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산으로 2
역사는 반복된다.
그 시각, 산 능선 위에 서서 타이요우가 요시노강의 막사를 내려다보았다.
다카도라와 히데츠구가 물놀이하는 모습이 보였다.
잔뜩 찡그린 얼굴로 며칠 전 미츠나리와 있었던 일을 떠 올렸다.
“타이요우, 지난 난젠사 건을 만회할 기회를 주겠다.”
아이루에 미츠나리와 타이요우가 술상을 앞에 두고 마주했다.
아니 잔뜩 겁을 먹은 타이요우가 무릎을 꿇고 미츠나리를 올려다보았다.
난젠사일로 한창 깨지고 있었다.
‘망할 조선 놈! ······탄탄대로의 길을 네 놈 때문에.’
“네? 가, 감사합니다. 목숨으로 은혜를 갚겠습니다. 이번에는 절대 실수가 없을 것입니다.”
미츠나리가 타이요우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오미츠와 하이난을 밖으로 내보냈다.
“주라쿠성을 무너뜨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나?”
미츠나리의 말에 모든 지식을 동원해 생각했다.
‘주라쿠성이라면, 관백이다. 관백에서 물러나게 하거나 할복하게 하는 방법을 묻고 있는 것이리라.’
“그게···, 제 생각에는 주라쿠성을 받치고 있는 기둥을 흔들거나 뽑아 버리면 됩니다.”
“하하하, 자네도 머리가 썩 나쁘지가 않군. 한 잔 받게.”
미츠나리가 타이요우를 보며 기분 좋게 술을 마셨다.
“이 일은 오사카성에서···.”
“어허!”
미츠나리가 타이요우의 말을 자르며 노기를 들어냈다.
움찔한 타이요우가 잔뜩 긴장한 채로 고개를 떨구었다.
다시 오미츠와 하이난을 부른 두 사람은 이후 잡다한 이야기를 하며, 술과 함께 밤을 지새웠다.
“진자에몬,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만약 실패한다면 너와 나의 목숨은 기약할 수가 없다.”
잠에서 깨듯 타이요우가 몸을 바로 하며 막사를 내려다보았다.
“제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너와의 인연은 잊지 않겠다. 가거라!”
진자에몬이 타이요우에게 무릎을 꿇어 머리를 숙이고는 잠시 멈추었다가 일어나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뒤로 그의 게닌들이 그림자를 숨기고 따라갔다.
요시노강에 도착한 진자에몬과 게닌들은 미리 준비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물놀이하고 있던 요시야쓰가 형과 다카도라가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며 소리쳤다.
“다카도라공, 형님 모시고 어서 들어오십시오. 뱃놀이하러 왔으면 뱃놀이해야지 무슨 할 이야기가 많다고 아직도 그러고 계십니까? 하늘은 맑고 바람은 선선하니 신선이 따로 없습니다.”
“하하하, 조금만 기다려라. 곧 가마.”
히데츠구가 손을 들어 화답하며 웃었다.
히데야쓰가 샤미센 소리에 춤을 추고 있을 때, 그들이 타고 있는 배로 통나무 서너 개가 떠내려오고 있었다.
뱃머리와 배 뒤편에 서 있던 경호병들은 여자들과 희희낙락거리는 히데야쓰의 모습에 신경을 쓰지 않기 위해 멀리 강 너머 숲이나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출렁이는 물 위로 사람들의 그림자가 흐느적거렸다.
히데야쓰가 춤을 추며, 뭐가 좋은지 기분 좋게 웃었다.
그때 쿵 소리와 함께 배가 기웃 뚱했다.
다시 한번 더 쿵 소리가 났다.
떠내려오던 통나무가 연속으로 배에 부딪혔다.
호숫가에 통나무가 떠내려온 것도 이상했지만, 배가 흔들릴 정도로 부딪힌 것은 더 이상했다.
하지만 그럴 의심을 품을 시간조차 없었다.
“어, 어, 어.”
여자 하나를 끌어안고 서서 샤미센 소리에 춤을 추던 히데야쓰가 여자와 함께 강물 속으로 빠졌다.
“주군을 구하라!”
경호병들이 놀라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나무의 충격에 배에 구멍이 뚫리자 물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배가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물속에서 경호병들이 히데야쓰를 찾았지만, 산그늘에 물속이 잘 보이지 않았다.
배 위에 남은 경호병들도 물속을 훑으며 히데야쓰를 찾았다.
하지만, 한 번 들어간 히데야쓰는 물 밖으로 떠오르지 않았다.
배 위에서도 겨우 몸을 지탱하고 버틴 경호병들이 히데야쓰가 보이지 않자 난리가 났다.
호수로 뛰어든 경호병들은 히데야쓰를 찾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다가 물귀신을 따라 물속으로 사라졌다.
물이 들어오며 기울던 배가 여러 사람이 서로 살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이다 한쪽으로 몰리다 보니 급격히 기울면서 여인들과 시녀들, 그리고 경호병들도 강물에 빠졌다.
여기저기서 아우성이었다.
여인들은 살기 위해 경호병들을 붙잡고 놔주지 않았다.
서로 얽히고설키다 보니 히데야쓰를 구하기 위해 물로 뛰어든 경호병들도 히데야쓰를 찾기보다 자신들의 목숨을 먼저 구해야 했다.
물속으로 사라졌던 경호병들이 아우성치다 숨이 끊어진 자들과 함께 물 위로 떠 올랐다.
강가에서 담소를 나누던 히데츠구와 다카도라는 아우성치는 강을 보며 발을 동동 굴렀다.
육지에 있던 경호병들이 급히 배를 몰아 왔지만 이미 배는 가라앉았고 시퍼런 하늘을 품은 강은 물에 빠진 사람들을 다 토해내지 않았다.
주변을 샅샅이 훑었지만 히데야쓰를 찾을 수가 없었다.
히데야쓰가 빠진 곳으로 여러 척의 배들이 다가와 물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또한 경호병들은 떠 오른 시체 속에서 히데야쓰를 찾기 위해 부산하게 움직였다.
일부 경호병들과 여자들만이 시체로 떠오를 뿐이었다.
그들이 떠 오른 시체들과 히데야쓰를 찾아 물속으로 들어간 경호병들을 신경 쓰느라 물속에서 강 아래로 내려가는 검은 물체를 아무도 보지 못했다.
막사 주변에 여러 주검이 나란히 눕혀졌다.
경호병 세 명과 시녀 네 명, 그리고 히데츠구의 여인들과 히데야쓰가 함께 누워 있었다.
다른 시체들을 다 꺼내고서야 호수 아래에서 히데야쓰의 시체가 떠올랐다.
히데츠구가 비통한 얼굴로 히데야쓰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내가 널 죽였구나! 히데카쓰도 떠나고 너마저 잃어버리다니.”
다카도라는 믿기지 않는 현실에 망연자실했다.
‘아! 안 좋은 일은 겹쳐 일어난다더니, 앞날을 기약할 수가 없게 되었구나!’
산 위에서 타이요우가 강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임무를 완수한 진자에몬을 만나기 위해 산 능선을 따라 강 아래로 내려갔다.
산 능선 맞은편 나무 그늘에서 호숫가와 타이요우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있던 또 다른 검은 그림자가 타이요우가 사라지자 강가를 살폈다.
이 각이 지날 무렵 게닌이 다가와 무엇인가를 보고했다.
검은 그림자가 웃으며 타이요우가 내려간 반대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분명히 확인한 것인가?”
“네, 이번에는 분명하게 처리했습니다. 저도 확인했으니 확실합니다.”
“수고했다.”
이에야스가 한조가 나간 뒤에 차를 마셨다.
벚꽃이 떨어지고 각종 봄꽃이 정원에 피어나고 있었다.
‘이제부터가 나의 진짜 싸움이다.’
차를 내려놓은 그의 눈이 그윽하게 빛났다.
요시노강에서 돌아온 타이요우는 미츠나리로 부터 재신임받았다.
미츠나리를 따라 코카와성으로 들어가는 타이요우의 마음이 복잡했다.
다카도라가 히데야쓰의 익사 책임을 지고 고야산으로 출가한 뒤여서 코카와성이 혼란 속에 있었다.
코카와성은 당분간 미츠나리가 성 전체의 살림을 파악한 뒤 히데요시에게 보고하여 주인을 찾기로 되어 있었다.
‘라나, 멀리 도망가지 못했군. 도망쳐봐야 내 손바닥이지.’
타이요우는 라나가 코카와성에 숨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여러 번 침투 계획을 세웠으나 포기하고 있었다.
라나를 생각만 해도 설레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 라나를 오늘 코카와성에서 다시 만나는 것이다.
‘이제는 날 거부할 수 없겠지. 조선 놈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보이지 않고 있으니, 하하하.’
타이요우가 속으로 웃으며 미츠나리를 따라 성 정문의 해자를 건너갔다.
*
멀리 방문이 살며시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잠이 잘 오지 않아 뒤척거리던 도쿠가와가 일어나 앉았다.
옆에는 측실이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누굴까? 옆방의 장지문이 열렸다 닫힌 소리가 났는데······. 자객일까? ······우리 아이들은?’
조용히 일어나 칼 걸이에서 칼을 들었다.
“주군!”
바짝 긴장했던 도쿠가와가 칼 걸이에서 손을 떼고 장지문을 열고 옆방으로 건너갔다.
“이 야심한 밤에 무슨 일인가?”
“죄송합니다. 너무도 급한 일이라, 법도를 어겼습니다.”
얼마 후 한조가 나간 뒤 도쿠가와가 촛불을 켰다.
‘다카도라가 왜 나에게 이것을 보냈을까? 여자아이야 그렇다 쳐도······.’
앞에 놓인 황금상자를 보는 도쿠카와의 이마에 주름이 졌다.
한조가 두고 간 상자가 방안에 덩그러니 누런빛을 내며 놓여 있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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