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의 길
역사는 반복된다.
이 순신이 백의종군 명령을 받고 산음에 있다가 전라도로 향했다는 첩보가 들어 왔다.
닌자들과 멀지 않은 곳에 이 순신이 있다는 것을 알자 마음이 더 급해졌다.
닌자들을 추적하던 무솔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장군이 왜? 바다가 아닌 전라도 내부로 들어가시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하던 무솔은 앞서 달려가는 센을 불렀다.
지도를 펼쳐 든 무솔은 전라도와 남해안 해안가를 두루 살폈다.
그 옛날 어릴 적 뛰놀던 해안가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센! 너는 왜 이 순신 장군이 바다가 아닌 육지로 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갑작스런 질문에 센이 멀뚱히 무솔을 쳐다보았다.
“이상하긴 하네요.”
“저도 이상하다고 생각은 해요. 하지만 이렇게 머뭇거리다가는 늦을 수 있어요.”
남장한 하이난이 무솔과 센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먼바다로 갈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칠천량 전투를 치렀기에 일본 수군은 바로 남해를 돌아 한양으로 갈 수가 없었다.
식량이나 보급품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조선 수군이 나타나 싸움했기에 경상도 남해안 일대만 수중에 넣고 선수를 돌렸다.
칠천량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 주둔지로 돌아온 수군은 식량과 보급품을 챙기며 출전 준비를 했다.
육군과 수군이 출전 준비가 끝나자 수군의 함선이 바다로 나아가 사천으로 상륙하여 육지에서 출발한 고니시를 비롯한 제2군과 만나 남원성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 순신은 지금 제2군에 앞서서 전라도 내륙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조금만 늦거나 일본 수군이 빨라지면 맞닥뜨릴 정도의 거리였다.
아니 이미 닌자들이 이 순신을 덮쳤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솔의 마음이 급해졌다.
“혹 장군이 남원성으로 들어가 일본군을 막으려고 북쪽으로 가는 것이 아닐까요?”
“센, 남원성으로 질러가야겠다. 닌자들도 우리처럼 추측했거나 거의 따라잡았을 수도 있어. 그 전에 우리가 먼저 가야 해.”
무솔 일행은 닌자들과 이 순신의 흔적을 찾지 않고 구례에서 바로 남원성으로 앞만 보고 달렸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사달이 날 것만 같았다.
“무솔님, 피난민들에 의하면 이 순신 장군이 곡성에서 여기 보이는 옥과라는 곳으로 향했다고 합니다.”
피난민들을 만나고 돌아온 하이난이 무솔을 바라보았다.
지도를 다시 펼쳐 든 무솔은 앞에 달리는 센을 불렀다.
“센, 장군이 지나간 마을들의 특징이 무엇이었지?”
“어······, 병기들이랑 군사들, 군량미가 있던 곳이라 했어요.”
“그래, 바로 그거야. 장군은 지금 피난민들 속에서 흩어진 병사들과 병기, 그리고 군량미를 확보하기 위해 전라도 내륙으로 들어오신 거야. 아마도 곡성에서도 그럴 거야. 지금 가고 있는 옥과에서도 마찬가지일 거고.”
“그럼, 그 병사들과 무기들을 가지고 남원성으로 들어갈까요?”
센은 이 순신의 마음을 헤아렸다는 듯이 말했다.
“아니, 남원성은 이미 조선 병사들이 일본군을 대비하고 있지 않을까? 굳이 병사들과 군량미를 찾아 험난한, 아니 바로 뒤에 일본군이 따라오고 있는데 그러한 것들을 챙긴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가 되지 않아.”
무솔은 이 순신의 생각을 읽으려는 듯 잠시 생각에 잠겼다.
센이 그런 무솔을 보며 답답한 듯 혼잣말을 했다.
“아니, 남원성도 아니라면, 텅 빈 바다라도 가나?”
“뭐? 센 지금 바다라고·····?”
“내가·····?”
“응, 바다, 남원성이 아니라 바다야. 센의 말처럼 지금 바다는 텅 비어 있어. 병사들도, 배도, 군량미도 없지. 그리고 일본 수군도·····.”
“네·····? 그럼, 바다로 가겠네요. 저도 무솔님의 추측에 동의해요.”
하이난이 잠시 생각하다 무솔의 의견에 자기의 생각을 보탰다.
센은 넋두리처럼 혼잣말했는데 무솔이 바다라고 하자 어안이 벙벙하여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무솔은 센을 향해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지도를 살핀 뒤 일행을 이끌고 발걸음을 돌려 바다로 향했다.
“제발, 우리가 도착할 때까지 아무 변고가 없어야 할 텐데.”
무솔 일행이 순천으로 들어왔다.
많은 사람이 피난을 가고 마을의 집들이 텅텅 비어 있었다.
제법 마을이 크고 사람들이 많은 낙안읍성에서 장비들을 정비하며 이 순신을 기다렸다.
이틀 뒤 순천을 거쳐 이 순신이 무장들과 병력을 이끌고 낙안읍성으로 들어왔다.
이 순신 이 낙안읍성에 들어왔다는 소식에 근처에 사는 많은 백성이 이 순신을 찾아 읍성으로 들어왔다.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수많은 백성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무솔이 백성들 속에 들어가 지근거리에서 이 순신을 바라봤다.
백성들 속의 이 순신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노쇠해 있었다.
무솔은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눈물이 나려 했다.
“어떻게 저런 몸으로······.”
백성들은 이 순신의 상태를 잘 알지 못했다.
지난날을 생각하여 백성들은 이 순신을 보자 환호성과 이제야 살았다는 표정들이었다.
하지만, 무솔의 눈에 들어 온 이 순신은 그야말로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누가 알세라 늠름하고 근엄하게, 그리고 밝은 표정으로 백성들의 인사를 받고 있지만 이 순신은 속으로 견디고 있었다.
그런 이 순신이 안타까워 차마 볼 수가 없었다.
“형, 저기 저 사람, 쥰세이 형 아냐?”
마음을 진정할 수가 없어서 고개를 돌리려는데 센이 무솔의 옷자락을 잡았다.
이 순신 뒤 무사들 틈에 있는 한 사람을 가리켰다.
센이 가리키는 곳을 더듬다가 준사를 발견했다.
“쥰세이가 맞는 것 같아. 살아 있었어.”
자신도 모르게 환하게 웃었다.
‘동생도 살아 있겠지?’
혹 지리산 동료들도 있을까?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종하 형과 연서는 어떻게 되었을까? 보고 싶다.”
당장 준사에게 달려가 동생의 행방을 묻고 싶었지만, 이 순신의 경호가 너무 단단하여 엄두를 내지 못했다.
또한 언제 올지 모를 그들이 우선이었다.
읍성에서 닌자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일반 백성처럼 변복한 무솔과 하이난은 마을 길을 조심스럽게 돌았다.
혹 백성들 사이로 이미 닌자들이 숨어 들은 것은 아닐까?
백성들은 빈집을 제집인 것처럼 들어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서로 빈집을 차지하기 위해 여기저기서 싸움이 났다.
어떤 집은 피난을 갔다가 돌아와 보니 빈집인 줄 알고 떡하니 주인인 양 차지하고 내놓지 않는 피난민과 싸움이 난 집도 있었다.
빈집에 들어가 있는 자들을 눈여겨 살폈다.
“너희들은 누구냐? 거동이 수상하구나.”
“네? 아, 저희는 진주에서 피난을 왔습니다. 여기는 제 안사람입니다.”
닌자를 찾아다니던 무솔이 성 외곽 입구에서 오히려 조선 병사들에게 심문당했다.
무솔은 신분을 확인하는 군관에게 호패를 보이며 말했다.
무솔의 안사람이라는 말에 그것이 거짓인 줄 알면서도 하이난의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진짜 부인이면 얼마나 좋을까?’
“수상하구나! 부인이란 자가 남장하는 사유가 무엇이냐?”
“그야 당연합죠. 왜놈들이 아녀자들을 겁탈하고 막무가내로 끌고 가지 않습니까요. 이렇게라도 변장해야 조금이라도 안심이 됩니다. 헤헤.”
무솔의 넉살에 병사들이 따라 웃고는 가 보라며 손짓하고 가던 길을 갔다.
“난, 어서 오시오.”
무솔이 저만치 가다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서 있는 하이난을 불렀다.
깜짝 놀란 하이난이 무솔을 따라 걸음을 재촉했다.
그녀가 무솔이 자신을 부인이라고 소개하자 정말 그러면 좋겠다는 생각에 잠시 부부로 살아가는 모습을 상상했다.
무솔의 부름에 얼굴이 발그레해져서는 무솔 곁으로 다가갔다.
부끄러움이 앞서서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녀의 상상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솔은 빠른 걸음으로 앞서가며 집들을 살폈다.
‘저들의 행동이 수상하다.’
허름한 초가집 앞을 지날 때 저만치 사람들이 걸어왔다.
무솔은 하이난에게 눈짓하고는 옆으로 지나가려는 사람들을 불러 세웠다.
“어디서 오시는 길입니까?”
“구례에서 오늘 길입니다만, 왜 그러시오?”
“일본 간자들을 찾고 있소.”
무솔의 입에서 간자라는 말이 나왔지만, 무리는 특별한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들을 그냥 보낸 무솔은 한참을 그들 뒷모습을 쳐다보다가 하이난을 딸려 보냈다.
“어디로 갔습니까?”
무리를 미행했다 돌아온 하이난에게 무솔이 물었다.
“성 북쪽에 있는 어느 빈집으로 들어갔어요. 다른 특별한 것은 없었어요.”
“그들이 패랭이 모자를 벗던가요? 무슨 말로 대화하던가요?”
무솔이 질문을 쏟아 내자 하이난은 가만히 그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하하하, 내가 너무 많은 질문을 했군요.”
무솔이 머리를 긁적이며 하이난의 얼굴을 쳐다보자 발그레해진 얼굴로 무솔의 눈길을 피하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니에요.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마당에 앉아 있는 자가 있어서 근처까지 가지 못했어요.”
무솔은 하이난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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