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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동인

왕도깨비 (부제-닌자가 된 조선무사)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한림팔기장
작품등록일 :
2022.04.13 12:33
최근연재일 :
2022.08.02 09: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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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4.13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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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4쪽

안개 속 검은 그림자

역사는 반복된다.




DUMMY

정해(1587년)년 초봄,


고금도 일대에 봄비라기에는 많은 장대비가 새벽녘부터 쏟아졌다.


한참을 내리는 비로 인해 날이 밝고 있는지 어둠이 물러가고 있는지 도무지 모를 정도로 세상은 장대비 소리와 짙은 어둠으로 뒤덮여 있었다.


어둠이 물러가야 할 시간이 되자 도저히 멈출 것 같지 않던 비가 스물스물 물러나고 그 자리에 뿌연 안개가 찾아와 앞을 구분할 수 없었다.


온 세상이 짙은 안개로 까마득한데, 그 안개 사이로 약산도를 지나 고금도 내륙 거친 바닷길을 따라 작은 점 하나가 보였다.


짙은 안개 속에서 작은 점하나가 점점 커지더니 두개가 되고 다시 시커먼 물체가 되어 바다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안개를 가로지르며 나타난 검은 물체는 작은 배로 한 척, 아니 두 척이었으며 어딘가로 급히 가는지 노를 젓는 사내들의 숨소리가 거칠었다.


앞서가고 있는 배의 뱃머리에 선 사내가 앞을 보며, 두리번거렸다.


그 사내는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 짙은 안개 속 지형을 보며, 무엇을 찾는지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렸다.


“이봐, 제대로 가고 있는 거 맞아?”


바로 뒤 긴 나무막대기 같은 것을 든 사내가 지도를 보다 짜증이 났는지 지도를 내 팽개치며, 뱃머리에서 여기저기 살피고 있는 사내에게 조용하지만, 짜증 섞인 목소리로 날카롭게 쏘아 붙였다.


“아, 안개가 너무 짙어··· 앞을 분간할 수가······. 방향 잡기가 어렵소.”


뱃머리 사내가 뒤로 힐끔 쳐다보더니 들릴락 말락 하게 말을 하고는 앞을 열심히 살폈다.


“···걱정하지 마소. 여기 지리는 내 손바닥이오. 조금만 더 가면······. 거의 근처까지 왔으니 조금만, 기, 기둘리소···.”


사내가 오른손을 이마에 대고 안개 사이로 열심히 주변을 살피면서도, 뒤가 켕기는지 마른침을 삼키고는 더듬더듬 말을 하면서도 말끝을 흐렸다.


“써발, 왜 말끝을 흐리고 찌랄 이야. ···만약 일이 잘못되면 네놈의 목이 붙어 있지 못 할 게다. 썩을 놈.”


두목 다카키는 뭐가 불만인지 오른쪽 얼굴에 난 칼자국을 씰룩거리며 욕지거리다.


다카키의 거친 말에 사내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키고는 오른손을 이마에 대고 멀리 바다를 바라보다 움츠러든 자기의 목을 쓰다듬었다.


함께 배에 타고 있던 자들은 다카키의 욕지거리가 다반사인지 앞을 보며, 키득거렸다. 다카키가 부하들을 노려보자 급히 입을 다물었다.


“젠장, 이러다가 허탕 치는 거 아냐. 신사부로가 난리칠 때, 한탕하고 빨리 빠져나가야 하는데······. 그놈이 알면 끝장이야. 끝장.”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다카키가 자못 심각한 듯 작은 목소리로 자기의 목을 손으로 긋는 시늉을 하고는 중얼거렸다.


“신사부로가 흥양을 노략질하고 난 뒤 곧 가리포를 기습할 거다. 아니 지금 쯤 가리포에 왔는지도 몰라. 그놈들보다 먼저 한탕하고 빠져나가야 해. 조선군이 그놈들 때문에 정신없을 때 빠져나가야지, 잘못하다가는 우리가 덤터기 쓸 수가 있어.”


다카키의 말에 부하들이 덩달아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빨리빨리 노를 저어라.”


다카키가 부하들을 재촉하며 이마를 잔뜩 찡그리고는 앞을 바라보았다.


“대장! 저놈 믿다가 개죽음당하는 거 아니우?”


그러잖아도 신경이 곤두서고 있는데 뒤에 있던 신조가 신경을 거스른 말을 했다.


“썅, 되먹지도 않은 소리 말고, 입 닥쳐!”


안개 속에서 헤매는 것이 분명해 신경이 곤두서고 있는데, 신조가 불을 붙이는 말을 하자 자기도 모르게 거친 말이 나왔다.


다카키의 욕설에 신조가 몸을 움츠리며 키득거리는 놈들을 째려보았다.


본래 새벽 일찍 흥양 근처에서 출발해서 진시 무렵 강진에 도착하려고 했는데, 오는 도중 장대비가 와서 비를 피해 외딴섬에 숨어들었다.


비는 거의 그쳤지만 안개가 자욱해 앞을 분간할 수가 없어 출발하지 못했다.


마음이 급한 다카키가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어서 뱃머리 사내를 닦달하여 겨우 출발했지만, 겹겹이 쌓인 안개로 방향을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뱃머리에 선 사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억지로 신사부로 일당에게서 빼 왔지만, 안개 속에서 헤매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젠장.”


시간이 지날수록 하늘과 바다가 먹장 같은 안개로 뒤덮였다.


어디가 바다이고 하늘인지 모를 정도로 젖빛 안개가 층층이 하늘로 쌓여 갔다.


뱃머리 사내가 뒤로 다카키를 슬쩍 보았다.


심하게 씰룩거리는 얼굴과 함께 눈을 시뻘겋게 부라리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썩을····· 놈!'


불안하고 불길한 생각들과 다카키에 대한 묘한 감정들이 섞였다.


얼굴에 묻은 안개의 물기를 닦아 내며, 살짝 언짢은 표정을 숨기듯 고개를 슬며시 숙이고는 몸을 다시 돌려 앞을 주시했다.


‘이러다가 엉뚱한 곳으로 가는 게 아닌지······.’


입술이 바싹 타들어 갔다.


반 시진을 헤매며 앞으로 가고 있을 때, 저 멀리 안개 사이로 무엇인가 어렴풋이 보였다.


“···저, 저거는······. 음! 어쩔 수 없지.”


구름 위에 떠 있는 작은 불빛을 보며, 사내는 본능적으로, 아니 잠시 고민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뒤의 다카키를 묘한 표정으로 힐긋 쳐다보았다.


“이, 이보우!”


사내가 뒤를 보며 나지막하게 다카키를 불렀다.


다카키가 부하들을 격려하다 사내의 목소리를 듣고 급히 근처로 다가갔다.


살짝 웃음기를 머금은 사내를 보고는 눈을 치켜세우며 구름 위를 더듬었다.


“뭐여? 구름밖에 안 보이는데 뭘 보라는 거야. 씨발.”


한참을 안개 속을 헤매다 다카키가 투덜거렸다.


먹장구름이 온 바다를 둘러싸고 있으니 보이는 것은 안개요 구름이었다.


다카키의 일갈에 목을 잔뜩 움츠리고는 사내가 자세히 보라며, 다시 하늘을 가리켰다.


하늘을 가리키는 사내가 미덥지 않았는지 투덜거리며 다시 사내의 손가락 끝을 따라갔다.


사내가 가리키는 손가락 끝 저 멀리 조그맣게 붉은 점이 어스름하게 보였다.


“저, 저게···?”


“야. 분명히 불꽃입니다요.”


"불꽃?"


다카키의 표정이 이그러지며 짜증을 냈다.


"저게 그 불꽃입죠."


"그, 그 불꽃이라니···!"


사내의 확신에 찬 얼굴에 그제야 말귀를 알아들은 다카키의 얼굴이 조금 펴지며 사내의 등을 툭 쳤다.


"만약 아니면 네 모가지가 떨어질거다."


사내가 움찔하면서도 속으로 욕을 했다.


'망할 놈!"


배가 그 붉은 점을 향하여 왼쪽으로 방향을 잡고는 빠른 속도로 다가갔다.


시간을 더 지체하다가는 신사부로 일당과 강진에서 마주칠 가능성도 있고 그렇게 되면 자기의 목이 붙어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는 생각에 다카키가 노를 젓는 부하들을 다그쳤다.


뱃머리 사내는 구름 사이로 보이는 불꽃을 보며, 찾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안개로 바다를 헤매고 있었지만 강진으로 들어가려면 좀 더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으로 가슴을 졸였다.


아니, 자신은 알고 있었다.


주변에 섬들이 많은 것이 강진 초입이라는 것을, 하지만 다카키에게 강진이 아니라고 말할 용기도, 마음도 없었다.


이러나저러나 자기의 목숨은 파리 목숨이었다.


강진으로 가다 늦어 잘못되기라도 하면 다카키에게, 강진에서 신사부로를 만나면 그에게 목이 나가떨어질 것이었다.


온갖 생각에 가슴을 졸였지만, 더 이상 다른 선택이 없었다.


막다른 길로 들어섰기에 물러날 수도 없었다.


다만, 멀리 보이는 불꽃이 다카키가 찾는 불꽃이 맞기를 간절히 바라며 못난 생각들을 떨쳐버렸다.



***



을묘왜변(1555년) 이후 조선은 일본인들에게 부산 왜관만 개방하고 있었지만, 왜관이라고 해서 아무나 들어 올 수 없었다.


대마도주의 도항증이 있어야 부산 왜관에 들어올 수 있었다.


조선과 대마도의 철저한 단속과 그동안 왜구들 뒤에서 노략질이나 밀무역을 부채질했던 큐슈 등의 영주나 상인들이 남만인들과의 교역으로 부를 축적할 수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왜구들의 노략질이 줄어들었었다.


지금 몰래 고금도로 들어오고 있는 무리들은 왜구들 무리가 흥양을 침략하고 있을 때, 그들 무리에서 몰래 빠져나와 도자기의 고장인 강진으로 숨어들고 있었다.


일본은 근래 들어 이도라 불리는 조선의 도자기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화려한 차 문화가 단순하고 서민적인 차 문화로 변화되고 사무라이 정신이 높아지면서 단순하면서도 담백한 아름다움을 추구하게 되어 조선 도자기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정상적인 무역으로는 조선의 다기들을 구하기 어려웠다.


구한다고 해도 비용이 만만찮았다.


한몫 잡기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해적으로도 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어 다른 살 궁리가 없었다.


아니 찾아야 했다. 자신뿐만 아니라 자기를 믿고 따르는 부하들이 있었다.


대장인 모치나루의 명이 있기는 했지만, 다카키 스스로 부하들을 설득해 목숨을 건 도박판을 펼쳤다.


이제 곧 꿈에 그리던 삶이 목전에 와 있다고 생각하니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미소 띤 얼굴로 부하들을 바라보았다.



*


거북섬 모퉁이 초가집에서 수연이 바가지를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얘들아, 군밤 먹자! 아버지는 오늘 조금 늦으실 거야.”


아이들이 화롯불에 둘러앉아 군밤 까먹는 모습을 보며, 멀리 완도로 일을 보러 간 남편을 떠 올렸다.


‘어젯밤은 또 어디서 주무셨을까? 완도에 갔다가 오시면서 아버지 집에 들렀다 오시겠지. 아버지를 찾아뵌 지도 벌써 몇 해가···’


수연은 친정을 생각하자 가슴이 먹먹해져 얼른 아이들에게 군밤을 까 주었다.


아침을 굶고 먹는 음식이지만, 식사라고 해봐야 군밤에 김치가 전부였다.


그 시각 왜놈들이 탄 배가 작은 거북섬을 돌아 뭍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점점 뭍으로 다가갈수록 산 중턱에 있는 붉은 점이 불꽃으로 선명해졌다.


“이봐, 모두 산 채로 붙잡도록. 특히 불을 지르거나 죽이면 안 돼. 모두 돈이야 돈! 소란을 일으키지 말고, 특히 신바, 너! 성질 죽여."


다카키의 서슬퍼런 말에 부하들이 바짝 긴장했다.


"조용히 왔다가 조용히 물러간다. 꼭 명심하도록“


"핫!“


부하들의 우렁한 대답에 만족한 다카키


"따로 보상은 없다. 집 구석구석을 뒤져서 가져갈 만한 것들도 챙기고. 각자의 몫으로, 알았나?"


"핫!"


뱃사나이들이 두목의 말에 우렁차게 대답하고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웃었다.


"자! 빨리빨리 서둘러라!”


배가 작은 거북섬을 지나 땅에 맞닿자 다카키가 배에 탄 부하들을 둘러보며, 재촉했다.


부하들이 큰소리로 대답을 하고는 배에서 뛰어 내렸다.


"조, 조용히"


부하들의 큰 소리에 화가나 말을 하려다 그만두었다.


행복이 눈앞으로 다가온 부하들이기에 그 기분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십여 명의 무리는 산 중턱의 가마가 있는 곳으로 쏜살같이 내달리어 갔고 나머지는 마을로 들어갔다.



거북섬 산 중턱,


가마 안에 들어간 장작들이 서로 경쟁하듯 탁탁 소리를 내며, 불꽃을 태우고 있었다.


비가 온 뒤 차가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사내 하나가 웃통을 벗고 움막을 나와 장작을 몇 개 더 가마 아궁이로 밀어 넣었다.


검은 그림자가 그 사내 뒤로 조용히 달려가 목에 칼을 들이댔다.


“조용히 햇!”


어설픈 조선말로 위협을 가했다.


사내는 너무 놀라 입을 벌린 채 눈만 이리저리 움직이며 벌벌 떨었다.


가마 옆 움막에서 볼일을 보고 나오던 가마꾼이 한 무리의 칼을 든 왜구들을 보고 놀라 자빠지며, 소리를 질렀다.


“왜, 왜구다. 왜구가, 왜구가 쳐들어왔다.”


바지를 제대로 추스르지 못한 채 뒤로 일어나 도망가려 했다.


그 순간 왜놈 하나가 쏜살같이 달려와 사내를 향해 칼을 높이 들었다.


‘젠장!’


“신바!”


자신을 부르는 날카로운 소리에 힐긋 뒤를 보고는 사내를 죽이려던 칼을 천천히 내려 사내의 목에 겨누었다.


“빠가야로!”


다카키가 화가 나는지 욕설을 뱉어냈다.


“신바! 정신 차려. 저놈 목숨값이 얼만 줄 알고···.”


“핫, 저 새끼가 갑자기 소리를 질러서 저도 모르게···, 헤헤헤.”


움막 안에서 조촐하게 식사하고 있던 다른 가마꾼들은 밖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리에 놀라 자리에서 허둥지둥 일어났다.


“뭐여, 밖에 무슨 일 이여, 누, 누구라고···!”


주섬주섬 일어나다 왜구라는 소리에 놀라 밖으로 뛰쳐나온 가마꾼들은 칼을 든 왜구들을 보고 이리저리 도망을 갔다.


왜구들이 달아나는 그들을 뒤쫓았다.


두 명은 멀리 못 가서 잡혔으나 나머지 한 명은 재빠르게 산 능선을 타고 넘어 골짜기로 내리 달려 도망을 갔다.


발이 무척 빨랐다.


“써벌! 빨리 잡아. 관군에게 알리면 끝장이다. 죽여도 좋다.”


두 명의 왜구가 그를 쫓아갔다.


왜구들이 여기저기 움막집을 뒤지며, 물건들을 주워 담았다.


“빨리빨리 서둘러라! 관군이 오기 전 빠져나가야 한다.”


한쪽 구석에서 뱃머리 사내가 얼굴을 푹 숙이고는 아수라장이 된 가마장을 힐끔거리며 혼잣말을 했다.


"내도 지킬 목숨이 있는께. 미안허지만 어쩔수가 없었당게."



그 시각, 아침 겸 점심밥을 먹던 십여 가구가 사는 거북마을 주민들은 왜구들의 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십여 명의 왜구들이 손에 칼을 들고 날뛰었다.


그들 앞에 마을 사람들은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다.


“집 안에 쓸 만한 물건들 챙겨라. 니놈들 몫은 알아서들 챙기라구”


왜구들은 질그릇이나 장독 등을 닥치는 대로 자루에 넣었다.


덩치가 있는 마을의 사내가 낫을 들고 대항하다 왜구의 칼에 쓰러졌다.


험악해진 분위기에 아이들이 부모 품속으로 들어가며 무서워 울었다.


“모두 도공들인가?”


“그, 그런 것 같소!”


배 이물에서 길을 안내 하던 자가 들릴 듯 말 듯 말하고는 배로 걸어갔다.


“그래! 모두 끌고 가라. 서둘러라!”


마을로 내려온 다카키가 마을에서 섬사람들을 끌고 나오고 있는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짙은 안개로 왜구들은 횃불을 손에 들고 어른들과 아이들을 줄에 묶어 배가 있는 곳으로 끌고 갔다.


가마에서 도망친 사내는 산을 내리 달아 거북마을 근처에 있는 영후네 집으로 달려갔다.


“무, 무솔이 아버지. 왜구가, 왜구가 쳐들어왔으라.”


그 사내는 숨을 헐떡이며, 소리를 질렀다. 그 뒤를 왜놈들이 바짝 뒤쫓았다.


바깥소리에 놀란 수연은 일어나 문 앞으로 가서 막 문을 열려고 하는데, 왜놈 두 명이 문을 확 열고 들이닥쳤다.


“엄마야!”


깜짝 놀란 수연이 뒤로 엉덩이를 빼며 뒤로 물러나 놀란 아이들을 품에 안았다.


하야시 일행은 수연과 아이들을 마당으로 끌고 나왔다.


“어머니, 무서워요.”


아이들은 수연의 소매를 붙잡고 울었고 수연은 아이들을 품에서 놓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이들도 모두 끌고 가자.”


수연 가족을 묶고 나서 왜구 하나가 방과 바깥 여기저기를 살피며, 가져갈 물건들을 찾았다.


“뭐 이런 집구석이 다 있어. 아무것도 없네. 젠장!”


단칸방 하나에 뭐가 있을까만, 혹시나 해서 여기저기를 뒤져보던 왜놈이 욕을 내뱉으며, 군밤 하나를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앗 뜨거!”


“저런 병신 같은 놈, 오자이! 그만 가자.”


*


겨울밤이 깊어 가는 지리산 토끼봉 아래 벗점골.


밤하늘의 별자리를 둘러보며, 백의선사가 혼잣말처럼 말을 했다.


“별자리가 좋지 못하다. 북극성 근처가 흐려지고 있으니, 앞으로 남쪽으로부터 큰 재앙이 닥칠 게야.”


“스승님, 큰 재앙이라면 어떤 재앙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백의선사 한 걸음 뒤에 있던 배달처사가 의아하다는 얼굴로 스승 옆으로 다가왔다.


“나와 함께 한지가 얼마나 되었느냐?”


“네, 강산이 다섯 번은 바뀌었습니다.”


“넌 아직도 갈 길이 멀구나!”


“스승님은 항상 저를 어린아이 취급하십니다. 저도 이제 예순이 넘었습니다.”


“야, 이놈아! 나이만 처먹으면 뭐 하냐. 하늘의 뜻을 알아야지. 이승과의 인연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는데 네놈 때문에 편히 못 가겠다. 이놈아!”


목소리를 높였다가 백발의 스승에게 꾸지람을 들은 배달처사가 눈을 흘겼다.


하지만 스승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백의선사가 처소 안으로 들어가고 난 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근래에 들어 별자리가 더 흐려졌다.


‘일본의 풍신수길이 일본 전국을 통일하였다고 했는데 걱정이다. 필히 저들이 조선을 짓밟으리라.’


일본에서 몇 번의 사절이 다녀갔다.


풍신수길이 새로운 왕이 되었으니 조선 왕이 직접 알현하러 들어오라거나, 명을 치러 갈 테니 조선은 길을 막지 말라느니 하며 협박 아닌 협박을 하고 있었다.


배달처사는 한숨을 쉬며 아이들이 있는 처소로 올라갔다.

제자들이 책을 펼쳐서 읽고 있었다.


“앞으로는 검술 수련에 집중할 것이다. 전승 무예 위에 스승님의 검술을 연마해 몸에 익혀야 하느니라! 스승님께서 가르쳐 주신 무사의 정신, 즉 검을 다룸에 있어서 생명을 우선시 하고 나 자신을 배려할 수 있어야 한다.”


“네, 성심으로 배우겠습니다.”


무솔과 연서, 그리고 종하가 우렁차게 대답했다.


연서는 어릴 적부터 배달처사를 따라 다였고, 종하는 무솔이 보다 2년 앞서 학문과 무예를 수련하고 있었다.


“영후도 꽤 재능이 있었는데, 안쓰럽구나!”


배달처사는 무솔이를 넌지시 보고는 허공을 향하여 푸념했다.


‘어린 무솔이가 아버지의 짐까지 져야 하니···.’


혼잣말을 한 걸 용케 알아들었는지,


“제가 더 수련에 힘을 써 아버지 몫까지 하겠습니다. 스승님.”


“저희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종하와 연서도 무솔을 바라보며 힘 있게 말했다.


씩씩하게 대답하는 세 아이를 보며, 배달처사가 웃었다.


그러자 세 제자도 따라 웃었다.


이들 셋은 오랫동안 함께 있어서 그런지 한가할 때마다 모여 담소를 나누곤 했다.


다른 아이들이 놀 때도, 일찍 잠을 잘 때도, 그들 셋은 모여 글공부와 검술, 무예 수련에 열심을 냈다.


서로 의지하며 형제자매처럼 지냈기에 배달처사가 그들의 모습에 늘 흐뭇해했다.


*


고려 때는 강진에서 고려청자가 만들어졌지만,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많은 도가가 강진을 떠났다.


을묘왜변(1555년) 때 폐허가 된 거북마을 근처로 강진의 도공들 일부가 이사를 와 가마를 만들어 질그릇을 구우며 살아가고 있었다.


이들은 질그릇과 생활 도기들을 만들어 팔고 또 해산물을 잡아서 생계를 어렵게 이어 갔다.


영후는 결혼과 함께 아버지의 외가인 거북마을에 들어와 을묘왜변 때 폐허가 된 외가의 집터에 초가집을 지었다.


처가도 같은 고금도라 아내 수연도 좋아했다.


같은 섬에 있었지만, 처가에 가려면 바다가 섬 깊숙이 들어와 있어서 바닷가를 따라 십리하고도 오리를 돌아가야 했다.


뱃사공을 이용하면 거북마을 건너편으로 가는데 약 일각 못 미쳐서 건너갈 수가 있다. 반대편 바닷가에서 처가까지는 걸어서 반 각이면 되었다.


“부인, 조만간 나라에 큰 변고가 있을 듯합니다. 무솔이가 걱정이구려.”


영후가 손에 들고 있는 청동거울을 근심 가득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배달처사께서 잘 가르치고 있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무솔이는 현명한 아이니 잘 헤쳐 나갈 것입니다.”


영후의 큰아들 무솔이는 지금 배달처사를 모시고 학문과 무예를 수련하고 있었다. 그의 나이 열세 살이다.


꿈자리가 뒤숭숭하여 두륜산의 배달처사에게 보냈다. 그때 무솔의 나이 여덟 살이었다.


지난해 가을까지 두륜산에서 수양하다 초겨울에 지리산으로 들어간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어린 나이에 부모 곁을 떠나 산속에서 학문과 무예 수련을 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잘 견디어 내고 있었다.


어릴 적은 외조부에게서 학문을 배웠으나 무솔이는 학문보다 아버지가 만들어 준 목검을 가지고 노는 것을 더 좋아했다.


아들에게 어릴 적부터 검의 기본기를 가르쳤다. 비록 목검이었지만 무솔은 곧잘 따라했다.


조금씩 키도 커지고 맷집도 강해지자 조금씩 칼을 다루는 법을 가르쳤다.


칼 쓰는 법을 가르쳐 주곤 했으나 본격적으로 무예 수련을 위한 검법을 가르쳐 주기에 자신은 부족했다.


화상 흉터와 다친 다리가 문제였다.


몸속 깊은 곳에서 전하여 오는 고통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지 무솔은 홀로 목검을 들고 아버지가 마당에 그려준 그림을 보며 검술 수련을 했다.


영후는 어릴 적 을묘왜변으로 부모님을 여의고 외가에서 자랐다.


열 살 무렵 외조부의 소개로 배달처사를 만나 두륜산에서 한동안 기거하며 정신수양과 몸을 추스르며 무예를 연마했다.


5년을 수련하였지만, 을묘왜변 당시 화재로 인한 화상의 상처로 배움의 속도가 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수련 중에 번개로 나무가 쓰러져 영후를 덮쳤다.


다리를 크게 다쳐 더 이상 정진하지 못하고 외가로 내려왔다.


영후의 외조부와 수연의 아버지 김 진사가 남명 조식의 산천재에서 만난 인연으로 영후의 사람됨을 알고 있던 김 진사.


영후가 몸이 좀 불편한데도 수연의 배필로 마음에 두어 두 사람은 백년가약을 맺을 수 있었다


영후아내 수연은 겉으로 내색은 안했지만 아들 걱정에 한숨이 나왔다.


영후는 그런 아내를 보자니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그들 부부 옆에 두 아이가 잠이 들어 있었다.


영후는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해솔이와 예솔이를 바라봤다.


이제 겨우 열하나인 예솔이와 여덟인 해솔이가 곤히 잠든 모습을 바라보는데, 가슴 아래에서 아픔이 올라왔다.


해솔이의 목에 홍조수아로 수놓아진 손가락만 한 청동검이 놀이도구처럼 걸려 있었고, 예솔의 품속에 장난감처럼 중지만 한 작은 청동방울이 눈에 들어왔다.


두 아이의 앞날도 평탄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차오르는 감정을 누르려 눈을 감았다.


선대로부터 내려오는 청동거울과 청동검, 그리고 청동방울은 울음소리를 내거나 붉은빛을 내면 나라에 변고가 있거나 어려움이 닥친다고 전해져 오고 있었다.


몇 달 전부터 청동거울이 붉게 물들고 있었고 밤이면 울음소리를 내자 며칠을 고민하다 청동검과 청동방울을 아이들에게 주었다.


영후는 무솔 걱정에 쉽게 잠들 수가 없어 뒤척이다 일어나 아내와 아이들이 깰까 봐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느티나무 아래에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밝게 부풀어 오르고 있는 달과 맑게 빛나는 별들이 손에 잡힐 듯 밤이 깊어 가고 있었다.


바닷바람이 불어와 느티나무 가지를 흔들었다.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영후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조선이 건국되고 세종 조를 거치며 태평성대가 이어져 오고 있었다.


성리학이 꽃을 피우면서 무보다는 문을 중시하게 되어 국방에 대한 경각심은 낮아졌다.


큰 전쟁 없이 평화로운 시절이 계속되자 군역 제도가 문란해졌으며, 조선 초기에 마련된 병역제도가 유명무실해져 갔고 점점 많아져 간 양반들은 군역을 피해 나갔다.


또한 양반들이 일반 백성들을 노비로 삼아 그마저도 병역 의무자가 줄어들었다.


병역 의무자가 줄다 보니 백성들의 군역 의무가 과중 되었고 이를 견디다 못해 산속으로 도망을 갔다.


이러다 보니 수령들은 군인들 숫자가 부족하여 그 수를 보충하기 위해 죽은 자와 온갖 짐승들 이름도 명부에 올려놓았다.


조정은 서인과 동인으로 나뉘어 정쟁으로 인해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으며, 문을 중시하고 무를 등한시하게 되어 국방은 점점 더 허물어져 갔다.

풍전등화의 위기가 다가오고 있었지만, 그 방비책은 없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초보 작가 한림팔기장입니다

요즘 바쁘다 보니 인사가 늦었습니다.
4월 13일 첫회를 올리려다 보니 정신이 없었나 봅니다
1592년 4월 13일(음) 이 임진왜란이 일어난 날이라
또한 제 아내의 지천명 날이라 서두르다 보니~

부족한 실력이지만 글을 적어 보았습니다
많은 비평과 소감 부탁드립니다.

한림팔기장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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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도깨비 (부제-닌자가 된 조선무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70 또 다른 검 이순신 22.08.02 104 0 15쪽
169 일본 무장 손문욱 22.08.01 74 0 10쪽
168 조선 백성의 하늘을 베라 22.08.01 70 0 12쪽
167 천손 3 22.07.31 61 0 11쪽
166 천손 2 22.07.31 55 0 9쪽
165 천손 1 22.07.30 65 0 9쪽
164 주조와의 대결 22.07.30 72 0 9쪽
163 되찾은 청동거울 22.07.29 76 0 13쪽
162 히데요시의 허왕된 꿈 22.07.29 62 0 10쪽
161 세 남매 22.07.28 65 0 13쪽
160 원수의 목을 베다 22.07.28 67 0 11쪽
159 울돌목 싸움 2 22.07.27 65 0 10쪽
158 울돌목 싸움 1 22.07.27 71 0 11쪽
157 왕도깨비 22.07.26 57 0 9쪽
156 타이요우와의 결투 22.07.26 59 0 12쪽
155 배신자 준사 22.07.25 65 0 11쪽
154 두려움과 호승심 사이 22.07.25 67 0 12쪽
153 일본 장수를 사랑한 여인 22.07.24 70 0 11쪽
152 한산섬 어린 포로 22.07.24 66 0 11쪽
151 초로한 이순신 22.07.23 63 0 15쪽
150 이순신의 길 22.07.23 58 0 10쪽
149 불타는 조선의 바다 22.07.22 70 0 10쪽
148 풍전등화 22.07.22 65 0 9쪽
147 닌자들의 싸움 22.07.21 61 0 11쪽
146 묘수인가 악수인가 22.07.21 61 0 11쪽
145 또 다른 여우와의 담판 22.07.20 62 0 13쪽
144 다시 교토로 22.07.20 66 0 10쪽
143 포주 진자에몬 22.07.19 66 0 9쪽
142 여우와 너구리 22.07.19 75 0 9쪽
141 고려신사 2 22.07.18 70 0 10쪽
140 고려신사 1 22.07.18 62 0 11쪽
139 쫓겨간 에도 22.07.17 63 0 12쪽
138 추격자 마리지천 22.07.17 61 0 10쪽
137 고야산으로 2 22.07.16 65 0 9쪽
136 고야산으로 1 22.07.16 56 0 9쪽
135 또 다른 혼노지의 적 2 22.07.15 61 0 12쪽
134 또 다른 혼노지의 적 1 22.07.15 63 0 10쪽
133 사카야마의 죽음 22.07.14 68 0 11쪽
132 속고 속이는 자들 22.07.14 57 0 10쪽
131 타이요우의 폭주 22.07.13 60 0 11쪽
130 타이요우의 배신 22.07.13 67 0 9쪽
129 불타는 올빼미 둥지 22.07.12 62 0 9쪽
128 이시카와 고에몬 22.07.12 62 0 12쪽
127 오사카성 잠입 2 22.07.11 67 0 11쪽
126 오사카성 잠입 1 22.07.11 59 0 10쪽
125 다시 만난 예솔 22.07.10 72 0 10쪽
124 죽음 앞에 선 자 22.07.10 68 0 10쪽
123 지로자에몬 22.07.09 66 0 12쪽
122 사카이 거상 이마이 소큐 22.07.09 86 0 10쪽
121 쫓고 쫓기는 자 2 22.07.08 68 0 9쪽
120 쫓고 쫓기는 자 1 22.07.08 67 0 9쪽
119 소원 하나 22.07.07 77 0 8쪽
118 일본으로 압송되다 22.07.07 76 0 10쪽
117 타다츠구(단검) 22.07.06 67 0 10쪽
116 간자 료우타 22.07.06 72 0 10쪽
115 한산섬에서 만난 쥰세이 22.07.05 60 0 9쪽
114 한산섬 달 밝은 밤에 22.07.05 75 0 10쪽
113 또 다른 비밀작전 22.07.04 66 0 10쪽
112 기만작전 22.07.04 68 0 10쪽
111 논개의 죽음 22.07.03 76 0 10쪽
110 무너지는 진주성 22.07.03 69 0 8쪽
109 조선 무사와의 만남 2 22.07.02 76 0 9쪽
108 조선 무사와의 만남 1 22.07.02 75 0 11쪽
107 무솔이 되다 2 22.07.01 72 0 9쪽
106 무솔이 되다 1 22.07.01 85 0 10쪽
105 한 명호(韓命昊) 22.06.30 70 0 9쪽
104 살동이 22.06.30 74 0 9쪽
103 일본에서 쇄환된 조선인 22.06.29 65 0 10쪽
102 벗점골에 모인 사람들 22.06.29 72 0 10쪽
101 운명인가? 22.06.28 68 0 9쪽
100 숙명인가? 22.06.28 78 0 11쪽
99 가슴에 꽂힌 애기살 22.06.27 78 0 11쪽
98 조선 무사에게 쫓기다 22.06.27 69 0 11쪽
97 진주성에서 만난 철포대장 22.06.26 86 0 11쪽
96 닌자들 간의 싸움 22.06.26 70 0 11쪽
95 진주성으로 22.06.25 77 0 9쪽
94 조선 무사와의 첫 대결 22.06.25 70 0 9쪽
93 이순신을 척살하라 2 22.06.24 88 0 9쪽
92 이순신을 척살하라 1 22.06.24 70 0 8쪽
91 조선 수군의 포로가 된 쥰세이 22.06.23 77 0 9쪽
90 한산대첩 2 22.06.23 63 0 9쪽
89 한산대첩 1 22.06.22 70 0 9쪽
88 와키자카의 호승심 2 22.06.22 73 0 9쪽
87 와키자카의 호승심 1 22.06.21 70 0 10쪽
86 거북배 22.06.21 69 0 8쪽
85 복수의 서막 22.06.20 62 0 9쪽
84 동료를 베다 22.06.20 62 0 9쪽
83 조선 백성을 지켜라 +2 22.06.19 72 1 10쪽
82 조선의 바다 3 22.06.19 65 0 9쪽
81 조선의 바다 2 22.06.18 55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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