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장수를 사랑한 여인
역사는 반복된다.
“료우타, 그동안 어디를 갔었나?”
칸베에 부관이 돌아온 무솔을 보자 엄중한 얼굴로 물었다.
“고향에 다녀왔습니다.”
“그래? 고향이 어디인가? 여기서 가까운가 보군.”
“네, 여기 오기 전 완도라는 섬 옆 작은 섬입니다.”
“그렇군. 그래 부모님은 살아 계시던가?”
“···아버지의 무덤만이 있었습니다.”
“이런, 아픈 곳을······, 아무튼 이 순신과의 결전을 앞두고 모두 예민해져 있으니 행동을 조심하게나.”
무솔은 칸베에 부관의 배려에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고 막사를 나왔다.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고향인 고금도를 다녀온 것은 사실이었다.
아버지 무덤 앞에서 하염없이 울었다.
남동생은 생사를 알지 못하고 여동생은 아직 일본 수군에 있으니 아버지를 뵐 면목이 서지 않은 것이다.
어머니는 자신으로 인해 죽었기에 더더구나 아버지 앞에 서고 싶지 않았었다.
하지만 외할아버지의 소식도 궁금해서 고금도로 들어갔다.
한결같은 느티나무가 반가웠다.
느티나무 아래 아버지 무덤가에 한참을 앉아 있다가 까치 소리에 눈물을 닦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솔의 마음이 착잡했다.
무솔은 일본 수군으로 돌아오자마자 해솔이를 찾아다녔지만 수만 명이 넘는 병사들 속에서 해솔을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혹시나 해서 구루시마 부대로 갔다.
나고야성의 일도 있고 또 옛 해적 무리도 무솔을 알아볼 수 있어서 얼굴을 변장하고는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멀리 타이요우가 보였다.
그때 서야 한산섬에 들어갔을 때 타이요우를 본 것이 생각이 났다.
어떻게 들어갔는지 모르지만, 타이요우가 구루시마 미치후사의 부대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젠장, 저놈이 저기 있으니 찾기가 어렵겠는걸.’
병사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보며 지나가다 타이요우 일행과 마주쳤다.
그들은 무솔을 보자 살기를 들어내며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네놈이 여긴 어떻게? 썩 꺼져라!”
타이요우뿐만 아니라 섬사람 중 그를 따르는 무리마저 무솔에게 적의를 들어내며 노려보았다.
더 이상 접근하는 것이 어려워 발길을 돌려야 했다.
본래 동생이 구루시마 병사였기에 이곳에 있을 가망성이 높았지만, 아쉬움을 뒤로 하고 돌아섰다.
돌아서서 멀리 가고 있는 무솔을 보며 타이요우가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결전이 임박하였기에 무솔은 하이난과 센을 이용해 일본 수군의 정보 수집에 신경을 썼다.
며칠 전 해솔이를 찾던 중 한 조선 여인이 막사에서 일본 무장과 함께 잠자리에 드는 모습을 봤었다.
그 조선 여인을 찾아갔다.
막사 앞에서 산책하고 있던 그녀를 어렵지 않게 만나 막사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지만, 무솔이 조선인이라는 것을 안고는 당황하여 피하려 했다.
조선 여인으로 일본 장수를 모시고 있다는 것이 그녀로서는 부끄럽고 민망하여 말을 섞는 것조차 거부했다.
다시 찾아갔지만, 그녀는 말하기 곤란하다며 입을 열지 않았다.
오히려 도움은커녕 밀고하겠다고 하여 무솔이 안절부절못했다.
자신은 이미 조선을 버린 사람이라며 더 이상 말을 못 하게 했다.
그녀는 간절한 무솔의 눈빛을 피하며, 소리치기 전에 나가라며 돌아앉았다.
어쩔 수 없이 물러난 무솔은 다음 날에도 다시 그녀를 찾아갔다.
“조선과 일본이 전쟁을 하루라도 빨리 끝내는 길은 일본이 패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전쟁으로 피폐해진 조선 백성과 일본 백성을 구하는 길입니다.”
그녀의 눈을 살폈다.
그렇게 며칠간의 노력 끝에 일본 무장이 술에 취해 떠들어 댄 이야기를 알려 주었다.
그녀는 일본 무장을 사랑하게 되어 사랑과 조선 사이에서 많은 갈등 하였는지 무척 수척해진 얼굴이었다.
미안함과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녀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는 중요한 정보가 있을 때마다 자신을 찾아 달라고 부탁하고 숙영지로 돌아왔다.
일본 수군의 후발대가 어란진으로 속속 몰려들어 어림잡아도 오백여 척의 배들이 어란진 앞바다를 가득 메웠다.
이를 지켜보던 무솔의 마음이 편치 않았다.
모든 수군 장수들이 어란진에 모이자, 다카도라 막사에서 회의가 자주 열렸다.
회의가 끝나면 센이 달려와 진중에서 대장들의 회의 내용을 알려 주었다.
‘준사가 타이요우에게 준 정보가 논의되고 있구나! 하지만 결정적인 정보가 빠졌다.’
무솔이 준사를 만나러 가기 전 구로시마 미치후사의 수군에 몸을 의탁하고 있던 타이요우가 전공을 세우기 위해 조선 수군에 있는 준사를 만나고 온 것이다.
타이요우는 준사가 쥰세이로서 일본 측의 간자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한산섬으로 이 순신을 죽이러 갔을 때도 정보를 주었고 암살이 실패한 원인을 알려 주어 무솔을 궁지로 몰아넣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였기에 당연히 그의 정보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준사가 타이요우에게 준 정보는 일본 측의 교란을 목적으로 작성된 것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솔이 벽파진에서 준사를 만났을 때, 한산섬에서의 간자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솔이 던진 수리검이 일본군의 수중에 들어 온 것은 발이 다섯 개였다.
준사가 다섯 날이 라나의 것이라는 것을 눈치채고는 자신의 방으로 날아 온 무솔의 수리검에 대해 함구한 것이다.
일본 수군의 준비 상태를 지켜보던 무솔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준사의 이야기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분명 준사는 수리검을 넘겼지만, 헝겊에 적인 살(殺)자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 같았어. 하지만 유키나가는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는 준사 말고도 다른 간자가 있다는 것인데······.’
무솔은 진중에 잡혀 있던 조선인 포로를 몇 명을 몰래 풀어 주고는 일본 수군의 사정을 이 순신에게 알리게 했다.
포로들을 찾아 풀어 주기를 반복하며 일본 수군들과 숨바꼭질했다.
센과 하이난의 고생이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일본 수군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전장이 긴박하게 돌아가자 무솔은 센이 가져온 정보를 분석하며 일본 수군의 작전에 대한 정보를 정리해 나갔다.
“가만, 여란의 일본 장수 이름이 뭐였더라? 그자가 와키자카의 군량미와 식사를 책임지고 있는 무장이라고 한 것 같은데······.”
“네, 저도 그렇게 들었어요.”
무엇인가 생각하더니 다음 날 아침 여란을 찾아갔다.
무솔이 여란을 찾아가다가 구루시마 진영에서 무리를 이끌고 앞에서 걸어오는 자들과 비켜 갔다.
‘어···? 어디서 본 얼굴인데···.’
무리의 우두머리도 무솔의 얼굴이 낯설지 않은지 힐긋 보고는 지나갔다.
허공에서 두 사람의 눈길이 살짝 마주쳤다.
무솔은 뒤로 돌아 무리가 어디로 가는지를 확인하고 난 뒤 여란을 찾아갔다.
여란을 만나고 온 후부터 센이 어란진 주변을 돌아다니며 풀들을 조사했다.
센이 어렵게 찾은 풀들로 즙을 내 만든 물에 섬에서 만들어 온 독을 섞었다.
독의 양이 너무 적어 효과를 장담할 수 없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센과 하이난, 그리고 예솔이가 열심히 작업을 했다.
“센, 이 정도의 양이면 효과가 있을까?”
“음, 형 말처럼 죽이지 않고 약간의 복통을 일으킬 정도라고 했으니 아마도 수천 명 정도 되지 않을까요. 물론 전부 다 마셨을 때만.”
“아! 센, 미치후사의 진영에 있는 막사를 감시해 줘. 낮에 본 자들이 아무래도 수상해. 어디서 본 자들이란 말이야.”
그날 밤 무솔이 말한 막사를 몰래 감시하던 센이 누군가 막사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놀랐다.
‘타이요우!’
센은 위험하지만 조금이라도 정보를 더 얻기 위해 막사 뒤로 접근했다.
“미우라!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우리는 더 이상 여기 있을 수 없어. 무슨 일이 있어도 토끼를 잡아라. 쥰세이도 믿으면 안 돼. 료우타 놈으로부터도 연락이 갔을 거야. ········아니, 잠깐만. 쥰세이를 이용해 보자.”
센은 갑자기 작아진 목소리에 귀를 더 쫑긋했다.
“웬 놈이냐!”
막사 앞에서 경계를 서든 무사 하나가 소리를 질렀다.
소리를 들은 막사 안의 무사들이 밖으로 뛰쳐나왔다.
센은 갑작스런 움직임에 급히 뒤로 두서너 발 물러나 작은 관목 나무 뒤로 숨었다.
“누군가 우리 이야기를 엿들었다. 샅샅이 뒤져라.”
타이요우가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젠장.’
몸이 긴장했는지 칼을 쥔 손이 떨렸다.
주변을 살피던 무사 중 일부가 관목 나무 근처로 다가왔다.
그들이 다가올수록 센의 심장 소리도 커져만 갔다.
칼 손잡이에 손을 살며시 올렸다.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관목 나무 앞까지 다가온 무사들을 보며 더 이상 어렵다고 생각하고는 숨을 크게 들이마신 센이 칼을 뽑으며 달려 나가려 했다.
그때 막사 근처에서 생쥐가 사람들 사이를 지나 도망을 갔다.
“젠장, 쥐 새끼 같으니라고, 뭐 먹을 게 있다고 쥐 새끼들이 설치는지 몰라. 다들 들어가지. 너희들은 경계를 철저히 서고.”
짜증이 난 타이요우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달려 나가려던 센이 다시 허리를 숙이며, 숨도 쉬지 못하고서 후들거리는 다리로 앉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자세로 겨우 버티며 앞을 주시하고 있었다.
관목 나무 앞까지 온 무사들이 타이요우의 말에 되돌아 막사 안으로 들어가자 그제야 힘겹게 자리에 앉은 센은 숨을 몰래 몰아쉬었다.
이 각(30분) 후 경계를 서는 무사들을 조심하며, 뒤로 빠져나와 숙영지로 돌아갔다.
“형, 저들은 이 순신을 암살하기 위해 파견되었던 닌자들이에요. 그리고 타이요우가 지휘하고 있어요.”
“그래서 낯이 익었구나. ·····타이요우가? ·····다른 이야기는 없었어?”
“맞다! 이 순신을 암살하기 위해 다시 투입한대요. 그런데 쥰세이를 이용한다고 했는데 그다음 말은 듣지 못했어요.”
“그래? 뭘까? 이 순신을 암살하기 위해 쥰세이를 이용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