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성 잠입 1
역사는 반복된다.
“센.”
센은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겨우 잠을 깼다.
온종일 사람들에게 시달리다 보니 지쳐 잠들었는데 눈이 쉽게 뜨이지 않았다.
“내일 장가간다고 꿈나라에서 헤매는구나!”
“으, ······료우타 형! 언제 방에 들어 온 거야?”
센은 몰래 들어 온 검은 복면으로 인해 당황했으나 곧 무솔을 확인하고는 눈을 비비며 이불에서 나왔다.
“등잔불은 켜지 말지.”
“응? 아. 그런데 어떻게 된 거야?”
센이 무솔이 조선인이며, 타이요우에게 상처를 입혔고 다른 게닌들을 죽였다는 것을 묻고 있었다.
“말해줘도 믿을 수 없을 거야. 다만. 그날도 타이요우에게 당했어. 그는 항상 날 죽이려 했으니까.”
“난 누가 뭐래도 형을 믿어. 아니 형 편이야.”
달빛 어둠 속에서도 센의 표정은 진심을 말하고 있었다.
그런 센이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자식, 하지만 내가 조선사람인 것만은 사실이야.”
당사자의 입에서 조선사람이라는 말이 나오자 센이 너무 놀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눈만 동그랗게 뜨고는 달빛 창 그림자에 비친 무솔을 바라보았다.
“뭘 그렇게 놀라나. 촌장님과 라나님도 알고 있었는데. 조선인인 나도 몰랐던 사실······을.”
“······.”
“혹 너도 알고 있었던 거 아냐.”
눈만 멀뚱멀뚱 뜨고는 자신을 보고 있는 센을 보며 실없는 소리를 하며 웃었다.
“······.”
무솔이 조선인이라고 해서 놀란 것인지, 라나와 촌장이 무솔이 조선인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에 놀란 것인지 입을 딱 벌리고는 눈알만 굴렸다.
“하하하! 설명하면 복잡하고 길다. 그만하고. 낼 어른이 되는 기분이 어때?”
그저 놀란 눈으로 멍하니 무솔을 보고 있다가 그의 물음에 정신을 차리고는 들뜬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늘 있었던 일과 설레는 마음, 그리고 한 여자의 남자로서, 그리고 무사로써 살아가야 하는 자기의 삶에 대한 두려움과 기대에 관해 이야기했다.
“무슨 격식이 그렇게 많은지 차라리 평범하게 아니 닌자로 사는 게···. 아야! ······왜 머리를 때리고 그래?”
무솔이 센의 투정에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았다.
센이 화를 내는 척하다가 웃었다.
“무사를 때리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아! 그러셔······. 팔자 편한 소리 말고, ······넌 잘해 낼 수 있을 거야.”
다음 날 혼마루 앞 큰 정원에서 센과 유키의 결혼식이 열렸다.
성 안팎에서 많은 구경꾼이 모여들었다.
전쟁으로 우울한 날이 많았는데, 센의 결혼식으로 오랜만에 코카와성에 경사가 있자 백성들이 삼삼오오 즐거운 마음으로 성으로 모여들었다.
겨우내 메말라 있던 나무들과 대지에는 새싹들이 피어나며 온 들판과 성 내에 푸른 생명이 가득했다.
무솔은 구경꾼들 사이에서 두 사람의 결혼식을 바라보면서 흐뭇하게 웃었다.
지난날의 유키의 행동을 보면 걱정이 되었지만 센이 잘해 내리라 믿었다.
유키도 행복한 얼굴이었다.
유키가 무솔을 보고는 아무도 모르게 혀를 쏙 내밀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축복의 손동작을 하며 빙긋 웃어 주었다.
결혼식이 열리는 마당의 한 귀퉁이에서 두 사람의 결혼식을 보며 타이요우가 이를 갈았다.
자신이 센 대신에 저 자리에 있어야 하는데 보잘것없는 녀석이 차지하고 신랑이랍시고 서 있는 모습이 눈꼴사나웠다.
두 사람을 축복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도 싫었다.
“어? 저놈은···.”
타이요우가 군중 속에서 우연히 무솔을 발견했다.
다른 사람으로 변복하였지만, 타이요우의 눈을 피해 가지 못했다.
카이토를 데리고 무솔을 찾아 군중 속으로 들어갔다.
빽빽이 들어선 사람들을 헤치고 무솔이 서 있던 자리에 왔지만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잘못 본 것일까? 아니야, 변장을 했어도 내 눈은 못 속여. 분명히 그놈이었어.’
“너희들은 저쪽으로 찾아봐. 난 이쪽으로 가 보겠다.”
타이요우가 행정 건물 주변을 뒤졌다.
“조심해야 하네. 섬사람들이 자네를 보면 가만히 안 둘 걸세.”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변장하고 들어 온 것입니다. 센, 아니 도도 요시카스님을 잘 부탁드립니다.”
“하하하, 이미 요시카스는 무사가 되었네. 아마도 스승인 자네의 솜씨를 닮아 가는 것 같아.”
“과찬의 말씀입니다. 조금 알려줬을 뿐인데 일취월장, 스스로 깨우치고 있는 것입니다.”
“칸베에 부관님?”
복도 밖에서 누군가가 칸베에 부관을 찾았다.
“누군가?”
“타이요우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무슨 일로 그러는가?”
“다름이 아니라 혹시 료우타를 보지 못했습니까?”
긴장한 무솔을 칸베에가 쳐다보았다.
“료우타라고? 내 집무실에 있든 없든 자네가 무슨 상관인가?”
“네? 아, 아닙니다. 그러면 물러가겠습니다.”
타이요우의 인상이 일그러지는 모습이 선했다.
“료우타가 성에 왔다면 내가 보잔 다고 하게.”
타이요우가 실망한 나머지 어깨가 축 처져서 돌아가는 모습이 떠올랐다.
칸베에가 문밖을 한 번 보고는 무솔에게 차를 한 잔 따라 주었다.
“내가 보기에도 자네는 조선인이 맞을 거야.”
답을 하지 못했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자네의 검술이 자네를 조선인이라고 말하고 있어.”
다시 놀라 칸베에를 쳐다보았다.
‘이미 내가 조선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 그런데 왜?’
“하하하, 뭘 그렇게 놀라나. 나는 자네의 실력이 탐이 났던 게야. 소박하면서도 무엇인가를 베어 버릴 것만 같은 검기를 느꼈다고나 할까? 하여튼 내 인생에서 자네를 만난 것은 아주 커다란 행운이었어.”
“가, 감사합니다. 칸베에 부관님의 은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무슨 일로 머나먼 조선에서 일본으로 오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고향으로 무사히 돌아가길 바라네. 흘러간 물은 다시 돌아오지 않지. 되돌릴 수 없는 것을 붙들고 싸우지 말게나. 아직 젊으니······, 앞날을 생각하게. 이것이 내가 자네에게 해줄 수 있는 전부일세.”
*
사카이의 거리는 조선과의 전쟁 전보다 못했다.
거리에 사람들이 전쟁 전보다 많이 줄었으며, 장사가 잘 안되는지 일찍 문을 닫은 가게들이 많았다.
전쟁 물자와 군량미, 그리고 조선으로 출병할 병사들의 수급으로 백성들의 삶이 조선만큼은 아니었지만, 일본도 피폐해져 가고 있었다.
“아니, 이게 누군가? 어서 이쪽으로 들게나.”
사카히로가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자네의 소식은 들었네. 물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는 하나 섬사람들을 이해해 주게. 촌장님이나 라나가 자네의 출신에 대해 알고 있으면서도 말을 하지 않고 기억을 잃어버린 자네를 이용했으니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더구나 같은 핏줄을 향해 칼을 겨누게 했으니···. 진작 알았으면 막았을 것을. 미안하이.”
사카히로의 솔직한 말에 가슴이 뭉클했다.
눈에 무엇이 들어갔는지 눈물이 나 고개를 돌렸다.
“아닙니다. 저의 목숨을 구해주셨습니다.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다만, ···제가 일본에 온 목적을 잃어버리고 허송세월한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다정한 눈으로 무솔에게 차를 권했다.
‘말씀을 드려야 하나? 어떻게 하지?’
“자네 뭔가 내게 할 말이 있나 보군?”
“저 그게. 어려운 부탁이라 망설이고 있습니다.”
“하하하, 우선 들어나 보고 판단하지.”
*
생활 물품을 실은 수레들이 오사카성으로 들어갔다.
정문에서 경비병들이 수레꾼들과 물품들을 검사하고는 안으로 들여보냈다.
날은 맑았지만, 비가 그친 뒤라 습기가 많았다.
수레가 오사카성 내성으로 들어가 서쪽 창고 건물 앞에 멈췄다.
“그쪽 수레의 물건들은 여기 창고로 들이고, 그 뒤는 저기 작은 창고 안으로 들이거라.”
물건을 납품하는 우두머리가 각 수레에 지시했다.
짐꾼 하나가 수레의 물건을 하나 어깨에 올리고 앞의 건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각종 식자재가 가득 쌓여 있었다.
일꾼들이 짐을 나르기 위해 오고 가는 속에 한 사람이 없어진 것을 모르고 일이 끝나자 우두머리는 일꾼들과 빈 수레들을 이끌고 성 밖으로 나갔다.
“웬 놈이냐?”
“저, 이 짐을 어디에 둘지 몰라 헤매고 있습니다.”
혼마루를 지키던 무사 하나가 다가왔다.
“짐 속에 무엇이 들었느냐?”
“소인은 잘 모르고 저희 행수께서 태합 전하에게 드릴 귀중한 물건이라고, 태합 전하가 사용하시는 창고에 가져다 놓으라고 일렀는데 소인이 머리가 나빠 그만 길을 잃었습니다.”
“이런 바보 같은 놈. 이곳은 아무나 드나드는 곳이 아니다. 잘못하면 네놈의 목이 달아나는 수가 있어.”
“아이구! 잘못했구먼요.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짐꾼은 무릎을 꿇으며 애걸했다.
무사가 짐꾼의 행동에 어이가 없는 듯 웃으며 앞장을 섰다.
“따라오거라.”
짐을 다시 둘러메고 무사를 따라가며 혼마루와 천수각의 구조를 눈에 담았다.
“저기 보이는 사람에게 가져가거라.”
무사가 창고지기에게 짐꾼을 보냈다.
창고지기가 짐꾼을 데리고 가 혼마루 건물 한구석에 있는 광으로 가더니 열쇠로 문을 열어 주었다.
짐꾼이 얼른 안으로 들어가 물건을 내려놓았다.
“누가 보낸 물건이냐?”
“저희 객주에서 특별히 태합 전하에게 바치는 물건으로 조선에서 건너온 다기라고 하더이다.”
물건을 내려놓은 짐꾼이 나오면서 청지기를 살폈다.
청지기가 건성으로 물어보고는 귀찮은 듯 먼저 밖으로 나갔다.
그런 청지기를 보며 씩 웃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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