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회차) 사랑한다면
재훈의 손을 용수가 뿌리친다.
“너라면 여동생이 맞고 있는데 기분 좋겠어.”
용수가 소희를 등지고 모두가 보란 듯이 수지의 얼굴을 들어 뺨을 만진다.
“수지야, 말하라고 했잖아. 너 건드리는 애들···”
소희가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용수에게 다가가려 하자 다빈이 팔을 잡는다.
"넌, 가만히 있어."
“용수 오빠!"
"왜, 수빈아."
"재훈 오빠 생일이잖아 이 분위기 어쩔 거야? 그만해. 내가 봐도 수지가 먼저 잘못한 거야."
수빈이 소희와 수지에게 손짓으로 엘리베이터를 가리킨다.
"소희랑 수지, 너희는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가라!”
소희가 정색하며 떼를 쓰듯 발을 동동 구른다.
“언니, 나 진짜 잘못한 거 없어요."
"그건 나중에··· 암튼, 너희 둘이 물 흐려놨으니까. 퇴장!"
"재가 먼저 날 때려놓고 괜히 불쌍한 척 쇼하는 거예요. 착한 척, 이런 거 잘하는 선수라고요.”
주변을 둘러싼 모두가 팔짱을 끼고 수지를 얕잡아본다.
“그런 걸 떠나서 먼저 때렸으니까 잘못한 거 맞지.”
"상식이지."
"선빵을 맞고 때렸다면 정당방위지!"
누군가 짜증 섞인 소리를 질렀고 다들 그의 말에 호응한다.
"정당방위, 누구야!"
용수가 큰 소리 치며 둘러보자 재훈이 팔을 잡는다.
"야야, 먼저 때린 사람이 잘못한 건 맞잖아.“
쭈뼛거리던 남자 후배가 앞으로 나온다.
“선배님, 제가 그랬습니다.”
그가 앞으로 나오자 주변에 있던 이들이 뒤로 물러난다. 용수가 수지를 등 뒤에 세워 놓고 후배를 손으로 가리킨다.
"으흠, 그래."
"왜 그렇게 생각하지."
"먼저 때렸잖아요."
"왜 때렸는지, 왜 그랬는지는 알고 있어."
"몰라요. 하지만, 무식하게 먼저 폭력을 쓰는 건 아니죠."
"맞아, 폭력은 무식하고 나쁘지."
"근데 말이야. 잘잘못을 따질 때,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알아봐야 해. 그래야 진짜 억울함이 없겠지."
용수가 심각해지자 재훈이 말을 막는다.
"자자, 아무래도 내가 보기엔 수지랑 소희 둘 다 잘못한 것 같다!"
용수가 구경거리를 찾아 모인 멤버들을 쳐다본다.
"여기!"
수지가 얼굴을 들지 못하고 자리를 뜨려 움직인다.
"수지야. 네가 여기서 도망치면 오빠가 뭐가 되냐! 이건 오빠 일이기도 해. 누구든······ 자기 어머니를 끼 부리는 여자라고 깔보면 너흰 가만히 있을 수 있어."
재훈이 용수의 말에 멈칫하며 얼굴을 구긴며 말한다.
"소희, 너!"
용수가 소희를 본다.
"가족은 자기 치부야. 거길 건드리면 천사도······”
재훈의 얼굴이 붉어지며 목소리가 갈라진다.
"두말 하면 잔소리다. 어머니한테 듣는 잔소리 때문에 소리치고 대들다가 돌아서서 후회하고 스스로에게 화가 나는데 그것도 남이, 쌩판 모르는 남이 내 어머니를 깐다고, 그걸 가만둬! 기가 막혀서."
목을 돌리며 재훈이 소희를 쏘아본다.
"나, 지금 꼭지 돌기 직전이거든. 소희 너 솔직히 말해야 할 거다. 혹시 날 비꼬려 한 말··· 그보다 용수 말이 사실이야."
여기저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뭐야, 쟤 미친 거 아냐."
"하필, 재훈 형, 생파에서 금지어를 꺼냈어."
"할아버지가 한국은행 총재면 총재 지, 간이 배 밖으로 나왔어."
"그거 하나 믿고 까부는 거야. 재 오늘부로 나가리다. 퀀텀과 삼산 황태자를 건들었으니."
재훈이 용수 손을 놓고 소희에게 다가간다.
“말해, 그런 말······ 했어, 안 했어!”
수빈이 화끈거리는 얼굴로 소희를 본다.
“소희야, 정말이니?”
"해, 했어요."
용수가 수지 손을 잡아 끈다.
"가자."
용수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다. 재훈이 팔을 흔들고 한 발을 구르며 떠들고 소희는 얼굴을 가리며 운다. 수빈이 재훈을 말리며 용수를 찾는다.
“용수 오빠! 이렇게 가면 어떻게 재훈 오빠 말려야지.”
재훈은 파티룸이 떠나가라 악을 쓴다.
“너, 쓰레기가 뭔지 알아!”
문이 닫힌 엘리베이터 안은 조용하다.
“괜찮아?”
수지가 말없이 고개만 끄덕인다.
“네 차 어디 있어. 내가 바래다줄게.”
"괜찮아."
그녀가 용수 호주머니를 본다.
“오빠 차는?”
“촌스럽긴 박 기사 부르면 알아서 할 거야.”
수지가 차 키를 용수에게 내준다.
삐비 빅
수지를 태워 놓고 용수가 운전석에 앉는다.
“흐으음, 여자가 몰고 다니는 차라 그런지 다르긴 다르네."
룸미러에 달린 해바라기 펜던트와 작은 호리병이 흔들린다.
"아기자기하고 냄새도 좋고 방향제치곤 괜찮은데.”
수지가 호리병을 가리킨다.
“아니야, 천연 바이올렛 원액이야. 프랑스 물(Mul) 가문 농장에서 만든 거래. 우마리가 준 거야.”
우마리라는 말에 핸들을 막 잡은 용수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너, 너도 우마리 알아.”
"응"
수지가 안전벨트를 당기며 목소리가 밝다.
“당연하지. 갠 초중고 동창이고 내 유일한 최고 베프야. 오빠는 우마리를 어떻게 알아.”
용수도 수지를 따라 밝게 웃는다.
“너무 잘 알지. 보라보라 공주 아냐.”
“오빠도 우마리 잘 아는구나."
"뭐! 우연히, 어떻게 알게 됐지."
"그냥 우연히?"
"갠 평범한 제비꽃을 그렇게 좋아더라.”
수지 차가 주차장을 빠져나온다.
“오늘 고마웠어. 오빠!”
“고맙긴.”
“근데 소희가 말한 걸 어떻게 알아들었어?”
“바텐더가 잔에 비친 입 모양을 보고 알려줬어. 어떤 상황에 자꾸 노출되면 특별한 능력들이 생기나 봐. 너도 알지 눈치, 나도 눈치 하면 백 단이거든.”
수지가 용수 얼굴에 얼굴을 들이밀자 놀란 듯 얼굴을 뒤로 뺀다.
“아이! 놀래라. 운전 중이다. 그렇게 훅 들어오면··· "
"오빠 말 듣고 믿기지 않아서 오빠도 눈치를 봐."
"야, 눈치 정도가 아니라 살벌하다. 눈치가 없으면 얼마나······ 그만두자 말해도 이해할 수없을 거다.”
“아니 퀀텀 황태자가 눈치 볼 게, 뭐가 있다고?”
“어쩌면, 리타 가문 우마리도··· 그건 아무도 모르는 거다.”
용수가 수지를 룸미러로 쳐다본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란 말 누가 했어.”
“그야, 셰익스피어.”
“맞아, 겉으로 보기에 행복해 보여도 우리가 모르는 사연들이 있어. 참, 너희 어머니 퀀텀 행사에서 뵌 적 있어. 오해하지 말고 들어. 내 어머니와 많이 닮으셨더라.”
수지가 유리창으로 스치는 건물들을 중지로 누르다 룸미로 용수를 본다.
“아까? 그래서 그렇게 정색한 거야."
"······"
"뭐, 솔직히 말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지.”
***
수지와 용수는 그 일을 계기로 오누이처럼 서로를 챙긴다.
우우웅우우웅
(수지) 오빠!
(용수) 수지야, 지금 바빠 나중에
(수지) 알았어, 그런데 그 은둔자 형과 권 오빠가 다른 점이 뭔지 알아. 그건 사람을 얻을 수 있다는 거야.
(용수) ······!
(수지) 서열에 미련 두지 말라고. 은둔자 흉내 내지 말고 널려 있는 좋은 패 가지라고. 정재계 인맥들 말이야. 내가 도와줄게.
(용수) 생각은 고맙지만····· 그래, 사실 네 말이 틀린 것도 아니지. 비서실에 연락해 둘 테니까 하고 싶은 대로 해 봐!
용수의 생일을 맞아 수지가 ‘멤버스’ 회원들에게 초대장을 돌렸다. 용수와 수지는 뭐라고 딱 정할 수 없는 애매한 사이에서 썸 타고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어정쩡하게 내린 여자가 칵테일 바에 앉아 이이폰만 바라본다.
“안녕하세요.”
수지의 샤넬 드레스가 흔들린다.
"혼자 왔어요?"
“네에 에.”
“여기 쫌 그렇지요. 나도 혼자 왔는데 옆에 앉아도 될까요.”
여자가 아이폰을 가방에 넣으며 눈이 반짝인다.
“그럼요, 앉으세요. 저는 국회 의장······”
“아니, 그런 건 됐고, 난 수지야.”
“저는 최 미정이요.”
“미정 씨, 미정아! 말 놓아도 되지.”
“그럼요, 좋아요.”
“안쪽 프라이빗 룸에는 먹을 것도 많은데 우리 거기로 갈까.”
미정이 핸드백을 들고일어나 수지를 재촉한다.
“가요!”
바텐더가 웃으며 잔을 부드럽게 닦는다. 미정이 수지 옆에 찰싹 붙어 멤버스 라인에 연결된다.
***
비밀의 방 열린 문 앞에서 길 잃은 강아지가 주인을 만난 듯 수지가 움직인다.
“용수 오빠, 얼마나 찾았는지 알아. 여기 있으면서 전화는 왜 안 받아. 왜!”
눈앞에 뜬금없이 나타난 수지를 보고 놀라서 멀뚱 거리던 용수가 몸을 떤다. 수지가 두 주먹을 불끈 쥔 흥분된 상태다. 우마리가 수지의 격한 감정을 진정시키려 부른다.
“수지야?”
“넌, 기다려.”
어느 때보다 이성적인 수지. 우마리에 대해 별 감정 없다는 듯 용수 앞에 선다.
“진짜 못 살아!"
그녀가 용수 등짝을 후려친다. 팔의 움직임과 손바닥 휘둘림이 커 보였을 뿐 조심스럽다.
“권 오빠가 실세든 회장이든 무슨 상관이야. 정신 차려! 여전히 오빠만 믿고 따르는 사람들 많잖아.”
“그게, 아니라. 수지야!”
“또 변명한다. 등신 같이 이러면 나 정말 속상하다고 했어, 안 했어.”
“해~ 했어, 미안해.”
울먹거리던 수지가 한순간에 땜이 터지는 천둥 같은 울음소리를 낸다.
엉엉엉
넋 놓고 버티던 용수의 착각이 깨진다.
“그래, 알았어. 내가 걱정돼서 찾았어.”
"그걸 말이라고 해!"
"많이 놀랐구나, 어디 안 갈 테니까 그만 울어."
"몰라!"
"미안하다니까······"
우마리가 미소를 띠며 테이블을 짚고 용수와 수지를 본다.
“용수 씨도 헷갈리고 있었네요.”
수지가 비장하고 무시무시한 자세로 각을 잡는다.
“오빠, 일어나.”
"엉!"
돌덩이 같은 용수의 얼굴을 수지가 움켜잡는다.
“오빠는 나한테 늘 이랬어.”
수지의 끈질긴 사투가 시작된다. 돌문어를 닮은 용수, 돌을 끌어안고 버티는 그를 수지가 끌어당긴다.
“나, 나한테 확인할 게 뭐가 있다고?”
"있어. 아주 중요해!"
“뭐~어얼, 왜 이래?”
“잠깐이면 돼.”
“수지야, 나 나중에 여기 지금···”
용수가 창피함에 고개를 돌리려 할 때, 수지의 입술이 씩씩하게 맞닿자 그의 입술이 마법처럼 크게 열리며 미끈한 두 혀가 엉킨다.
으으음······
수지의 감긴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 작가의말
······ 등짝을 후려친다. 팔의 움직임과 손바닥 휘둘림이 커 보였을 뿐 조심스럽다.
부글부글 끓는 분노와 짜증, 신경질을 동반하는 흥분된 감정에 측은함이 발동되면 감정의 조절 장치가 켜집니다. 측은함은 어려움을 겪어 본 존재가 갖는 결이 부드러운 정서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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