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회차) 이스타의 비밀
물영아리오름 초입 근처 카페.
“다들 왔군.”
크리스가 무진을 안는다.
“드디어, 입이 터지셨군요.”
뮤라뉴가 크게 웃고.
“크리스 뭐가 터졌다고··· 자넨 정말. 이스타는 집으로 들어갔다고 했지. 우마리에게 그날 있었던 일은 식솔들이나 이스타는 꿈을 꾼 것처럼 여길 거라고 말해 주었나.”
“걱정돼서 바로 알려주었는데 이미 그렇게 알고 있던데요.”
베제로가 키득거리며 무진에게 끄덕끄덕.
“잘 됐어. 그날 보니 우마리가 마음고생을 많이 한 것 같던데 뭐랄까 짠했어. 그리고 이제야 무진이 말을 하니 속이 다 뻥 뚫리네.”
무진이 손으로 입을 가로지르며 지퍼 여는 흉내를 낸다. 오른손 약지에 푸른 점이 유난히 푸르다.
“내가 생각해도 빨리 돌아왔어. 그래서 다들 이렇게 초대했잖나. 꼭 알려줘야 할 것도 있고 저기 가운데 테이블에 앉으라고. 크리스 준비해 줘.”
“자네, 이전보다 건강해졌어.”
“그걸 어찌, 몸이 가벼워졌거든.”
뮤라뉴가 손가락 약지를 만진다.
“자네 건강 척도는 약지 점 색이 알려주지.”
“맞아요. 형님! 점이 푸른빛이 돌면 쌩쌩하고 꺼뭇꺼뭇하면 시들시들하잖아요.”
“그런가, 전혀 몰랐네.”
그가 쑥스럽게 한라봉 파르페를 들고 오자 크리스가 테이블에 내려놓는다.
“자, 형님의 목소리도 회복되셨으니, 드디어 여러분께 보여드립니다. 짜잔!”
크리스가 사진을 홀로그램으로 켠다.
“자, 내가 아무리 장난을 심하게 친다고 한들 내 사랑, 무진 형님을 상대로 헛튼 말을 하지 않지요. 내 말이 틀렸는지 보라고요.”
홀로그램을 본 베제로와 뮤라뉴의 황당한 표정이 가관이다.
“진짜였네, 이 정도면 무진에게 설명을 들어봐야 할 것 같은데.”
뮤라뉴가 베제로 말을 듣고 거울을 꺼내 사진을 비춘다.
“설명은 무슨 100%라고 거울이 말하는데.”
“거 봐요. 내 말이 맞지.”
우쭐하는 크리스에게 베제로가.
“크리스, 넌 쌍둥이자리 성좌 중에서도 수호 성이잖아. 무진을 쌍둥이라고 여긴 적 있어.”
“그러고 보니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네요.”
셋은 무진을 바라보며 무슨 말을 기대하는 눈치다.
“······!”
“형님, 사진 보고 뭐 떠 오르는 거 없어요.”
크리스의 재촉에도 여전히 멍한 무진.
“가만, 가만히 있어 봐.”
베제로가 무진의 얼굴 앞에서 손을 휘젓으며.
“무진, 저기 뭐가 있어. 왜 그렇게 심각한 거야.”
“크리스, 베제로 조용히 해봐. 아무래도 무진이 뭘 보고 있는 것 같은데.”
“뮤라뉴도 뭐가 보이나?”
“아니, 내 거울에 비친 건 아무것도 없는데 무진 눈에 뭔가 스치고 있어. 거울도 읽지는 못하는 게 있거든. 무진은 내면과 영혼을 관장하는 우주의 네 개의 영적 별 중 하나잖아.”
무진의 느린 손짓과 함께 점점 표정이 어두워진다.
“형님, 뭐가 그렇게 심각합니까. 궁금합니다.”
코를 심하게 비비는 무진.
“이번 일, 그냥 단순한 일이 아니야. 보통 심각한 게 아닌데.”
베제로가 무진의 말을 듣고 일어나 커튼을 내리며 말한다.
“사실 이제야 말인데, 난 루피 섬 모래와 자갈을 보는 순간 이상했어. 다들 생각해봐! 별들에게 상상의 루피 섬 그것도 아무도 갈 수 없고 볼 수 없는 모래와 자갈이잖아.우주를 만든 위대한 첫 광물들로만 이루어진 루피 섬에서 왔다고.”
뮤라뉴가 팔짱을 낀다.
“맞아, 전에 거울을 통해 따라 들어온 비루스에 대해 말했었지. 정말 오래된 녀석이라 확인해 보았지. 어둠의 기운이 얼마나 강하던지 혼돈의 거울 아니었으면 아지트고 뭐고 없었다고···”
“형님, 그럼 요즘 코츠월드 아지트로 우릴 초대하지 않는 이유가?”
“크리스 의심이 맞아. 솔직히 말하면 최근 비루스가 혼돈의 거울까지 통과한 것으로 확인됐어. 영국 아지트는 위험해. 무진 제주도 아지트는 루피 섬 모래와 자갈 덕분에 우주 암흑도 넘볼 수 없지.”
베제로가 갑툭튀 무진에게 매달린다.
"부럽 부럽, 대박!"
“제주도는 무진이 아지트를 만들면서 불길한 것은 절대 접근할 수 없어.”
크리스가 주변을 둘러보며.
"그 모래와 자갈 어디 있어요?"
"크리스, 루피 섬 광물은 실리를 제외한 그 누구도 소유할 수 없어. 우리의 맡은 소임이 끝나면 아마 바다로 흩어질 거야."
"그냥 우리가 나눠 가지면 안 돼요."
식은땀을 흘리는 무진이다.
"또 다른 우주로 보내지는 거야. 생태계의 풍요를 위해서 말이야. 이제 루피 섬 이야기는 그만하고 우리 일을 하세."
"감동! 이래서 우선순위인 내가 아니었구나. 무진 형님께 루피 섬 광물을 보내 주셨구나."
뮤라뉴가 콧방귀를 뀐다.
"우선순위! 크리스 설레발은 알아줘야 해."
무진이 홀로그램을 가리키는 손짓이 진지하다.
“잘 봐, 아니 잘 들어. 저 사진 속에 나를 닮은 존재를 빼고 보이는 거 없어?”
셋은 무진의 말을 듣고 동시에 홀로그램을 빈틈없이 살핀다.
“글쎄, 아 아무것도.”
뮤라뉴의 실망스러운 대답 다음으로 베제로가.
“아무리 봐도 못 찾겠는데.”
크리스가 일어나 홀로그램 주변을 천천히 돌아보고.
“아무리 봐도 도저히 모르겠어요. 형님 뜸 들이지 말고 그냥 알려주세요.”
무진이 두 손을 모으며 진중하게 말한다.
“실리께서 우리를 보낸 이유 말이야.”
“이유!”
베제로가 말을 따라 하자 뮤라뉴도
“이유, 그거야.”
뮤라뉴의 말을 크리스 장안스럽게 군다.
“이유가 뭐였지, 다들 잊어버렸는데···”
무진이 동료들 눈을 하나하나 맞춘다.
“우리가 어떤 별인지 다들 말해봐.”
먼저 크리스가.
“난 쌍둥이 수호 성 쌍둥이와 관련된 것을 볼 수 있고 우주 언어 수에 대해 민감해서 컴퓨터 사이언스 관련은 자신 있어요.”
뮤라뉴가 거울을 들어 보인다.
“나야, 거울을 활용해 비춰 볼 수 있고 혼란을 다스리거나 부추길 수 있지.”
베제로가 호주머니에서 흙을 꺼내 만진다.
“광물과 흙을 활용하는 난, 대지의 수호 성이지.”
무진이 긴 호흡으로 턱을 괴며 고민한다.
“나는···”
“형님은 조금 전에도 말해서 어떤 수호 성인지 다 알고 있다고요.”
“크리스, 그게 아니라. 우리 모두를 합쳐도 너무 약하다는 거야."
모두 무진의 말에 동의하지 못하고 뮤라뉴가 거울을 무진에게 비춘다.
"아프고 나더니 힘에 대해 집요해졌나. 왜 그렇게 비관적이야."
"형님,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세요. 다들 몰라서 그렇지 나, 이래 봐도 힘이 대단하거든요."
그가 크리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홀로그램을 본다.
"알아! 그렇지만 우리가 뭉쳐도 해결할 수 없는 게 나타났어. 다듬어지지 못한 거대한 원초적 힘이 필요하다고.”
베제로가 안달이 났는지 테이블을 두드린다.
“스무고개 하나, 알기 쉽게 말해 보게. 저 사진에서 뭘 보았길래 그래.”
“우주 태초의 옴 세상, 마곡귀계 비루스.”
!!!
너무 놀란 크리스가 뮤라뉴의 한라봉 파르페를 엎지르자 베제로가 피하며.
“옴 마나···”
뮤라뉴는 거울에 묻은 아이스크림을 닦는다.
“파르페··· 입도 데지 않았는데.”
무진이 앉아 숨을 몰아쉰다.
“흐움.”
무진이 무엇을 떠올리며 유리잔을 잡는다.
“바로 이거야!”
크리스가 울상을 짓다가 무진의 말에 웃는다.
“내가 파르페를 잘 엎지른 거예요. 나 잘한 거 맞죠.”
“너무 잘했어. 크리스가 엄청난 힌트를 줬다고.”
베제로가 빈 유리잔을 쳐다본다.
“무진 자꾸만 어렵게 빙빙 돌릴 거야.”
뮤라뉴가 거울로 유리잔을 비춘다.
“난, 전혀 모르겠는데.”
“지금 우리가 행동하고 말한 것을 생각해봐. 크리스가 엎지르자 베제로가 놀라고 뮤라뉴가 아쉬워하자 내가 한숨을 쉬었어.”
크리스가 스마트 패드를 꺼내 버튼을 누른다.
“문제가 발생했고, 옴 마나, 파르페, 훔 그리고 빈 유리잔.”
뮤라뉴 거울이 갑자기 흐름으로 보이는 물결이 친다.
“방금, 크리스가 한 말 듣고 거울이 움직였어. '옴 마니 파드메 훔' 어디서 들은 적이 있긴 한데.”
베제로가 엎질러진 아이스크림과 내용물을 보고 빈 유리잔을 본다.
“주문, 업장의 소멸과 번영.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잖아.”
무진이 쟁반과 행주를 가져오자 크리스가 정리하면서 웅얼거린다.
“그럼 이 유리잔은 마곡귀계 비루스를 담을···”
뮤라뉴가 뭔가 알아차린 듯 무진을 옷깃을 잡는다.
“며칠 전 이스타 말이야.”
모두가 서로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고 외친다.
“이스타!”
천장에 매달린 곡식 주머니가 흔들린다. 방울초 씨앗이 테이블에 또르르 구르자 베제로가 씨앗을 잡았다.
“루피 섬 모래와 자갈! 실리께서 이곳에 오셨었군.”
“여기 오셨다면 내가 알아봤을 텐데. 우마리 슬리퍼에서 나왔다는 것밖에 몰라.”
“실리께서 루피 섬 모래와 자갈을 주셨다는 건···”
뮤라뉴는 베제로가 만지고 있는 씨앗을 받아 들어 거울에 비춘다.
“대등한 힘이야, 우리가 뭉쳐도 맞설 수 없으니 우마리를 통해 보내 주신 거라고.”
무진이 머리를 감싸며 힘들어한다.
“앗! 이제야 생각나. 이스타가 내 목을 졸라 얕은 물에 처박을 때 그곳에도 루피 섬 모래와 자갈이 있었어.”
베제로가 흥분한다.
“그럼 무진의 이곳과 우마리가 있는 곳을 보호하려는 거잖아.”
무진의 목소리가 마구 떨리고.
“우마리 피가 물에 떨어질 때 순간적이었지만 흐릿하게 또 본 게 있어. 놀라지 말라고 입으로 담을 수 없고 말할 수 없을 만큼 한계를 넘은 에너지니까.”
셋은 무진의 말에 침을 삼키고 주먹을 쥔다.
“혹시 그거···”
“형, 형님 어서···”
“그건, 무무의 시절 이전 옴의 첫째 아들 최고 상위 나프타 데제로스 님이셨어.”
곡물 주머니 하나가 천장에서.
툭!
“아으~으으, 깜짝이야. 보리 주머니가 떨어졌네요.”
크리스가 보리 주머니를 주워 테이블에 놓자 베제로가 보리를 가리키며.
“우주 제2 경전을 보면 어린 실리를 리옴탄 무 께서 보리를 가지고 시험했었지.”
뮤라뉴가 손으로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긁는다.
“난, 제3 경전 하나만 읽은 그저 반짝이는 샛별이라 무척 어렵군.”
무진이 크리스에게 다가와 정중하게 두 손을 내밀며 고개를 떨구자 크리스가 눈을 감는다.
- 작가의말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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