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비밀작전
역사는 반복된다.
무솔과 동료들이 섬진강 둑에서 강을 건넌 뒤 말을 달려 진주 방향으로 가는 적들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적들이 까마득히 사라진 후 강을 건너와 나루 빈 주막에 모였다.
“어떻게 된 걸까?”
“우리가 속은 것 같습니다.”
“속았다니 무슨 근거가 있는가?”
종하를 비롯한 동료들이 무솔의 말에 의아한지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우선은 저들을 보내 우리를 유인한 것 같습니다. 암살대가 무사히 여수로 갈 수 있도록 우리를 혼란케 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것도 육지가 아니라 바다로 말입니다. 진주성에서 여수까지는 육지 보다 오히려 바다가 더 가깝습니다. 일본 수군이 비록 장군에게 패했지만, 특수한 임무를 수행하는 저들은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고 최고의, 최선의 길을 선택하는 자들입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벌써 그들이 여수 우수영을 잠입하지 않았을까? 오늘이 며칠이지?”
“우리가 진주를 떠난 지 이틀이 넘었어요.”
옆에 있던 연서가 종하와 무솔을 보며 말했다.
“장군의 운명을 하늘에 맡겨야 하는가?”
종하가 한숨을 내 쉬고는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아! 참, 이개가 갔지. 그나마 다행이야. ·····이개가 갔으니 무슨 대비책이 있었을 게야.”
*
무솔이 홀로 진주성으로 들어왔다.
진주성은 모든 것이 불에 타고 잿더미만 남아 을씨년스러웠다.
왜 장수들의 막사들이 마당 여기저기에 세워져 있었고 병사들은 근처 마을들을 습격하여 약탈한 물건들을 가져와 자랑하고 있었다.
성 내에 타이요우와 섬 동료들이 없었다.
그들의 정보를 얻기 위해 알아보았지만, 쉽지 않았다.
‘무사해야 할 텐데.’
장군을 걱정하느라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안절부절못하며 또 하루를 보냈다.
다음 날 오후, 막사에서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왔다 갔다 하고 있는데 타이요우가 동료들과 돌아왔다.
타이요우와 동료들의 표정을 살피며 그들이 성공했는지 알아보려 했지만, 그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눈길을 피했다.
“타이요우님 어떻게 되었습니까?”
타이요우는 무솔의 질문이 귀찮은지 휑하니 숙소로 들어가 버렸다.
“저희가 여수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이 순신이 없었습니다. 물론 다른 부대도 이 순신을 놓쳤죠.”
하루토가 머쓱했는지 타이요우의 뒤로 눈길을 쫓으며 말을 해 주었다.
“아니, 하루토 무슨 소리야. 자세하게 설명을 해봐.”
“네, 그게 참 어이없게도 이 순신이 뭐라더라 삼도 뭐라고 했는데·····.”
하루토가 생각이 잘 나지 않는지 머리를 긁적이며 동료들을 쳐다보았다.
“하여튼 그 삼도 뭐라는 지위를 받고 거제도 근처로 진을 옮겼답니다. 우리가 세키부네를 타고 여수로 갈 때 멀리 엄청난 배들이 오기에 섬 뒤로 숨었는데 그게 아마도 이 순신의 배들이 거제도로 옮기고 있었나 봅니다.”
얼마 뒤, 전라도로 진격해 남원까지 올라갔던 기마부대가 진주성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전라도로 들어가 닥치는 대로 마을에 불을 지르고 조선 백성들을 칼로 유린했다.
북으로 진격하던 그들이 남원성에서 조선군과 명군에 의해 저지당하면서 진주성으로 돌아 온 것이다.
아니 처음부터 공격 목표가 정해지지 않았다.
전라도 지역에 대한 진격이었다면 대 부대가 움직였을 것이다.
그냥 그들은 기마부대를 이용해 칼부림한 것이다.
아무 죄도 없는 일반 백성을 상대로, 또한, 명과의 강화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그들은 짐승만도 못한 천인공노할 짓을 아무 거리낌 없이 저질렀다.
*
나고야에서 명령이 떨어졌다.
조선을 배제한 채 명나라와 평화 협상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어느 정도 진전이 있자 태합 히데요시가 일부 병력의 본국으로 철수를 명령했다.
또한 감히 넘볼 수 없는 이 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 서해로 가는 길목인 거제 한산섬에 버티고 있어서 더 이상 군사 작전을 펼 수도 없었다.
부산포와 웅진 일대, 그리고 거제도 동쪽에 성을 경고하게 쌓아 일부 부대만 남아 성들을 지키고 나머지는 일본으로 철수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명령을 접한 병사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멀리 타향에 와 죽을 고생을 하던 그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지난 일 년 반 동안 수없이 많은 동료가 전쟁 중에 죽었었다.
더하여 조선의 강추위에 얼어 죽거나 동상에 걸려 손가락이나 발가락이 떨어져 나간 동료가 수백 수천이요, 군량미가 제대로 공급이 되지 않아 굶주림에 허덕이며, 죽은 자 또한 수천이었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돌림병이 돌아 수많은 동료 병사들이 낯선 땅에서 재가 되었다.
이렇게 죽은 자들이 전쟁으로 죽은 자보다 수십 배는 더 많았다.
그러다 보니 부대를 이탈하는 자가 속출했고 조선으로 투항하는 자도 많았다.
살아남은 병사들은 지옥 같은 조선에서 탈출하여 고향으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탈영자는 붙잡히는 즉시 처형되었다.
히데요시의 명으로 탈영자만 쫓는 부대가 만들어져 병사들은 어쩔 수 없이 전쟁에 참여하고 있었다.
이런 지옥과 같은 생활의 연속에 지쳐 갈 무렵 일본 본국에서 명령이 하달되자 병사들과 무사들은 술판을 벌이며 잔치를 열었다.
화톳불이 켜진 막사 안에 지도를 펼쳐놓고 회의했다.
“우리도 곧 철수한다. 그 전에 한산섬으로 토끼 사냥을 할 것이다. 태합 전하의 지엄하신 명이며, 주군의, 아니 이것은 우리 수군의 자존심과 관련된 일이다. 그동안 이 순신 주변과 한산섬의 지도를 확보했다. 타이요우, 자신 있겠지.”
“네, 죠유지님. 이번에는 기필코 임무를 완수하겠습니다.”
“우리 측 간자는 이번 임무 후 가능하면 함께 철수한다. 한 달 후 남아 있는 부대도 모두 철수할 것이다. 모두 조심해서 임무를 완수하도록. 만약 이번에도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면 죽음으로 받을 것이다.”
“핫!”
올빼미섬 대원들은 긴장한 채 대답했다.
진주성을 함락하여 기분이 좋아진 히데요시가 명과의 협상이 유리하게 전개되자 일부 부대만 남기고 본국으로 철수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일본 수군이 이 순신에게 당한 치욕을 갚지 않고는 편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일본 수군 진영은 간자와 닌자들을 통해 이 순신과 한산섬의 정보를 충분히 입수하고는 히데요시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둠이 몰려와 깊은 잠에 빠져든 한산섬 동남쪽 작은 섬인 추봉도에 작은 배 한 척이 닿았다.
배에서 급히 내린 그림자가 최대한 한산섬과 가까운 곳으로 신속히 이동했다.
철저하게 조선 수군의 움직임을 파악한 침투로, 고요한 적막 속에 달빛 그림자만 빠르게 움직였다.
각자 흩어진 그림자가 산 아래에서 무엇인가를 하고 있었다.
곧 그들은 지면에서 사라졌다.
새벽이 되고 날이 밝자 한산섬 남쪽 바다에 조선 군관 하나가 뱃머리에서 주변을 살폈다.
다시 한시 진이 지나자 조선 수군의 배가 주변을 살피며 지나갔다.
어느새 밤 그늘이 온 섬에 내리자 달 없는 하늘에 별빛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츠륵, 츠륵.”
노 젓는 소리가 들리더니 배 한 척이 적막한 바다 위에 나타났다.
해안가를 따라 조금씩 움직이며, 주변을 훑어보고는 다시 배가 해안가를 따라 서남쪽으로 지나갔다.
배가 지나가고 일각이 지날 즘, 올빼미가 밤의 고요를 깨자 땅바닥이 꿈틀거리더니 시커먼 그림자들이 기어 나왔다.
별빛 아래 모인 그림자들이 자세를 낮춘 채 주의를 경계하며, 한 사람을 바라보았다.
“미츠하! 넌 섬의 산을 넘어 능선을 타고, 하루토는 해안가로, 나는 절벽으로 접근한다. 공격 일시는 내일 밤 이른 해시 무렵. 그 전에 나는 간자를 만난 후 하루토와 합류한다. 모두 이 순신의 동선을 기억했겠지.”
타이요우가 무엇인가를 나누어 주었다.
즉사할 수 있는 독약이었다.
“저는 어디로 누구와 갑니까?”
“너?”
타이요우가 무솔을 째려봤다.
복면 안 그의 표정이 못마땅한 눈치다.
“넌 나와 함께 간다. 다른 조가 실패하면 네가 그다음을 책임진다. 물론 그 전에 내가 해결한다. 반드시.”
타이요우가 의지를 다지는지 눈에 불꽃이 튀었다.
무솔은 타이요우가 가리키는 곳을 힐끔 눈으로 새겼다.
그리고는 무엇인가 말을 하려다 말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타이요우가 묘한 얼굴로 무솔을 바라보고는 침투조에게 펼쳐진 지도의 몇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나를 자신의 시야에 두겠다?’
타이요우의 의도를 알아차리고는 복면 안에서 살며시 웃었다.
“이미 일고 있겠지만, 료우타만 빼고 각 조는 게닌 한 명씩을 데리고 움직이고 만약 잡힐 우려가 있을 시 자폭하도록. 또한 살아남은 자는 우리 측 간자로부터 넘겨받은 정보를 반드시 확보해서 복귀하여야 한다. 간자와 같이 후퇴하는 것이 불가능 시 간자를 척살하도록. 또한 토끼를 잡지 못한 경우에도 이 지점으로 퇴각한다. 복귀 시한은 모레 새벽 축시까지다. 그 시간엔 무조건 배가 떠날 것이다. 복귀하지 못한 자는 각자 능력껏 안골포로 돌아오라.”
타이요우가 비장하게 말을 하고는 각 조를 출발 시켰다.
초겨울의 차가워진 바닷속을 지나 한산섬으로 숨어들었다.
그들이 섬으로 올라간 후 조선 수군의 배가 지나갔다.
무솔은 타이요우의 뒤 꼭지를 보며 달렸다.
다른 조보다 반에 반 시진을 늦게 출발했다.
한산섬은 파도 소리만 어둠 속에서 정적을 깰 뿐 조용했다.
모든 조가 무사히 한산섬으로 침투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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