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회차) 물고기 표식이 달라
루피 카페.
이스타가 터덜거리며 들어와 무진을 찾는다.
“무진!”
노암이 인사를 하며.
“멜리에 라나 십니다.”
“왜, 무진이 붉은 옷을 입고 있지.”
“방금 옷이 바뀌시면서 본래 모습으로 돌아오셨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무진이 아니라 멜리에 라나라는 건가. 우마리는 어디에?”
“안전한 곳에서 쉬고 계십니다.”
이스타가 그제야 한시름 놓으며 멜리에의 붉은 옷자락을 잡는다.
“큰소리 뻥뻥 쳐놓고 멍청하게도 호리병을 잃어버렸네.”
멜리에가 옷자락을 잡은 이스타의 손을 잡는다.
“호리병은 우마리와 자네 그리고 내가 열 수 있으니 걱정 말게.”
“그게 정말인가. 다행이야, 한시름 놓을 수 있겠어!”
잠시 안도하던 이스타가 자신의 뺨을 세게 때린다.
“멍청이 등신처럼 실수나 하고 도대체 제대로 하는 것이 하나도 없어.”
“속상해 말게. 자학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 일을 풀어가는 과정일 뿐이야.”
“과정이라고 하기엔 일을 돕기는커녕 내가 내일을 스스로 망치고 있지 않은가.”
멜리에가 손을 내민다.
“내 그림자가 자네에게 분명 알렸을 걸세. 무엇인가?”
이스타가 반색하다 얼굴이 굳는다.
“내 정신 좀 보게. 뭐라고 해야 할지. 자네 그림자가 재로 사라져 버렸어.”
노암이 다가와 이스타에게.
“그럼, 라나의 그림자를 품었던 자슬링이 죽었다는 말인가요.”
“안타깝지만 애석하게도 그렇게 되었네.”
“자슬링이 그렇게 허망하게 가다니. 그럴 리 없습니다.”
목 놓아 우는 노암을 보며 이스타가 고개를 숙이고 멜리에가.
“노암, 의로움이네. 이제 때가 된 것뿐이야.”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멜리에가 노암의 어깨를 잡아준다.
“왜, 인사가 필요한가. 다시 만날 텐데 마음을 추스르게.”
훌쩍거리며 눈물을 닦는 노암이 이스타를 본다.
“어서 말해주세요. 무엇을 남겼습니까?”
“미안하네. 노암! 재가 되기 전 내게 손바닥을 보여주었어.”
멜리에가 노암에게.
“어서, 탭을 가져오게.”
빠르게 탭을 가져온 노암이 내민다.
“여기에 그려보세요.”
이스타가 탭에 그림을 그린다.
“아니, 이건! 멜리에 라나여. 혜리 씨가 그렸던 물고기입니다.”
멜리에가 그림을 보고 눈을 감으며.
“맹목이야. 고해의 물고기가 아니네.”
“제가 보기엔 똑같은데 잠시만요. 그때 그린 물고기를 주방에 붙여 놓았습니다.”
종이를 가져온 노암이 탭에 그려진 물고기와 비교한다.
“눈이 다릅니다. 종이엔 동그라미고 탭에는 눈이 엑스입니다.”
멜리에가 일어나 천장을 본다.
“몸을 빌리고 있어. 그 흔적은 얼핏 문신으로 보이지만 표식이야. 깨끗한 존재이거나 임신한 여자들이지. 아마도 아기는 유산되겠지.”
이스타가 탁자를 치며.
“맞아, 리타 가문에서 교통사고가 났던 여직원이 임신 중이었는데 유산되고 혜리와 미스 한도 그랬네.”
멜리에가 탭을 다시 보고.
“당장 지황과 혜리 씨를 만나봐야겠어.”
노암이 말린다.
“멜리에님, 이 모습으로는 안 됩니다. 이스타께서 두 분을 이곳으로 모셔오는 게 좋을 듯합니다.”
“그래, 노암 말이 맞아. 잠시만 기다리게. 내가 당장 데리고 올 테니.”
이스타가 떠나고 멜리에게 카페를 둘러본다.
“노암, 이곳을 정리해야겠어.”
“여기처럼 안전한 곳을 정리하시려고요.”
“때가 되었다 말하지 않았는가. 힘이 분산되지 않도록 모아야 해. 때를 놓쳐 틈이 커지면 자네와 자슬링의 만남도 어긋날 수 있어.”
강하게 손을 흔드는 노암.
“그건 안 됩니다. 제가 얼른 정리하겠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남아 있는 루피 섬 자갈과 모래를 잘 챙기게.”
딩디딩 딩디딩
카페 문이 활짝 열리며 방울 소리가 우렁차게 흔들린다.
“멜리에, 데리고 왔네.”
잠옷 차림에 지황과 혜리가 벙찐 표정으로 들어온다.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이스타!”
노암이 키득거리며 서둘러 가운을 가져온다.
“우선 이거라도 걸치세요.”
지황이 가운을 입으며 멜리에를 보고 혜리 손을 잡는다.
“혜리, 우리 꿈꾸고 있는 것 같지.”
“꿈이 아니에요. 당신이 잡은 내 손이 너무 아파요.”
“아! 그래.”
이스타를 노려보는 지황.
“진짜 너무 하는군. 프라이버시가 있지 않나.”
발을 동동 구르는 이스타.
“지금 그것보다 그림자 라나와 자슬링이 당했다고.”
“누가 당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이스타가 뭐라고 하는 거야. 게다가 자네는 붉은 옷까지 입고?”
혜리가 가운을 입고 멜리에를 보며 말한다.
'멜리에 라나?'
“저 옷은 추기경이 입는 제의 같은데.”
이스타가 참을 수 없다는 듯 보챈다.
“지황, 지금 옷 타령할 때가 아니라고! 멜리에 라나, 서둘러야 한다면서.”
“혜리 씨, 확인할 게 있어서 그럽니다. 팔 좀 볼 수 있을 까요.”
가운을 다시 벗어 그녀가 팔을 보여준다.
“있군. 고해의 물고기 표시가 있어.”
“그럼, 또 몸을 빌릴 수 있다는 건가요.”
지황과 이스타가 혜리의 안쪽 겨드랑이 새겨진 표식을 확인한다.
“뭐가 있다는 거죠?”
지황이 테이블에 놓인 거울을 들고 혜리에게 비춰준다.
“자기한테 이런 표식이 있는 줄 몰랐는데.”
혜리가 표식을 보려 애를 쓴다.
“어디에 있다는 거예요. 보이지 않아요.”
근심 어린 멜리에.
“당사자는 볼 수 없군. 고해의 물고기는 쓰임이 있다는 표식이니 조심해야 합니다."
노암이.
"그럼 다시 몸을 빌 수 있다는 거네요."
"지황, 혜리 씨가 그들에게 띄지 않도록 신경 써야겠어.”
지황이 두 손을 흔들며 답답해한다.
"그들이라면 하나가 아니라는 뜻인데 비루스 혼자가 아니었나."
멜리에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다.
“뭐가 이렇게 어려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신경을 쓸 것이 아닌가.”
참다못한 이스타가 지황에게 천천히 말한다.
“이 표식은 비루스가 몸을 빌렸다는 증거이고 유산했지만 아직도 깨끗해서 다시 또 몸을 빌릴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거야. 그림자 라나 역시 몸을 빌려줬다가 당했다고.”
혜리가 의아해하며 묻는다.
“당했다는 말은 죽었다는 뜻인가요.”
노암이 대답한다.
“그렇습니다.”
지황이 혜리를 끌어안고.
“안돼, 그럴 일은 절대 생기지 않을 거야.”
이스타가 머리를 긁다가 털며.
“그럼, 자네는 혜리 씨를 잘 지키는 걸로 하고 돌아가게. 멜리에 아무래도 멤버들을 불러서 의논 좀 하자고.”
지황과 혜리가 카페를 나갈 때 멜리에가 배웅하며 잠시 말을 나누고 지황이 떠난다.
“샥티 존에 다들 있을 거리고 하더군. 데이터 처리와 속도에 탭도 필요 없을 정도로 그곳에서는 인지하는 순간 연결된다고.”
이스타가 서두르자 멜리에가 노암에게.
“정리가 되었나?”
작은 주머니를 들어 보이며.
“챙길 것은 이거 하나입니다.”
“노암 먼저 나가게. 그리고 이스타 잠시만.”
나가려던 이스타가 멈춘다.
"앞뒤가 맞지 않아, 아무래도 시작은 비루스 였지만 뭔가 강력한 게 있는 것 같은데 자네 뭐 집히는 것이 있나."
주저하는 이스타가
"자네가 방점을 찍는 군. 확실하지 않았는데 다들 모인 자리에서 이야기하겠네."
노암이 나가고 이스타가 차에 타자 멜리에 라나가 문고리 옆에 작은 단추를 뗀다.
“우리는 여행자로 늘 가벼워야 하지.”
*
지황 말처럼 샥티 존에 크리스와 베제로, 범수가 윌의 공간을 조사하고 있다.
“이스타와 무진이 왔군. 웬 빨강!”
크리스가 범수의 말에 무진을 보고 양자 슈퍼 컴을 조작하다 깔깔거린다.
“나 홀로 핼러윈 데이, 의상에 힘 좀 주셨네요.”
이스타가 뭐라 지적하려 들자 멜리에가.
“집중하게, 그것만 유념하면 자네는 실수하지 않아.”
“그래, 평정심으로 집중해야지. 휴우~”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럽게 말하는 이스타.
“다들 열심히군. 뭐 좀 발견했나.”
제일 먼저 반응하는 크리스.
“윌의 가상세계는 원래대로 돌아가게 만들었어요. 살펴보니 샥티 존은 대박 킹입니다. 막강한 에너지를 발견했고요.”
베제로가 양자 측정기를 들고 크리스를 거든다.
“겉과 속이 달라 도 너무 달라. 겉보기엔 애드벌룬 크기인데 안은 서울 면적 10배라네. 믿어지나.”
식물들을 채취한 범수가 대형 화면을 켜며.
“이것 좀 보게. 여긴 자체적으로 빛과 산소 물까지 만들고 순환시켜 태초의 식물들까지 다양하다고 믿을 수가 없어.”
크리스가 무진에게 다가온다.
“으음! 옷차림도 그렇고 딱 좋아요.”
이스타가 얼굴을 찡그리며.
“뭐가 딱 그렇게 좋아?”
“아니 여기 뭐지, 고양인지 개인지 한 마리가 종일 돌아다녀요. 아무래도 윌이 적적해서 키운 동물 같은데.”
베제로가 측정기를 흔든다.
“맞아, 신경이 쓰여서 말이야. 무진이 자네가 좀 몰아보라고, 개와 고양이는 붉은색을 못 본다고 하잖아.”
범수가 배를 잡고 웃는다.
“어이, 다들 너무하네. 감히 무진에게 샥티 존에서 개인지 고양이인지를 잡으라고 시키다니.”
ㅋㅋㅋ
화가 잔뜩 난 노암이 소리치려 하자 멜리에가 입을 막고.
“친구들이 말하는 개와 고양이가 뭔지 모르겠나. 노암, 자슬링을 생각하게. 사소해도 흐름을 놓치지 말고 읽어야 해.”
이스타가 속삭이는 말을 듣고.
“맞아, 집중해야지. 더 이상의 실수는 용납할 수 없다고.”
노암이.
“그럼 셋이서 다 같이 찾는 걸로 해요.”
이스타가 어깨를 들며.
“내가!”
멜리에게 쳐다보며.
“당연히 함께 찾아야지. 실수를 만회하려면.”
- 작가의말
“우리는 여행자로 늘 가벼워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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