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혼노지의 적 1
역사는 반복된다.
미츠나리의 부탁으로 교토의 치안을 담당하고 있는 부교 마에다 겐이가 일본 전역에 수배를 내렸다.
수배 대상자는 무솔과 라나였다.
다행히 센은 아직 도도가의 사람이기에 코카와성에서 미리 손을 써 수배 대상에서 빠졌다.
교토를 비롯한 수도권 일대에 두 사람의 얼굴이 그려진 방이 거리 곳곳에 나붙었다.
센은 와카야마로 가는 배를 타고 코카와성으로 들어갔다.
“자네 일이 고약하게 되었어.”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다카도라 성주가 차를 마시며 센을 유심히 바라봤다.
성주의 눈길을 느꼈는지 센이 고개를 들었다가 눈이 마주치자 다시 숙였다.
“내가 부교에게 특별히 손을 써 놓았지만, 부교란 자가 보통의 여우가 아니야. 특별히 몸가짐을 잘하게. 내 딸을 과부로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센은 코카와성의 양자이면서 사위로 함부로 처리할 수 없어서 미츠나리가 수배 명단에서 뺐다.
다카도라 성주의 부탁도 있었지만 만약을 위한 안배였다.
“명심하겠습니다.”
센은 찻잔을 만지작거릴 뿐 식을 때까지 마시지 못했다.
“너희들은 물러가라.”
다카도라가 시녀들을 물렸다.
“요시카쓰!”
“네, 아버님.”
“나와 자네의 미래를 위해 일을 하나 해주어야겠다. 그 누구도 알아서는 안 돼.”
“하, 하명만 하십시오. 도도가의 명예를 지키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라도 하겠습니다.”
센을 넌지시 넘겨보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성주님, 관백 전하가 위험할 수 있습니다.”
센이 물러나자 우에스키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카도라를 올려다보았다.
다카도라는 부교의 말에 신경 쓰지 않고 장지문 밖을 무심이 쳐다보았다.
“죠유지의 정보를 말해 보시오.”
“근래에 관백 전하에 대한 소문들이 퍼지고 있는데, 처음에는 술을 마시면·····, 이른 말씀을 드려도 될는지 모르지만···.”
성주의 눈치를 살피고는 말을 이었다.
“그게···, 개, 개차반이 되어 지나가는 아녀자들을 겁탈하거나 철포로 농부들을 쏘아 죽이기도 했답니다. 물론 일부의 일은 부풀리거나 과장되게 소문이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만. 소문이 더 중요한 것이라 관백 전하의 운명을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지난번 내가 입조하여 간곡히 부탁을 드렸는데도 정신을 못 차리시니. 물론 권력이라는 게 한 번 맛을 들이면 놓을 수 없다고는 하지만 목이 붙어 있어야 후일을 도모할 수 있지 않겠나. 아무래도 관백은 틀린 것 같아.”
“그렇습니다. 잘못하다가는 성주님께서 다칠 수 있습니다. 보고에 의하면 소문의 뒤에 닌자들이 있다고 합니다. 특이한 것은 이러한 소문이 여러 조직에 의해 다른 소문을 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 닌자 조직에 다른 소문들이라?”
“예, 말씀드리기 송구하나 아무래도 교토와 간토의 여우와 너구리가 관여된 것 같습니다만.”
“우에스키!”
다가도라가 무릎을 치며 부교을 노려보았다.
“소, 송구합니다.”
두 사람은 시녀가 저녁상을 가지고 올 때까지 여러 가지를 의논했다.
우에스키가 물러가자 칸베에 부관이 들어왔다.
“무슨 일인가? 부관.”
“네, 조금 전에 료우타가 왔습니다.”
“어허, 수배가 내렸는데 여기로 오다니. 정신이 없는 자로군.”
“아닙니다. 지난밤 성 근처로 들어와 은신하고 있다가 날이 어두워져 들어왔습니다.”
썩 내키지 않는 얼굴의 다카도라다.
“그래, 무슨 일로 왔다던가?”
“라나와 자기의 동생을 성에 두었으면 한다고 했습니다.”
잠시 라나를 떠올렸다.
본래 자신이 측실로 삼으려다 히데나가가 죽고 히데츠구가 자신의 주군이 되자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양보했었다.
너무도 아깝고 안타까운 마음이지만, 여자보다 권력이 먼저였다.
“그래? 부관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미츠나리가 여기를 감시한다고 하나 이곳보다 안전한 곳은 없을 것입니다만.”
무엇을 생각하는지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음. ······방에서 절대 밖으로 나다니면 안 된다고 하게.”
*
오미츠가 술을 가지고 들어 왔다.
아이루의 오미츠 방에 타이요우와 미츠나리가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오미츠, 너도 한잔 하거라. 타이요우 자네 옆에 하이난이라고 했나 이름도 예쁘구나. 한 잔 따라 주게.”
“아, 네.”
오미츠와 하이난이 조심스럽게 술을 한 잔 입에 대었다.
“하하하, 타이요우! 오늘은 내가 낼 테니 마음껏 마시게.”
“아, 아닙니다. 제가 내겠습니다. 부교님의 은혜가 하늘같이 높은데 당연히 제가 사야죠.”
두 사람은 뭐가 즐거운지 술잔을 기울이며 덕담했다.
“곧 두 사람이 올 것이네.”
“······.”
미츠나리가 술잔을 권했다.
마침 시녀가 밖에서 아뢰었다.
“손님이 오셨습니다.”
“들이거라.”
두 사람이 방으로 들어왔다.
한 사람은 나이가 지긋했고 다른 사람은 젊은 무사였다.
두 사람을 보다 타이요우가 놀라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어떻게 두 사람이 같이 왔소이다. 하하하, 앉으시오.”
“여기 이분은 나보다도 자네가 더 잘 알게야. 하하하.”
타이요우는 방으로 들어오며 웃고 있는 후지마로를 보며 소름이 끼쳤다.
섬의 다른 사람도 아닌 원로가 간자, 아니 배신자였다고 생각하니 씁쓸했다.
“아, 그리고 그 옆은 오토모 호소인이라고 하네. 서로 인사하게.”
“저, 저는 타이요우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호소인이라는 이름에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아 타이요우가 목에 힘을 주고 겨우 인사했다.
고가의 전설 오토모 호소인을 자기 눈으로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온몸의 세포가 긴장한 듯 경직되었다.
‘휴, 저자를 적으로 두었으니···. 사카야마의 추측이 맞았어!’
“하하하, 자, 한잔합시다. 술을 안 따르고 무엇 하느냐?”
네 사람은 아주 즐겁다는 듯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주로 미츠나리가 조선에서 일어난 일들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했지만, 지옥과 같은 조선에는 다시는 가고 싶지 않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부교나리, 그놈은 이제 처리해야겠지요?”
“물론이오. 호소인! 어떻게 하고 있소?”
“네, 쓸모가 없어지면 죽여야죠. 마지막으로 조선 놈을 유인할 함정을 만들고 나서 죽일까 생각 중입니다.”
“하하하, 그 좋은 생각이오. 안 그렇소? 후지마로님.”
“네, 고로오 말씀이시죠. 조선 놈을 죽일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해야죠.”
후지마로가 말을 하면서 힐끔 오미츠를 쳐다보았다.
고로오라는 이름이 나오자 여러 사람이 놀랐다.
‘분명히 고로오는 죽은 줄 알았는데, 이게 어떻게 된 거지?’
타이요우가 지난 오마찌 별채 때 간자로 잡혀 스스로 목을 찌른 고로오를 떠올렸다.
오미츠도 깜짝 놀라 술잔에 술이 넘치는지도 모르고 얼어붙어 버렸다.
이를 본 하이난, 자신도 놀랐지만 오미츠의 이상 행동을 알아채고는 다른 사람들이 눈치를 채기 전 말을 걸었다.
“오미츠! ······나도 술잔을 넘치게 따르고 싶은데 술병을 이리 주세요.”
그제야 정신을 차린 오미츠가 술병을 하이난에게 넘겼다.
술잔이 넘치자 미츠나리가 오미츠를 이상하게 노려보는데,
“부교나리, 저도 여기 모인 영웅호걸님들께 잔이 넘치도록 따르게 해주십시오. 여기 아이루는 영웅호걸님을 만나면 잔을 넘치도록 따르는 법도가 새로 생겼습니다.”
하이난이 잔뜩 코에 바람을 넣고는 부교에게 말했다.
“허허, 그래? 그럼, 여기 진정한 영웅호걸들에게 잔을 넘치도록 따라 보거라. 하하하.”
다른 사람들도 부교를 따라 웃었다.
후지마로가 부교를 따라 술잔을 들어 단숨에 비우면서 오미츠를 유심히 보았다.
둥근 달이 서산으로 지고 별빛만이 하늘에 남자 부교가 오미츠를 데리고 다른 방으로 갔다.
다른 세 사람은 술을 조금 더 마시고 여자들이 들어와 인도하자 따라갔다.
마루 아래에서 조용히 이들의 술자리를 엿듣고 있던 무솔은 후지마로 원로가 간자였다는 것에 놀라 귀를 의심했다.
그러면서 고로오가 후지마로 원로와 같이 섬에 들어왔다는 것을 떠올렸다.
하지만, 고로오가 배신했을 때 모두가 후지마로 원로를 두둔했었다.
그때 살피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그렇게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갈 때 고로오란 이름이 들려왔다.
너무 놀라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분명 교토의 오마찌 별채에서 스스로 목을 베어 자결했었다.
죽은 줄로 알고 있던 고로오의 이름이 나오자 온몸이 경직되었다.
다행히 이를 악다물고 숨소리를 죽였다.
미츠나리와 그 무리가 각자 방으로 간 뒤에도 바로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그대로 잠을 청했다.
아이루의 밤이 깊어 가는데도 부교와 세 사람이 잠을 자는 방 근처에는 검은 그림자들이 날을 샜으며, 아이루 밖 담장 아래에도 짙은 그림자가 여럿 드리워져 있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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