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회차) 나 말고 아무도 모르는 비밀
황제는 머리가 복잡하다.
생일잔치 중에 권과 우마리의 모습을 보고 흐뭇했었다. 정략결혼에 대한 재상의 확실한 대답을 듣지 못한 상태여서 황제는 조급함에 넌지시 말을 꺼낸 것이다.
“우마리 공주와 자네 아들 권이 아주 잘 어울리는군.”
“그렇습니다.”
“둘이 손을 잡고 귀빈들 앞에 대놓고 나타났으니 짝을 지어줘야겠어.”
“보기 좋습니다.”
황제는 재상의 아들을 상대로 우마리를 정한 것이 무척 난감해졌다.
“이를 어쩌나. 용수라는 자의 말을 듣지 않았으면 모를까. 듣고 나니 우마리를 정략결혼시킬 수 없는 노릇이고.”
“삼라트, 나만 믿어요.”
용수의 말처럼 둘은 공작 왕조를 위해서 공주를 바꿔치기해야 한다.
“모리야! 쉬운 일이 아니오. 재상이 얼마나 영악한지 알잖소. 우리 머리 위에 있다니까.”
“믿으라고요! 나 말고 아무도 쌍둥이 공주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어요.”
“그렇긴 하지만, 혹시 우마리가 권과 손을 잡고 나타났으니 마음에 두고 있을지도 모르잖소. 알아봐요.”
“이미, 슬쩍 물어봤는데 아니에요. 그보단 타마라가 권을 마음에 두고 있어요.”
“일이 복잡하군. 그럼 당신만 믿을 테니. 실수 없도록 해요.”
황제와 황후는 재상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우마리가 아닌 타마라와 정략결혼을 맺는 것으로 일단락 짓는다. 황후가 타마라를 찾았고 곧 불려왔다.
"앉거라."
타마라 공주는 생일상 앞에서 권을 보자마자 곧바로 황후에게 마음을 털어놓았었다.
“어머니, 저 멋진 분이 재상 아들이라면서요. 저분과 꼭 결혼할래요.”
황후가 타마라에게 묻는다.
“타마라, 재상 아들 권과 결혼하고 싶다고 했지.”
“네.”
“권과 결혼하거라.”
사심을 털어놓고 바로 권과 결혼하란 말이 나오자 타마라 공주는 흥분한다.
“방금 뭐라고 하셨는지 다시, 다시 말해 주세요. ”
“재상의 아들 권과 결혼을 허락한다는 말이야.”
“정말요! 그럴게요. 어머니가 하라는 데로 해야죠.”
모리야의 셈법이 운명의 저울추를 움직인다.
“황조의 번영을 위해 사랑은 거래일뿐이지.”
"어머니, 거래라니요?"
"정략결혼은 일종의 거래다. 다행히 넌 사랑과 거래를 동시에 만족시켰으니 얼마나 좋은 것이냐."
"맞아요. 어머니가 좋다고 하시면 좋은 것이죠."
모리야는 삼라트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이다.
'신도 모르는 일, 오직 나만이 타마라와 우마리를 가려낼 수 있지.'
한편, 황실의 안락함보다 사람과 세상일이 궁금한 우마리가 생일잔치 1부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었다. 생일잔치 2부는 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두 공주가 시장을 돌아보는 것이다.
“우마리 미안, 난 시장이 아니라 귀부인들의 생활과 법도를 배워야 해서.”
“갑자기?"
"나 결혼할 것 같아. 오늘 생일잔치 중에 내게 푹 빠진 분이 청혼하셨지 뭐니.”
“정말, 축하해! 언니의 아름다움에 반해버렸구나.”
“뭐, 아니라고 할 수 없지. 게다가 결혼 적령기도 되었고.”
“너무 잘됐어.”
“이제 결혼 준비하느라 바빠지게 생겼어.”
타마라는 귀부인들을 따라 마차에 오른다.
“그럼, 나 먼저 간다.”
우마리는 시장을 자유롭게 구경하려면 호위 기사들을 따돌려야 했다.
“언니, 곧 따라갈게.”
“······?”
타마라가 돌아보자 우마리가 눈을 깜빡인다.
“어 엉! 그래.”
우마리는 귀부인들과 함께 가는 것처럼 속여 호위 기사들을 따돌렸다.
터덜터덜
벌통 주변같이 시끌시끌한 시장 거리를 걸으며 따가운 시선을 느낀다.
‘유모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걸. 혼자 나와서 그런가 오늘은 이상하게 느낌이 좋지 않아. 돌아가야겠어.’
익숙한 상점들을 지나 황궁으로 향하려 할 때 고래가 그려진 상점이 자석처럼 그녀를 끌어당긴다.
“여긴, 처음 보는 상점인데?”
딩디디딩~
무겁고 음산한 종소리가 퍼진다. 고래 상점은 어두웠지만 우마리가 들어서자 환하게 밝아진다.
“세상에서 진주 목걸이가 가장 잘 어울리는 공주님 어서 오세요. 저는 용수랍니다.”
“진주 목걸이를 어떻게······”
공주는 상점 주인의 말을 듣고 뭔가 물어보고 싶었지만 말 끝을 흐린다.
‘농담일 수 있잖아. 혼자인데 신분이 노출되면 위험해.’
말없이 신기한 물건들을 구경한다.
‘아무래도 돌아가야겠어.’
그녀가 돌아서자 향로에서 퀴퀴한 냄새와 뿌연 연기가 뱀처럼 혀를 날름거린다.
“향로에서 나오는 냄새가 너무 지독하네요.”
용수의 목소리가 비를 기다리는 메마른 흙처럼 푸석하다.
“저는 뱃멀미가 심합니다. 그러나 배를 타고 먼바다까지 나가 신비를 찾아왔지요.”
그가 옥으로 만든 독수리 향로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가리킨다.
“여기에 있는 것들은 모두 공주님의 것입니다.”
그가 뜬금없이 눈과 코, 귀를 천으로 가리더니 향로엔 대마 천을 씌운다.
“이 향은 현실의 일을 다르게 느끼게 해 멀미를 멎게 해 줍니다.”
우마리는 용수가 얼굴을 가리는 행동이 불편해 가게에서 나가고 싶다.
‘나가야겠어.’
“당신의 행동은 상대를 불쾌하게 만들 수 있어요. 왜, 천으로 얼굴을 가리는 거죠.”
“걱정 마세요. 아무 일도 없을 겁니다.”
그는 신성한 의식을 하듯 향로를 들고 우마리에게 다가온다. 조심스럽게 손까지 떨어가며 진한 육수 같은 땀을 흘린다.
“신성한 제비꽃 재와 금향을 오롯이 공주님께 받치기 위해서랍니다.”
“아니, 비켜주세요. 나갈 겁니다. 가까이 오지 말아요. 난 이런 의식 싫어요.”
용수가 우마리 가까이 향로를 내려놓고 덮었던 대마 천을 치운다.
“싫다고 했는데···”
연기가 뱀처럼 묘한 그림을 그리며 우마리를 칭칭 감는다. 그가 옥으로 만든 뚜껑을 열어 재를 꺼내 부채질 한다.
후 우우······
“공주님 뭐가 보이나요.”
“이게 뭐죠. 무지개가 검은 보랏빛이에요. 색깔의 차이는 있지만 그래도 무지개는 무지개일 때가 더 아름다워요. 게다가 눈과 코가 따끔거리고 귀가 먹먹해요.”
우마리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두려움과 우울 그리고 불안을 느낀다. 새장에 갇힌 답답함을 더는 참을 수가 없다.
“그만! 난 이런 식의 장난 싫어요. 멈춰요.”
“아니오, 진정한 소망을 위해 두려움과 불안 그리고 우울함을 알아야 하지요.”
용수는 그녀에게 두려움과 불안, 우울의 향을 씌웠다.
“시달리고 겪다가 힘들면 나를 붙잡게 되겠지요.”
그의 입술이 소금밭에서 뒤틀리는 지렁이처럼 꿈틀거린다.
"묘수 하나, 서른세 번째 마지막 주문에 착각을 걸었으니 어차피 당신은 내 손을 잡을 수밖에 없을 거야."
머리부터 발끝까지 연기가 휘감아 정신을 잃어간다. 잠시 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녀가 선 채로 깨어난다.
'아! 머리야.'
조개와 굴 껍데기를 붙여 만든 상자를 만지고 있는 우마리가 멀쩡히 서 있는 자신을 훑어본다.
'믿을 수 없어, 너무 생생했는데.'
그녀는 또렷한 일들을 허상으로 여길 수 없었다.
‘저 자는 상상이라 말하겠지. 어릴 적부터 난 상상과 현실의 연결하는······'
그는 커다란 돌산호를 타조 깃털로 세심히 털고 있다.
"향불을 이용해 장난을 쳤군요!"
공주의 말에 용수는 타조 깃털을 들고 물건들을 털기에 바쁘다.
“공주님, 진기한 물건을 보게 되면 누구나 상상하게 되지요.”
'내 예상이 틀리지 않았어.'
우마리는 조금 전 퀴퀴한 냄새가 아닌 비릿한 냄새를 맡는다.
“그래요. 시장에서 가장 익숙한 거리인데 이런 상점이 있었는지 전혀 몰랐네요.”
“재미있는 것이 많답니다. 천천히 바다 향도 느껴 보시고 둘러보세요.”
용수는 마음껏 구경하라는 듯 손짓을 하고 먼지 쌓인 사자상을 닦는다.
‘바다 냄새? 품고 있는 향기를 상상으로 가늠할 수가 없어.’
비릿하고 짭조름한 냄새를 맡으며 우마리는 바다가 궁금하다.
“용수, 신기한 것들도 많지만 그보다 바다에 대해 알고 싶은데, 들려줄 수 있나요.”
“물론이죠. 여기 의자에 앉으세요. 흥미로운 바다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우마리는 용수에 대해 의심을 풀지 않았지만 바다이야기를 듣고 의심할 수 없었다.
'바다가 보고 싶어!'
공주는 고래 상점을 다녀와 곧바로 삼라트를 찾아간다. 황제는 쌍둥이 공주 생일잔치가 끝나고 황후와 함께 골똘하게 생각 중이라 우마리가 와 있는 것도 모른다.
“생일잔치를 성대하게 열어 주셔서 고맙······”
우마리는 하려던 말을 접고 돌아 선다. 그때, 황제가 발소리의 여운을 듣고 돌아가는 공주를 잡는다.
“우마리, 재미난 이야기라도 들려주고 가야지. 섭섭하게 그냥 돌아서다니.”
황후도 황제의 말소리에 깨 공주를 반긴다.
“정말 귀하고 자랑스러운 우마리.”
“두 분께서 피곤하신 것 같아 나가려는 참이었습니다.”
공주는 두 사람의 기분을 풀어 주기 위해 큰 배를 타고 바다로 향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뭣, 바다! 감히 공주가 배를 타고 어디를 나간다는 거야. 다른 모든 소원을 들어줄 수 있지만 그건 안 된다. 타마라처럼 보석을 달라 비단을 달라고 해야지. 넌 도대체.”
삼라트는 바다 이야기를 듣다 말고 우마리에게 삿대질하며 길길이 날뛴다.
“··· 감히 제정신인 게야.”
황제는 자기 분을 삭이지 못하고 꽃병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넌 공작 황조를 위해서···”
눈 밑 까만 점이 활활 타며 검붉어진다.
쯧쯧쯧
황후는 혀를 차며 고개를 돌리고 황제를 말리지 않는다. 그저 공주에게 언짢다는 표정만 짓고 있다.
“다 너를 위해서 그러는 거란다.”
우마리는 그 자리에서 바다는 없었던 일로 한다.
“제가 두 분 심기를 어지럽게 했습니다. 죄송해요.”
용수는 바다 이야기로 우마리를 들뜨게 해 놓고 급하게 독수리로 변해 틱세 히말라야 끝자락 곰파로 돌아갔다.
- 작가의말
비밀?
타자에게 귀속되지 않으며 공통적이지 못하고 전적으로 숨겨져 연결할 수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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