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회차) 달의 정원
둘은 그날로 혼인 신고를 했고 우마리는 이스타의 의견을 존중한다.
“부모님께서 돌아가시고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있어서, 장인 장모님과 함께 지내고 싶은데 우마리 생각은 어때요?”
“나야, 좋죠.”
양 대표를 주축으로 두 명의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리타 가문 2층을 둘러보고 놀란다.
“대단합니다. 예측하신 것처럼 이미 한옥 구조이고 명장께서 인테리어 하셔서 제가 손대는 것이 단아함과 절제 미를 망칠까 우려됩니다. 철거나 새시 및 방문과 창문 교체는 필요 없을 듯합니다.”
“잘됐네요. 그럼 보내드린 자연과 한옥 그리고 달을 주제로 한 테마로 진행해 주세요. 자연 부분은 리타 가문 전속 플로리스와 의논해 주시면 됩니다.”
“빠듯할 것이라 여겼는데 자체적으로 활용할 요소가 많아 여유가 생겼습니다.”
“다행입니다. 본사 사무실도 함께 진행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혹시 부회장님은?”
“그곳은 이미 친분 있는 마르셀 반더스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 부 회장님은 독특한 오브제 표현을 좋아하십니다.”
양 대표가 놀라며 함께 온 두 명의 디자이너와 수군거린다.
“죄송합니다. 얼핏 내한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뜬소문인 줄 알고 있었습니다. 정말 존경하는 분인데 한국에 오셨다니.”
“신라 한옥 호텔에 머물고 있어요. 우리와는 테마나 표현은 다르지만 윈윈을 위해서 원한다면 비서실에 연락해 둘 테니 일정을 조율해 보세요.”
“우마리님, 정말이십니까. 감사합니다. 만날 수 있다면 영광입니다.”
옆에 서 있던 젊은 두 명의 디자이너가 폴짝 뛰며 주먹을 불끈 쥔다.
“이번 인테리어 공사 뼈를 갈아 넣어 열심히 하겠습니다.”
양 대표는 기대감을 누르며 차분함을 유지하려 한다.
“아무리 조심해도 소음이 발생할 것입니다. 회장님 내외분과···”
“전달되지 못했군요. 공사 기간 동안 리타 그룹 영빈관에서 머물 겁니다. 자세한 내용은 김 실장님과 조율하세요. 오늘 저녁부터 그곳에 머물 겁니다.”
일주일 만에 이스타와 우마리는 결혼식을 올렸다. 2층 거실에 작은 정원을 꾸민 반딧불이 등불 아래 앉아 있다.
"몰아 치듯 일들이 많아서 그러는데."
이스타는 신혼여행을 미루기로 한다.
“우마리 당신이 내게 얼마나 소중한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어. 하지만 미룰수록 우리에게 불리하니 되도록 일을 빨리 처리하고 편안하게······”
리타 가문 5대 프로젝트를 회장 승우는 과감하게 이스타와 우마리에게 맡긴다. 그녀는 그의 리더십과 풍부한 지식, 무엇보다 리타 그룹과 퀀텀 합병을 이끈 이스타를 신뢰한다. 결혼하고 첫 날을 빼고 보름은 리타 그룹 영빈관에서 머물렀고 이후에는 새벽이라도 집에 왔지만 우마리와 이스타는 아직 신혼 첫날밤을 치르지 않았다.
새벽 3시. 이스타가 숨소리도 내지 않고 옆에 눕는다. 잠 못 이루고 뒤척이던 그녀가 알몸인 채로 그를 끌어안는다.
“당신에게 사랑받고 싶어요.”
잠옷을 입고 누웠던 이스타가 벌레를 보듯 우마리 팔을 풀며 그가 침대 아래로 떨어진다.
“우마리! 뭐 하는 거요.”
“이스타 우리 부부예요. 당신과 내가 서로를 알아보고 자동차 안에서 뜨거웠지만 갑자기 돌변했어요.”
“그것은 야외 주차장이었고 사람들이 주변에 있어서.”
“그럼, 내가 당신 근처에 가기만 해도 놀라고 손끝만 스쳐도 손을 닦아요. 그건 뭐죠.”
“내가 요즘 알레르기가 생겼는지···”
이스타가 잠옷을 벗어 등을 보인다.
“봐요. 갑자기 피부병이 생겨 병원에 다니고 있소.”
그의 말처럼 그의 등과 팔 등에 붉은 반점과 심한 곳은 곪아 있었다. 그가 일어나 약봉지를 꺼내 보여준다.
“세상에,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을까.”
이스타가 그녀의 말을 듣고도 등을 돌리며 차갑게 말한다.
“옷 좀 입어요.”
우마리가 잠옷을 걸치자 부부 테이블 앞에 앉아 있는 그가 손으로 그녀를 제지한다.
“거기, 침대에 앉아 있어요. 난 여기서 말할 테니.”
"그래도."
“제발, 거기서 들어요. 수인성 피부염증이라 피부 접촉으로 전염이 된다고 하니 당분간 서재에 딸린 방에서 지내야겠소.”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그가 어색하게 등을 긁는다.
“처음엔 영빈관에서 머물까도 생각했소, 하지만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괜한 걱정을 하실까 봐.”
“어쩌다, 피부병에 걸렸어요?"
"알레르기라고 하는데······ 5대 프로젝트 중에 대륙 통합으로 만주 쪽 학자들을 배재호 교수님과 함께 만났지. 배 교수도 나와 같은 증상이었는데 다 나았고, 나만 이렇게 심해졌소.”
“그랬군요.”
“교수님이 당신 이야기를 하면서 무척 반가워하더군.”
“그런 일이 있는 줄도 모르고 당신을 오해하고 있었어요.”
“우마리! 혹시 모르니, 출근 전에 앨리스 병원에 들러서 진료받아봐요."
"그럴게요. 난 걱정하지 말아요. 제가 뭐 도울 일이 있나요."
이스타는 냉정하게 말을 자른다.
“없소. 이만 서재 방으로 가야겠소.”
이스타가 슬리퍼를 끌며 문을 닫고 나간다.
‘그의 슬리퍼 끄는 소리가 왜 이렇게 내 마음에서 무겁게 울려 퍼질까?’
***
리사가 나가고 수지와 마순은 본격적으로 우마리의 신혼 방을 보자며 조른다. 조 여사가 치마 각을 잡으며 소파에 앉아 있는 그녀들에게 다가온다. 마순이 조용히 일어난다.
“나, 화장실 좀.”
급하게 마순이 화장실로 향하고 수지가 아쉬워한다.
“바로 일어날 건데. 조금만 참지.”
“수지야, 참을 게 따로 있지. 그동안 내 신혼집이 궁금해서 어떻게 참았어.”
“멍멍! 우마리 신혼집에 올라가서 영역 표시를 해야지.”
수지의 말에 우마리가 소녀처럼 해맑게 웃었고, 조 여사는 수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고 할 말, 안 말이 있지 영역 표시가 뭐야. 천박하게.’
조 여사의 얼굴에 불쾌감이 가득한 것을 눈치 빠른 수지가 놓치지 않는다.
“왜요? 내가 영역 표시한다니까 천박해 보이세요. 조 여사님.”
생각을 들켰다는 것에 조 여사의 눈이 커진다.
“아 아닙니다. 그럴 리가 요.”
“식사를 준비해 놓았습니다. 가시죠.”
“아니, 안돼요. 식사고 뭐고 제발 2층에 먼저 올라가고 싶어. 우마리!”
우마리가 난처해하는 가운데 마순이 걸어오면서 말한다.
“수지 말처럼 잠시 둘러보고 내려와서 식사해도 될 것 같아요.”
수지가 마순을 보고 흑기사를 만난 듯 좋아한다.
“화장실에 나오면서 다이닝 룸을 보니 아직 음식 세팅 전이고 음식 냄새를 보니 그게 온도와 크게 상관없는 것 같아요.”
조 여사가 아무도 모르게 코로 한숨을 쉰다.
“조 여사님께서 정성껏 준비하셨는데 수지와 제가 우마리 신혼집이 너무 궁금해서요. 양해해 주시면 서둘러 보고 내려오겠습니다.”
“그, 그러세요.”
우마리는 마순을 보고 눈을 찡긋거린다.
“맞아, 모처럼 친구들이 찾아온다고 조 여사님이 신경 쓰셨거든.”
수지가 조 여사에게 살짝 고개를 숙인다.
“우마리한테 정말 귀에 딱지가 안도록 들었는데 제가 좀 철이 없죠. 후다닥 보고 내려오겠습니다.”
수지가 우마리를 앞세우고 마순을 재촉하며 엘리베이터가 아닌 계단으로 올라간다. 조 여사가 소란스럽게 지껄이며 2층으로 향하는 수지와 마순의 모습을 물끄러미 본다.
‘시끄러워! 끼리끼리 만난다고 했는데, 아가씨가 격 떨어지는 친구들과 어울리시다니.’
그 모습을 기둥 뒤에서 미스 한이 비밀스럽게 지켜본다.
2층에 올라서자 휘둥그레진 수지가 촐랑거린다. 달 모양을 닮은 소파에 앉아 천장에 하얀 실크천으로 늘어진 곡선을 감상한다.
“쩐다 쩔어! 여긴 달의 궁전이네.”
“수지야, 넌 진짜 못 말려. 궁금하다! 그런 말이 막 떠오르는 거야 아니면 딱 이때 이런 말을 해야지 하면서 말하는 거야.”
“야, 드라마 대사 치냐.”
“그냥 그때그때 떠오르는 피이일~ 필 대로 표현하는 거지.”
“넌, 정말 재미있어. 나도 배우고 싶다.”
“레슨 비만 두둑이 내라. 기교를 부리는 언어의 마술을 전수해 주지.”
마순이 달의 정원을 가리키며 감탄한다.
“올라올 때 향기를 맡았는데 꽃이랑 화초가 정말 특이하고 독특해서 눈이 간다.”
"여기 이 꽃은 잎을 다물고 있는데 이거 달맞이꽃이랑 비슷하다."
"맞아, 달맞이꽃이야."
"마순아 너도 달맞이꽃 실내에서 처음 보지."
"워낙 오랜만에 보는 거라서."
마순과 수지가 정원을 통째로 작게 옮겨 놓은 듯한 화초와 꽃으로 만든 플라워 꼴라쥬 그리고 조개 거울을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는다.
“어버이날 쇼핑몰에서 만난 꽃집 분이 유명한 플로리스트였어. 유학파는 아닌데 전통 기법으로 화초와 꽃을 가지고 만들어 자연을 묘사하는 기교가 마음에 들어서 전속 플로리스트로······”
“그래, 기억해. 보라색 꽃다발 그니까 그게?”
“스타티스!”
“맞아. 그래서 네가 꽃바구니 두 개 따로 추가하고 그건 네가 가졌잖아.”
“아니야, 꼭 주고 싶은 사람한테 줬어.”
“너! 그때부터였구나. 네 신랑 이스타에게 말이야.”
“그러니까 그게.”
깔깔거리는 수지 근처에 조 여사가 조신하게 서서 아무 말이 없이 나타났다.
“엄마야!”
옆에 있던 마순도 놀라 멈칫한다.
“아, 놀래 라.”
“놀라셨군요. 조용히 올라와서 화장실 수건 교체한다는 것이···”
마순이 조 여사의 말에 다리가 풀리며 소파에 앉는다.
“난 잠시 여기 앉아야겠다.”
수지가 우마리에게 암호처럼 사인을 보내자 우마리가 조 여사에게 말한다.
“여사님, 급하지 않으니 나중에 하셔도.”
미스 한이 기다렸다는 듯 나타나 조 여사를 데리고 엘리베이터를 탄다. 수지가 소파에 앉아 엉덩이를 들썩인다.
“조 여사님이라는 분, 정말 리타 가문 일을 도맡아 한다는 네 말이 틀린 말이 아니었구나.”
마순이 팔짱을 끼며 고개를 젓는다.
“그래도, 수건까지 직접 챙기시는 건 너무 지나친데.”
“으으, 시할머니 저리 가라야. 자자 기운 차리고 둘러보자. 늦게 내려온다고 시할머니한테 눈총 받겠어. 드디어 신혼 방을 구경할 것이니 우마리 싸모님, 보여주시지요.”
마순이 일어나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개봉박두!”
우마리가 조선 왕실을 연상케 하는 방문 앞으로 수지와 마순을 안내한다.
“신혼방들이 다 거기에서 거기지. 별거 없어.”
미송으로 만든 돌림 살문 대형 자동 미닫이 문이 열리고 마순과 수지는 방을 보고 두 눈을 깜빡거린다.
“이게, 뭐야!”
- 작가의말
달맞이 꽃말?
소원, 기다림, 밤의 요정, 마법, 마력으로 낮보다는 밤을, 태양보다 달을 좋아하는 로즈라는 아가씨의 전설이 스민 꽃입니다. 룸미러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람의 이름과 소품, 물건과 장소, 시간 등은 중요한 단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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