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고 속이는 자들
역사는 반복된다.
별빛이 총총한 밤하늘에서 올빼미가 울었다.
별빛이 총총한 밤하늘에서 올빼미가 울었다.
“오늘따라 올빼미 소리가 구설···. 윽!”
“왜, 왜 그래? 컥!”
새로 확장하며 지은 작은 성루에서 경비를 서고 있던 자들이 작은 화살에 맞아 쓰러졌다.
그와 동시에 검은 그림자들이 저택의 담을 넘자 곧이어 저택을 경비하던 무사들이 여기저기에서 쓰러지기 시작했다.
복면 몇 명이 바깥 저택의 정문으로 달려가기 전 단궁을 쏘아 경비병들을 쓰러트렸다.
담을 넘어간 동료가 안에서 문을 열어 주자 열 명도 넘는 복면들이 칼을 들고 안으로 밀려들어 갔다.
바깥 별채에서 객장들과 같이 와 안채로 들어가지 못하고 쉬고 있던, 아니 칼을 뽑아 들고 신호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객장들의 경호무사들이 올빼미 소리가 들리자 방문을 열고 나와 별채를 지키고 있던 경비들에게 달려들었다.
바깥 정문과 별채에서 무리가 칼을 들고 달려오자 안채로 들어가는 문을 지키고 있던 경호 무사들이 잔뜩 겁을 집어먹고는 고함을 질렀다.
“침입자다!”
칼 부딪히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렸다.
무사들이 바깥채로 달려가는 소리가 들렸으며, 여기저기에서 칼 부딪치는 소리와 발걸음 소리가 요란했다.
이윽고 여러 곳에서 복면한 무사들이 안채 연회장 마당으로 달려들어 왔다.
“저항이 별로 없는 것이 이상합니다.”
사카야마가 불편한 다리로 뒤에 들어오자 앞서가든 카이토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그때,
“탕! 탕! 탕!”
사방에서 철포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섬사람들이 놀라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병사들이 횃불을 들고 쏟아져 나와 섬사람들을 향해 철포를 겨누었다.
“하, 함정이다. 젠장.”
사카야마가 낙담한 얼굴로 연회장을 바라봤다.
연회장의 장지문이 열리며 타이요우가 웃으며 걸어 나왔다.
“하하하, 사카야마님. 오랜만입니다.”
웃는 타이요우 뒤로 객장들이 경호 무사들에 의해 칼로 어깨가 눌려 있었다.
“인제 그만 항복하시고 충성을 맹세하시면 살려는 드리겠습니다.”
“네 이놈. 널 먹여주고 키워 준 섬에게 이를 수는 없다.”
언젠가 타이요우가 라나가 코카와성으로 들어가기 전 사카히로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사카히로가 잠시 출타 중이어서 그를 기다리며 상점의 물건들을 구경했다.
그러다가 구석 선반 안에 있는 물건을 발견했는데 평소에 보지 못한 아주 귀한 물건이었다.
점원에게 물어봐도 모른다는 답뿐이었다.
‘이런 귀한 물건은 고관대작들이나 가질 수 있는 것인데.’
물건을 살펴보고 있는데 사카히로가 돌아왔다.
타이요우가 들고 있는 물건을 뺏으며 나무랐다.
거실로 들어 온 후에도 화를 가라앉히지 않은 상태에서 타이요우를 대했다.
어색한 분위기에도 타이요우는 라나를 달라고 졸랐다.
하지만 그 물건 때문인지, 아니면 코카와성 때문인지 단호하게 거절했다.
심한 모욕감을 느낀 타이요우는 절망감과 함께 분노로 휩싸였다.
무엇을 생각했는지 타이요우가 웃으며 사카야마를 내려다봤다.
“누가 누굴 먹여주고 키워줬습니까? 저는 제 몫을 하고도 남았습니다. 형님이 나타나기 전 섬에서 가장 촉망받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형님이 나타난 후 저의 위치가 흔들려도 라나가 있어서 형님을 도와 섬의 미래를 꿈꾸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보지도 듣지도 못한 놈이 기어들어 와서는 저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는 놈에게 모든 것을 빼앗겼습니다. 조선 놈보다 못한 대우를 받았지요.”
‘유키마저 센 놈이 가로챘지.’
타이요우가 말을 하고는 인상을 찌푸리며 마당에 엉거주춤 서 있는 사카야마를 내려다봤다.
“모든 것은 네놈의 착각이다. 우리는 단지 상단의 보호와 발전이라는 임무를 완수하기 위한 하나의 소모품에 불가해. 나도 마찬가지다. 개개인이 아니라 섬사람의 삶이 목적인 것이다.”
“하하하, 소모품이라! 아니지요. 섬의 임무, 즉 목표는 닌자의 삶이 아닌 보통의 삶이었지요. ······상단을 통해 섬은 변신을 꾀했습니다만 어떻게 되었습니까?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것이 우리 내 삶입니다. 이제는 그 삶을, 우리들의 숙원을 제가 완수할 것입니다.”
사카야마가 분노한 얼굴로 다가갔다.
“단단히 미쳤구나! 네놈 스스로 힘이 아니라 니조궁의 힘으로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너 또한 그들의 소모품이다!”
점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일그러진 타이요우가 목소리를 높였다.
“저 객장들을 다 죽일 생각이십니까? 섬사람들은요? 나의 무사들과 병사들이 기이섬으로 갔습니다.”
사카야마가 휘청했다.
옆에 있던 카이토가 사카야마의 몸을 부축했다.
‘설마 했었데. 아! 완전히 당했구나. 모두가 저놈에게···. 섬도 이것으로 마지막이란 말인가!’
절망감에 빠져 있던 사카야마가 정신을 차리며 동료들을 둘러보았다.
자신의 판단 하나로 수많은 동료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할 것이다.
객장들과 동료들의 눈이 자신을 보며 비방하는 것 같았다.
아니 몇을 빼놓고는 눈빛이 반짝였다.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로 큰 죄를 지었지만, 가슴 아래에서 무엇인가 올라왔다.
“타이요우, 우리가 누구인가?”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하하하, 끝장을 보겠다는 말씀입니까? 철포대장님 모두 저승으로, 윽···.”
타이요우가 말을 하며 마루 끝으로 나오다 발을 헛디뎠는지 마당으로 굴렀다.
활을 손에서 놓은 무솔은 소리를 지르며 칼을 들고 타이요우에게로 달려갔다.
“타이요우!”
반대편에 숨어 있던 센도 달려 나왔다.
무솔과 센의 함성에 섬사람들이 타이요우와 연회장으로 밀고 들어갔다.
겨우 중심을 잡은 타이요우를 호위한 진자에몬이 섬사람들의 칼을 받아냈다.
“병사들은 철포를 쏘지 말라.”
서로 뒤엉켜 싸우고 있는 모습을 보며 철포대장이 명을 내렸다.
타이요우가 마루에 서 있다가 갑자기 마당으로 떨어지는 모습에 놀라 방심한 틈을 타서 객장들이 타이요우의 무사들과 얽히자 뒤로 물러나 앉아 있던 여인들이 비명을 지르며 난리가 났다.
칼을 뺏어 든 객장들과 칼이 없어 개인 소반을 들고 상대의 칼을 받아내는 객장들로 여기저기 뒤엉기며 혈투가 벌어졌다.
일부는 밖으로 재빠르게 나와 별채에 있던 경호 무사들이 던져 준 칼을 들었다.
접대에 나왔던 여자들은 비명과 괴성을 지르며 어디로 갈지 몰라 허둥댔다.
거실과 마당 여기저기에서 비명과 칼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했다.
점점 상황이 악화하자 타이요우가 진자에몬의 경호를 받으며 연회장 옆 담 아래로 피신했다.
그의 걸음걸이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마루 끝에서 무엇인가를 느낀 타이요우가 그것을 피하려고 마당으로 구른 것이었다.
겨우 숨을 몰아내고 철포대장의 위치를 확인하고는 담벼락 어둠을 더듬으며 급히 그에게로 달려갔다.
“타이요우! 내 칼을 받아라.”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사카야마가 칼을 뻗어 왔다.
걸음을 멈추며 칼을 피하고는 재빠르게 사카야마 옆구리를 찔러 들어갔다.
한바탕 공격을 주고받은 두 사람이 서로 노려보았다.
“불편한 다리로 맞서다니 대단하다만, 여기까지다.”
“내가 죽더라도 네놈만은 함께 갈 것이다.”
타이요우가 말을 마치자 칼을 사선으로 들고 달려왔다.
사카야마도 말을 내뱉으며 달렸다.
두 사람의 칼이 다시 부딪쳤다.
타이요우의 말처럼 불편한 다리로 상대의 공격을 계속 받아내기가 힘들었다.
“사카야마! 여기까지다.”
타이요우가 공격을 받아내며 사카야마의 등을 발로 차고는 비틀거리는 그의 목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어둠 속에서 무엇인가 날아와 타이요우의 칼을 쳐냈다.
타이요우가 칼을 바로 하며 고개를 돌려 보니 무솔이 자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잘 만났다. 오늘 네가 죽든 내가 죽든 결판을 내자.”
“내가 할 소리! 오늘 조선의 검을 보여줄 것이다.”
무솔이 날아올랐다.
타이요우가 자신에게로 날아오는 무솔의 칼을 받으며 뒤로 몇 걸음 밀려났다.
“젠장!”
또다시 칼이 타이요우를 향해 미친 듯이 밀려들었다.
무솔의 공격을 정신없이 받아냈다.
‘젠장, 이러다 죽겠다.’
타이요우가 잠시 둘 사이가 멀어지자 품속에서 수리검 몇 개를 던지고는 철포대장이 있는 곳으로 휙 돌아서서 달렸다.
“어라!”
무솔이 수리검을 칼로 쳐 내며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타이요우를 멀뚱히 쳐다보았다.
병사들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아비규환 속에서 철포대장의 명을 기다리며 지켜보고만 있었다.
타이요우가 숨을 헐떡이며 철포대장에게 달려왔다.
“미우라 겐지님! 철포를 발포해 주십시오.”
놀란 철포대장이 타이요우를 쳐다보았다.
얼굴과 몸 여러 곳에 상처가 나 있었다.
“아군도 죽게 되오.”
“어차피 누군가는 죽어야 끝나는 싸움입니다. 저는 부교님의 명을 받았습니다.”
언짢은 표정이 역력했으나, 잠시 머뭇거리다 아무 말 못 하고 병사들을 준비시켰다.
“진자에몬, 뿔피리를 불어라.”
뿔피리 소리가 들리자 타이요우의 무사들이 갑자기 어딘가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를 본 사카야마가 위험을 느끼고는 소리쳤다.
“위험하다. 몸을 숨겨라.”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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