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회차) 이스타의 고민
이스타가 정확히 24분이 지나자.
“이거! 김 빠지는데, 메시지를 확인하지 못한 이가 한 사람이라니."
"한 사람이라면 아직 리타 가문이 건재하다는 거군. 이스타."
이스타가 혀를 차며.
"글쎄, 듣도 보도 못한 이런 자가 지분을 가지고 있다니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네."
"남은 한 사람이 누구인가?"
"제로.”
오르페우스처럼 돌아보는 무진.
“방금, 제로라고 했나?”
“으음, 지분도 작고 광 에너지 연구소를 가지고 있군. 어디 발톱의 리듬감을 살려 끌어 줄까."
투명 자판에 소리를 입혀 구식 노트북 자판 소리를 내는 이스타.
"좋군, 클래식한 이런 소리는 언제 들어도 편안해."
무진이 이스타에게.
“혹시 자네 '은둔자 제로'라고 들어봤나.”
“처음 듣는데, 이제보니 자네도 게임을 즐기나 보군.”
고개를 젓는 무진이 일어나 서성거린다.
“이스타, 본때를 보여주는 일을 잠시 미뤄야겠네.”
“무슨 이유라고 있는 건가. 얼굴까지 창백해졌어."
"뭐라고 해야 하지. 난 상상력이 부족하지만 수지 씨가 그러더군. 촉!"
이스타가 낯선 모습의 무진을 가만히 본다.
"자네, 은근히 재미있는 구석이 있어. 여자들이랑 수다를 즐기나 본데."
"나, 제로가 누구인지 알 것 같네!”
"어디, 들어볼 테니 말해 보게."
무진이 이스타에게 다가온다.
“우마리에 의하면 래리 엘슨이 두려워서 제대로 말도 못 한 자라고 들었네. 제로에게 골탕 먹이는 일은 잠시 보류하지. 건들면 안 될 것 같아, 그에 대해 알아봐야겠어.”
심각한 무진의 모습에 이스타가.
“알았어, 자네가 신중한 것은 알지만 오늘은 남다르군. 듣고 있는 내가 주눅이 들 정도야.”
무기력해지는 이스타가 의자에 구겨진다.
“실망할 필요 없어. 이제부터 샥티 존에 대해 자네도 알고 가야지.”
이스타가 앉은 의자가 빙그르르 돌고.
“방금, 샥티 존. 내가 잘못 들었나?”
“정확히 들었어. 샥티 존을 발견했어. 대기권이 아닌 상층에서 말이야.”
이스타의 눈빛이 서늘해진다.
“솔직하게 말해주게. 내겐 정말 중요한 일이니까. 혹시 우마리도 알고 있나.”
검지로 천장을 가리키는 무진.
“우마리가 발견했어.”
묵직하게 일어난 이스타와 달리 빙글빙글 돌아가는 의자.
“운명의 장난도 아니고 기가 막히는군.”
부산을 떨며 외투를 걸치던 이스타가 외투를 던져버린다.
"도대체 뭐가 어떻해 돌아가고 있는 거냐고, 돌아버리겠군."
널브러진 외투를 무진이 주워 들고.
"자네, 뭐가 그렇게 불만인가? 우마리 이름만 나오면 흥분을 하고 막상 마주하면 싸늘하게 외면하면서."
"그러게. 직설적으로 말해주니 내가 할 말이 없군. 우마리는 뭔가를 해결하고 찾아내는데 난 아무것도 못해서 질투가 났나. 샥티 존에 아는 대로 알려주게"
외투를 집어 들며 이스타가.
"미안하네."
“··· 놀라운 것은 가상 세계를 주름잡는 윌 카슨이 5차원 샥티 존에서 메타를 운영하고 있었다는 거지.”
"5차원! 아직 구현이 안 된 리앨퀀 우주 시스템을 어떻게?"
"가보면 알겠지만 구현 정도가 아니라 작은 지구처럼 아늑했네."
이스타가 탭을 열어 뭔가를 확인한다.
“가상공간이라고 여겼는데 그래서 카슨 그룹이 사이버와 그쪽 세계를 꽉 잡고 있었군.”
"하지만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점이지."
"그럼, 또 다른 무엇이 있다는 건가?"
무진이 탭을 열어 윌을 보여준다.
“우마리는 샥티 존을 보고 윌을 뒤에서 조정하는 인물이 제로 일지 모르다고 추측했었네. 하지만 우린 샥티 존 현장에서 윌을 보았기 때문에 흘려 들었어. 그런데 제로라는 이름을 다시 듣고 보니.”
“윌 카슨이란 자는 어땠나.”
“막상 만나보니 그는 아니야. 꼭두각시에나 걸맞은 자였어. 모든 사이버 공격과 사이버 불링은 뒤에 숨은 그림자는 제로가 분명해.”
탭을 만지는 무진.
“자네, 혹시 붉은 뱀에 대해 알고 있나?”
팔짱을 끼며 여유로운 이스타.
“붉은 뱀은 요즘 자취를 감추지 않았나?”
무진이.
“붉은 뱀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게 왜 궁금하지.”
“난, 사악한 기업들이 저지르는 추악함을 드러내는 붉은 뱀을 관심 있게 지켜봤었거든.”
헛기침을 하는 이스타.
“그래, 그럼. 멀리 나가지 않아도 되겠네. 그게 나거든.”
무진이 탁자를 치며.
“문제를 경고하고 해결하지 않으면 쑥대밭을 만든 기업 사냥꾼 붉은 뱀이 자네라고?”
“나였지. 과거형이야. 이젠 내일만 하지.”
“자네가 진짜 붉은 뱀이었다니. 영광이군.”
쑥스러워하는 이스타가.
“지난 일이야. 이 세상에 내가 붉은 뱀이었다는 사실은 자네와 나뿐이야. 우마리도 모른다고.”
“그럼. 스발바르 국제 종자 저장소 문제점은 어떻게 알았나.”
“BMW에 근무할 때, 독일 바바리아에서 여러 환경운동가들과 친해졌고 암암리에 들었지. 알아보니 문제가 심각했어. 내부 문건에 과학자들의 경고도 무시했더군.”
“그래서, 과학자들을 움직인 건가.”
“아니, 네로가 연락해 왔어.”
무진이 탭을 켜고 분주하다.
“네로?”
“뭐라고 해야 하지. 아군 같은 존재였어. 내 의견에 적극적으로 동의해줬지.”
“그래서 어떻게 했나.”
“스발바르 국제 종자 저장소 문제를 이미 알고 있더라고. 그리곤 남극과 북극에서 다른 방식의 곡물 저장소에 대해 말하더군. 알고 보니 리타 가문 이야기였어.”
“혹시, 이스타! 네로가 검은 고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나?”
“그걸 어떻게! 검은 고양이가 맞네.”
무진이 이스타의 말을 듣고 숨을 헐떡거린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몸이 좋지 않으면 병원으로···”
“물 있나?”
이스타가 일어나 음료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무진에게.
“자네 답지 않게. 식은땀까지 흘리고.”
“도대체 왜 그래?”
무진이 괴로워한다.
“다 풀었다고 생각했는데 다 엉켜 버렸어.”
흔들리는 무진의 옆에서 이스타가 말없이 앉아 있다가.
“닉 네임으로 활동하는 이상한 자들 말이야. 살면서 객기를 부리고 싶은 그런 시절이 있어. 제로라는 자도 마찬가지 일거야.”
“은둔자 제로는 다르네. 인공위성 파괴와 우주 정거장을 마비시켜서 우주 강대국이었던 G4를 한순간에 후진국으로 만들어 버렸어.”
“그건, 인공지능 슈퍼 컴 오류 작동으로 시설이 파괴된 것으로 밝혀졌는데 무슨.”
“그렇지 않네. 사실은 제로의 공격이었어.”
이스타가 무진의 비장한 목소리에 그의 눈을 보며.
“뭐야? 사실인가 보네.”
무진이 이스타를 잡아끈다.
“일어나게. 다른 이도 아니고 자네가 이러고 있으면 안 되겠어.”
“가자고 나도 궁금하니까.”
“모두에게 알려야 해. 다들 리앨퀀 연구소에 있을 거야.”
이스타가 무진을 일으켜 세우며.
“알았어. 대신 가기 전에 말해 주게. 무엇 때문에 이렇게 힘들어하는 건지 알고는 가야 내 마음이 편하지.”
다시 무진이 소파에 힘없이 앉고.
“샥티 존과 검은 고양이 그리고 은둔자 제로 모두가 왕회장님이시네.”
“커~억! 컥.”
이스타가 무진의 말에 사래가 들려 물을 마신다.
“확, 확실한가? 자네 말이라면 믿어야 하지만···”
물병을 계속 흔들며 고민하는 이스타에게 무진이
“자네도!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이는데?”
이스타가 물병을 내려놓는다.
“이제 나도, 숨 좀 쉬고 살아야겠네. 내가 마음 병이 생긴 이유. 사랑하는 우마리를 멀리하는 이유에 대해서 말이야.”
어깨가 축 늘어진 그가 눈물을 흘리며
“지금껏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을 자네에게는 털어놔야 살 것 같아.”
*
리앨퀀 멤버들이 돌아가고 탭이 진동한다. 서둘러 아버지의 승우의 정수리에서 단추를 제거하고 서재에서 나온다.
붉은 드레스를 벗고 실내복으로 갈아입은 우마리가 화장대에 앉는 순간 인터폰이 울린다.
우마리 : 네
조 여사: 아가씨, 유 교수님 기일이라 비비추 화환을 중앙 로비에 세워 뒀습니다.
우마리 : 어머니께 들었어요.
드레스를 세탁실로 보내기 위해 2층 거실 세탁물 통에 넣으려 할 때였다.
휘리릭!
“방금 뭐였지.”
달 정원 한가운데 호리병 위에 앉은 검은 고양이.
‘2층에 올라올 때 분수가 잘 나왔는데··· 호리병 위에 인형을 누가?’
야옹!
우마리가 깜짝 놀란다.
“진짜, 고양이네. 어떻게 여기에!”
고양이가 혀로 발을 핥아가며 그녀를 빤히 바라본다.
야옹!
순식간에 호리병 속으로 속 빨려 들어간 고양이.
“어머나.”
드레스를 바닥에 놓고 우마리가 호리병을 돌려 빼낸다.
“어떡해, 죽지 않았겠지. 어서 나와.”
호리병 안에 고양이는 없다.
“어디로 갔지. 내가 너무 피곤해서 헛것을 본 건가.”
떼어낸 호리병을 달 정원 구석에 놓으며.
“호리병을 분수대에 꽂지 말라고 해야겠어.”
두리번
“드레스가 어디로 갔지. 세탁물 통에 넣었던가? 왜 이렇게 정신이 없는 거야.”
우마리가 일어나 1층으로 내려가려 할 때 엘리베이터에서 리사가 내린다.
“비비추 화환 봤니.”
“아직, 지금 내려가려고.”
“아버지가 워낙 보라색 꽃을 좋아하셔서 보자마자 울컥했어. 예쁘더라. 하여간 네 안목을 알아줘야 해.”
“엄마가 좋다면 외할아버지도 좋아하시겠네.”
“내려가자. 이스타는?”
“프로젝트 때문에 비상이 걸렸는데 잘 풀렸어 멤버들 격려 좀 해주라고 했어.”
“잘됐네. 한시름 놓았다. 아빠는 요즘 아프셔서···”
리사가 근심 어린 표정을 보이자 우마리가 안아준다.
“잠시 아버지 혼자 만의 시간을 주는 것도 좋아 엄마!”
“그래서 요즘 엄마가 그러고 있잖니.”
“내려가자. 입맛도 없고 해서 조 여사한테 간단하게 먹자고 했는데.”
“간단하게 뭐?”
“김밥으로.”
“얼마 만에 먹는 분식이야.”
- 작가의말
나였지. 과거형이야. 이젠 내일만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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