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을 척살하라 2
역사는 반복된다.
김해나 부산과 달리 경상우도의 고을들은 고요했다.
이 순신의 승리와 의령과 합천 등지에서 일어난 의병으로 인해 일본군이 아직 경상우도로 넘어오지 않아 이곳 백성들은 불안함 속에서도 일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다.
처음 왜군이 쳐들어왔다는 소식에 모두 산으로 내륙으로 피난을 갔지만 곧 조선 수군이 바다를 장악하자 하나둘 돌아와 일상생활을 하고 있었다.
타이요우가 패랭이에 조선 농민 복장으로 변장하고 비슷한 복장의 사츠키와 함께 금오산을 넘어가고 있었다.
가는 중간중간에 지도를 펼쳐 들고서는 가장 안전하면서도 빠른 길을 선택했다.
한 낮인데도 금오산 일대는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
산을 오르기 전 주막에서 길을 물었는데, 조선말을 조금 하는 사츠키가 어렵지 않게 많은 정보를 얻었다.
금오산 일대에 산적들이 득실거려서 한낮이라도 많은 사람이 모이지 않으면 넘어가지 않았다.
주모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타이요우가 발길을 재촉했다.
정오의 햇볕이 꽤 따가웠지만, 숲 그림자를 따라 좁은 산길을 쏜살같이 올랐다.
산 능선을 넘어가는 고갯길에 다다랐을 때 갑자기 십여 명의 장정들이 몽둥이나 낫, 괭이 등을 들고 나타났다.
“어딜 가시오?”
덩치가 산만 한 자가 타이요우의 앞을 딱 막아서며 근엄한 척 위협했다.
자신의 덩치에 비하면 너무 초라하고 자신들이 숫자도 많아 당당하게 앞으로 걸어 나왔다.
“윽.”
덩치가 갑자기 쓰러지자 다른 무리가 놀라며 주춤했다.
무리 누구도 타이요우나 그 뒤 사츠키가 움직이는 것을 보지 못했지만, 분명히 두 사람이 자기들의 동료를 죽였다고 생각하고는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
“윽.”
달려오던 무리가 여기저기에서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러자 남은 무리가 쓰러진 동료들을 버리고 산으로 꽁무니를 뺐다.
“하하하, 산적들이 조선 병사들처럼 오합지졸들이군!”
타이요우의 말처럼 저들은 형편없는 무리였다.
그것도 그럴 것이 저들은 산적들이 아니라 피난민이었다.
경상도 해안가에서 살다가 왜구들이 쳐들어 와 마을을 불사르고 사람들을 죽이자 도망을 나와 금오산으로 숨어든 것이다.
산 능선 위로 숨은 무리가 멀리 고개를 넘어 내려가는 타이요우를 멀뚱히 쳐다보며 자기들의 동료들이 왜 쓰러졌는지를 모른 채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
료우타가 하루토를 앞세우고 열심히 타이요우를 따라잡고 있었다.
반 시진의 차이였다.
하루토가 산 고개를 넘으려고 달려가자 한 무리가 나무 몽둥이와 농기구를 들고 험악한 표정으로 길을 막고 있었다.
하루토가 뒤에 달려오는 료우타를 힐긋 보고는 손을 품에 넣었다 꺼냈다.
무리는 또다시 자신들의 동료 세 명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아파하자 기겁하고는 숲으로 도망을 갔다.
“하루토! 그만.”
료우타는 숲으로 도망가는 자들의 형색을 살폈다.
저들의 복장은 평범한 아니, 다 해진 옷을 입고 있는 피난민이 분명했다.
마음이 짠했지만, 그들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곧 아무렇지 않을 것이다. 다만, 날카로운 무기에 맞았으니 조금은 아프겠지만. 후후.’
묘한 미소를 짓고는 료우타가 하루토를 따라 쓰러진 자들을 넘어 고개를 내려갔다.
뒤에 게닌들의 바람 소리도 세차게 들려왔다.
산길을 달리느라 게닌들도 약간은 힘들었을 것이다.
벌써 한 시진을 쉬지 않고 달리고 있었다.
하루토의 눈길을 모른 척 계속 달렸다.
후방조로 천천히 가도 되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잘못하다가 목적을 달성하게 되면 큰일이었다.
길을 따라 서쪽으로 달리다 보니 타이요우 앞에 큰 강이 가로막고 있었다.
지도에 의하면 이 강이 경상도와 전라도를 경계하는 강이었다.
타이요우가 강 주변을 살폈다.
언덕 아래 주막이 보였다.
강을 건널 배를 알아보기 위해 주막으로 들어갔다.
주막에는 강을 건너려는 사람들이 많은지 밥이나 술을 마시는 자들이 제법 있었다.
“주모! 여기 술 좀 부탁하오.”
타이요우 앞에 앉으며 사츠키가 술을 주문했다.
주모가 다른 손님을 받고는 촐랑촐랑 걸어왔다.
“저기 강을 건너려는데 배는 언제 뜹니까?”
“두 분은 여기 사람이 아닌 갑소?”
타이요우와 사츠키가 동시에 놀라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모를 올려다보았다.
주모가 두 사람의 눈빛에 섬뜩했다.
“하하하, 어떻게 알았소! 부산포에서 왜놈들 피해서 여수로 가는 중이오. 이 순신 장군 밑으로 들어가 왜놈들에게 원수를 갚으려고 가는 길이라오.”
“아하! 어쩐지 무골이 좋더라니. 난 또 왜놈들 첩자인가 했소. 호호호.”
덩치가 작은 두 사람을 보고는 무골이 좋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두 사람은 주모의 말에 심장이 쿵 했지만 서로 눈길을 마주치며 겉으로는 태연한 척 농을 했다.
“하하하, 주모. 우리가 그들이라면 주모는 이미 죽은 목숨이오.”
“워메, 목숨 부지하기 힘들 것소. 호호호. 그럼 쪼매만 기다려 주이소. 곧 술을 가져다 드릴랑게. 아 참, 배는 쪼매 있다가 건너편으로 갈끼요.”
심한 경상도 사투리에 두 사람은 반도 채 알아듣지 못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되물었다.
“그런가요. 얼마나 자주 있소.”
“한 시진마다 있습죠.”
주모가 엉덩이를 흔들며 다른 손님에게로 갔다.
술을 마시고 있는데, 주막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술값을 치르고 나루터로 가자 두 사람도 술을 한 모금 마시고는 배를 타기 위해 나루터로 내려갔다.
근처 술을 한 모금 마시고 있던 게닌들도 부리나케 일어나 뒤를 따랐다.
“거기 두 사람 잠깐 서 보시오.”
나루터 근처 왔을 때 누군가가 불렀다.
타이요우와 사츠키가 멈칫 뒤를 돌아보았다.
칼을 던 무사 십여 명이 서 있었다.
사츠키가 조금 당황했지만, 그들을 향해 말을 걸었다.
“우리 말이오. 무슨 일로 그러오.”
“잠시 이쪽으로 와 보소.”
사츠키가 타이요우를 쳐다보았다.
“왜 그러는지 말하시오. 오라 가라 하지 말고.”
“당신들 어디서 오는 길이오?”
“사천에서 오늘 길이 오만.”
“하하하, 사천에서 무슨 일로 강을 건너려 하오?”
“아니, 우리가 강을 건너든 말든 댁들이 무슨 상관이오.”
“지금은 전쟁 중이오. 혹 첩자들이 숨어들까 하여 그러는 것이니 잠시 이쪽으로 올라오시오.”
“어허! 우리는 여수에 볼일이 있어 가는 장사꾼들이오. 아무 죄 없는 사람을 오라 가라 하는 게요.”
무사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주막에서는 여수 병영을 찾아가 병사가 될 거라 한 것 같은데 장사꾼이라니. 그리고 부산포가 아닌 사천이라 하셨소?”
분위기가 점점 살벌해져 갔다.
주변에 이들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멀찍이 물러났다.
조선 무사들이 두 사람을 살며시 둘러쌌다.
타이요우가 게닌들을 찾아 주변을 살폈다.
게닌들을 합해도 인원수가 부족했다.
료우타가 아쉬웠다.
‘개똥도 약에 쓸려면 안 보인다더니.’
더 큰 문제는 신분이 노출되게 되면 여수로 잠입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눈빛이나 품세가 일반 무사가 아니었다.
섣불리 움직이다가는 더 위험할 것이다.
강한 햇볕에 땀이 등줄기를 타고 내렸다.
주위가 벌판이라 게닌들이 숨어들지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그들이 먼저 배를 타기 위해 내려갔다가 오지 않는 타이요우를 보고는 되돌아올 수도 없어서 주의를 경계하며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음, 우선 이 자리를 피해야겠다.’
“패랭이를 벗어 보시오.”
타이요우가 사츠키에게 눈으로 말을 했다.
둘이 동시에 무사들을 향해 수리검을 날리고는 뛰기 시작했다.
“쟁그랑.”
“윽.”
무사들이 갑자기 날아 온 물체를 칼로 쳐냈다.
누군가가 맞았는지 비명을 질렀다.
타이요우와 사츠키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내달리며 원을 그리듯 돌았다.
조선 무사들을 가운데로 모아 공격하기 위한 작전을 펼쳤다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는 타이요우가 사츠키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 순간 조선무사들이 오히려 두 사람을 압박하자 타이요우가 강줄기를 따라 빠르게 내려갔다.
“잡아라!”
조선의 무사들이 둘로 나눠 쫓기 시작했다.
그들 뒤로 게닌들도 둘로 나뉘어 졌다.
나루터에 도착한 료우타가 타이요우를 찾았지만, 나루터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미 배가 강 중간쯤 가고 있었다.
멀리 배를 훑어보아도 타이요우뿐만 아니라 게닌들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데, 아직 이곳에 도착하지 않은 걸까? 설마, 우리보다 늦은 것은······.”
“료, ······아니 여기 이것 좀 보십시오.”
하루토가 료우타를 부르려다 깜짝 놀라 주변을 살폈다.
아무도 없다는 것을 인지한 하루토가 멋쩍은 웃음으로 무엇인가를 들고 료우타에게로 다가왔다.
수리검이었다.
주변을 살펴보니 수리검 몇 개가 보였으며, 강둑으로 달려간 흔적들이 보였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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