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회차) 타로 백지카드 다섯 장
“뭔가 퍼즐이 맞춰지는 것 같군.”
수지가 어슬렁거리다 베제로의 책상에 앉아 이것 저것을 만진다.
"?"
“우마리, 네가 말했던 이거 아냐?”
“거기! 함부로 만지지 마시오.”
베제로는 거침없는 수지의 행동에 기가 차다.
“우마리, 어서 와 봐.”
“수지야 아무거나 막 만지면 안 돼. 실례라고.”
“이거지. 여기 거북이랑 토끼 펜던트들.”
“맞네! 어쩜 직접 만드셨구나.”
“야, 보통 솜씨가 아닌데. 어나더 레벨이라고!”
수지가 베제로를 쳐다본다.
“쌤, 명품사업을 하신다면 저랑 동업하실 생각 없나요.”
“······”
그는 대꾸하지 않고 수지를 보면서 머리를 박박 긁는다.
“거 아무거나 만지지 말라고 했을 텐데.”
“쌤, 그림도 그리세요?”
베제로가 날쌔게 다가온다.
“못 말리는 아가씨, 도대체.”
“쌤, 이거! 타로카드 맞지요?”
“선생님, 이거 직접 도안 작업하신 것 같은 데요.”
"맞아, 완전 딱 걸렸어. 쌤 취미 독특하다 그치."
그가 엉덩이를 털며 변명처럼 말을 버벅거린다.
“취미로 부탁받아서 딱, 다섯 시리즈로···”
“쌤이 정도 실력이라면 타로도 할 수 있다는 거네요.”
“그건 아니고!”
“저 타로 마니아예요. 연애운 좀 봐주세요.”
수지가 베제로 손을 덥석 잡는다.
“어멋!”
놀란 그가 수줍어하며 손짓했지만 수지가 여우짓을 한다.
"쌔에에엠~ 연애운."
“아이 참, 그럼 이거 하고 집에 가시오."
"해주시는 것 보고용."
"두마리 그리고 아가씨도 이쪽으로 와봐요.”
작업실은 초 현대적이며 연구실 공간이다.
“쌤, 혹시 마법사세요.”
“와아 선생님, 이게 다 뭐예요.”
“내 유일한 취미 공간.”
“쌤은 아무리 봐도 사람 빼곤 다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마리가 베제로를 유심히 바라본다.
“선생님 재능을 세상이 못 담고 있다니. 아쉬워요.”
“쑥스러운데. 회장님께서도 같은 말을 하셨어.”
“아버지가 여기 오셨어요.”
“응, 혼자 오셨지.”
“그만!, 쌤과 우마리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고 어서 타로 봐주쎄욤.”
수지의 재촉에 그가 리모컨을 누르자 책상이 커진다.
“와우, 의자가 딸려 나오고 영화에서 본 장면이다.”
“리타 회장님이 제작해 주신 선물이오.”
“떨려, 떨려. 능력자 쌤이 해주는 타로라니.”
“제작만 해보았지. 처음이라 두마리도 앉아.”
“네.”
“선생님, 그림이 매우 독특해요.”
타로카드는 칠십팔 장이다. 베제로가 두 장을 추가해 팔십 장을 만들었다. 별을 상징하는 다섯 시리즈 카드를 그가 섞고 바닥에 펼친다.
“아가씨가 바라고 원하는 걸 생각하고 하나 골라요.”
수지가 눈을 감고 카드를 집는다.
“이거요.”
그가 다음 시리즈 카드를 섞어 펼친다.
“이번엔 이걸로.”
그렇게 다섯 시리즈별로 하나씩 뽑은 카드가 다섯 장.
“수지 씨가 직접 카드를 열어봐요.”
“이게 뭐라고 떨려 잠깐! 나 100% 믿을 거니까 말리지 마요. 만약에 쌤이랑 결혼하라면 할 꺼고···”
“수지야.”
“아가씨, 진심이지.”
“넵, 이번 생은 복불복이다. 얍!”
수지와 베제로가 카드를 보고 살핀다.
“으음···”
베제로의 실망하는 눈빛이다.
“와아!”
뭔가 좋아하는 수지.
“선생님 어떻게 나왔어요. 수지가 결혼을 하나요?”
“하네.”
“쌤, 조용하시고 내가 카드를 보니··· 그림이? 아니다. 계속 하세요.”
“아가씨, 곧 결혼하겠어. 둘 다 좋아하지만 결정은 아가씨의 몫.”
“근데 이 두 장의 카드는 뭐예요.”
“구원자 카드가 두 장이나 나왔네.”
“구원자요.”
“한 명은 결혼할 사람일 것이고 한 명은?”
“그 한 명은 바로 쌤이겠쭁. 제가 팍팍 밀어드릴게요.”
“말만 들어도 좋군.”
“약속!”
수지가 새끼손가락을 그의 새끼손가락에 건다.
“아니, 외간 남자 손을 그렇게 막 잡고 그러시오.”
“외간 남자는 무슨! 의리.”
베제로가 함박웃음을 짓는다.
“선생님, 그렇게 웃으시니까 옛날 모습이 보여요.”
“오늘 몇 년 치 밀린 웃음을 다 웃네.”
“야, 우마리 너도 해야지.”
“난 됐어.”
“두마리도 재미로 해봐.”
“전 딱히 바라고 원하는 게 없어요.”
“하기야 넌 다 가졌으니 없기도 하겠다.”
“웃을 일이 있나 보자고 골라봐.”
“웃을 일이요?”
베제로가 펼친 타로를 그녀가 웃으면서 집는다.
“자, 이제 뒤집어 봐.”
“으드드, 우마리 보다 내가 더 긴장돼.”
“나도 조금 떨리는데.”
그녀가 천천히 타로카드를 뒤집는다.
“엥!”
“오잉?”
“······”
“쌤 이거 다 껍데긴데 이렇게도 나오나요?”
그의 표정이 얼어붙어 말이 없다.
“선생님.”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야, 우마리 정말 초짜인 내가 봐도 이상해.”
“이걸 어떻게 말해 줘야 하지.”
“그만 뜸 들이고 베제로 쌤!”
“이건 제로 카드야.”
“꽈아~앙! 우마리 인생이 꽝이라는 거예요.”
베제로가 주먹을 움켜쥔다.
“아가씨, 제발 쪼~쫌 쫌.”
“네 에.”
베제로의 욱하는 성질에 놀라 수지가 얌전하다.
“선생님, 괜찮아요. 재미로 본 거잖아요.”
“이건 재미 정도가 아냐.”
“그럼···?”
수지가 열리는 입을 손으로 가린다.
“그냥 느낀 대로 말해 줄게.”
“멈춰. 우마리 손 이리 줘. 이제 말해 주세요.”
그가 수지를 보고 웃는다.
“다섯 별의 운명을 우마리가 쥐고 있어. 아무도 혹은 자신도 모르는 과제를 풀어내야 해. 그래야 새롭게 시작되고 열리지. 사실 이건 신(神)의 수라서···”
“괜히 떨었네. 이거 봐. 신이라니 깐.”
우마리가 카드를 유심히 본다.
“이렇게 나올 확률이?”
“아이고 머리야. 넌 이 상황에 확률 계산을 하냐.”
“나도 처음 해보는 거라. 하지만 재미라고 하기엔.”
“무엇보다 다른 이들의 운명을 쥐고 있다니까 부담스러워요.”
“우마리, 부담 갖고 해결해라. 그리고 인상도 펴라~ 잉.”
베제로가 타로카드를 접는다.
“오늘 정신이··· 저, 아가씨 때문에 웃기는 했지만 십 년은 늙은 것 같군.”
타로카드를 정리한 그가 몹시 피곤하다.
"이제 약속한 대로 다들 가."
***
“집까지는 데려다줄 수 있어. 아직 시간있다고······”
“인사동 온 김에 둘러보고 가려고.”
“그래, 나랑 엄마가 모처럼 저녁 약속 했잖아.”
“운전 조심하고.”
“나, 저녁 약속 취소해!”
"됐다니까. 어서 가라고 친구!"
우마리가 어깨를 올리며 재촉하는 표정을 짓는다.
“혼자 있고 싶어서 그래···”
“아 알았어. 저녁에 전화할게.”
***
월요일.
"타스!, 타스!"
그가 부사장으로 일 년 동안 보여 준 퍼포먼스는 대단했다. CEO 취임식이 끝나고 급히 서울로 날아온 그의 서울 방문 직원들은 종일 붕 떠 있다. 타스도 그런 심리를 이용한다.
“여러분들 모두가 로만의 주인입니다.”
사무실에 혼자 앉은 우마리가 망설인다.
우우웅우우웅
: 끝났으면 빨리 오지 아니면 내가 그리 갈까.호텔로 당신이 오면 내가 내려가서··· 당신 보러 서울에 온 거 알잖아.
타스 8:49
타스가 머무는 호텔 바.
“보고 싶었어. 아, 그리고 이번 핵심 프로젝트 좀 맡아 줄······”
말없이 계속 타스의 이야기만 듣는 우마리다.
“어떻게 생각해?”
그가 그녀의 표정을 살핀다. 타스는 뭔가 알고 있다는 듯 뉘앙스를 풍긴다.
“잘할게··· 서울은 본래 위치로 갈 거야.”
비수 같은 말도 자제한다.
“당신 앞에선 늘 긴장되네.”
그가 목이 탄다.
”브레인 철수는 순차적으로 본사로 합류하고. 당신만 slowly slowly. 내 인내와 기다림은 오직 당신만 예외지.”
복숭아 향기, 에르메스 넥타이에 수제 박음질한 복숭아가 낯설지 않다.
“일 이야기는 여기까지!
”그가 웰컴 샴페인과 스낵으로 나온 올리브와 나초 그리고 초콜릿을 먹는다.
“초콜릿 좋아하나? 아버지 책상에 늘 99% 다크 초콜릿이 있었지. 그걸 먹을 때마다 행복해하셨고 난 행복한 미소를 갖고 싶어 다크 초콜릿을 몰래 먹다 들켰어.”
눈이 떨리는 타스.
“입에 물고는 아무렇지 않게 속이려 했어. 하지만 쓴 초콜릿을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었어. 난 뱉지 않고 그대로 삼켰지.”
그는 엑스트라 마티니를 흔들다 XYZ칵테일 잔을 잡은 그녀의 가느다란 손을 야릇하게 보며 할짝거린다.
“얼마나 쓰던지···”
가녀린 팔과 굴곡 없는 어깨 능선, 한 마디도 꺼내지 않은 입술이 매혹적이다.
“쓴맛을 처음 접한 아이들은 대부분 뱉어 버리는데."
그가 마시던 칵테일을 내려놓으며 그녀의 입술을 빤히 본다.
“아주 좋은 지적이군.”
우마리가 코웃음을 친다.
“어렸지만 아버지의 행복한 미소를 갖고 싶다는 마음에 강한 쓴맛을 견뎠어. 난 가져야겠다고 생각하면 반드시 갖고 말지.”
그녀의 눈썹이 올라간다.
‘또 시작이야.’
그가 쥔 잔에 그녀가 비쳤고 움켜쥔 손이 뜨거워 잔은 녹아 버릴 것 같다.
“인내라고 말하고 싶은 건가요.”
타스가 한 번에 칵테일을 삼키고 몸을 틀어 그녀의 의자를 돌려세운다.
“인내, 인내라고 했나.”
그녀가 그를 더욱 차갑게 대한다.
“나한테만 이런 식이지. 행복한 미소를 갖고 싶다는 갈망. 허기 같은 거라고.”
인내라는 말에 불안한 그가 버릇처럼 그녀를 겁주려 한다.
흐릿흐릿한 어둠의 틈에 블랙홀이 열린다.
***
기원전 317~ 기원전 180년경 인도.
고아(남인도)에 도착한 날부터 비가 그치지 않는다.
황제 삼라트가 신경 쓴 별장은 언덕 위에 요새처럼 안전한 감옥 같다.
“공주님, 바다가 손에 잡힐 것 같아요.”
“답답해.”
“여긴 바다를 보기엔 그만입니다.”
“바다를 접할 수 없잖아.”
“그래도 안전한데요.”
“그럼 여길 올 이유가 없었어.”
“저 좀 이해해주세요.”
“유모!”
그녀가 물러나와 밖에서 구시렁거릴 때.
“유모님! 드디어 해가 나왔어요.”
“비가 그쳤군.”
“유모는 싫으세요.”
“걱정돼서 그러지.”
“뭘 그렇게까지.”
“몰라서 물어, 공주님의 안전을.”
호위 기사가 다가와 말한다.
“사 일째요! 그렇다고 이곳에만 있을 수는 없잖습니까.”
- 작가의말
우리가 세뇌당한 ‘인내는 쓰다’는 이 말에 동의하시나요?
개인적으로 인내는 아주 맵고 매우 짰습니다. 게다가 끝 맛은 얼얼해서 뭔가 휘발됐지만 여운이 남아 개운하지 못한 뒤끝이 남아있었죠.
그래서 인내라는 말보다 비워낸다는 말을 좋아합니다. 당신에게 인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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