 한치의 흐트러짐도 보이지 않았다.
화산의 무인들의 기세는 날카로웠다.험준한 화산의 산세와도 같았다.화산의 무인들은 서서히 살기를 가다듬었다.무공이 약한 자들은 화산근처에 얼씬하지도 못했다.그만큼 화산의 기세는 살벌했다.
정무맹주는 당문과 청성파 사이에 중일과 함께 애매하게 서 있었다.중일은 정무맹주의 지도때문인지 마음의 안정을 찾아서인지 기도가 남다르게 변했다.어느 정도 시간만 흐르면 일류의 끝을 보게 될 것이다.정무맹주도 짐을 덜어서인지 기도가 예전보다 훨씬 부드럽게 변했다.
당문호는 혜광심어의 구결을 속으로 되뇌이다가 생각이 손에 들린 비단손수건에 미쳤다.검은 비단에 원앙이 수놓아진 손수건은 남궁소소가 직접 수놓은 것이다.노랗고 파랗고 빨간 색실들로 이쁘게 수놓은 두마리의 원앙이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당문호는 자신이 남궁소소와 두 아이에 대한 그리움이 그들에게 전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태자는 갑옷을 입고 직접 독전에 나섰다.지휘를 하려는게 아니다.다만 현장에서 직접 지켜보면서 이 세상과 운명을 함께하고 싶었다.태자가 경사에 있는다고 해서 뭐라할 사람도 없지만 태자는 멀리서 결과를 기다리는게 차라리 더 힘들었다.
자시에서 오시로 바뀔때가 양기가 가장 충만하고 생명의 기운이 가장 활발한 시기이다.당문호는 오행옥편을 들고 봉인지로 들어갔다.네개의 옥편을 방위대로 놓은 뒤 중간의 구멍에 황색옥편을 꽂았다.그리고 재빠르게 밖으로 몸을 뺐다.
사방에 난 구멍에서 오색찬연한 빛이 흘러나왔다.그러더니 제단위에 있던 건물이 네조각으로 갈라졌다.두개의 대각선을 기준으로 갈라진 건물은 각각 동서남북으로 움직였다.불가사의한 장면에 모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제단이 웅웅 울리면서 위로 솟아올랐다.그러더니 제단도 반으로 갈라졌다.갈라진 제단안에는 청동으로 된 화로가 있었다.그 화로에서 연기가 나오더니 두마리의 짐승으로 변했다.
태자는 다급히 공격명령을 내렸다.화포가 쏘아지고 화약이 터졌지만 유적지도 두 짐승도 아무 피해를 입지 않았다.두마리의 짐승이 서로에게 다가갔고 강호의 군웅들은 멸세신수를 향해 돌진할 준비를 마쳤다.
- 작가의말
멸세신수,세상을 멸하는 신수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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