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손 2
역사는 반복된다.
무솔과 센이 무기를 건물 입구에 두고 안으로 들어갔다.
미츠나리가 무엇인가를 보고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부교 나리.”
집무실에서 서류들을 펼쳐보고 있던 미츠나리가 고개를 들었다.
“아, 아니. 네놈은······.”
“혹, 우리가 못 올 곳을 왔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아니라 부교 나리지요.”
“역시 당돌한 놈이구나!”
씁쓸한 듯 미츠나리가 혀를 찼다.
“나에게 볼일이 있다고 들었다만.”
자세를 고쳐 잡고 진지한 얼굴로 미츠나리를 쳐다보았다.
“히데요시가 잘못 품은 보물에 대해 알고 싶어 왔소이다.”
“뭐, 뭐라. 네 이놈. 태합 전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다니 죽고 싶은 게로 구나!”
미츠나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고함을 쳤다.
밖에서 무사들이 주르르 달려들어 왔다.
“이보시오, 부교! 당신들에게나 태합이지 조선 사람인 나에겐 미친 늙은이에 불과하오.”
미츠나리가 등 뒤의 칼 걸이에 걸려 있던 칼을 빼 들었다.
“정녕 네놈이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달려들어 온 무사들도 일제히 칼을 빼 들었다.
“하하하, 하나만 묻고 죽읍시다. 당신은 조선의 왕을 무어라 하오. 이 순신 장군은 또 어떻게 부르오? 아름다운 이 땅을 폐허로 만들고 수많은 조선 사람들이 저승의 객이 되었소. 또한 도자기공과 기술자들 수천이 잡혀갔소이다. 당신이라면 그렇게 만든 무리의 우두머리를 무엇이라 부르시겠소?”
미츠나리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억누르며 무솔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봤다.
‘이놈을 당장 죽여?’
“무사들을 물려주시오. 당신들의 태합과 관련된 물음이오!”
“뭐라? 태합 전하와······.”
‘이놈이 또 무슨 꿍꿍이로.’
무솔을 예리한 눈으로 쳐다보며 고민한 미츠나리,
“조, 좋다. ······모두 물러가라. 내가 부를 때까지 들어오지 말도록 하라.”
무사들이 칼을 칼집에 넣으면서 목례하고 모두 밖으로 나갔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센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
어디서 저런 용맹함이 나오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신이 고향 땅을 버리고 무솔을 따라 조선으로 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모한 무솔의 행동에 쪼그라든 심장은 어쩔 수가 없었다.
“당신과 태합이 일본 궁에 들어가서 본 것이 무엇이오?”
미츠나리가 탁자에 놓여 있는 편지를 내려다보고는 태연하게, 아니 태연한 척 무솔의 얼굴을 다시 바라봤다.
‘궁에 있는 비밀을 어떻게 저놈이 알고 있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하하하, 이미 태합이라는 자에게서 들었소. 다만, 글을 모르기에 부교께서 알려 준 것 같은데, 어떻소? 내 말이 틀렸소?”
“저놈이 그래도···. 미친 소리를 하려거든 썩 물러가라. 두 번 다시 내 눈에 보이면 그때는 목을 칠 것이다.”
“내 목숨이 그리 가벼운 줄 아시오. 당신의 나라, 그 어둠의 세계에서도 살아남아 여기까지 왔소이다. 주조도 아니 당신이 너무도 잘 아는 오토모 호소인도 날 어떻게 못했소. 내 목숨이 가벼웠다면 당신을 만나러 오지 않았을 것이오. 지금 마음만 먹는다면 당신의 목은 이 땅에 떨어질 것이오.”
‘음, 오토모 호소인까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억누르며 노려보았다.
무솔이 품에서 무엇인가 꺼내려 손을 품에 넣자 놀란 미츠나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뒤로 물러나며 소리를 지르려 했다.
“이미 늦었소. 당신은 죽은 목숨이오. 그러니 자리에 앉으시오. 하하하. 겁쟁이가 아니라면 말이오.”
미츠나리가 멋쩍은 표정으로 다시 자리에 앉았다.
닌자들을 너무도 잘 알기에 자기도 모르게 움찔하고 만 것이다.
품에서 꺼낸 물건을 센이 미츠나리 앞에 가져다 놓았다.
“무엇이냐?”
“풀어 보시오.”
미츠나리가 보자기를 조심스럽게 풀어 헤쳤다.
“이, 이것은······.”
물건을 보자 놀란 미츠나리가 말을 잊지 못하고 고개를 들어 무솔과 센을 쳐다봤다.
“이게 왜 네놈에게 있지? 이건 분명······.”
“그렇소. 내가 후시미성에서 가져온 것이오.”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하자 미츠나리가 더더욱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무솔을 노려봤다.
“서, 설마! 태, 태합 전하를 네놈이······.”
“아니오. 난 단지 나의 물건을 가서 가져왔을 뿐이오. 태합의 명은 하늘이 내린 수명이 다했기 때문일 것이오.”
부산포로 들어왔을 때 일본 군 사이에 히데요시가 죽었다는 소문이 암암리에 돌고 있었다.
“거짓말을 아주 뻔뻔스럽게 하는구나! 내 당장 네놈의 목을 칠 것이다.”
“어허, 또 저러신다. 이러다 다른 병사들이 다 듣겠소. 그래도 되오?”
아차 싶었다.
태합의 죽음은 비밀 중에 비밀이었다.
어떻게 저놈이 알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다른 병사들이 알면 안 되는 극비였다.
입술을 곱씹으며 무솔을 노려보았다.
“이 물건이 잠시 에도의 성주에게 있었소이다. 그자가 왜 이 물건을 태합에게 건넸겠소? 그도 한조를 통해 이미 이 물건의 내력을 어느 정도 알았을 것인데 말이오.”
“으······!”
무솔의 말을 들으며 자신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젠장!'
자신의 수중에 들어 온 물건, 그것도 예사롭지 않은 진귀한 보물을 그냥 태합에게 넘겼다. 고 생각하니 가슴이 서늘해졌다.
“에도는 이 물건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오. 더더욱 태합의 것도 아니라는 것을. 그런 물건을 태합에게 줬다? 교토 일대 어둠의 세계에서 무슨 일들이 일어났소이까? 당신이 제일 잘 알고 있지 않소. 그런데도 자신의 것이 아닌 물건에 혹해서 당신은 그 영리한 머리로 너무도 앞서가는 판단을 하고 만 것이오. 그것이 태합의 명을 재촉한 것이오.”
“함부로 지껄이지 마라. 네놈이 무얼 안다고······.”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그저 조선 놈으로 대했던 자가 눈앞에 앉아 있다고 생각했는데 거대한 힘이 자신을 압박해 왔다.
그의 눈에서 광채가 나며 자신을 움츠러들게 하고 있었다.
“이 물건은 내 것이오. 태합과 당신이 욕심을 부릴 만하지만, 잘못된 비극을 낳을 뿐이오. 이제 당신이 알고 있는 내용을 듣고 싶소!”
‘당돌한 놈이로다.’
“하하하, 나도 잘 모른다. 다만, 이 물건은 황궁의 보물과 같은 것이다.”
물건의 주인이 자신이라며 무모하게 다가온 무솔의 용기와 더불어 또 다른 무엇인가가 있지 않을까? 란 생각에 말문을 열었다.
“나도 거기 까지는 알고 있소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이 물건들을 말하는 것인지 황궁에 있는 보물들을 말하는 것인지가 불분명하다. 둘 중 어느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옛 영광을 재현할 힘이 내재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옛 고토가 회복되고 천손이 번창하게 된다는 것인데, 보물이 그러한 역할을 한다고 되어 있었다. 아니 언젠가는 천손이 옛날의 영광을 재현할 것이라 했다. 그때까지 천손을 지키는 것이 그 보물의 역할이라고나 할까? ······이 번 전쟁에서 조선의 고서적들을 닥치는 대로 수집했다. 그 서적들에서 내력을 알 수 있는 단서가 있을 수도 있겠지.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 ······더 이상은 나도 모른다.”
미츠나리의 이야기를 들으며 놀라움과 걱정으로 가득 찼다.
‘조선에 있는 고 서적들이라······!’
세 개의 보물이 합쳐져 있는 것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두 손으로 집어 들었다.
“황궁에는 보물과 문서를 지키는 무리가 있다. 그들은 대대로 자신들의 존재를 숨기며 천손을 기다리고 있다.”
“천손이라! 혹 굽옥을 보유한 황궁이 천손이 아니오?”
‘굽옥까지······. 이놈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것일까?’
속으로 뜨끔했다.
“글쎄?”
“그런데 궁에서 보관하는 것과 이것은 비슷하면서도 다른데, 부교는 어떻게 생각하오.”
황궁의 보물들은 실제 크기였지만 무솔의 세 보물은 손바닥만 하거나 그보다 작았다.
보물을 쳐다보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 잠시 무솔을 보고는 눈길을 보물에 두었다.
“황궁이 천손일 수도, 만약 황궁이 천손이면 네놈은 조선이 아니라 일본을 위해, 천손인 황궁을 위해 싸워야겠지. 아니면, 이 보물의 주인이 천손······. 글쎄? 아마도 무슨 사연이 있을···.”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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