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회차) 리베라타 가문에 입주한 혜리
우마리가 살구색 매니큐어를 바른 손톱으로 테이블을 두드린다. 맥주 한 캔을 딸랑 건네주는 그를 보며 그녀가 벌컥벌컥 캔을 털어 마신다.
“커어 억, 와아! 이렇게 먹으니 간에 기별도 안 가네요.”
드르륵
성에 차지 않는지 우마리가 테이블을 밀고 일어난다. 맥주 꺼낸 곳으로 가서 허락도 구하지 않고 백색가전 미니 냉장고를 연다.
“어, 이건, 납작 복숭아는 따로 주문해서 먹는 거라서?”
그가 놀랐는지 목소리가 갈라지며 더듬는다.
“맞아요. 아가씨 복숭아를 직원이 옷걸이에 걸린 호주머니에 뭉개진 걸 보고 넣어둔 겁니다.”
“여기 있었구나. 이게, 이게 소주랑 먹으면 별미거든요. 뭐, 맥주랑도 잘 맞겠죠. 이거 먹을래요.”
이스타는 그녀의 연속되는 놀라운 행동에 눈과 귀를 의심한다.
“껍질이 상한 채로 냉장고에 있어서 탈 날 수 있어요.”
고고한 자태로 그녀는 맥주 5캔과 컵라면 2개, 과일과 스낵을 비운 쟁반. 무른 납작 복숭아 두 개를 다 먹고 배를 두드리고 있다.
우우웅우우웅
이스타의 호주머니에서 아이폰이 어두운 바다에 등대처럼 빛을 낸다.
(이스타) 어, 나가려고 했는데 귀한 손님이 오셔서. 배달차도 있고 택시를 타든 곧 들어갈게요.
(호세 집사) 오실 때가 되었는데 오시지 않아 김 기사한테 연락했더니. 할머니 장 치르고 부산에서 하루 더 있다 오라고 하셨다면서요. 제가 차 끌고 지금 모시러 가겠습니다.
(이스타) 아니오. 미안해요. 괜한 걱정하게 해서
(호세 집사) 아닙니다. 도련님 잘 모시는 것이 이 늙은이 보람인데요.
우마리는 빵빵하게 나온 올챙이를 배를 문지르다 작은 소리지만 원장의 말을 들었다.
‘속이 왜 이렇게 니글니글하지.’
그녀는 그의 약지 손에 걸린 금반지를 정확히 보았다.
“내가 주책이지 속상함에 원장님을 붙잡고 있었다니. 사모님 기다리시겠다.”
고개를 끄덕이며 우마리가 단추 없이 사선으로 겹친 새시 블라우스를 당기며 일어난다.
“가야지, 어서 집에 가야지.”
그녀의 무게 중심이 삐끗하며 의자가 쓰러진다. 둔탁한 소리에 그가 아이폰을 끄고 달려와 우마리를 잡는다.
“괜찮아요. 아! 내가 말렸어야 했는데.”
“원장님 죄송해요. 사모님 기다리시는 것도 모르고, 요즘 생각이 복잡해서 나사가 죄다 풀려버린 것 같아요.”
비틀거리는 건물들 솟아오르는 바닥과 빙글 도는 팽이 의자.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입술을 삐죽 내밀며 가만히 서서 춤추는 에어 풍선이 된다.
“어, 이상하다. 이런 증상은 현훈(Vertigo), 달팽이관과 반고리관을 지칭하는 내이나 뇌에 문제가 있을 때 발생하는데 신경과나 이비인후과에 가봐야겠어요.”
그가 가만히 서서 춤추는 인형이 된 그녀를 보고 양쪽 입꼬리와 눈꼬리가 올라간다.
‘머리가 쥐가 날 정도로 여자라고 하면 학을 떼는데, 연애하고 싶네.’
“아가씨! 똑똑한 건 알겠는데 그게 아니고. 이건 내일 정리하는 걸로 하고 나갑시다. 차는 주차장에 두고, 이스타 안경 차로 갑시다. 어차피 가는 길이니까 집 앞에서 내려 드릴게요.”
“옙, 고맙습니다.”
차를 타고 안경점을 나와 교보타워 사거리에서 교보타워를 끼고 돌 때였다. 그녀가 매스꺼워하더니 뒷좌석에 농도 있는 반죽을 올린다. 여진처럼 매스꺼워했으나 위기를 넘겼고 반죽을 더는 올리지 않았다.
끼이이익
웅장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 멋스러운 리베라타 가문 벨을 그가 누르자 스마트 월패드 폰에 조 여사가 나타난다.
(조여사) 아니, 안경점 원장님께서 이 시간에 무슨 일이세요?
(이스타) 우마리 아가씨가 술에 취하셔서 내려와야.
철컥!
그가 우마리를 차 밖으로 내려 어깨에 들쳤다.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으려 해, 등에 업자 그녀가 잘 참았던 반죽을 올린다. 라면이 꼬불거리는 컬을 유지한 채 탄수화물 스프링 귀걸이를 이스타 귀에 걸었다. 미스 한이 그 모습을 보고 호들갑을 떨며 외쳤다.
“허어 헐! 어쩌면 좋아. 우마리 아가씨를······”
차 안에서와 다른 퀴퀴한 냄새가 풍기자 이스타가 얼굴을 찡그린다.
‘갑자기 역겨운 이 냄새 뭐지?’
조 여사와 직원들의 소란에 개들이 무섭게 짖는다. 이스타는 바보처럼 웃고 서있다.
‘난 이보다 평온할 수 없어. 다만 시끄럽게 귀를 때리는 저 여자들과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너무 거슬려.’
***
타스는 우마리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심장 뛰는 소리를 영원히 듣고 싶다. 그의 입이 그녀의 입술에 닿는다. 거친 숨소리에 녹아내리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핥으며 타액을 삼킨다.
“우마리, 미안하오. 당신을 눈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하다니.”
삶의 기복과 변화가 많았던 타스의 눈은 그대로였다.
“아무도 앉을 수 없는 내 생각의 자리. 누구도 앉아서는 안 되는 불가침 영역에 누굴 앉힐 건가요.”
타스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빨리 뛰는 요동치는 심장에 정신을 차릴 수 없다.
“그래요. 얼마나 목말랐을지···
우마리가 타스와 눈을 맞추려 까치발을 들자 그가 허리를 부드럽게 굽혀 눈을 맞춘다. 그녀는 타스의 머리를 쓰다듬어 감싼다.
“마리아도 부활한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어요.”
“본다는 것이 단순한 것이 아니었소.”
“당연해서 쉽다고 여긴 것이 가장 어려운 것이었어요.”
“난 무모한 것을 맹세했는지 모르오. 그러나 아무리 어려움이 닥치고 어떤 선택에서도 당신뿐이고 영원히 우마리를 사랑하오.”
“나 또한 당신을 약속을 의심하지 않을 거예요. 사랑해요.”
우마리가 이스타의 이마에 입을 맞추자 그가 경건하게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춘다.
“이제, 밖으로 나갑시다.”
지하 주차장, 멀리 떨어진 구석에 두 대의 차가 심하게 요동을 치고 있다. 그가 우마리를 보며 빙긋이 웃는다.
“후! 후덥지근하군.”
볼이 붉어진 그녀가 손으로 가리킨다.
“그러게요. 아무래도 내 차는···”
심하게 흔들리고 있는 권의 차 옆에 우마리 차가 콘크리트처럼 굳어있다.
“내 차는 야외 주차장에 있으니 올라갑시다.”
“올라가요.”
둘은 차에 앉자마자 자석처럼 이끌린다. 서로를 밀착시켰고 구석구석 은밀한 곳까지 더듬는다.
“타 타스! 여긴 너무 노출되어 있어요.”
“그렇군. 내 집으로 가······”
둘의 생각과 달리 간절하게 원하는 서로의 몸이 떨어지지 않는다. 밖과 안의 온도 차가 심해 창에 습기가 찰 정도로 점점 뜨거워진다. 타스와 우마리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벅차 잠시 숨을 고르며 키스할 때 타스가 룸미러 본다.
***
새벽 한 시. 별관 2층에 희미하게 켜진 불을 보고 서 있다.
“부회장님, 늦으셨네요.”
“앗, 혜리 씨······”
“고모가 부탁한 것이 있어서요.”
“그 그랬군요. 조 여사가 많이 아프군요.”
“어떻게 아셨어요?”
“약봉지 들고 있잖소.”
혜리를 바라보는 타스의 눈에 달빛이 스민다.
“네, 맞아요. 요즘 들어 고모가 자주 아파서 걱정하고 있었거든요. 제가 입주할 수 있도록 부회장님이 흔쾌히 동의해 주셨다고 미스 한을 통해 들었어요.”
"네가, 뭘 했다고 잘 됐군요. 아플 때 가족이 옆에 있으면 든든하니까."
“어제, 입주했습니다.”
슬며시 혜리가 타스의 어깨를 만졌고 그가 숨을 참는다.
“보풀이 묻어 있어서, 그럼 들어가 보겠습니다.”
"저기, 잠깐······"
"네! 부회장님."
타스가 손을 과하게 흔들다 뒷짐을 진다.
"김 실장한테 말해 놓을 테니. 고모님 모시고 앨리스 병원에 가봐요."
"병원에서는 푹 쉬라는 처방이 다였어요."
"아, 알았소."
"여러모로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해요."
혜리가 별관으로 들어가고 타스는 한참 동안 움직이지 못하고 가로등처럼 서있다.
방문이 삐그덕 열리며 타스가 살그머니 눕는다.
“늦었네요.”
“우마리, 기다리고 있었소.”
“잠이 오질 않아서요. 세 시네요. 피곤할 텐데······”
딩동댕딩동댕
알람 소리를 듣자마자 우마리가 서둘러 끈다.
“?”
허전하고 차가운 옆자리, 그녀가 돌아보니 타스는 없다.
“문제가 더 심각해진 건가.”
샤워를 마치고 파우더 룸에서 간단한 메이크업을 한 우마리가 서재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 승우에게 간다.
“아버지, 모처럼 얼굴이 편안해 보이세요.”
“오, 우마리! 이리 와서 음양탕 한잔하거라. 수면 사이클이 변해서 인지 네 시면 깨는구나.”
그녀가 빙그레 웃으며 미지근한 물을 넘긴다.
“물 한잔에 음양 탕이라는 이름을 붙이니 보약 같은데요.”
“그럼, 보약이지. 참! 김 서방이 어그러져 깨질 뻔한 계약을 막판에 성사시켰다."
"그런데 이상해요. AI 로봇 관련 사업을 제가 검토했을 때 아무런 문제가 없었거든요. 막판에 오스틴 쪽에서 딴지를 걸며 파기하려 했던 이유가 아무래도 찜찜해요.”
승우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손깍지를 낀다.
“계약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잖니. 어쨌든, 김 서방 덕분에 잘 해결이 됐으니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것이다.”
“전략실 미팅을 잡았어요. 아무래도 재검토를 해서라도 짚어 봐야겠어요.”
“우마리 네가 뭘 걱정하는지 잘 안다. 기밀 정보가 유출되었는데 그것도 김 서방이 법무팀과 해결했으니······"
“법무팀과 요?”
“그래? 요즘 김서방한테 너무 미안하구나. 어제 강제 휴가까지 내주면서 너랑 푹 쉬라고 했는데, 아무래도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 말하지 않았나 보다.”
리베라타 가문은 우마리가 합류하면서 여러 사업들이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타스가 가진 앨리스와 퀀텀이 리타그룹과 합병되었다. 그 힘과 재력으로 리타그룹은 세계 3위로 막강해졌다. 오랫동안 리타 가문이 준비해 온 거대한 프로젝트가 실행되는 가운데, 첫 신호탄은 AI 로봇과 항공 우주 분야다.
우마리가 관자놀이를 심하게 누른다.
'······ 법무팀!'
- 작가의말
40회 차, 우마리와 타스를 통해 룸미러가 연결됩니다.
룸미러 속 인연들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세요?
반딧불이를 따라오세요. 휘영청 달빛 아래 리베라타 이야기가 흐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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