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고 쫓기는 자 2
역사는 반복된다.
두 무리 간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히데요시는 다시 경호무사 대여섯 명에 둘러 싸여 몸을 어둠 속으로 급히 피했다.
겨우 숨을 헐떡이며 내 달리고 있는데 누군가가 길을 막았다.
앞뒤로 막힌 히데요시가 절망적인 목소리로 물었다.
“네, 네 놈은 또 누구냐?”
앞을 막은 자가 갑자기 무릎을 꿇고는,
“저는 코카와성의 무사 센이라고 합니다. 태합 전하.”
“코카와성? ···도도의 무사란 말인가?”
“네, 분고에서 군사들이 곧 올 것입니다.”
“저기에 있다. 히데요시를 죽여라.”
어둠을 가르며 수리검이 경호 무사들을 쓰러뜨렸다.
“당신들은 태합 전하를 모시고 이곳을 떠나시오. 내가 저자들을 상대하겠소.
이 길로 곧장 가면 태합 전하를 구하려 달려오는 군사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오.”
사카야마가 어린 센을 보호하기 위해 분고에 위험을 알리고 군사들을 청하라고 보냈는데, 센은 자신의 빠른 발을 이용해 분고를 갔다가 이내 돌아오고 있었다.
앞에 누군가가 몇 명의 경호 무사들과 함께 쫒기는 것을 보고 태합 히데요시라는 것을 알아챘다.
센은 앞으로 달려가며 수리검을 뿌렸다.
“나는 센이라고 한다. 다 덤벼라!”
센을 향해 달려오던 자객 두 명이 쓰러졌다.
센은 또 다른 자객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이 화려하게 빛을 보기 시작했다.
료우타, 아니 무솔이 검술 수련 모습을 보며 종이에 그렸다.
그리고 무솔에게 검술을 지도받다가 그가 조선으로 떠나고 난 뒤에는 종이에 그려진 검술을 따라 혼자 수련했다.
닌자의 기술에다 무솔의 검술이 더 해지며 센의 검술 실력은 나날이 발전했다.
오늘 그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자객들을 베어 나갔다.
자객들이 모두 쓰러지자 센이 칼을 칼집에 넣으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 시각 사카야마와 주조는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싸움의 끝이 언제인지 알 수가 없었다.
분고의 병사들이 달려 와서야 싸움은 멈췄다.
병사들을 본 주조 무리가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사카야마 무리도 자신들의 존재를 숨기기 위해 주조 무리처럼 빠르게 몸을 숨겼다가 은신처로 돌아갔다.
많은 게닌들이 돌아오지 못했고 사카야마도 어깨에 심한 부상을 당했다.
태합 히데요시가 피살 직전에 살아 나 오사카로 돌아왔다.
배로 시모노세키를 지나 오사카로 가는 척 꾸미고는 부젠의 나카쓰로 왔지만 암살자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이 목숨은 건졌지만 태합으로써 자존심에 금이 갔다.
전국에 포고령을 내려 암살자들을 색출하라는 엄명을 내렸다.
오사카에 온 히데요시가 요도도노가 낳은 아이, 아들이었다.
두 팔로 안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아들 이름을 히로이마루라 짓고는 축하연을 베풀었다.
축하연에 온 코카와성의 다카도라를 칭찬하며, 많은 하사품을 선사했다.
또한 자신의 목숨을 구한 센을 찾았다.
히데요시는 센에게 무사의 자격을 주었고 다카도라는 도도 요시카쓰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그리고 다가오는 봄에 센, 아니 도도 요시카쓰와 도도 유키를 맺어 주기로 한 것이다.
한 창 전쟁 중 두 사람은 서로 외로움에 마음으로 몸으로 가까워져 있었다.
“이 형도 아직 장가를 못 갔는데 요 조그만 녀석이 어른이 된 다네요. 하하하.”
“아이 씨, 놀리면 화낼 거예요.”
“녀석아, 부러워서 그런다. 부러워서.”
갑자기 라나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쭈, 형님 혹시 라나님 생각하는 거 아니죠.”
“어험. 얘가 못 하는 소리가 없네.”
“아닌가? 얼굴이 빨개졌는데. 킥킥.”
무솔도 센을 따라 웃었다.
코카와성에 들어 온 타이요우가 심기가 불편했다.
하루 종일 방에서 나오지 않다가 어쩌다 나오면 수련장에 가 칼을 휘둘렀다.
검술 수련이 아니라 그냥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살기가 가득했다.
‘내가 누구 때문에 조선에 갔는데······.’
도저히 작금의 현실이 믿기지 않는지 타이요우는 누군가 앞에 있는 것처럼 칼을 휘둘렀다.
그래도 분이 안 풀리는지 어딘가를 향해 수리검을 던졌다.
하루토가 달려오다가 수리검을 겨우 피했다.
“어? 미, 미안.”
하루토는 자세를 바로 잡고는 땀을 닦고 있는 타이요우를 살폈다.
“타이요우님, 죠유지님께서 찾으십니다.”
타이요우가 죠유지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타이요우, 지낼 만한가?”
죠유지가 타이요우의 마음을 아는 듯 부드럽게 말했다.
“네, 지낼 만합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성미가 급하기는. 나도 저 료우타란 녀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네. 며칠 후면 오사카로 간다고 들었는데.”
‘료우타가 아니라···.’
“네, 오사카의 책임자가 부상을 당해 제가 당분간 책임자로 가기로 했습니다.”
“그래? 저 료우타를 잘 감시하게. 기분이 별로 안 좋은 자야. 그리고 이것은 주군의 명이기도 하네.”
‘주군의 명이라?’
타이요우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료우타를 떠 올리자 화도 나고 기분도 안 좋아 얼른 머리에서 지웠다.
밖으로 나오자 찬바람이 타이요우를 감싸며 지나갔다.
“이대로 당할 내가 아니지. 두고 보자.”
타이요우는 어딘가를 유심히 보더니 정원을 가로질렀다.
“타이요우님, 어디 다녀오십니까?”
“어, 센, 아, 아니······. 죠유지님께서 불러서 다녀오는 길입니다.”
“그냥 센이라고 불러 주세요.”
타이요우가 겨우 참는지 얼굴이 씰룩거렸다.
그런 타이요우를 센은 모른 척했다.
“위계질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럼, 할 말이 없으시면 물러가겠습니다.”
타이요우가 목례하고는 휭하니 앞 건물로 사라졌다.
그의 어깨가 들썩였다.
“내가 이게 무슨 꼴이람. 괜히 양자니, 뭐니 되어서는 모든 동료를 잃어버렸어. 젠장.”
센이 타이요우의 뒷모습을 보며 투덜댔다.
방으로 돌아온 타이요우는 조금 전의 센, 아니 요시카쓰를 떠 올렸다.
“료우타에 이어 네 놈까지 나의 앞길을 막는구나. 젠장. 어디 두고 보자! 모두 내 앞에 무릎을 꿇게 만들고야 말겠다.”
잠이 오지 않아 북동쪽 성벽으로 올라 강을 바라보았다.
라나가 보고 싶었다.
조선에 가 있을 때도 그녀 생각으로 잠을 설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연서를 만났을 때도, 죽음 앞에 가서도 오로지 그녀 생각뿐이었다.
‘보고 싶다.’
밤하늘에 무수히 많은 별이 초롱초롱 빛나는 그녀의 눈동자 같았다.
‘예솔이가 아니라 그녀를······.’
사카야마의 지시로 교토에서 카이토를 만나 본 후 아이루를 찾아갔다.
조선에서 돌아온 타이요우가 섬에 료우타에 대해 보고하여 섬사람들도 무솔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사카야마는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예전과 똑같이 무솔을 대해 주었다.
올빼미 섬에 들어 온 고가출신들도 은밀히 알아보고는 반년 만에야 보고했다.
보고받은 사카야마가 아이 누를 찾아갔고, 그 뒤로 많은 정보를 아이루에서 얻을 수 있었다.
“찾으시는 아가씨라도 있습니까?”
“누구라고 하더라. 맞다 오미츠라는 여인이 아름답다고 소문이 자자하더군.”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무솔은 사카야마를 대신해 아이루에서 누군가를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정보원이 잠시 어디를 다녀온다며 자리를 비우고 없었다.
다행히 그 정보원이 짤막한 정보를 남겼다.
조선으로 출병 이후 남은 섬사람들은 교토와 오사카를 오고 가며 정보 수집 활동을 계속했다.
특히 카이로가 사카야마의 밀명을 띄고 고가와 교토 일대의 정보를 수집했다.
얼마 전 레이야를 찾아온 사람이 있었는데 그들의 대화에서 이마이 소큐의 이야기가 나왔다는 정보를 입수한 무솔은 그냥 나갈까 하다가 사카야마가 한 이야기를 떠올리며 오미츠를 찾았다.
혼자 차를 마시며 창으로 들어오는 봄기운을 느꼈다.
장지문이 열리며 단아하고 아름다운 여인이 살며시 들어왔다.
“오미츠라고 합니다.”
“난, 료우타라고 하오. 듣던 대로 미인이시구려.”
“호호호, 그렇게 봐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그 잔은 조선에서 들어 온 것입니다. 이번 전쟁 통에 조선의 그릇들이 많이 들어 왔습니다.”
찻잔을 들고 감상을 하고 있는 것을 본 오미츠가 그릇의 내력을 설명했다.
무솔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의 얼굴을 살핀 오미츠가 얼른 다른 이야기로 화재를 돌렸다.
얼마 후 술상이 들어왔다.
“한 잔 드시지요.”
무솔은 오미츠가 따라 준 술을 들이켰다.
몇 잔을 들이켠 무솔이 오미츠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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