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을 척살하라 1
역사는 반복된다.
며칠 동안 그들과 함께했던 타이요우는 일부 병사들이 뗏목을 타고 일본으로 가는 것을 말릴 수가 없었다.
조선으로 올 때 본 바다는 무엇이든 삼킬 수 있는 악마 그 자체였다.
얼마 가지 못해 모두 악마에게 먹히고 말 것이다.
하지만, 고향을 향해 가는 그들의 텅 빈 눈동자를 보았을 때, 타이요우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이미 죽음의 문턱을 넘어선 그들의 동공에는 두려움 속에 그리운 가족만이 기댈 수 있는 삶의 원천이었다.
그것을 막는다는 것은 바로 죽음 그 자체였다.
타이요우와 게닌들은 병사들이 별로 없는 곳으로 이동하여 은폐했다.
이러한 상황을 대비한 훈련과 경험으로 잘 버티며, 조선 수군의 동향을 살폈다.
며칠이 지나 조선 수군의 경계가 느슨해지자 뗏목을 이용하여 안골포로 돌아왔다.
다른 살아남은 병사들도 한산섬을 빠져나왔지만,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했다.
부산포 사령부에 집결한 왜장들은 서로 할 말이 없었다.
특히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와키자카공, 너무 신경 쓰지 마시오. 여기 제장들 가운데 이 순신에게 패하지 않은 장수가 어디 있소. 그러니 너무 부끄럽게 생각을 마세요.”
도요토미 히데카스가 여러 수군 장수들을 둘러보았다.
그러잖아도 민망하고 죽을죄를 지어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히데카스의 말이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태합 전하 또한 제장들을 꾸짖지 않으셨소. 다만, 앞으로는 절대 이 순신 함대와 싸우지 말라는 명이오. 그리고 웅천포 일대와 거제도 일대에 성을 쌓아 부산포를 방어하라는 하명이 있었소.”
한산섬과 안골포에서 이 순신에게 일본 함대가 전멸당한 소식이 나고야의 히데요시에게 전달되었다.
히데요시는 이 순신이라는 이름에 경기했다.
도대체 들어 보지도 못한 이 순신에게 자신의 수군이 필패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아니 납득을 하고자 해도 납득이 되지 않았다.
히데요시는 어떻게 이 난국을 헤쳐 나갈까? 밤잠을 설치며, 골똘히 생각해도 뾰족한 수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더 많은 병사들을 보내고 싶어도 한여름 태풍이 잦아 파도가 거칠어 나고야에 있는 병력 보내기도 어려웠다.
또한 그들이라고 해서 이 순신에게 당하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한성이 함락되고 곧이어 평양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에 명나라가 곧 자기의 손에 들어올 것이라 여기며, 뭇 제장들에게 큰소리를 쳤다.
바삐 조선으로 건너갈 차비를 독려했는데, 이 순신이라는 무명의 장수에게 가로막혀 쩔쩔매고 있는 수군을 생각하니 울화통이 터져 견딜 수가 없었다.
조선의 왕이라는 놈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보통 성을 지키다가 함락되면 할복하거나 항복하는데, 왕이라는 놈이 백성보다 먼저 도망을 갔다.
백성들도 보통 전투는 남의 일이라 여기며 농사를 짓는데, 조선의 백성들은 산속으로 숨거나 여기저기에서 의병이랍시고 일어나 일본군의 배후를 노리거나 군량미를 빼앗았다.
그들의 왕은 멀리 도망을 갔는데도 백성들은 잡초처럼 일어나 일본군을 괴롭혔다.
그런 조선을 히데요시로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쉽게만 생각했던 조선 정벌이 여러 암초에 부딪혀 앞날을 기약할 수 없게 되자 잠자리에 쉽게 들지 못했다.
꿈속에서도 이 순신처럼 보이는 무시무시한 장수에게 쫓기는 꿈에 시달려야 했다.
나고야에 새로 쌓은 궁전에 모여든 다이묘들도 자신을 멸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특히 천하의 애간장을 홀로 타는 듯,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굽실거리는 도쿠카와를 보고 있으려면 토할 것만 같고 머리가 지근거려 자리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날 밝는 것이 두렵고 귀찮아졌다.
‘저 너구리 도쿠카와 병사들을 보내면 좋으련만······.’
도쿠카와의 병력은 약 오천의 군사가 나고야에 대기하고 있었다.
물론 그의 영지인 간토에서 오만 이상의 병력을 차출할 수 있지만, 바로 히데요시 자신의 명령으로 그 많은 병사를 차출할 수가 없었다.
‘내 꾀에 내가 넘어갔구나. 조선으로 다 보낼 기회를 나 스스로 날렸어. 젠장, 저 너구리가 속으로 얼마나 고소해할까. 아, 미치겠네.’
태합 히데요시를 보고 있는 도쿠카와는 속으로 웃었지만 절대 밖으로 들어내지 않았다.
누구보다도 수군의 참패를 슬퍼하고 분노했다.
‘휴, 간토로 가지 않았다면, 내 병사들이 조선으로 가 물귀신이 될 뻔했어. 이런 것을 두고 전화위복이라고 하지. 흐흐흐. 코자루, 이게 다 네놈의 업보이니라. 하하하.’
히데요시는 간토의 호조씨가 자신의 병력에 섬멸되자 간토의 영지를 도쿠카와에게 주었다.
교토에서 멀리 동쪽으로 내쫓을 기회였다.
도쿠카와는 울며 겨자 먹기로 간토로 영지를 옮겼다.
땅이 늘어나고 이백 섬 가까이 수확이 되었지만, 교토에서 멀어진다는 것은 권력에서 밀려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조선과의 전쟁이 나자 많은 병사가 차출되어야 했는데, 도쿠가와는 에도의 영지에 다 헐어 버린 성을 새로 구축하고 도로를 만들기 위해 많은 병사와 백성들이 투입되다 보니 차출할 병력이 없었다.
이를 잘 활용하여 도쿠가와는 오천이라는 아주 적은 인원을 나고야에 대기할 수 있었다.
히데요시 본인이 옮길 것을 명령하고 에도의 개발을 독려하였기에 간토에서 더 많은 병력을 차출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판 무덤에 자신이 걸렸으니 얼마나 원통한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애써 태연한 척하느라 죽을 맛이었다.
이런 내면의 모습을 알기에 이에야스는 더더욱 속으로 웃을 수밖에 없었다.
*
모든 제장들이 회의를 마치고 나가자 히데카스가 구키 요시타카와 다카도라를 불러 세웠다.
“두 성주는 특수부대를 운영한다고 들었소.”
“네, 저희는 고가닌자를 중심으로 십여 명을 데리고 왔습니다. 부족하면 본토에서 차출하면 됩니다.”
“저희도 십여 명의 닌자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좋소! 태합 전하의 명이오. 첫째는 이 순신을 암살할 것. 두 번째는 전라도의 길목인 진주성을 정찰하여 아군이 공격할 최선의 방안을 찾도록 하라는 명이오.”
요시타카와 다카도라가 예상했는지 담담히 듣고 있었다.
두 부대를 경쟁시키려는 히데카스의, 아니 아직 젊은 그의 작전이 아니라 태합의 작전이라 생각하니 그저 담담한 척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다른 장수들 모르게 진행해야 하오.”
“알겠습니다. 바로 명을 받들겠습니다.”
구키 요시타카의 특수부대는 진주성을, 다카도라의 특수부대는 이 순신을 암살하기로 정해졌다.
이른 새벽 고바야에 올라탄 두 부대는 사천 땅에 내렸다.
조선 탐방선을 만나지 않기 위해 새벽에 해안선을 따라오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렸다.
요시타카의 특수부대 십여 명은 해안을 따라 진주성으로 갔으며, 타이요우가 이끄는 특수부대는 육지로 해서 이 순신이 있는 여수의 전라좌수영으로 향했다.
전라좌수영으로 가는 바닷길은 이미 조선 수군의 탐방선이 깔려 있어서 그들의 눈을 피해 여수로 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여럿이 뭉쳐서 가면 의심을 받을 수 있으니 료우타! 넌 후방을 맞아.”
타이요우가 아니꼽냐는 듯 료우타를 돌아보고는 사츠키조를 이끌고 앞으로 내달렸다.
타이요우가 떠난 지 약 반 시진 후에 료우타도 출발 준비를 했다.
“하루토! 우리도 출발하자고.”
료우타가 말을 끝마치지 말자 타이요우가 사라진 방향으로 내달렸다.
하루토와 게닌들은 료우타의 그림자가 되어 뒤따랐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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