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산으로 1
역사는 반복된다.
암자 위에 올라간 무솔을 보며 타이요우가 멍했다.
“하하하, 타이요우, 아직도 눈치를 못 챘구나!”
타이요우가 호소인의 말에 자신도 이상하게 생각하던 차여서 무솔을 올려다보았다.
“올빼미섬 사람들은 들어라!”
무솔이 손을 들어 무엇인가를 내보였다.
달밤이라고는 하지만 무솔이 손에 든 것이 보일 리가 없었다.
하지만 개의치 않고 소리쳤다.
“이것은 두령패이다. 내가 올빼미섬의 두령이다. 섬의 배신자 타이요우를 응징하라. 우리는 이가의 후손들이다. 고가가 너희들을 몰살할 것이다.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것인가? 저기 고가의 오토모 호소인과 은혜를 원수로 갚은 고가의 후지마로가 보이지 않는가!”
무솔의 두령패와 고가라는 말에 타이요우를 섬기던 섬의 무사들이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면서 타이요우와 호소인, 그리고 후지마로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두령패는 마모루 촌장이 죽어가면서 무솔의 손에 쥐여 주었었다.
어둠속에서 타이요우의 눈치를 살피며 혼란스러워할 때 무솔이 어딘가로 신호를 보냈다.
멀리 숨어 있던 센이 단궁을 쐈다.
“윽.”
갑자기 타이요우 근처에 있던 무사가 쓰러졌다.
“뒤에 적이 있다.”
“이, 이런. 저놈이 날 속였어.”
“그, 그렇소. 지원군이 올 시간을 번 것이오.”
산기슭 일대가 닌자들의 전쟁터가 되었다.
무솔이 시간을 버는 동안 핫토리 한조를 통한 주조가 무리들을 이끌고 와 타이요우를 공격했다.
주조 또한 이가출신이다.
자신의 뒤에서 고가가 파 놓은 덫에 걸려 꼭두각시 노릇을 했다는 것을 안 그들이 한조의 요청에 함께하게 되었다.
타이요우의 무사 중 일부가 무솔의 말에 동조하면서 암자 일대가 서로 죽이고 죽이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짙은 어둠 속에 누가 아군이고 적군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타이요우의 무사들이 서로 칼을 겨누었고, 고가의 닌자들이 이가의 닌자들과 얽혔다.
주조의 무리와 무솔이 이끄는 무리는 서로가 알아볼 수 있는 표식을 미리 주고받았다.
혼전 속에 후지마루가 뒤로 그림자를 숨겼다.
자신은 나이도 많고 이런 난전 속에 죽고 싶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소나무 뒤를 돌아 오솔길을 급히 내려갔다.
“후지마루님!”
“누, 누구냐?”
누군가 후지마루를 부르며 앞으로 다가왔다.
노안이 온 후지마루가 어둠 속에서 상대를 확인하기 위해 눈을 찡그렸다.
“너, 너는 고로오가 아니냐.”
후지마로가 무엇인가 켕기는지 고로오를 보고는 살짝 당황했다.
하지만 이내 반가운 얼굴로 고로오를 맞이했다.
"살아 있었구나! 그동안 어디에 있었던 거냐?“
"이곳은 위험합니다. 우선 여기를 빠져나가시죠?”
“그러자꾸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후지마로가 앞장서서 숲을 내려갔다.
소나무 숲을 돌아 비탈진 길에 접어들었다.
“윽.”
후지마로가 비명을 지르며 뒤를 돌아보았다.
고로오가 자기의 등에 칼을 꽂고 있었다.
“아버지의 원수, 나와 동생을 이용해 섬사람들을 몰살시킨 놈. 죽어랏!”
후지마로가 고로오의 칼을 잡아챘다.
등에 칼을 맞고도 후지마로가 고로오를 공격했다.
“길거리에 버려져 고아가 될 놈을 살려 주었더니.”
나이가 있어도 두 사람의 실력 차가 너무 커 최고의 닌자 중 한 사람인 후지마로의 칼을 게닌인 고로오가 받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잘 가거라. 멍청한 놈.”
후지마로가 빼앗아 든 칼로 고로오의 목을 공격했다.
“멈춰라.”
어둠 속에서 갑자기 나타난 무솔이 후지마로의 칼을 막아섰다.
“네, 네놈이 어떻게···.”
“마지막 임무는 실패했군요. 후지마로!”
“무, 무슨 소리냐?”
“고로오를 이용한 함정. 저기를 보시오. 자기들끼리 서로 죽이고 있지 않소. 이게 누구의 계략이란 말이오. 정치하는 놈들에게 놀아라 닌자들끼리 서로 죽이고 있지 않소.”
무솔의 쓴소리에 후지마로는 얼굴이 벌게졌다.
자신이 판 함정에 자신이 걸린 것이다.
아니 무솔의 말처럼 정치하는 놈들의 꼭두각시가 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다고 인정하기도 싫었다.
“망상이 심하구나!”
“더 이상 장난을 칠 기회가 없을 것이오.”
“내, 내가 상처만 입지 않았다면 네놈은 한 줌 거리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가요. 하하하.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생기는지 모르겠습니다. 자! 갑니다. 어디 한 줌 꺼린 지 확인해 주겠소.”
무솔이 후지마로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두 수를 겨우 받아 낸 후지마로는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다.
“고로오!”
무솔이 고로오를 불렀다.
고로오가 다가와 무솔에게 칼을 받아 들고는 후지마로 앞에 가 섰다.
고로오의 두 어깨가 잠시 흔들렸다.
“은혜는 나 자신을 위함이 아니라 타인을 위함입니다.”
“이 칼은 나와 동생의 복수가 아닙니다. 바다 한가운데서 죽어간 섬사람들의 복수입니다. 그것만은 하지 말았어야죠.”
“고로오! 내가 널 어떻게 보살폈느냐? 너의 아버지도 내게 충성을 명세 했었다. 부디, 한 번만. 한 번만 용서해다오.”
“어쩔 수 없어서 나를 이용했다면 용서했겠지. 하지만 당신은 나와 내 동생을 철저하게 이용했어. 저승에 가거든 섬사람들에게 빌고 또 빌어라!”
분노로 가득 찬 고로오의 일갈에 후지마로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아, 아니다. 그것이 아니고···.”
고로오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뜨고는 후지마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칼을 휘둘렀다.
후지마로의 목이 땅에 떨어졌다.
멀리서 이가와 고가, 올빼미섬이 서로를 죽이는 것을 보고 있는 이가 있었다.
“료우타라고 했지. 아니 무솔이라고 했던가! 저자의 무예가 보통이 아니다. 좀 더 알아봐야겠다.”
다카도라가 토요토미 히데야쓰(豊臣秀保)의 익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고야산으로 출가했다.
영지는 몰수당했고, 가족들은 교토의 저택으로 옮겨져 연금을 당했다.
1595년 봄, 날이 화창하여지자 어쩐 일인지 히데츠구가 소풍 가자며 다카도라를 청했다.
좋지 못한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었고, 자신에 대한 소문들이 심상찮게 돌아가는 와중에 히데츠구가 물놀이를 가자고 하니 안 갈 수도 없고, 답답한 다카도라가 탄식하며, 길을 나섰다.
일행을 이끌고 요시노강으로 갔다.
그곳에는 히데야쓰도 와 있었다.
봄꽃들이 산을 덮고 있었고 숲은 연한 초록으로 물들고 있었다.
산새들과 나비들이 더 넓은 들판과 강 위를 유유자적하며 놀았다.
천하태평이 이곳에 있는 듯 평온하였다.
눈앞에서 무엇이 즐거운지 희희낙락 여자들을 희롱하며 즐기고 있는 히데츠구를 보며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내색을 할 수가 없어 간혹 그를 보며 즐거운 듯 웃었다.
오늘따라 웃음이 이렇게 쓴 줄을 처음 알았다.
히데츠구와 히데야쓰를 번갈아 보며 앞날을 걱정했다.
술에 취한 히데야쓰가 넓은 강에 배를 띄워 놀았다.
강변 막사에서 히데츠구와 다카도라가 뱃놀이하는 히데야쓰를 보며 담소를 나누었다.
담소 중에도 히데츠구가 천진난만하게 여인들과 놀다가 자리에 앉았다.
술을 한 잔 단순에 들이마시고는 숨을 돌린 뒤 심각하게 말을 던졌다.
“다카도라공, 앞으로 내 처지가 어떻게 될 것 같소?”
“네? 아!”
갑작스런 히데츠구의 말에 당황한 다카도라, 히데츠구의 눈빛이 재촉하고 있었다.
아니 체념한 듯 눈을 다카도라를 잠시보다 히데야쓰에게 주었다.
“그게, 말씀을 드리기 송구하오나······ 세상에 나도는 관백 전하의 소문이 별로 좋지 못합니다. 관백 전하를 끌어 내리려는 무리가 많습니다. 태합 전하께 충성한다고 설치는 자들로 인해 관백 전하께서 다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저도 들어 알고 있습니다. 공의 말처럼 물러나고 싶지만 이미 시기를 놓쳤습니다. 저는 두렵습니다.”
“전하! 부디 마음을 다잡으십시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의 얼굴표정이 지금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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